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이 잘못된 종교에 현혹되어 정법(正法)을 비방하는 것은 가장 큰 악업의 원인이 됩니다.
이것은 생명의 근본 법칙에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만, 생명은 대우주에 융화됩니다.
도다 선생님은 그 상태를 밤에 잠을 자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잠에서 깨어나면 괴로운 하루가 시작됩니다.
이것이 내세(來世)에 해당합니다.
생명은 그것을 되풀이하는 것 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후(死後)에도 숙업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내세까지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밤새 잠을 자고 아침을 맞이해도 어제의 빚이 없어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금세의 괴로움은 다시 내세의 괴로움으로 이어집니다.
금세에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죽으면
내세에도 똑같은 고통을 등에 지고 태어납니다.
사람을 끝까지 원망하며 원한 속에서 죽음을 맞이 한다면
내세도 사람을 원망하며 살아야 하는 환경에서 태어납니다.
죽어도 숙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살을 한다 해도 고뇌에서 해방될 수가 없는 겁니다.
반대로 행복경애를 확립하고 기쁨 속에서 인생의 막을 내리면
내세에도 좋은 곳에 태어나 행복한 인생의 궤도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은 그 중에는
내세에도 숙업으로 괴로워 한다면 태어나지 않고 쭉 잠든 상태로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겠습니다만,
그렇게는 되지 않습니다.
태어나기 전의 대우주에 융화된 상태로 있어도 생명은 괴로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흡사 매우 힘든 고뇌를 안고 있을 때에는 잠을 자도 계속 악목에 시달리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생사(生死)라는 근본 문제를 차근차근 알기 쉽게 이갸기해 갔다.
현대의 사상이나 철학은 금세의 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그것은 땅 위의 싹만을 보고 뿌리를 보지 않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인간의 고뇌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신이치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러면 그 숙업을 전환하여 행복을 실현할 방법은 있는가.
있습니다.
말법의 우리들을 위하여 그 방법을 설해 주신 분이 니치렌 대성인입니다.
그리고 그 방법이 바로 본존님에 대한 창제이며 절복입니다.
그것이 생명의 법칙에 따른 최고로 선한 삶이며,
환희에 넘친 영원한 행복이라는 경애를 확립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초대 회장인 마키구치 선생님은 감옥에서 돌아가시지 않았는가.
불행한 일이 아닌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음을 맞이 했을 때의 마음이며 경애입니다.
고뇌와 불안과 공포에 떨며 숨을 거두었는가.
옥중에서라도 안상(安祥)하게 환희 속에서 죽어 가는가 입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옥중에서 보낸 편지에.
경문(經文)대로 꿋꿋이 살아가는 대환회를 적고 계셨습니다.
또 또 학회원 중에도 병이나 사고로 죽는 경우가 있지 않는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런 경우에도 신심을 끝까지 관철한 사람은 전중경수(轉重輕受)라는 것을 불법에서는 명확하게 설하고 있습니다.
즉 본래 몇 번이고 생사를 되풀이하며
오랫동안 고뇌를 겪고 조금씩 숙업을 지워 갈 것을,
금생에서 과거세의 숙업까지 전부 전환하여 성불하는 것입니다.
그 한 가지 증명이 임종의 모습입니다.
대성인은 어서에서 경문을 인용하시어 몸이 부드러워지는 등, 성불의 모습에 대해서 논하고 있습니다.
도다 선생님께서도 미소짓는 듯한 성불의 모습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수 많은 동지의 임종을 보았습니다.
어쨌든 광포를 위하여 부처의 심부름꾼으로서 끝까지 행동해 왔던 사람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해도 공포와 고뇌의 밑바닥에 감겨 지옥의 고(苦)를 받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경문에도 천(千)의 부처가 손을 뻗어서 껴안아 줄 것이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임종 때 일념에 깊은 신심이 있다는 것 자체가 성불입니다.
마치 살아 있을 때는 '생(生)의 부처’ 이며 죽은 수에도 ‘사(死)의 부처’입니다.
더욱이 그 증명으로서 남아 있는 가족은 반드시 행복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신심을 해서 난을 만나고 아무리 고생을 계속된다고 해도 퇴전해서는 안 됩니다.
