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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릉과 원
조선의 왕릉에 대해 묻는 친구들이 간혹 있어서 조선왕릉과 원에 대해 정리해 봤습니다. 서울 둘레길을 걷다보면 혹간 왕릉이나 원을 만나게 되는데 참고 하시면 좋을 것 입니다.
조선의 왕릉은 유네스코 인류 문화 유산에 등재 되었습니다.이제 조선 왕릉은 전주이씨들 만의 선산이 아니라 인류의 문화유산이 된 것입니다.
조선의 왕릉은 총 40개입니다.
조선의 왕은 고종과 순종까지 27명이지만 덕종,원종,진종,장조,문조 등의 추존왕 5명 까지 합하면 32명입니다.연산군의 묘와 광해군의 묘는 폐군이라서 능으로 치지 않습니다.
32명에서 두명을 빼면 30명입니다. 저기에
계비의 능 열개를 합하면 능은 40개가 됩니다.
왕과 왕비의 묘를 능이라 하고
세자와 후궁 등 왕족의 묘를 원이라 합니다
조선의 왕릉은 다음과 같습니다.
왕명 능이름 소재지
태조 건원릉 동구릉
정종 후릉 개성
태종 헌릉 헌인릉
세종 英陵 여주
문종 현릉 동구릉
단종 장릉 영월
세종 광릉 남양주
예종 창릉 서오릉
덕종 경릉 서오릉
성종 선릉 선정릉
연산군묘 방학동
중종 정릉 선정릉
인종 효릉 서삼릉
명종 강릉 태강릉
선조 목릉 동구릉
광해군묘 남양주
원종 장릉 김포
인조 장릉 파주
효종 영릉 여주
현종 숭릉 동구릉
숙종 명릉 서오릉
경종 의릉 석관동
영조 원릉 영조
장조 융릉 융건릉
진종 장릉 파주삼릉
정조 건릉 융건릉
순조 인릉 헌인릉
문조 수릉 동구릉
헌종 경릉 동구릉
철종 예릉 서삼릉
고종 홍릉 금곡릉
순종 유릉 금곡릉
♡덕종,원종,장조,진종과
문조는 왕에 등극 한 적은 없습니다. 왕의 아비라서 사후에 왕으로 추존 되었습니다.
덕종은 성종의 친부 의경세자
원종은 인조의 친부 정원군
진종은 정조의 의부 효장세자
장조는 정조의 친부 사도세자
문조는 헌종의 친부 효명세자
인데 익종이라고도 합니다
*왕비만 따로 조성된 능
제릉ㅡ 태조비 신의 왕후의 능 개성소재 정종과 태종 등 여섯 왕자의 친모
조선개국 이전에 사망함
정릉ㅡ이성계의 경처 신덕왕후의 능으로 정릉동에 있음
온릉 ㅡ중종비 단경왕후의 능 일영에 소재 하며 인왕산 치마바위 전설의 주인공으로 왕비가 된지 7일만에 반정공신 박원종 등에 의해 강제로 출궁 당함
사릉 ㅡ단종비 정순왕후의 능 남양주에 소재하며 수양대군에 의해 단종과 청계천 영도교에서 생이별 후 청량리 정업원에서 염색일을 하며 83세까지 생존함
공릉 ㅡ 예종비 장순왕후의 능
파주 삼릉 내에 소재하며
한명회의 세쨋딸인데 예종과 세자시절 결혼하여 인성대군을 낳다가 17세 때 사망함 사후에 왕비로 추존됨 그래서 능이 초라함
순릉ㅡ성종비 공혜왕후의 능
파주 삼릉 내에 소재함
한명회의 넷째딸이며 왕비가 된 지 5년 후 19세 때 사망함
파주삼릉 중 유일하게 왕릉 형식을 갖추고 있음
파주삼릉에는 진종의 능도 소재함
영릉 ㅡ영조비 정성왕후의 능
고양시 서오릉에 소재함
43년간이나 왕후였으나
영조가 정빈이씨를 너무 사랑하여 궁궐 생활 내내 독수공방함 .
