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텐위 장성, 진시황의 영광과 잔영
험악한 산 길
전 날 잠이 부족했던지 등산버스에 올라 내내 잠을 잤다. 버스에서 내리고 보니 기온은 낮았지만 바람이 불지 않고 날씨가 맑으니 등산하기 좋은 날씨였음을 직감하였다. 등산로 입구에서 바라본 산세는 하늘을 찌르듯이 경사가 심한 고봉준령들이다. 산을 오르는 길 내내 눈앞에 막힌 언덕만 보일 뿐이다. 고개를 뒤로 젖혀야 겨우 하늘과 맞닿은 고봉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등산길은 박힌 돌들을 밟고 오르거나 바위 틈으로 난 홈을 밟고 올라가고 있었다. 입장료를 내고 오르는 지루한 계단 길 보다는 훨씬 등산하기 재미있는 길이다. 무텐위 장성을 오르는 계단 길은 여러 번 올라 봤으니 나로서는 이러한 등산로를 택한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경사는 더 심해지고 길은 더 험해지고 있었다. 험한 산은 험상궂은 험악한 산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진시황은 장성을 쌓을 필요도 없었던 산 위에 장성을 쌓느라 괜히 고생을 하신 것 같았다. 심한 경사를 오르다 보니 평소와 다르게 금방 숨이 차 오른다. 보통 경사가 심한 산의 등산로는 갈 지자의 길로 되어 있는데 여기는 그렇지도 않다. 그냥 일직선으로 경사를 마주하며 오르도록 되어있다. 산을 오르는 길에 여러 번 쉬어 갈 수 밖에 없었다. 쉴 만한 공간만 있으면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험악한 산 때문인가? 아니면 전 날 수면 부족 때문인가? 그러다가 갑자기 몸이 바싹 긴장이 된다. 아니 나이가 들어 간다는 신호가 아닐까? 천천히 그리고 쉬엄쉬엄 오를 수 밖에 없는 등산이었다.
시선을 가로 막던 언덕이 트이면서 하늘이 눈앞에 들어 온다. 이제 장성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오른 것이다. 남쪽하늘은 맑았는데 능선에서 바라본 북쪽 하늘은 뿌연 안개가 가득하다. 북풍으로 몰고 오던 안개가 높은 산줄기에 가로 막혀 그렇게 북쪽 하늘에서 머물러 있는듯했다. 능선을 타고 장성으로 오르니 이제 경사는 많이 부드러워졌다. 좌우의 시야도 나뭇가지 사이로 살짝 넓은 공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공간에서 확인한 것은 고봉준령을 이어서 늘어진 장성이었다. 능선 북쪽도 아주 가파른 경사로 되어 있고 간간히 절벽도 보인다. 정말 장성을 쌓을 필요가 없었던 산세였다. 진시황은 왜 이렇게 어리석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능선을 따라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장성을 만난다. 한 발을 크게 딛고 다리에 힘을 주어 몸을 올리니 바로 장성 위로 올라 갈 수 있었다. 내가 오른 곳은 허물어진 장성의 일부였다.
내가 오늘 좀 헤맨 것이 증명되었다. 여기 저기 먼저 오른 분들의 버너에서는 이미 맛있는 찌개가 끓기 시작하면서 김을 내고 있었다. 도시락을 꺼내서 옆 걸음으로 다가가 자리를 잡는다. 매번 찌개를 얻어 먹는 심사가 들킨 것 같아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는다. 그래도 확실한 자리는 역시 찌개가 끓고 있는 버너에서 가까운 자리이다. 오늘도 작전성공. 맛있는 찌개를 뜨겁게 먹고 나니 진시황이 부럽지 않다. 가지고 간 보온병 물은 뒤로 하고 버너에서 막 끓여낸 뜨거운 물을 한잔 배급 받아 자리에서 물러난다. 허물어진 장성에 걸터앉아 온 산에 뻗어 있는 장성의 줄기를 바라 보면서 커피를 마신다. 커피 맛이 정말 끝내준다.