난을 만나는 것은 숙업을 전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영원한 생명에서 본다면 금세의 괴로움은 순간에 불과합니다.
미래의 영원한 행복이 열리는 것입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그러므로 우선 임종의 일을 배우고 후에 타사를 배워야 한다』 (어서 1404쪽)고 말씀하셨다.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올바른 구명(究明)이 없다면,
‘인간으로서 무엇을 위하여 죽는가’ ‘어떻게 죽는가’를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대답도 찾아낼 수 없다.
생과 사란 본래 표리 관계이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장례(葬禮) 형식 등에 강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만
죽음이라는 문제 자체를 철저하게 파고들려고 하지는 않는다.
사실은 거기에 눈앞의 이해나 허영, 쾌락으로 흐르기 쉬운 풍조를 낳고 있는 근본적 요인이 숨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야마모토 신이치는 여기서 선조공양에 대한 이야기로 주제를 옮겼다.
“그럼, 고뇌를 짊어진 채 돌아가신 선조는 어떻게 되었는가.
이미 태어나 숙업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겁니다.
혹은 태어났어도 꼭 인간으로 태어났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숙업에 따라서 축생 즉 동물로 태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경문에 명확하게 있습니다.
오히려 인간으로 태어나는 쪽이 훨씬 어렵습니다.
그러나 선조가 무엇으로 태어나고, 어디에 있으며, 어떤 괴로움 속에 있든. 살아 있는 사람이 올바른 신앙을 실천하여 선조의 성불을 기원하고 창제해 간다면,
그것이 죽은 사람의 생명에 감응하여 고를 없애고 낙을 줄 수가 있습니다.
南無妙法蓮華經는 우주의 근본법이며 전 우주로 통해가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축생 따위로 태어나면 스스로 제목을 올릴 수 없으므로 우리들의 창제만이 의지할 수 있는 끈이 됩니다.
또한 선조가 인간으로 태어나 있는 경우에는 우리들이 보내는 제목으로 선조가 누군가의 절복을 받아 불법과 연을 맺어 신심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선조를 공양하기 위해서는 진지하게 창제하는 것 이외에 없습니다.
돈을 내어 탑파(塔婆)를 몇 개 세운다고 성불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돈으로 성불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한편, 신심을 관철하여 성불한 사람은 죽어서도 금방 어본존 슬하에서 인간으로 태어나 계속되는 환희 속에서 광선유포를 하며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선조가 성불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은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자손인 자기가 행복한가 어떤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조가 성불했다는 증명입니다.”
인간은 과거세도 미래세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삼세에 걸친 생명의 인과의 이법(理法)을 알 때,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현재세(現在世)의 확실한 궤도가 열린다.
그리고 그것이 미래세(未來世)를 결정지어 간다.
신이지는 정열을 담아 호소했다.
“우리들은 지금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게다가 대우주의 근본법을 알고, 학회원으로서 광선유포를 위해 활동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굉장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숲 속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그 발 밑에는 몇 만에서 몇 십만의 진드기와 같은 작은 생물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세균까지 포함한 전 지구상의 생명 수를 합치면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의 숫자입니다.
그 속에서 인간으로 태어나 신심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몇 번이나 복권이 일등에 당첨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실로 큰 복운, 큰 사명이 있기 때문에 일생성불의 최고의 기회를 다행히도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복권에서 한 번이라도 일등에 당첨되면 매우 기뻐하는데,
인간으로 태어나 신심을 할 수 있게 된 굉장한 사실은 좀처럼 깨닫지 못하고 퇴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유감스럽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이 생애가 일생성불 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입니다.
아무쪼록 이 최고의 기회를 결코 헛되이 놓치지 마십시오.
영원한 생명이라 해도 일체는 ‘지금’에 있습니다.
과거도 미래도 ‘지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순간을, 오늘 하루 하루를, 이 생애를 감사와 환희를
광선유포를 위해 힘이 있는 한 끝까지 살아가 주십시오.
댓츠 오케이?(아시겠습니까)”
신이치가 영어로 이야기를 매듭짓자 까르르하는 소리가 밝은 웃음으로 퍼졌다.
