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다시피 제자들 가운데서 열둘을 사도로 뽑으신 것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대표하는 자들로서 뽑으신 것이고,
어느 한 지파도 빠지지 않은 완전한 공동체를 이루시려는 주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완전한 공동체란 완전한 사람의 공동체가 아니라
매우 다르고 불완전하지만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다 참여하는 공동체라는 겁니다.
그리고 한 사람도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한 사람도 공동체 참여를 거부하지 않고,
공동체도 누구의 참여를 배제하지 않아야만 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고,
설사 모두가 다 참여했다고 해도 그 참여가 깨지지 않고
결합을 유지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가 관건입니다.
모두가 참여하게 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모래알 같지 않고 시멘트처럼 잘 결합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어렵다는 뜻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성도들의 공동체가 잘 결합 된 공동체라고 얘기하는데
그것이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요?
사도들이 모두 인격적으로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일까요?
아시다시피 사도들의 공동체는 매우 불완전한 조합입니다.
마태오라는 세리가 있는가 하면
오늘 축일로 지내는 그 반대파인 혁명당원 시몬이 있으며,
친형제들인 베드로와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이 있었고,
오늘 축일로 지내는 유다와 시몬도 주님의 형제라는 얘기가 있지요.
그렇다면 12명의 사도 중에 반이 형제간이었을 것이고
게다가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의 좌우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지요.
이런 구성과 이런 역학관계 안에서 어떻게 잘 결합 될 수 있었을까요?
단합 대회를 잘해서 잘 결합 되었을까요?
이익이 딱 맞아떨어져서 잘 결합 되었을까요?
그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 된”이라고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또 지나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성령을 통하여”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들은 3년이나 주님과 함께 다니며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적을 봤지만
그들은 주님 안에 있지 않았고 각자의 꿍꿍이속이 있었고 속셈이 있었습니다.
꿍꿍이속이란 자기 속에 자기만 아는 꿍꿍이가 있고 속셈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각자의 꿍꿍이속이 주님 죽음으로 무산되고 성령이 가득 찬 뒤에야
사도들은 각기 딴살림을 차리려던 것을 거두고 주님 안에 모여들게 되었고
일치의 성령께서 접착제처럼 단단히 결합 되게 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결합의 시작은 딴살림, Privacy를 없애는 것이고,
오늘 주님께서 사도들을 뽑으실 때 하셨던 그 기도를 우리도 바쳐야 할 것입니다
그 기도는 나의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기도가 아니라
전체가 하나 되길 바라는 기도요
주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제자들을 위해 바치신 그 기도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를 한번 돌아봅시다.
나를 위한 기도 말고 공동체를 위한 기도를 얼마나 자주 하는지.
전체가 하나로 잘 결합 되길 비는 기도를 언제까지 했는지, 아직도 하는지.
멀리 있는 병자를 위해서는 같이 아파하고 기도하지만
가까이서 신음하는 사람은 그 아픔을 알지도 못하고 기도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첫댓글 아멘.
아멘 T평화를빕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신부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일거 일동을
다 아시는주님
오늘도 주님뜻대로
행복을 찾아
살아 갈수게
해 주시니
감사 합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