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제발 좀 찬찬히 들 살자
김 상 립
돌아보면 내 삶도 오직 가야 할 길만을 골똘하게 생각하며 계속 속도를 높였으니, 자칫 브레이크 고장 난 승용차처럼 위험했을 터였다. 내가 먼저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으면 전부를 빼앗길 것 같은 불안 감에 휩싸여 뛰고 또 뛰었다. 그래 보아도 크게 얻은 것도 없었으니, 느긋하게 갔어도 빼앗길 일이 그리 많지도 않았을 게다. 눈 앞에 놓인 작은 성공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더 큰 성공을 위해 허기져 날뛰었어도 남은 것은 공연한 짓 했다는 후회뿐이다.
세상은 무섭게 달라져 앞으로는 속도라는 괴물이 철저히 우리를 지배할 것이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은 손안에 든 휴대폰으로 웬만한 일은 다 처리하는 세상이다. 이젠 누가 얼마나 빠르게 정보를 입수하고 활용하느냐가 성공을 담보한다고 소리 높여 외치고 있지만, 정작 이웃을 향해 열려있어야 할 마음의 문은 속도라는 방패에 가로 막혀 맥도 추지 못한다. 요즘 길을 가는 젊은 이들 대개가 이어폰을 귀에 꽂고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손가락은 문자 두드리기에 바쁘다. 옆에서 누가 뭐라 해도 잘 듣지 못한다. 소통 부재의 현장이다.
장차 AI산업은 더욱 발전할 것이고, 그것이 점점 사람을 대체해 나갈 것은 뻔하다. 만약 우리가 그것들과 치열한 경쟁을 하더라도, 휴식 없는 노동이나 속도보다는 인간의 장점을 더 키워가야 이길 수가 있다. 기계가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인 사랑과 이해, 협동이나 이타(利他)같은 인성을 보다 강화해야 그들을 부릴 수가 있을 게다. 아무리 돈이 중해도 인간과 로봇을 같은 무게로 다루어서는 결코 안 된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이고, 로봇은 처음부터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닌가? 그러니 로봇이 자꾸 발전하면, 인간은 일도 잃고 삶도 잃게 될 것이라는 전제를 깔지 말고, 어떻게 하면 인류의 삶에 긍정적 기여를 하게 될까를 깊이 고뇌하여야 할 것이다.
힘센 나라 지도자들의 성급한 결정이 얼마나 끔직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지 지금 여러분들은 몸소 느끼고 있을 것이다. 세계는 여러 개의 전쟁 앞에서 공포에 떨고 있다. 여태 영토분쟁이나 신앙문제에 관한 것이 주를 이루었는데 요즘엔 비밀리에 핵 개발을 서두르는 자와 막으려는 자들의 싸움으로 중심이 옮겨간 것 같다. 한 쪽은 제재가 들어오기 전에 핵을 완성해야 하고, 핵을 보유한 강국은 신속히 이를 해체시키려 한다. 협상이 지지부진 하게 되면 해결을 위한 빠른 방법이 바로 전쟁이다. 전쟁이 나면 전체가 고통 속으로 빨려 든다. 숱한 사람의 생명이 위험 앞에 놓이고 전쟁에 임하는 군인들은 꽃다운 젊은 목숨을 전선에 내놔야 한다. 경제도 무너지고, 사회도 무너지고, 문화유산도 무너지고, 가정도 무너진다. 그런 결정을 외부에서 알까 봐 그들은 비밀리에 소수가 모여 속전속결로 처리한다.
그 뿐인가? 지금 세계는 원유로도 싸우고, 교역과 관세로, 또는 외교로도 싸운다. 모두가 뻔히 알고 있으면서 하는 짓이니 쉽게 답을 찾지 못한다. 제발 좀 천천히 생각을 하고 숨을 좀 길게 내쉬자. 오늘 한 템포 늦추고, 내일은 두 템포 늦추고, 그 다음 날은 세 템포 해가며 속도를 확연히 줄여 보자. 속도가 늦추어지면 틈 새가 보이는 법이다. 이것이 세상사는 이치다. 늦추어진 틈새에 해결 방안이 들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지도자들은 전쟁을 통해 큰 이익을 노리지 말아야 한다. 사람 하나의 진정한 값어치는 하느님에게나 물어야 할 만큼 크고 무겁다. 그런 귀한 존재를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쉽게 다룬다면 당신의 죄를 어찌 다 감당하겠는가? 당장 전쟁을 멈추어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의 사명이다.
