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손의 수수께끼
“[6] 삼손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어 손에 아무 것도 없어도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음 같이 찢었으나 그는 그 행한 일을 부모에게도 고하지 아니하였고 [7] 그가 내려가서 그 여자와 말하며 그를 기뻐하였더라 [8] 얼마 후에 삼손이 그 여자를 취하려고 다시 가더니 돌이켜 그 사자의 주검을 본즉 사자의 몸에 벌떼와 꿀이 있는지라” (삿 14:6~8, 개역한글)
오늘 아침 기상과 함께 읽는 드라마성경이 사사기에 이르러 14장의 말씀을 대하면서 40여년전의 추억이 떠오른다. 삼손이 사자를 찢어죽였더니 그 사체에서 벌꿀이 모여들어 꿀을 만들었더라는 내용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가 안되는 난해한 말씀이다.
85년도 가을 개척교회 자리를 보러 파주시를 방문하였다가 불광동에서 개척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친구교회 수요예배를 참석했더니 설교를 시켜 어떤 설교를 할까하고 묵상하던중 하나님께서 놀랍게도 그동안 도무지 알쏭달쏭하던 삼손의 체험을 깨닫게 해주셨다.
상식으로는 사체에는 파리가 달려들어 구더기가 발생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꿀벌이 달려들어 꿀을 생산했다는 동화같은 내용이다. 매듭이 풀리게 된 것은 바로 14절
“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 (삿 14:14, 개역한글)
먹는자는 사자를 의미한다. 그런데 타인이 먹을 것을 내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물의 왕이라는 가장 강한 사자에게서 먹는 것 중에서도 가장 단 것이 나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깨달음은 바로 인간이었다. 바울의 본명은 사울이다. 사울은 누구보다 강한자이다. 그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예수믿는 자들을 처벌하는 일을 앞장서서 하였다. 그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났고, 극적인 회심을 한 후 이름을 바울로 개명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복음의 증거자가 되었다.
바울사도는 누구보다 탁월한 예수님의 제자이다. 하지만 예수님 살아생전에는 제자로 임명받지 못한자이다. 바로 영적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사자같은 강한자에서 양같이 순한자로 변화하였다.
바울은 13권의 성경을 기록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송이꿀보다 달다고 표현한다. 사울이 죽으니 바울이 되었고, 바울은 꿀송이처럼 달콤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였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보다 인간의 의지를 앞세워 분쟁을 경험하게 된다. 내 부친은 젊은 시절 인천화도감리교회의 권사이셨다. 목사가 된 아들에게 당신이 겪으신 젊은날의 혈기에 대해 후회를 들려주셨다.
목회자와 분쟁이 발생해 목회자가 떠나주기를 원하지만, 목회자측에서 순순히 응해주지 않는 경우 신자들은 무력을 이용해 목회자를 추방하게 되는데, 부친께서는 분위기에 떠밀려 이런 일에 몇번 앞장섰던 경험이 있었고, 두고 두고 후회를 한다고 하셨다.
정의를 앞세우며 공동체를 소란스럽게 만드는 일에 앞장서는 행동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정의는 결코 성령의 열매가 아니다. 그럴듯해 보이는 마귀의 유혹일 뿐이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혈기를 찢어버려야 한다. 혈기를 죽이고 성령의 사람으로 거듭남을 경험할 때 우리의 안생은 꿀벌같은 인생이 될수있다. 타인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 곧 꿀벌같은 인생이다.
예수와 동행하는 인생은 타인에게 꿀벌같은 유익을 주는 인생이다. 성령충만으로 늘 예수와 동행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