봉우리
나 보다 늦게 올라온 등산 회원들도 많이 있어서 아직 식사시간이 계속되고 있었다. 동쪽은 입장료 내고 오르는 무텐위 장성, 저기도 꽤 높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시야 아래로 보이니 오늘은 내가 아주 높이 올라온 모양이다. 서쪽으로 망루가 하나 있고 그 아래 중국 등산객들이 따뜻한 햇볕 아래 모여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곳에서 가장 높은 망루 같이 보였다. 스틱 만 가지고 발길을 옮겼다. 천천히 소화도 시킬 겸 망루에 올라가 보기로 한다. 역시 망루에 오르니 겹겹이 쌓여 있는 산세가 한눈에 들어 오고, 그 산세를 따라 장성은 띠처럼 연결되어 있고 그 중간 중간에 설치된 망루는 허물어져가는 모습으로 눈앞으로 다가 온다.
이 장엄한 광경이 바로 진시황이 6국을 통일한 위업을 보여주는 듯 하다. 춘추오패를 거쳐 전국칠웅으로 이어지면서 세상은 환란과 질곡으로 변해버린 시기였다. 진시황은 진시황 이전 2천 년과 진시황 이후 2천 년으로 나누어 질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다. 진시황은 천하통일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꾸려나가기 위해 새 시대의 정신과 제도를 채택하였다. 진시황이래 2천년 이상을 이어져 온 황제라는 정치제도이다. 진시황은 새로운 역사의 빗장을 열고 그 새로운 세상의 밑그림을 그린 위대한 혁명가였다. 그러나 빛과 그림자의 관계처럼 진시황의 빛나는 업적 뒤에는 폭군이라는 그림자가 늘 함께 하였다.
동쪽으로 보이는 커다란 봉우리와 내가 서있는 봉우리의 망루 사이에는 작은 봉우리가 이어져 있다. 진나라 600년 역사의 흐름 속에 저 쪽 봉우리는 진시황의 증조할아버지 진소왕의 봉우리가 아닐까 한다. 56년간 재위하면서 진의 천하통일의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진시황의 할아버지 안국군은 즉위 3년 만에 사망하고, 진시황의 아버지 자초는 즉위 3일 만에 사망하였으니 증조할아버지의 위업을 진시황이 그대로 이어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두 개의 우뚝 선 봉우리는 진나라 천하통일을 이룬 봉우리라 해야 하겠다.
망루
나는 망루에서 장성을 따라 서쪽으로 눈길을 돌려 보았다. 망루 서쪽 바로 아래는 절벽과도 같은 낭떠러지였다. 진시황의 천하통일 위업이 호혜에서 자영에게로 3대를 잇고 3년 만에 멸망하는 것을 상징하는 낭떠러지 같았다. 그 서쪽으로 다시 망루가 보이는데 거의 폐허에 가까운 모습들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광경을 보고 사람들은 왜 아름답다고 느끼는지 생각해 보았다. 역시 자연의 힘이다. 포탄을 맞고 폐허가 된 것은 흉물이겠지만 세월과 비바람으로 폐허가 된 모습은 자연의 일부였다.
진시황의 통일의 위업은 밤하늘의 불꽃놀이와도 같았을 것이다. 찬란한 빛으로 밤하늘을 수 놓으면서 장관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꽃놀이가 그렇듯이 화려함을 발한 뒤 결국은 땅에 떨어지는 찌꺼기와 같은 것이다. 진시황의 천하통일의 불꽃의 찌꺼기가 떨어진 자리가 저기 보이는 폐허가 된 망루가 아닌가 싶다.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진시황의 불꽃이 되었던 사람들과 망루들을 하나 하나 짝 짖기를 해 본다.
