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강지처(糟糠之妻)
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이어가며 고생을 같이 해온 아내란 뜻으로, 곤궁할 때부터 간고를 함께 겪은 본처를 흔히 일컬는 말이다.
糟 : 지게미 조(米/11)
糠 : 겨 강(米/11)
之 : 갈 지(丿/3)
妻 : 아내 처(女/5)
(유의어)
조강(糟糠)
출전 : 후한서(後漢書) 송홍전(宋弘傳)
송홍(宋弘)은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를 섬겨, 건무(建武) 2년에는 대사공(大司空)에 임명(任命)되었다. 그는 온후하고 강직한 사람이었다.
어느날 광무제(光武帝)는 미망인이 된 누님 호양공주(湖陽公主)가 신하(臣下) 중 누구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 그 의중을 떠보았다.
그랬더니 호양공주는 송홍을 칭찬(稱讚)했다. '송공의 위엄 있는 자태와 덕행(德行)과 재능을 따를 만한 신하(臣下)가 없습니다.'
그러자 광무제(光武帝)는 '알았습니다. 어떻게든 조처해 보겠습니다.' 하고 약속(約束)했다.
그후 광무제(光武帝)는 병풍 뒤에 호양 공주를 앉혀 놓고, 송홍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광무제(光武帝)가 송홍에게 물었다. '속담에 귀해지면 사귐을 바꾸고, 부자가 되면 아내를 바꾼다고 하는데 그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겠지?'
그러자 송홍은 지체없이 말했다. '아닙니다. 신은 가난하고 비천한 때에 사귄 벗은 잊으면 안 되고 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고생한 아내는 집에서 쫓아내면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貧賤之友 不可忘 糟糠之妻 不下堂).'
이 말을 들은 광무제(光武帝)와 호양공주는 크게 실망했다.
조강지처(糟糠之妻)
몹시 가난하고 고생했을 때 함께한 부인을 조강지처라 한다는 것은 대부분 다 안다. 그런데 조강의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어렴풋 할 것이다.
糟(조)는 술을 빚고 난 찌끼, 지게미를 말하고 糠(강)은 쌀겨를 가리킨다. 요즘은 잘 접하지 못해 모르지만, 옛날 가난한 시절 음식이 귀할 때 이것으로 끼니를 때웠다.
아주 살기가 어려웠을 때 거친 음식을 나누며 고생을 함께한 아내는 그만큼 소중한 존재다. 그래서 예로부터 조강지처 버려서 잘 되는 사람 없다고 했다.
조강지부(糟糠之婦) 또는 원래의 말에서 딴 조강지처 불하당(糟糠之妻 不下堂)이라고도 한다. 불하당(不下堂)은 집에서 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다.
왕망(王莽)의 신(新)나라를 멸하고 서기 25년 다시 후한(後漢)을 세운 광무제2光武帝)는 신하를 아껴 휘하에 현인재사들이 모였다.
우수한 사람이 많다 하여 철중쟁쟁(鐵中錚錚)이라 자랑하는 신하 중에 감찰을 맡아보던 대사공(大司空) 직위의 송홍(宋弘)도 있었다. 그는 당당한 풍채에다 정직하고 온후한 성품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 때 광무제에는 미망인이 된 손위누이 호양(湖陽)공주가 있었는데 항상 위로하며 때를 보아 개가시키려 했다. 남매가 신하들의 인품을 화제로 이야기를 하던 중 송홍에 대해 호의를 품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
왕이 어느 날 용무가 있어 송홍을 불렀을 때 좋은 기회가 왔다며 공주를 병풍 뒤에 앉힌 뒤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왕이 넌지시 속언에 사람이 지위가 높아지면 옛 친구를 버리고, 부자가 되면 부인을 새로 바꾼다고 하던데 생각이 어떤가하고 묻는다.
송홍이 지체없이 답한다. '신은 가난할 때 사귄 친구는 잊어서는 안 되고, 어려울 때 함께 고생하여 집안을 일으킨 아내는 절대로 내쳐서는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
臣聞, 貧賤之知不可忘, 糟糠之妻不下堂.