영조가 사후에 반성하고 옆에 묻히고자 영릉옆을 비워 두었지만 여우같은 정순왕후가 영조를 동구릉 내 원릉에 묻고 자신이 옆에 묻혔음.결국 정성왕후는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도 독수공방 신세가 됨.
태릉ㅡ 중종비 문정왕후의 능
육사 앞 태강릉 내에 있음
명종의 친모이며 12살짜리 아들 명종을 대신하여 수렴청정하며
윤원형과 보우 대사를 중용하여 국정을 농단 했었음.
명종의 능은 태릉 옆에 있는 강릉임
회릉 ㅡ 중종비 장경왕후 희릉
인종의 친모,서삼릉 안에 있음.
원래는 헌인릉 안기부 자리에 있었는데 서삼릉으로 천장 했음
한 때 중종이 곁에 묻혀 있었으나
문정왕후가 자신과 나란히 묻히기 위해 중종의 능을 선정릉으로 천장시켰음.하지만 문정왕후는 결국 중동곁이 아닌 태릉에 묻혔음
선정릉에는 성종의 능 선릉과 중종의 능 정릉이 있음
대빈 묘ㅡ숙종비 장희빈의 묘
경종의 친모,한 때 왕비였던 여인
원래는 오포에 있었는데 1969년에서오릉 으로 이장했음
익릉 ㅡ 숙종비 인경왕후의 릉
서오릉 안에 있음 숙종의 첫부인
*두개 이상 모여 있는 능역
동구릉에 있는 능
태조,선조,문조,문종,영조,현종
헌종,인조비 장렬 왕후,경종비 단의 왕후
서오릉에 있는 능
명릉ㅡ숙종의 릉,
창릉ㅡ예종의 릉,
경릉ㅡ덕종의 릉,
익릉ㅡ 숙종비 인경왕후의 릉
홍릉ㅡ 영조비 정성왕후의 릉
서삼릉에 있는 능
예릉ㅡ철종의 릉,
효릉ㅡ인종의 릉,
희릉ㅡ중종비 장경왕후의 릉
파주삼릉에 있는 능
장릉ㅡ진종의 릉,
공릉ㅡ예종비 장순왕후의 능,
순릉ㅡ성종비 공혜왕후의 능
헌인릉에 있는 능
헌릉ㅡ태종과 태종비의 능
인릉ㅡ순조와 순조비의 능
영릉ㅡ세종과 세종비의 능
여주로 천장 했음
희릉ㅡ중종비의 능 서삼릉으로 이장했음
태강릉에 있는 능
태릉 ㅡ 중종비 문정왕후의 능
강릉 ㅡ명종과 명종비의 능
융건릉에있는 능
융릉 ㅡ 사도 세자와 혜
홍씨의 합장 능
건릉ㅡ 정조와 정조비의 합장능
금곡릉에 있는 능
홍릉ㅡ고종과 명성황후의 능
유릉ㅡ 순종과 순명효황후 윤씨와 순정효 황후 민씨의 능
순명효 황후의 능은 어린이 대공원 내에 있었으나 순종 황제 사후 금곡릉으로 이장했음
그래서 어린이 대공원이 있는 동네를 능동이라고 함
서울 안에 있는 능
태강릉ㅡ 공릉동 육사 앞에 있음
헌인릉ㅡ 세곡동 안기부 옆에 있음
선정릉ㅡ 봉은사 근처에 있음
의릉ㅡ 경종과 경종비의 능 외대
근처에 있음
정릉ㅡ태조 이성계의 경처의 능
원래는 덕수궁 근처에 있었으나 태종이 정릉동으로 이장했음 덕수궁 옆 정동은 정릉이 있던 동네라는 뜻임
홍릉 ㅡ 고종비 명성 황후의 능이 있었으나 금곡릉으로 이장했음
명성황후는 시해된 후 청와대 오운
정 앞에 암매장 되었다가 2년 후 대한제국이 선포되고 나서 장례식이 치러지고 서울 홍릉에 묻혔다가 고종이 승하하자 금곡릉으로 이장 했음
공릉동ㅡ공덕리와 태릉의 합성어 태릉동ㅡ 공릉동의 옛이름
사람들은 지금도 공릉동 보다 태릉동이 더 익숙함
♡장릉♡ㅡ조선왕들의 능 중 유일하게 강원도에 있는 능이 단종릉인 장릉이다.