조 나라 20만 군대를 격퇴하고 생매장 시킨 백기장군, 60만 대군으로 초나라를 굴복시킨 왕 전 장군, 그리고 연 나라를 굴복시킨 그의 아들 왕분 장군, 제 나라 앞에서 싸우지 않고 항복을 받은 이신 장군, 그리고 저것은 만리장성 군단 몽염 장군의 망루가 아닐까 한다. 천하통일을 이룬 뒤 진시황은 흉노를 치기 위해 30만 대군을 북으로 보낸다. 흉노를 몰아내고 만리장성을 쌓아 농경민족과 유목민족의 경계라는 표시를 하고자 한다. 주둔군 사령관 몽염은 바로 이곳에서 군대를 지휘하면서 만리장성 공사 감독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진나라 천하통일의 불꽃을 피웠던 재상들의 망루도 보인다. 상양변법의 개혁으로 진나라 경제력과 전투력을 천하 최강의 기틀을 만든 재상 상양, 진시황의 아버지 자초를 지원하면서 한 국가를 대상으로 장사를 하여 진시황의 아버지와 진시황을 왕위에 오르게 만든 재상 여불위, 원교근공. 먼 나라와는 좋은 관계를 가지고 가고 가까운 나라는 공격한다는 외교전략으로 천하통일의 방향을 제시한 재상 번구, 한 나라를 먼저 공격하고 조 나라, 위 나라를 멸망시켜야 한다는 주장으로 천하통일의 단추를 풀어준 재상 이사, 진시황 봉우리 주위에 자리잡고 있는 폐허가 되어가는 망루와 그들의 활약을 연상해 본다.
여러 망루 중에서 가장 폐허가 심하고 그 자취가 거의 없어져 버린 망루는 분명 조고의 불꽃 찌꺼기 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이루고 나서 모두 다섯 번의 천하 순시에 나선다. 마지막 다섯 번째 천하 순시였다. 사구에서 병을 얻게 되고 병은 며칠 사이에 악화되어 사망에 이른다. 진시황은 마지막 순간에 조서를 쓰게 한다. 황위를 큰 아들 부소에게 물려준다는 내용이다. 부소는 만리장성 군단 30만을 지휘하는 몽염 장군의 군 감독관으로 만리장성에 파견되어 있었다. 진시황의 조서는 황제의 옥쇄까지 찍었고 봉투도 봉했다. 그러나 진시황은 조서를 보내라는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영원히 눈을 감아 버린다.
이틈을 노린 것이 진시황이 환관 조고이다. 조고는 순시를 대동하던 진시황의 20명의 아들 중 하나였던 호혜와 밀약한다. 그리고 역시 함께 순시 여행 중이던 재상 이사를 회유하고 협박하여 정변을 일으킨다. 조고 호혜 이사 3인방의 정변으로 진시황의 사망은 알려지지 않고 함양까지 원래 일정으로 천하 순시를 계속 한다. 한편, 3인방은 진시황의 조서를 위조하여 만리장성에 가 있던 부소에게 보낸다. 자결하라는 거짓 조서이다. 부소는 거짓 조서를 받아 들고 진시황을 아버지로서 그리고 군주로서 그 앞에 무릎을 꿇는다. 충과 효를 다하는 신하와 아들이 되겠다며 자결한다. 조서를 다시 확인해 봐야 한다고 알려 주는 몽염 장군의 조언에도 부소는 진시황이라는 이름 석자만 들어도 꼼짝 못하는 바보가 되어 버린다.
조고의 나쁜 짓은 이것이 시작이었다. 황위를 이어갈 큰 아들 부소를 죽이더니 몽염 장군과 그의 형 몽의를 죽이고, 호혜를 꼬드겨서 진시황의 20명의 아들과 10명의 딸들을 차례로 죽인다. 같이 정변을 일으킨 이사도 조고의 마수에 걸려들어 죽음을 당한다. 이제 조고가 재상의 자리를 차지한다. 황제와 대신들이 모인 어전회의에 앞서 조고는 사슴을 황제 호혜에게 바치면서 말이라고 한다. 호혜가 이것은 분명 사슴인데 재상 조고는 말이라고 하니 대신들에게 묻는다. 사슴이 맞다 라고 대답한 대신들을 조고가 또 다 죽인다. 이제 조고가 이야기 하는 것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급기야 조고는 2대 황제 호혜를 죽인다. 다시 새로운 황제를 세운다. 3대 자영이다. 그러나 자영에게는 진시황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조고는 결국 자영의 술수에 넘어가 죽음을 맞는다. 조고는 자신의 영위를 위하여 천하를 속이고 많은 사람들을 죽인다. 분명 벌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가장 험악한 망루의 주인이 되었을 것이다.