어떤 큰 전쟁이 일어났더라도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이고,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게 도로 제자리로 찾아간다. 이것이 순리다. 이렇게 얻는 것 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은 게 전쟁이다. 그러니 전쟁을 장사처럼 계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세계 2차대전 말, 일본에 떨어진 원자탄을 기억해보라. 이런 저런 이론 내 세울 것 없다. 핵을 가진 나라나 핵을 가지려는 나라 할 것 없이 핵을 잊어야 한다.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그 길만이 인류를 잘 지키는 길이다.
또 한 나라를 주무르고 있는 정치인들도 보다 더 찬찬히 국가를 드려다 볼 필요가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특히 교육이나 에너지, 주택, 국민건강에 관련된 정책 등은 적어도 100년은 내다보아야 한다. 지금이 100세 시대가 아닌가? 5년마다 새로 정권이 들어온다고 해서 5년짜리 정책을 서둘러 실행하면 일시적 인기는 얻을지 몰라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가 뭔가? 국민들이 불안해 하지 않고 편안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지금 당장은 살기가 어려워도 내일을 꿈꾸며 살 수 있게 해 주면 된다. 국민들이 너무 큰 것을 바라사 데모를 벌이는 게 결코 아니다. 그러니 제발 패싸움 그만 좀 하고, 뭐든 깊이 생각하고 좀 천천히 결정하도록 하자.
사실 나도 성격이 급한 편이지만 이제는 세상의 흐름과는 반대로 느릿느릿 가고 있다. 가능하다면 생각도 천천히 하고, 말도, 행동도 굼뜨게 하려 한다. 내 신병(身病) 문제도 느긋하게 무심한 쪽으로 가고 있다. 대신 느리게 판단하거나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돌아오는 손실에 대해서는 기꺼이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있다. 비록 내 몸은 21세기의 첨단문명에 부대끼고 있지만, 내 정신은 인간의 고귀함이 찬란하게 빛을 내었던 중세기 말기쯤에 머물고 싶다. 아마 앞으로 내가 지나 갈 수 있는 인생 역(驛)이 몇 개도 남지 않았을 터이다. 그러니 더욱 많은 것을 살피고 느껴가며 찬찬히 지나갈 것이다. 나는 속도가 춤추는 번화한 거리에 서서 가슴을 활짝 펴고 심호흡을 한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작업이다. 매사를 찬찬히 대하다 보면 인생도 더욱 깊어질 것이라 믿는다. 제 발 좀 찬찬히 들 살자. (2026.3)
첫댓글 그놈에 전쟁 때문에 물가란 물가는 다 꿈틀대고 있고 내일 모레 곧 뭔가 일이 터질듯한 불안감이 조성됩니다. 그런데 백화점은 미어터지고 룸싸롱은 방이 없고 해외 여행은 아직 줄을 서고 있으며 골프장 라운지엔 뭐가 즐거운지 삼삼오오 앉아 비싼 커피 마시며 연신 즐거운 사람들을 봅니다. 걱정이 많은 나이에 접어 들었는지 예민하고 급한 성격 덕분인지 어째 저만 불안한 나날의 연속인 듯 합니다.
남평 선생님, 입으로는 천천히 살아야 한다면서도 막상 앞에 일이 놓이면 발보다 마음이 앞섭니다. 이 또한 병이겠지요.
무슨 병 까지야.
일 욕심이 많은 사람들은
그리도 살지요. 하지만
차차 세월이 가면 마음이
너무 앞선 까닭에 몸이 고단했던 것을 깨우치게 되지요. 그때 또 그리 살면
되지요.
네, 남평 선생님! 글 제목만 봐도 양심이 콕 찔리는 일인입니다. 찬찬히 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