광무제와 호양공주는 마음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범엽(范曄)이 쓴 후한서(後漢書) 송홍전에 실린 내용이다.
오랜 기간 같이 생활을 한 60대 이상 부부의 이혼이 늘어난다고 얼마 전 보도됐다. 20년 이상 결혼을 지속하다 이혼하는 황혼이혼은 20년 사이 14배 증가했고, 2012년부터는 결혼 4년 안에 갈라서는 신혼이혼을 추월했다고 한다.
젊은 층의 결혼건수는 줄어드는 추세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백년해로(百年偕老)를 약속했을 부부이니 씁쓸하기만 하다.
조강지처(糟糠之妻)
지게미나 쌀겨로 끼니 이을 때의 아내
후한(後漢)의 세조(世祖)가 된 광무제(光武帝) 밑에는 천하통일 후 소위 '철중(鐵中)의 쟁쟁(錚錚)'이라고 불리우는 인물들이 수없이 모였다고 한다.
광무제는 자신의 누이이자 미망인이었던 호양공주(湖陽公主)가 전부터 대사공(大司空)의 직에 있는 송홍(宋弘)을 사모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아무리 광무제라 해도 송홍에게 정면으로 자기 누이를 아내로 삼아 달라고는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미리 병풍 뒤에 누이를 숨겨 놓고 송홍을 불러 낸 광무제는 서서히 말머리를 끄집어냈다. '어떤가 '부(富)하면 친교(親交)를 바꾸고 귀(貴)해지면 처를 바꾼다'고 하는데,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나?'
넌지시 광무의 누이에 대해 의견을 떠보는 것을 알아차린 송홍(宋弘)은 아주 뚜렸하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로서는 빈천(貧賤)할 때의 친교를 잊을 수 없고 조강치처(糟糠之妻)는 당(唐)에서 내리지 않는다(糟糠之妻 不下堂 )라는 것이 참말이라고 생각됩니다.'
남의 남편을 가로채고자 하던 공주도 이렇듯 명확하게 말을 하는 데는 단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조강지처 불하당(糟糠之妻 不下堂)의 조강(糟糠)은 재강(술을 걸러 내고 남은 찌끼)과 겨다. 아주 보잘 것 없는 식사를 말한다.
가난해서 재강과 겨 같은 것 밖에 먹지 못하고 고생을 같이 해 온 처는 제아무리 복이 터져 부귀를 누리게 되더라도 버리거나 마구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강지처의 가풍은 더욱 굳건해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됨을 알고 바른 예절의 전통을 이어나가자.
조강지처(糟糠之妻)
조강지처(糟糠之妻)란 말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후한서(後漢書)송홍편에 나오는 말이다.
후한 광무제가 남편을 잃고 외로워하는 누님 호양공주(湖陽公主)에게 좋은 사람을 소개해 주려고 했다.
소문으로 듣기에 송홍이란 사람이 인품이 매우 훌륭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광무제가 어느 날 송홍에게 자기 누님을 처로 받아들일 수 없겠는가하고 물었다.
송홍이 답하기를, '신문(臣聞) 빈천지교 불가망(貧賤之交不可忘), 조강지처 불하당(糟糠之妻不下堂)' 이라고 하면서 한 마디로 거절했다고 한다.
'신은 예부터 가난할 때 사귄 친구는 잊어서는 안 되고, 가난할 때 같이한 처는 내쫓아서는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 라는 뜻이다.
조강지처란 말은 여기서 온 말이다. 지게미와 쌀겨로 남편과 함께 가난을 이겨낸 처는 결코 내쫓을 수 없다는 말이다.
비록 부부가 어렵게 살지 않더라도 오랫동안 희로애락을 같이 한 아내를 어찌 함부로 대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때로 혼자 있고 싶은 적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남편으로, 아내로 곁에 있을 때 말이다.