아직도 비장함이 서려 있는 망루는 형가의 망루임이 분명하다. 진나라 군대는 한 조 위 나라를 멸망시키고 바로 연 나라 앞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연 나라의 태자 단은 형가를 협객으로 진 나라의 수도 함양으로 파견한다. 진시황을 암살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형가는 진시황에게 진나라를 배반하고 연 나라로 도망친 장군 번어기의 목을 진시황에 바치면서 진시황을 알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연 나라에서 가장 부자가 많은 땅의 지도를 바친다. 연 나라 공격에 필요한 유용한 지도이다. 진시황은 연 나라가 항복하고자 하는 의사로 받아 들이며 감개무량으로 지도를 들여다 보고 있을 때였다. 형가는 진시황의 소매를 잡고 펼치는 지도 맨 안에 숨겨둔 비수를 꺼내어 진시황에게 들이댄다. 진시황은 소매를 젖히며 몸을 피한다. 형가는 다시 진시황에게 비수를 던진다. 비수를 가까스로 피한 진시황은 형가의 추격을 받는다. 100미터 달리기가 펼쳐지는 순간 진시황의 전문의가 던지 약봉지에 형가가 주춤한다. 이 때 진시황은 자신의 긴 칼을 뽑아 들어 형가의 목에 들이댄다. 형가의 진시황 암살작전은 미수에 그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 혼령이 서려 있는 망루는 외로운 곳에 홀로 떨어져 있으면서 비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가장 높은 봉우리의 만리장성 망루에서 진시황을 생각하니 그 낭떠러지 아래로 보이던 망루가 그 시대의 영웅호걸의 잔영이라는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망루에서 점심 식사를 하던 곳을 내려보니 하산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사진 몇 장을 카메라에 담고 서둘러 망루에서 내려오는데 회원 한 분이 낭떠러지 아래의 망루들을 소개를 한다. 마법의 성이라 부른다고 한다. 내가 느꼈던 것들을 바로 이야기 해주는 것이다. 저기는 분명 마귀들이 살고 있고 접근하려면 마법을 걸어서 접근을 불허하는 곳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마법의 성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 찍어 달라고 했다. 가능하면 진시황의 영혼도 같이 나오게 찍어 달라고 했다.
허물어진 장성
만리장성의 성곽 위의 길을 따라 하산을 한다. 군사와 말들이 다녔을 법 한 성곽 위의 넓은 길에는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돌 틈으로 뿌리를 뻗으니 장성은 세월을 따라 허물어지고 있었다. 장성 위로 난 길을 따라 하산을 하다가 산 골짜기로 하산하는 길로 접어 든다. 이 곳은 다른 곳 보다 장성이 더 많이 허물어져 있었다. 여기가 바로 맹강녀의 이야기가 서려 있는 곳이 아닌가 한다.
만리장성 공사에 끌려나간 남편은 몇 해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 신혼이었던 맹강녀는 남편을 찾아 만리장성으로 간다. 추운 겨울 추위에 떨고 있을 남편을 생각하며 손수 지은 속옷을 가슴에 안고 몇 백 번 길을 묻고, 몇 천리 길을 걸어 찾아 왔다. 만리장성 공사장 아래에서 맹강녀가 접한 소식은 남편이 만리장성 공사를 하다가 돌에 깔려 죽었고 시신은 만리장성 성벽 속에 장사 지냈다는 것이다. 맹강녀는 만리장성 아래에서 대성통곡을 한다. 그 여인의 울음소리는 얼마나 비통하였는지 여인 앞에 있던 만리장성 십 리가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내가 하산하면서 본 무너져 내린 만리장성이 바로 거기가 아니었나 싶다.
