[2030플라자]
엉거주춤해진 표현의 자유
임현서
(법무법인 초월 대표변호사)
“자료는 텔레그램으로 드릴게요.”
의뢰인이 국내 메신저가 아닌 해외 메신저를 통해 연락을 주겠다고 한다. 딱히 죄를 지은 의뢰인도 아니지만, 민감한 내용인데 누군가 훔쳐볼 가능성을 걱정하며 국내 메신저는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메신저 망명’ 현상은 누가 보면 호들갑인 것 같지만 그 걱정의 근원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형사 변호 업무를 하다 보면 누군가가 나의 모든 행동 궤적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곳곳에 CCTV가 빽빽하고 인터넷에 익명으로 글을 써본들 생각보다 쉽게 작성자가 특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수사 대상이 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제3자가 내가 남긴 메시지나 커뮤니티 글을 들춰볼 가능성만으로도 충분히 불안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표현의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한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 헌장에서 인민의 권리로 인정한 것을 시작으로, 1948년 제헌 헌법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명시했다. 1987년 개정 헌법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며 사전 검열과 사전 허가에 대해서도 명시적인 규정을 뒀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 표현의 자유가 긴 역사를 가진 것 같지만 주요국과 비교해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단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저해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지 말라’는 강력한 문구가 담긴 미 수정 헌법 제1조가 1791년에 채택된 것을 보면 그렇다.
반면 헌법에 적혔다고 실질적인 자유가 보장된다고 확언할 수도 없다. 예컨대 1982년 개정된 중국 헌법에도 표현의 자유는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중국인들의 인터넷 사용을 제한하거나 메신저를 감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우리 표현의 자유는 미국과 중국 사이 어딘가에서 엉거주춤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라는 문구가 작년 계엄 포고령에 등장하는가 하면, 지난달엔 이른바 ‘카톡 검열’ 때문에도 한바탕 난리였다. ‘가짜 뉴스를 카카오톡으로 퍼나르면 일반인이라도 단호히 고발하겠다’는 정치권 엄포 이후 국민들 사이에서 불안이 번져나가고 있다.
하지만 국가 검열 문제는 이번에 새롭게 불거진 이슈가 아니다. 검열 법제화의 초석은 4년 전 범죄 방지란 명목으로 이미 세워졌다. 개정 전기통신사업법은 ‘N번방 사건’과 같은 범죄를 막기 위해 ‘인터넷 검열감시법’이라는 비판에도 2021년 12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개정안은 국가기관이 개발하거나 성능 평가한 인공지능(AI)이 플랫폼에 게재된 정보를 분석한 뒤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정한 불법 촬영물에 해당한다고 식별되면 제한하는 것이 규정의 핵심이다. 이에 법안에 반대하는 이들은 ‘모호한 규정으로 국가 차원의 검열을 허용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현재 위 개정 법률 조항은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소원 심리를 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국민들은 공감대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범죄자들 잡으려면 그 정도는 괜찮다’는 입장일 것이고, 어떤 이들은 ‘검열 가능성만으로도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농후하다’는 입장일 것이다.
한데 ‘N번방’ 유사 범죄를 카카오톡에서 벌이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 같은데도, ‘해외 메신저 망명’ 현상이 일반 국민에게까지 퍼져나가고 있는 상황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내 ‘카톡’을 국가에서 쉽게 들여다봐도 괜찮은 것일까? 엉거주춤한 표현의 자유가 확실히 자리를 잡았으면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