요즘 졸혼이니, 황혼이혼이니 하는 말들을 쉽게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나이 들어 인기척 하나 없는 텅 빈집, 빈방에 혼자 들어가는 외로움을 겪어 보았는가. 몸 져 누웠을 때 물 한잔 떠 줄 사람 없는 외로움을 겪어보았는가.
말하고 싶어도 들어줄 사람이 없고 일을 하더라도 어디 진심으로 의논할 데가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사람이 혼자 잘 살아낼 수 있다고 호기로, 때로는 오기로 큰 소리 치지만 생각만큼 그리 쉽지는 않다.
인간은 환상으로, 때로는 착각으로 사는 것 같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것처럼 남의 아내가, 남의 남편이 자기 아내나 남편보다 더 잘하는 것 같이 보인다.
이 세상에 온전한 부부는 결코 없다. 그걸 아예 기대할 수도, 기대해서도 안 된다. 서로가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다름을 틀림이나 나쁨으로 생각하기보다 장점이나 감사로 바라보고 살아갈 수는 없을까.
이왕 부부로 한 평생 같이 살아갈 작정이면 멋있게, 서로 잘해주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누가 잘난 것도 못난 것도 없다. 우리 인간은 모두 결점 투성이다.
우리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너무 짧고 빠르게 지나간다. 늙어 가면 점점 몸도 군데군데 허물어지고 마음도 약해져 간다.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것이 바로 인간이 아니던가.
같이 늙어가는 가련한 아내를, 남편을 서로 측은지심으로 바라보면서 살아가면 어떨지. 조강지처만한 사람은 이 땅에 없다.
조강지처(糟糠之妻)
보잘 것 없는 음식을 먹으면서 함께 고생한 아내를 가리키는 말이다.
조강지처를 줄여서 조강(糟糠)이라고 하는데, 조(糟)는 술을 만들고 남은 쌀 찌꺼기, 강(糠)은 쌀겨로, 조강(糟糠)은 가난한 처지에 먹는 보잘것 없는 음식을 가리킨다. 그런 의미에서, 오랜 세월 산전수전(山戰水戰) 겪으며 함께 살아온 아내를 흔히 '조강지처'라고 한다.
우리의 선조인 할아버지나 할머니 세대는 일제의 식민지 시절 수탈정책으로 인해 우리의 식량자원인 쌀 등을 일본에게 빼앗기는 바람에 배고픔이 일상이었던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8.15해방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아 6.25 전쟁으로 인해 국민들의 삶은 더욱더 핍박해져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 빈곤의 탈출을 위한 아내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조강지처'는 보릿고개가 있던 힘든 시절에 온갖 일을 함께 하면서 가족부양과 자녀교육에 헌신한 아내의 고마움을 잘 보여주고 있는 내용으로 후한서(後漢書)의 송홍전(宋弘傳)에 나온다.
후한 광무제(光武帝)때 벼슬을 한 송홍은 인품이 훌륭하여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당시 광무제는 누나인 호양공주(湖陽公主)가 일찍이 과부가 되어 쓸쓸히 지내는 것을 보고 배필이 될 만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우연히 신하들의 인품(人品)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그녀가 송홍의 풍모(風貌)와 인품을 좋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송홍에게는 이미 아내가 있었다.
마침 송홍이 공무로 광무제를 만나려 왔고 광무제는 호양공주를 병풍 뒤에 숨기고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속담에 사람이 지위가 높아지면 친구를 바꾸고 집이 부유해지면 아내를 바꾸려 한다고 하오. 인지상정이 아니겠소?'
하고 말하자 송홍은 대답하였다. '신은 어려울 때 사귄 친구는 잊어서는 안 되고, 술지게미와 쌀겨를 함께 먹은 아내는 마루에서 내려오게 해서는 안 된다 들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자기 아내에 대한 송홍의 마음을 알고 광무제는 호양공주가 있는 쪽을 돌아보며 조용한 말로 '일이 틀린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한다.