나머지는 모두 서울과 경기도 내에 있다.
개성에 있는 이성계의 향처 신의왕후와 정종릉도 북한 땅이지만 경기도 내에 있다.
그리고 정릉만 도성안에 있었는데 태종이 정릉계곡으로 천장시켰다.
태조가 신덕왕후를 너무도 사랑하여 사후에도 조석으로 능을 찾기 위해 도성안에 능을 썼는데 원수지간이었던 태종이 태조가 죽자 마자 정릉계곡으로 이장시켜 버렸다.신덕왕후 능에 있던 장대석 들은 광통교 다리 상판과 교각으로 재활용했다. 그래서 지금도 청계천의 광통교에 가보면
교각에서 거꾸로 서있는 정릉의 돌들을 볼 수 있다. 돌에 새겨진 글씨와 그림이 거꾸로 되어 있다.
산덕 왕후가 얼마나 미웠으면 태종이 저렇게 까지 했을까?
*조선의 원
순창원
서오릉에 있는 명종의 아들 순회세자와 세자비 공회빈 무덤
순회세자가 13세에 사망하여
공회빈은 궁궐에서 청상과부로 살아야 했었음.공교롭게 공회빈이 임진 왜란 직전에 죽어서 선조가 장례도 못 치르고 의주로 몽진을 갔는데
창경궁이 불탈 때 시신도 불타 사라짐.따라서 현재 무덤은 가묘임
순강원
서삼릉에 있는 선조의 빈이고 인조의 조모요 원종의 모친인
인빈 김씨의 무덤
선조의 각씨 열명 중 하나이지만
왕자 넷과 옹주 다섯이나 낳았음
그 중 한 아들이 정원군인데
정원군의 장남이 인조이다.
소경원
서삼릉에 있는 인조의 장남
소현세자의 무덤.청나라가 인조를 밀어내고 소현세자를 왕으로 옹립 하려 한다고 의심한 인조가 독살 했다는 설이 있음
영회원
소현세자 부인 민회빈 강씨 무덤
광명시에 있음.인조는 소현세자 뿐 아니라 민회빈과 그의 소생인 세손자까지 제주도로 귀양보내 경선군과 경완군 둘이 풍토병으로 죽게 했다.막내 경안군은 살아서 한양으로 돌아왔는데 그의 자손은 번창하여 지금도 소현세자와 경안군의 무덤에 시제를 모시고 있단다.저렇게 소현 세자의 자손은 대가 끊기지 않고 번창하는데
봉림대군 즉 효종의 자손은 헌종을 끝으로 대가 끊겼단다.막내 경안군을 알뜰살뜰 보살핀 궁녀는 놀랍게도 청나라 궁녀였단다. 그녀는 소현세자가 청나라에 인질로 가 있을 때 시중을 들었었는데 소현세자가
조선으로 돌아올 때 따라왔단다.
민회빈 강씨가 역적으로 몰려 사사당했기 때문에 경안군을 돌볼 사람이 없었는데 그 청나라 궁녀가 끝까지 돌봐 주었단다
그래서 그녀의 무덤에도 소현세자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 준단다.
소령원
숙종비이며 영조의 친모
숙빈 최씨의 무덤이다.
파주 마장호 근처에 있다.
바로 옆에 며누리인 정빈 이씨 무덤인 수길원이 있는데 며누리가 옆에 묻히길 원했기 때문이란다.
청와대 옆 궁정동에 있는 칠궁에도 육상궁안에 연호궁이 같이 있는데 그 또한 최숙빈과 이정빈의 廟이다.
