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절 죽은 뒤에 후세가 있는가?
1 견정 비구는 새로 출가하여 아직 법을 많이 듣지 못했으므로 이런 의심이 있었다. ‘부처님은 후세가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사람이 죽은 후에는 아무도 다시 와서 말하는 이가 없는데 , 어떻게 아는가? 이것을 부처님께 여쭈어보겠다’고 생각하였다. 부처님읕 벌써 그 마음을 아시고 먼저 말씀하셨다.
“제자들아, 저 나무는 한 개의 씨로서 지ㆍ수ㆍ화ㆍ풍 사대로 자라나 저렇게 크고 무성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밑에 의지하게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 나무가 씨로 있을 때에는, 뿌리.줄기.가지. 열매도 없었고 또 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사대의 인연을 얻어, 싹이 돋고, 잎이 피고, 줄기가 나고, 마디가 생기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어, 잇따라 변하여 저렇게 자란 것이다. 그러나 저것은 예전대로 있는 것도 아니요 또 예전 것을 여읜 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이름이 ’씨‘지만, 씨에서 나오는 것은 싹이요, 싹에서 나오는 것은 줄기요, 줄기에서 나오는 것은 꽃망울이요, 꽃망울에서 나오는 것은 꽃이요, 꽃에서 나오는 것은 열매다. 이렇게 변천하여 일정한 이름이 없이 큰 나무가 된 것이다. 그 나무에서 다시 과실이 나고 과실에서 다시 나무가 나고 하여, 세월이 많아지면 나무도 무성할 터인데, 그러면 그 꽃ㆍ열매ㆍ줄기ㆍ마디ㆍ 뿌리 등, 모든 것을 주워 모아서 다시 씨를 만들 수 있겠느냐?”
제자들은 대답했다.
“아닙니다. 이미 그렇게 변천하였으므로 다시는 씨로 회복될 수 없고, 날로 썩어 없어지고 맙니다.”
“생사도 또한 그러하다. 식신이 일어나는 법이 되고, 일어나는 법은 치라는 것이다. 치는 탐애을 이루는 것이니, 치는 저 나무 씨와 같다. 씨가 작아도 큰 나무로 생장하는 것처럼, 치 하나에 많은 인연이 있고, 많은 인연은 치로 말미암아 나오는 것이다. 치에서 행이 나오고, 행에서 식이 나오고, 식에서 명색이 나오고, 명색에서 육입이 나오고, 육입에서 촉이 나오고 촉에서 수가 나오고, 수에서 애가 나오고, 애에서 유가 나오고, 유에서 생이 나오고, 생에서 노사가 나왔다. 이러한 십이인연이 합하여 몸이 있게 되었으니, 몸이 있으면 죽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죽으면 식신이 행을 따라가, 다시 부모가 있고, 형체가 생기고, 육정이 생기고, 습성이 있고, 고락을 받고, 풍속을 따른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가 예전의 것이 아니므로, 다시는 돌아오지도 못하고 예전 것을 알지도 못한다. 그래서 새로 보는 것으로만 따라가 그것만을 있다 하여 떳떳한 것으로 알고, 전세.후세는 없다 하여, 다시는 예전 몸, 예전 습관, 예전 처소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마치 저 나무가 다시 씨로 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2 견정 비구는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나는 출생한 이후로 죽는 사람을 적지 않게 보았습니다. 혹은 부자ㆍ형제ㆍ부부ㆍ벗이 서로 사랑도 하였고 혹은 원수가 되어 서로 미워도 하였지마는, 죽은 후에는 혼신이 돌아와서 은혜를 갚거나 원수를 갚는 일이 없으니, 원컨대 그것을 분별하여 나의 의심을 풀어 주소서.“
부처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비구야, 식이란 것은 형체가 없다. 옮아간다는 것도 행을 따라 있는 것이다. 만일 몸이 복을 지었다면 복의 식으로 전생하였으므로, 다시 돌아와서 사람에게 갚지 못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철광에서 돌을 녹여 쇠를 만들고, 쇠를 다시 부어서 그릇을 만들었다면, 그 그릇으로 다시 돌을 만들 수 있느냐?“