조강지처를 내치거나 구박하면 언젠가는 천벌(天罰)을 받는다는 말은 지독한 남존여비(男尊女婢) 시대에도 예를 갖춘 본처(本妻)는 보호해 주려는 최소한의 보호막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고 남자는 '갑'이고 여자는 '을'이라는 보호막도 이제는 없어지고, 서로가 존중하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우리나라도 농업사회에서 도시화 및 산업화로 인한 핵가족화, 가부장적 아버지의 역할 약화, 친족관계 약화, 여성의 교육수준 향상 및 취업기회의 증가, 부부관계의 평등성 추구 등을 통해 조강지처를 버리거나, 남편의 폭력이나 억압에서 눌려왔던 불안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삶을 추구하고자 이혼율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지난 30년간의 우리나라 혼인과 이혼에 관한 통계에 따르면, 1988년 이혼율(혼인 410,129건, 이혼 20,757건)이 10.4.%였는데, 1998년을 기점으로 이혼율(혼인 373,500건, 이혼 116,294건)이 30%를 넘어서기 시작하여 이혼율은 그 이후로 20년 동안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어 2017년에는 이혼율(혼인 264,455건, 이혼 106,032건)이 40.1%로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1997년도 IMF로 인한 대규모 경기변동의 요인과 여성의 사회진출 증가와 부부간의 성격차이, 생활방식의 차이, 이대로는 못살겠다는 황혼이혼 증가 등이 원인이라고 한다.
요즈음 드라마나 영화에 이혼 가정이 빈번하게 등장하여 그것을 바라보는 시청자의 눈도 이제는 낮 설지가 않다. 그만큼 우리사회에서 이혼이라는 것이 숨겨야 한다거나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자연스런 현상이 되고 있다.
그렇지만, 조강지처가 주는 교훈은 어려울 때 힘든 가정을 지키며 함께 살아온 배우자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이해하며 사랑으로 감싸주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하고 있다.
부부관계의 유지는 사랑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고 다른 어떤 관계보다도 더욱 부단한 서로간의 대화와 이해를 통해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서로가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하면서, 대화를 통해 일방적인 아닌 부부 간의 협력과 역할분담에 대한 합의를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둘 사이의 갈등(葛藤)을 조절하는 효과적인 의사소통 방식을 만들어 나아가고 나름의 스트레스 대처 방식을 개발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 '당신뿐이야' 라는 다정한 말 한 마디는 다른 어떠한 물질적 보상보다도 삶에 대한 활력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糟(지게미 조)는 형성문자로 醩(조)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쌀 미(米; 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曹(조)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糟(조)는 ①지게미(술을 짜낸 찌꺼기) ②찌꺼기 ③재강(술을 거르고 남은 찌끼) ④막걸리(우리나라 고유한 술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지게미 박(粕)이다. 용례로는 술을 걸러 내고 남은 찌끼를 조박(糟粕), 가지를 삶아서 소금에 절이어 만든 반찬을 조가(糟茄), 깨끗하게 쓿지 않은 거친 쌀을 조강미(糟糠米), 지게미에 탄 물을 조수(糟水), 이익이 적은 고객을 조객(糟客), 술찌기의 독을 조옹(糟甕), 지게미와 쌀겨 또는 가난한 사람이 먹는 변변하지 못한 음식을 조강(糟糠), 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이어가며 고생을 같이 해온 아내라는 조강지처(糟糠之妻), 가난하여 술찌끼와 쌀겨조차 배부르게 먹을 수 없음을 조강불포(糟糠不飽) 등에 쓰인다.
▶️ 糠(겨 강)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쌀 미(米; 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康(강)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糠(강)은 ①겨(곡식의 껍데기) ②쌀겨 ③매우 작은 것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젓새우나 보리새우를 강하(糠蝦), 곡식의 기울이나 겨 따위를 이르는 말을 강류(糠類), 겨로 만든 죽을 강미(糠糜), 겨된장을 강시(糠豉), 겨죽을 강죽(糠粥), 겨와 쭉정이라는 뜻으로 거친 식사를 강비(糠粃), 가난하여 술찌끼와 쌀겨조차 배부르게 먹을 수 없음을 조강불포(糟糠不飽), 반대로 배가 고플 때에는 겨와 재강도 맛있게 되는 것임을 기염조강(饑厭糟糠)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 즉,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지남지북(之南之北) 등에 쓰인다.