며누리가 죽어서까지 시어머니를 모시기를 원했단다.
수길원
영조의 후궁이며 진종의 모친인
정빈 이씨의 무덤이다.
파주 마장호 근처에 있다.
진종은 열살 때 죽었는데 진종이 바로 효장세자로 사도세자의 이복 형이다.
이산은 사도가 대역죄인이라서
진종에 양자로 입적한 후에 등극 할 수 있었다
수경원
서오능에 있는
영조의 후궁이며 사도세자의 친모인 영빈 이씨의 무덤이다.
원래는 연세대 후원에 있었는데
이 곳으로 이장했다.그 곳을 연희궁이라 했었다.연희 전문은 연희궁에서 딴 이름이고,연희 전문과 세브란스 전문이 합쳐져 연세 대학이 되었다.
휘경원
정조의 후궁이며 순조의
친모 유비 박씨의 무덤이다.
휘경동에 있다가 남양주로 이장함
의령원
3세 때 죽은 사도의 맏아들 의소
세자의 무덤이다.
원래 아현동 고개에 있다가 서삼릉으로 이장했다.
애의 무덤이 있다해서 애오개였다가 한자로 아현동이 되었다.의령원은 중앙여고 안에
있었다.그래서 중앙여고 교문 앞에 표말이 있다.
효창원
정조와 의빈 성씨의 장남인 문효세자의 무덤이다.
5세 때 사망했다.
원래 효창동에 있다가 서삼릉으로 이장했다.
정조가 의빈 성씨를 몹씨 사랑한 나머지 가까이 두고 자주 찾아 보려고 효창동에 원을 썼었는데 일제가 그 자리에 일본군 전사자들을 위한 현충원을 지으려고 이장시켰다.
연산군과 괭해군의 묘는 한 때
왕이었지만 폐군이라 그냥 묘라고 한다.
그래서 능이나 원도 아니어서 정자각은 물론 신도비도 없고
무인석과 문인석만 있는 아주 초라한 무덤이다.
광해군묘ㅡ 남양주시에 있음
연산군묘 ㅡ도공구 방학동에 있음
영휘원
고종의 후궁이며 영친왕의 친모
순헌황귀비 엄씨의 무덤이다.
세종대왕 기념관 옆에 있다.
엄씨는 신교육에 관심이 깊어
양정고와 숙명여고와 진명여고를 설립했었다.
아관파천을 주도한 것도 엄씨였다.
영원
영친왕 즉 의민 황태자와 이방자여사의 무덤이다.
금곡릉에 있다
제국의 왕자는 왕이라 칭한다.
의친왕,완친왕 흥친왕은 조선의 왕이 아니고 대한 제국의 왕자였다.영친왕은 황태자였으므로 영친왕이 아니라 의민 황태자라 해야 맞다.
숭인원
영친왕과 이방자여사의 장남
이진의 무덤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조선에 왔다가 돌 갓지나 2세 때 죽었다 .영휘원과 숭인원은 세종대왕기념관 옆에 있는데
조손 간이어서 같은 울타리 안에 있다.
회인원
영친왕과 이방자여사의 차남인 이구의 무덤인데 영원 안에 있다.
이구는 미국 mit공대 출신으로
건축설계사로 국내에서 활동하다가 망해서 일본으로 돌아가 살다 죽었다.장례식은 국내에서 치러졌다.
부인은 우크라이나 출신 미국인 줄리아였다.줄리아는 낙선재에서 이방자와 덕혜옹주랑 같이 살다가 이혼하고 미국 LA로 돌아가 살다가 고독사했다.그녀의 시신은 화장하여 태평양에 뿌려 졌단다.자녀는 없고 양녀가 있었는데 그녀는 현재 행방을 알 수 없단다.
첫댓글 조선의 왕릉과 원을 한눈에 볼수있게 잘 정리해 올려서 이해에 도움이 되겠어요
요즘 영화 파묘가 관객수 1,000만명 돌파라던데 나는 인기있는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