이 이야기는 민간의 설화이며 창작이다. 맹강녀는 천하 백성의 상징이며 대표이다. 백성들의 질곡을 설명하기 위한 여인이다. 엄격한 만리장성 동원령은 정해진 시간 보다 늦으면 죽음을 면치 못했다. 진승과 오광은 만리장성 공사인부를 인솔하다가 장마를 맞는다. 시간이 지체되었다. 인솔해서 간다 해도 죽음이요 반란을 일으켜도 죽음이다. 결국 진승과 오광이 일으킨 반진 운동은 걷잡을 수 없이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그 와중에 유방과 항우도 군사를 일으키니 결국 함양은 유방에게 항복하게 되었다. 천신만고 600년 대업이 진시황이 죽은 뒤 3년 만에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통일의 상징으로 만리장성을 쌓다가 멸망의 원인이 되는 아이러니이다. 만리장성은 진시황의 통일정책의 상징이며 대표이다. 아방궁과 진시황릉에 동원된 백성이 70만이었다고 하니 만리장성에 동원된 백성은 얼마나 되었을까? 장성을 쌓을 필요도 없이 험악한 산 위에 만리장성을 쌓겠다고 백성들의 원성을 샀으니 스스로 장성을 쌓으면서 장성을 허물어뜨리는 바보짓을 하였던 것이다.
만리장성 구경을 잘 하고 나서 이렇게 진시황 욕을 하면서 내려오자니 진시황이 내가 괘씸했던 모양이다. 경사가 완만하던 하산 길에 갑자기 복병이 나타났다. 낭떠러지에 바위가 하나 있고 내려갈 수 있는 방법이란 바위에 있는 돌 틈과 돌 부리를 잡고 다리를 바들 바들 떨면서 숨을 고르는 방법 밖에 없었다. 약 50미터의 길을 그렇게 기어서 무사히 내려 오고 보니 안도의 긴 숨이 나온다.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로 오후 햇빛이 내리 비치는 숲 속의 양지를 찾아서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오늘 내가 오른 장성은 그 동안 올라 가보았던 여러 장성 중에서 가장 원시의 모습을 갖춘 장성이 아니었던가 한다. 관광객을 위한 시설물을 흉물스럽게 만들어 놓은 곳도 없었고 장성 보수 공사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문명의 이기들이 보이는 곳도 없었다. 지루한 계단으로 만들어진 등산로가 없었던 것이 가장 좋았다. 그래서 인지 만리장성에 얽힌 옛날 이야기도 많이 생각하는 산행이 되었던 것 같다.
간단한 로직, 큰 진리
아침에는 버스에서 잠이 들어서 버스가 어떤 길로 접근 했는지 몰랐다. 다시 와 보겠노라고 자동차 접근로를 살폈다. 발해진으로 접근하는 것을 확인하고 언젠가 이 앞을 지나면서 여기 장성을 한번 와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오늘 와 본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귀경하는 버스 내에서도 진시황의 이야기가 머리 속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다.
진시황은 봉건제를 버리고 군현제를 채택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시도하였다. 이제는 통일 이전의 과거 2 천년의 시대와 달리 제후국이 봉해지지 않았다. 백성들은 또 다시 제후들 간의 약육강식으로 전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지 않을 수 있었다. 화폐를 통일하고 도량형을 통일하여 천하가 하나의 경제권으로 소통되도록 하였다. 문자를 통일하여 천하의 문화와 법령이 소통되도록 하였고, 수레바퀴를 통일하여 천하의 마차와 전차가 같은 길을 갈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 모든 새로운 패러다임이 천하를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진시황을 위한 것이었는지를 생각해 본다. 분서갱유와 수 많은 공사가 이를 의심하게 하는 것이다. 황제의 통치사상과 다른 모든 책을 불살라 버리고, 사사로운 감정으로 학자들을 몰살 시켜버리고 그것도 460명이나 되는 학자들을 생매장시켜 버렸다고 하니 아무리 시대가 다르다 하더라도 폭군의 오명을 벗어 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것이다. 게다가 백성에게 충성을 요구하는 동시에 황제에게는 인의를 요구하는 쌍방의 의무를 중시하는 유가사상은 받아 드릴 수 없다는 독단을 보이면서 오로지 군주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법가의 정치철학을 채택하여 엄격한 형벌로 백성을 통치하니 천하의 모든 백성이 범죄자가 되었고 이들을 아방궁, 진시황릉, 만리장성 공사에 투입하였으니 그 원성이 날로 더해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천하통일을 이룬 무소불위의 진시황은 성격이 변해가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강박관념에 사로 잡힌다. 방사들의 이야기에 인생관이 바뀌고 자신을 진인이라고 부르라고 까지 한다. 현실 속의 황제보다도 몽상 속의 신선이 더 좋았던 것이다. 방사들의 거짓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거쳐 하는 곳을 아무도 모르게 하였다. 환관들은 알아도 몰라야 했고 알고 있다는 것이 발각되면 죽음이었다.