그가 이 질문에 상당히 긴 시간을 할애하여 답변한 것은
생사(生死)라는 인생의 근본 테마를 명확하게 해 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신 인간혁명 제3권 제1장 불법서환(佛法西還)(60-69쪽)
젊은날의 일기 1950년 11월 8일 (수) 맑음 –22세-
「벼는 변(變)하여 묘(苗)가 되고·묘(苗)는 변(變)하여 초(草)가 되고· 초(草)는 변(變)하여 쌀이 되고· 쌀은 변(變)하여 사람이 되고· 사람은 변(變)하여 부처가 되고」(〈오니치노전답서〉어서 1263쪽)
회사 동료이자 동지인 Y씨 댁에 완쾌를 축하하러 갔다. 11시 까지 있었다. 젊은 우인, 동지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결합. 오랜만에 가락을 붙여 시를 세 번 읊었다. K씨, U씨도 깊은 감명을 받은 모양. 돌아오는 길에 M씨 댁에 인사차 들렸다가 귀가. #
1955년 11월 8일 (화) 흐린 뒤 쾌청 –27세-
하세가와 뇨제칸(長谷川如是閑: 저널리스트· 평론가)의 이야기, “관록이란 머리가 아니다. 재능이 아니다, 그 사람의 본성, 인간성이다.”라고. 확실히 일체의 근본적인 해결, 혁명은 묘법에 의하는 것 외에 없을 것이다 ―.
정진근(精進根)도, 염근(念根)도, 정근(定根)·혜근(慧根)의 확립 또한 최대의 인간혁명을 나타내는 축도다. 밤, 부대장 모임. 다들 원기가 전혀 없다. 피로해서일까. 지도자가 서툴러서인가. 경제적인 고민 때문인가. 우리들에게는 더욱 깊이 생각하고 모두를 격려하여 구제하는 자애가 중요하다.
‘그대들이여 앞으로 거침없이 전진하라, 걸어가라. 그리고 생기발랄하고 자유롭게 넓은 하늘로 날개 쳐 가라’ 고 진심으로 기원한다. 쓸데없는 신경 따위 쓰지 마라. 더욱 대담하고 당당하게 이 사회를 걸어가라.
청년을 질식시키는 사회, 기구, 제도, 성실한 청년이 실력만큼 지위가 놓아질 수 없는, 본말이 전도된 사회. 지도자는 나쁘다. 사회도 나쁘다. 그러나 그것을 떨쳐 버리고 일어서지 못하는 청년도 나쁘다.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하루하루인 것이다. 힘내라, 청년이여. 우리는, 그대들은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
참모실에서 I군 등과 함께 불교 전래 이야기에 흠뻑 젖었다. 북방 전설, 남방 전설 등 의론이 분분했다. I군의 깊은 학식은 대단하다.
T부장, M군 등과 산바시에서 닭꼬치를 먹었다. 하나에 20엔이라고 생각했는데 50엔이라는 말에 놀랐다. 전부 880엔. 돈이 넉넉히 있어서 창피를 면했다.
12시 30분 귀가. 정말로 피곤하다. 2~3일 연속 아침에 지각하고 있다. 헤이해진 것일까. #
1957년 11월 8일 (금) 쾌청 –29세-
제17회 추계 본부총회. 도쿄 고라쿠엔경륜장.
정오 ― 개시. 개회 선언, 입장식 ―. 남자부, 여자부, 본부기, 지부기 순으로.
입장한 인원 약 7만 명. 대성공이다.
선생님, 몹시 힘드신 모습. 얼굴에 ··· 핏기가 없으시다. 나 역시 피로가 극심하다. 등이 타는 듯이 아프다.
4시부터 N에서 2차 모임. 승려와 대간부 참석.
끝나고 ··· 여자부 대장회, 남자부 대장회에 참석. 모두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다. 믿음직스럽다. 색심(色心)모두 비약해 가는 이 청년들이 미래를 창조하는 것은 당연하 이치. 시시가각 훌륭한 성장.
맑은 달빛. 차디찬 바람. 순간, 내 생명의 캔버스(canvas)에 그려진 가장 위대한 묘(妙)의 그림. 고요한 집.
학회는 결코 특권 계급을 만들면 안 된다. 특히 문화부와 부인부에는. 평등대혜(平等大慧).
첫댓글 감사합니다
긴.스피치너무너무너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