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는 육류와 해산물의 부패를 막아주고 소화를 도와줄 뿐만 아니라, 그 향은 잡내를 제거해주고 맛
이 밋밋한 음식도 독특한 향취가 나게 해주는 귀한 향신료다. 후추의 원산지는 인도다. 중세에 아랍
상인들을 통해 처음으로 후추를 맛보게 된 유럽인들은 단번에 그 독특한 향취에 매료되어 계피‧생강‧
정향 등 다른 향신료를 젖혀두고 후추를 가장 선호하게 되었다. 계피‧생강‧정향 등의 원산지도 마카
다 인도다. 유럽인들의 기호를 알아챈 아랍 상인들은 제한적인 양만 공급함으로써 값을 천정부지로
올려놓았으며, 덕분에 유럽에서는 재벌급 부자들만 후추를 사먹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값이 매우
비쌀 때 ‘금 값’이라고 표현하듯이, 중세 유럽 사람들은 ‘후추 값’이라는 표현을 썼을 정도였다. 지역
에 따라 후추가 화폐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돈이 많은 사람들은 후추를 매점매석하기도 했다.
13세기에 접어들어 베네치아 상인들이 아랍 상인들로부터 후추를 사들여 유럽 전역에 독점공급하는
중간상 역할을 맡았다. 이때부터 베네치아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국가로 성장하여 훗날 르네
상스를 일으킨 진원지가 되었다. 베네치아에는 문화‧예술인들을 후원하는 재벌들이 많았는데, 그 중
레오나르도 다빈치‧미켈란젤로 등 가장 많은 문화‧예술인들을 후원해준 메디치家도 후추 도매로 거
부가 되어 노블레스 오블라쥐를 실천했다. 「동방견문록」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마르코 폴로
도 베네치아의 후추상 집안 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콘스탄티노플의 몰락을 예측하고 재산을 정
리하여 볼가江 근방으로 이주했다가 몽골제국의 칸을 만나 몽골까지 가게 되었으며, 그 인연으로 마
르코 폴로도 원나라로 여행을 떠났다가 「동방견문록」을 저술하게 되었다. 책에는 그가 후추의 원
산지를 직접 가보았다는 내용이 있어 유럽인들의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
아랍 상인들은 인도에서 후추를 대량으로 사들인 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집하했으며, 여기서
막대한 이문을 붙여 베네치아 상인들에게 넘겼다. 그러나 아랍 상인들은 후추의 원산지는 물론 수송
경로도 철저하게 비밀에 붙였다. 베네치아 상인들에게 대대로 후추를 독점 공급하여 부를 누리기 위
해서였다. 실제로 아랍의 여러 나라는 후추 거래로 떼돈을 벌어들여 부국강병을 이룩했다. 그런데
「동방견문록」에 의해 후추의 원산지가 알려지자 유럽인들은 인도에서 후추를 직접 사들일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포르투갈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가 아프리카 최남단에 있는 희망봉을 돌아 인도
까지 간 것도, 인도로 가는 지름길로 착각하고 항해에 나섰다가 엉뚱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게 된
이탈리아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도, 모두 후추를 싼 값에 공급하기 위해 인도를 찾다가 세기적
인 발견으로 역사적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 아메리카대륙은 유럽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아 세계
지도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자기가 도착한 곳이 인도인줄 알고 있었다.
유럽인으로서 최초로 인도항로를 개척한 바스코 다 가마는 세 차례에 걸쳐 인도를 찾아가 후추 직거
래를 성사시켰다. 제1차 항해는 1497년 7월 8일, 4척의 범선에 170명의 선원들을 나눠 태우고 포르투
갈의 수도 리스본을 출발하여 1598년 5월 20일 인도의 캘리컷 항구에 도착했다. 그러나 선원의 절반
이 항해 도중 괴혈병을 비롯한 각종 질병으로 죽었으며, 일부는 인도인들에게 살해당했다. 귀국한 바
스코 다 가마는 새 항로를 개척한 공로로 포르투갈 황제로부터 제독 직위를 하사받았다. 1502년 2월
12일, 바스코 다 가마 제독은 군함 20척을 이끌고 제2차 항해를 떠났다. 그는 아랍 상선들을 닥치는
대로 약탈하고 불태웠으며, 캘리컷 항구에서는 29척의 아랍 함대를 전멸시켰다. 그제야 캘리컷 영주
는 바스코 다 가마와 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유럽에 후추의 독점 공급권을 부여했다. 제2차 함대는 150
3년 7월에 귀국했다. 그러나 후추를 가득 실은 배가 최초로 벨기에의 안트베르펜 항구에 도착한 것은
제3차 항해 때인 1522년이었다. 이때부터 유럽인들은 비로소 싼 값에 후추를 충분히 애용할 수 있게
되었다. 바스코 다 가마는 인도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1524년에 죽었다.
유럽인들이 후추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이를 어떻게 재배하여 열매를 생산하는지를 알게 된 것은
그보다도 훨씬 뒤인 18세기였다. 프랑스 식물학자 피에르 푸아브르는 아프리카의 프랑스 식민지에서
최초로 후추나무를 재배하면서 이를 자세한 기록으로 남겨 유럽인들에게 널리 알려주었다. 후추는
열대지방의 덥고 습한 지역에서 잘 자란다. 후추는 덩굴로 뻗는데, 지지대를 만들어주면 10m까지 뻗
어 올라간다. 덩굴 끄트머리에 수많은 작은 꽃이 피었다가 지고 나면 작고 동그스름한 열매가 송이를
이루며 뭉쳐 있다. 열매는 완전히 익기 전에 따서 표면이 쭈글쭈글해질 때까지 건조시킨다. 회색을
띤 열매는 건조되면서 점차 검게 변한다. 완전히 익은 다음에 열매를 따서 껍질을 벗겨내면 흰색이
된다. 흰색 후추는 향기는 훨씬 짙고 매운 맛은 덜하다.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흰색 후추는 검은 후추
에 비해 값이 매우 비싸다.
- 프랑스 식물학자 자크 브로스 지음 「식물의 역사와 신화」 중에서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나는 경상도 사람이라 산초(제피나무 열매로 알고있음)를 추어탕에 넣어 먹어야 그 맛을 느끼기 때문에, 항상 거제도 산초를 냉동고에 보관해둡니다.
수입산 후추는 맛이 달라서 취향에 안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