”아닙니다. 이미 쇠가 되었으므로 다시 돌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식이 옮아가 중음 속에 있는 것은, 마치 돌을 녹여서 쇠를 만든 것 같고, 또 중음에서 옮겨 다른 몸을 받는 것은, 마치 쇠로 그릇을 부은 것 같으니, 형상이 없어지고 체가 바뀌었으므로 다시 예전 식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행의 선악을 식이 받아서 전화하는 것은, 마치 돌이 쇠가 되는 것과 같으니, 만일 선을 행해서 사람의 몸을 받았다 하자, 씨로 부모가 있고, 부모가 있으면 이내 육폐가 있어서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1) 중음신으로 있는 까닭 (2) 새로 받은 몸으로 태중에 있는 까닭 (3) 처음 날때에는 전싵이 조이고 아파서 예전 식상을 잊어버리는 까닭 (4) 땅에 떨어지면 곧 예전에 알던 것은 없어지고 새 것을 보는 상이 일어나는 까닭 (5) 나서 먹기를 시작하면 먹는 데 탐심이 나므로 식념이 끊어지는 까닭 (6) 날마다 자라면 새로 보는 것만 익히고, 예전 것은 전혀 잊어버리는 까닭이니, 이 여섯 가지 이유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장사하는 사람이 사방으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고락을 두루 받으며, 동쪽의 어느 나라를 생각할 때에는 남.서.북 삼방에 있는 나라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이 사라지는 것과 같이, 생사도 그러하여, 이생에서 지은 것으로 저생의 몸을 받으면, 곧 새 생각이 생기고 묵은 식상은 없어지는 것이다. 또 육폐의 장애로 말미암아 다시 예전 식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마치 씨가 나무로 변하고 돌이 쇠로 변하여, 근본이 변해지고 이름이 바꿔짐과 같아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와 갚지는 못하는 것이다.
3 사람이 이 세상에 나서 육안으로 현세의 일만 보아, 모든 것을 환하게 알지만, 다시 전생의 어디로부터 왔는지는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이, 늙어 죽을 때를 당하여 후생으로 가서 몸을 다시 받으면, 또한 금생의 일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 부처가 되어 혜안이 청정하므로, 일체 생사를 모두 알고 보는 것이, 마치 수정 주를 오색실로 뀅면, 청ㆍ황ㆍ적ㆍ백이 다 보이는 것과 같아서, 내가 생산를 구슬로 꿴 것처럼 볼 수 있는 것이다. 또 비유하면, 맑은 물이 밑바다까지 보이면, 그 속에 있는 벌레나 고기가 가림 없이 보이는 것과 같이, 내가 생사를 보는 것도 마치 물속의 고기 보듯 하느니라. 또 비유하면, 큰 다리에 오고 가는 일반 행인이 끊어지지 않는 것처럼 내가 생사를 보는 것도 마치 다리의 행인 보듯 하느니라.
너희들도 나의 가르침을 따라 억천 겁의 생사를 알려거든, 마땅히 삼십칠조도품, 즉 사의지ㆍ사의단ㆍ사신족ㆍ오근 ㆍ오력ㆍ칠각의ㆍ팔정도를 행하여 마음의 때를 제하고 삼독을 소멸하면, 곧 거래하는 모든 일을 밝은 거울에서 보듯 하리라. 제자들아, 식신이란 이름만 있고 형체는 없이, 다만 선악의 행을 따라 사대로 체를 삼는다. 사람이 처음 나서는 몸이 작고 모든 근이 구족하지 못하므로, 식견도 적어 아는 것이 미비하다가, 급기야 장대하여지면 육정이 구족하여지므로, 식도 몸을 따라서 애욕의 모든 습이 날로 왕성하여지는 것이다. 그러다가 노쇠에 이르러 사대가 허약하여지면, 식도 또한 명랑치 못하고 육정이 감해지나니, 현재의 한세상에도 변역이 무상하여, 나서 보고 익힌 것도 늙으면 잊어버리는데, 하물며 다른 세상의 죽음과 포태에 가리운 것이리. 도를 얻지 못하여 우치한 행이 있으면, 의식의 왕래하는 것을 보거나 또 대면하여 서로 갚음이 있고자 하여도 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 동행이 없이 숙명을 보고 알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마치 어두운 밤에 바늘귀를 꿰려 하고, 물속에서 불을 찾는 것 같아서, 마침내 얻지 못할 것이다. 너희들은 마땅히 힘써 경계를 가지고 깊이 생사를 생각하되, '본래 어디로부터 왔으며, 마침내 어디로 돌아갈 것이며, 무엇으로 인하여 왕래하며, 반연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자세히 공空ㆍ무無한 법을 생각하면, 청정을 얻고 결습結習이 제해져서,의심하던 것이 자연히 풀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