▶️ 妻(아내 처)는 ❶회의문자로 삼가 달려가서 일을 하는 사람의 뜻이다. 따라서 사람의 아내를 일컫고, 전(轉)하여 시집 보낸다는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妻자는 ‘아내’를 뜻하는 글자이다. 妻자는 회의문자이지만 갑골문을 봐야 이해가 쉽다. 妻자의 갑골문을 보면 女(여자 여)자 위로 휘날리는 머리칼과 又(또 우)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여자의 머리칼을 만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여자의 머리칼을 만지는 것과 ‘아내’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중국이 부권사회로 전환된 이후 여성의 정조가 강조되면서 외간남자에게 신체를 접촉하게 하는 것은 극도로 금기시되었다. 여자의 머리를 만진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었다. 妻자는 그러한 인식이 반영된 글자로 ‘머리칼을 만져도 되는 여자’ 즉 ‘아내’를 뜻하고 있다. 그래서 妻(처)는 (1)아내 (2)혼인(婚姻) 관계에 있는 여자의 신분 상 호칭이다. 혼인으로 신분을 취득하며, 혼인의 해소, 취소에 의하여 신분을 잃음. 법률 상의 처만을 가리키며, 내연의 처는 법률 상의 처가 아님. 종래 처는 무능력자로 취급 하였으나, 신민법에 의하여 능력자로 됨. 부(婦) 등의 뜻으로 ①아내 ②시집보내다 ③아내로 삼다 ④간음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며느리 부(婦),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지아비 부(夫)이다. 용례로는 아내와 자식을 처자(妻子), 아내의 본집을 처가(妻家), 아내의 남자 형제 또는 아내의 오빠나 남동생을 처남(妻男), 아내와 첩을 처첩(妻妾), 아내의 여동생을 처제(妻弟), 아내의 언니를 처형(妻兄), 아내의 덕행이나 은덕을 처덕(妻德), 아내를 잘 얻은 복을 처복(妻福), 아내의 뫼를 처산(妻山), 아내의 숙부를 처숙(妻叔), 아내의 겨레붙이를 처족(妻族), 아내의 친정 아버지를 처부(妻父), 아내와 자식을 처식(妻息), 아내를 여읨을 상처(喪妻), 어진 아내를 양처(良妻), 사랑하는 아내를 애처(愛妻), 성질이나 행실이 사나운 아내를 악처(惡妻), 남에게 자기의 아내를 낮추어 이르는 말을 과처(寡妻), 첩에 상대하여 아내를 일컫는 말을 본처(本妻), 남편이 아내에게 눌리어 지냄을 공처(恐妻), 한 남자가 둘 이상의 아내를 가짐을 다처(多妻), 다시 장가들기 전의 아내를 전처(前妻), 아내에게 몹시 인정없이 굶을 박처(薄妻),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아들로 삼음을 처매자학(妻梅子鶴), 아내라는 성과 자식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다는 뜻으로 처자가 있는 사람은 집안 일에 얽매여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처성자옥(妻城子獄), 승려의 몸으로서 아내를 두고 고기를 먹고 하는 일을 대처육식(帶妻肉食), 아내 행실은 다홍치마 적부터 그루를 앉힌다는 뜻으로 아내를 순종하게 하려면 시집오자 마자 버릇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을 홍상교처(紅裳敎妻),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는다는 뜻으로 선비의 풍류 생활을 두고 이르는 말을 매처학자(梅妻鶴子), 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이어가며 고생을 같이 해온 아내란 뜻으로 곤궁할 때부터 간고를 함께 겪은 본처를 흔히 일컬음을 조강지처(糟糠之妻), 귀밑머리를 풀어 쪽을 찌고 상투를 튼 부부라는 뜻으로 정식으로 결혼한 부부를 이르는 말을 결발부처(結髮夫妻), 어진 어머니이면서 또한 착한 아내를 현모양처(賢母良妻)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