불로장생의 불로초를 얻기 위해 서복을 바다로 보낸다.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얻어 낸 서복은 9년간 어디에서 무엇을 하였을까? 바다로 보낸 서복은 9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에 돌아와 다시 진시황을 기만한다. 죽음의 그림자가 찾아 드는 진시황은 마지막 천하 순시 길에 서복에게 다시 두 번째 사기를 당한다. 이번에는 3천 동남동녀와 갖가지 곡식의 씨앗까지 싸 들로 나섰다고 하니 천고의 황제와 마주한 천고의 사기꾼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산행에서는 쓸 데 없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한 것 같다. 진시황과 그의 천하통일은 나하고 아무 관계가 없다. 내 인생에 보탬도 해도 되지 않는다. 내 건강에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재미있지 않는가? 천하통일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 멸망이 찾아오고, 불로장생의 불로초를 구하러 배를 띄우는 순간 죽음이 찾아오지 않는가? 달이 차면 기울기 시작한다는 간단한 로직이 때로는 큰 진리인 듯싶다. 만난 사람 헤어지게 되고, 떠난 사람은 돌아 오게 된다. 이제 한 해가 지면 새 해가 온다. 모두 똑 같은 로직이고 큰 진리이다. 새해에도 행복한 산행을 기원한다.
2010년 12월 18일 무텐위 장성 산행, 라떼
|
첫댓글 라떼님의 글을 읽고 있자면 늘 느끼는 건~ 어느 한편의 사설 같기도 하고~ 논평 같기도 합니다~
글은 잘 읽었는데~ 사진은 안 뜨네요~ 왜 그런지~ 속도 문제인지~ 아니면~ 나만 그런지~~ㅋㅋ
사설 논평 같은 느낌? 재미가 없는 글이어서 그럴 겁니다.
한 편의 논문을 읽는 기분입니다. 많이 배우고, 즐감하고 갑니다. 꾸벅~~
장성 산행 일정이 잡히기 전 부터 마침 진시황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 진시황본기를 쉽게 설명해주는 비디오를 보았습니다.
내년에도 산에서 자주볼수 있겠지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산에서도 뵙고, 언덕에서도 뵙고, 바위에서도 뵙고, 푸른하늘 아래에서도 뵙고,,,뵙고 뵙고 또 뵙겠습니다.
ㅎㅎ 아이폰의 능력이 ... 감상의 수준을 한층 높였군요.. 즐감
마법의 성을 배경으로 찍어 주신 사진, 진시황 영혼과 함께 찍어달라고 했는데...집에 와서 보니 사진 속의 진시황 영혼이 달아나 버렸습니다. 다음에 가면 다시 찍어 주세요.
예~~역사를 거슬러서 다시한번 가지요 ^^
시안으로 여행갔다왔는데도... 새롭게 어렵게 공부하는 시간이였습니다. 많이 배웁니다.
배우셨다니 감당을 못 하겠습니다. 뿌깐땅
간만에 시원한 글 읽었습니다. 어느 누가 이렇게 가려운데를 긁어 가며 시원하게 해 줄까요! 라떼의 커피향과는 비교가 안되고....~으~음, 운남성의 200년 이상된 고목에서 채집한 보이생차 맛, 구체적으로 대홍포의 맛 이랄까? 어떤 음료와 비교되지 않는 으뜸의 차 맛입니다.
대홍포? 처음 듣는 음료군요. 한번 맛보고 싶습니다.
글쏨씨가 좋습니다. 새로운 면을 보여주시네요.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