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언론들의 전쟁책동 도를 넘었다
전쟁 책동 세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천안함 사고의 원인이 아직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무력 군사보복 운운하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어버이연합과 같은 일부 철부지 노인들의 주장이 아니라, 보수신문들의 사설과 칼럼을 통해 언론인들이 버젓이 제기하고 있다는 겁니다.
최근 며칠간 좀 바빠서 다른 신문들을 살펴보지 못하다가 우연히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사설과 칼럼 등을 읽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전쟁이라도 불사해서 북한에 무력 보복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실려 있었습니다. 이게 도대체 권위지라 불리는 신문들의 칼럼과 사설이 정녕 맞습니까? 토론과 논쟁이 가능한 보수신문이 아니라 우익 선동지에나 나올 법한 글들이 실려 있더군요.
김진 정치전문 중앙일보 기자가 쓴 23일자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이란 칼럼을 읽었습니다. 황당하고 무책임한 주장들이 실려 있더군요.
이 분은 “북한의 비파곶 잠수함 기지를 폭파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나름 근거도 들었습니다. 수원과 오산 공군기지에 방문해 지도층 인사들에게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그 근거로 써놨습니다. 그러면서 그 지도층 인사들이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았습니다.
김진 기자가 써놓은 근거를 여기 옮겨 옵니다.
“북한 비파곶 잠수함 기지는 북방한계선(NLL)에서 80㎞ 떨어져 있다. 한국 공군의 최신예 F-15K는 JDAM(Joint Direct Attack Munition)이라는 정밀유도폭탄을 장착할 수 있다. 이런 폭탄은 위성항법장치(GPS)의 유도를 받아 100여㎞ 떨어진 건물의 창문을 조준할 수 있다. 실제로 공군은 모형으로 만든 북한 장사정포 요새의 입구를 정밀유도폭탄이 때리는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대화 중에서는 ‘전쟁이 일어나면 육·해·공 합동으로 3일 내에 북한 장사정포의 최소 70%를 파괴하는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만약 북한이 도발해도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 북한의 핵심 목표를 폭격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한국엔 민간인 부대 있어서 전쟁 이긴다?
황당했습니다. 정말 진지하게 전쟁에 대해 고민해 본 사람의 머릿 속에서 나온 주장인지 의심스럽습니다. 군대는 다녀오신 건가요? 전투가 무슨 스타크래프트 게임인 것처럼 이해하고 있습니다. 잠수함 기지만 부수면 전쟁 승리입니까? 조선일보의 유용원 군사 전문기자도 이 글을 보면서 비웃었을 겁니다.
김진 기자는 이런 발언을 한 고위 관계자가 누구인지 밝히기 바랍니다. 대체 주워들은 내용이 사실인 지 부터가 의심스럽습니다. 만약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이라면 검찰은 당장 이 분을 구속해야 합니다. 미네르바의 한 마디로 금융시장이 출렁였다고 주장한 검찰이 아닙니까. 김진 기자의 이런 칼럼으로 우리 금융시장이 요동쳤습니다.
그런데 김진 기자의 황당무개한 주장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한국엔 막강한 민간인 부대가 있기 때문에 전쟁에 대처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김 기자는 “강릉 앞바다 잠수함을 신고하고, 속초 앞바다 잠수정을 그물로 잡고, 천안함 함미를 발견하고, 어뢰 파편을 건져 올린 모든 이가 민간인”이라며 “국민이 단결하면 생화학이나 특수부대에 대처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마감 앞두고 허겁지겁 글을 쓴 건가요. 이런 무책임한 주장을 어떻게 칼럼이라고 쓸 수 있습니까. 김진 기자에게 묻습니다. 전쟁나면 김 기자가 어뢰 파편 직접 주워 올릴 겁니까. 잠수정을 그물로 직접 끌어 올릴 겁니까. 생화학 가스 직접 모두 들이마셔 없애줄 겁니까.
본인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함부로 주장하지 마십시오. 대체 누구를 또 희생시켜서 전쟁을 치르려는 생각을 하는 겁니까. 농담치곤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닙니까. 일제 때 대동아전쟁에 적극 참여하자고 전쟁을 선동하던 조선일보를 보는 듯합니다.
전쟁하자고 주장하는 칼럼
김 기자는 <칼럼>에서 꽤 진지하게 묻습니다.
“국지전이나 전면전이 일어나면 그것은 절대로 안되는 것일까”
대답합니다.
‘절대로 안됩니다.’
무력대결로는 결코 통일할 수 없습니다. 아니, 통일이 설사 되더라도 엄청난 국가적 재앙과 손실을 극복한 뒤 가능한 일입니다. 북한의 군사력은 이라크와는 수준이 다릅니다. 이라크가 손쉽게 미국의 군사력 앞에 굴복했다고 북한이 그렇게 될 거라고 누가 보장합니까.
저는 군사 전문 기자가 아니라 이곳에 자세한 군사력 비교를 할 생각이 없지만 인터넷에 들어가 관련 군사 정보들을 조금만 수집해도 김 기자의 주장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묻습니다만 김 기자가 들은 이야기의 출처가 어딥니까. ‘지도층 인사’라고 뭉뚱그려 표현하셨던데 그들이 국방부 소속 군사전문가들이 맞기는 한 겁니까. 어정쩡한 국방위 소속 국회의원들에게서 주워 들은 이야기가 아닌 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스타크래프트 게임 수준의 전쟁 이론을 펼 수 있단 말입니까.
전쟁은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김진 기자는 ‘전쟁을 결심할 수 있어야 전쟁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 말에도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김 기자는 베트남 전쟁이나 아니 그보다 가까이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통해 대체 무엇을 배운 겁니까.
미국의 전쟁광들은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짧은 기간 안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처럼 선전해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9.11 테러와 같은 국가적 재앙을 겪고서 흥분 상태에 빠진 미국민들이 전쟁에 찬성하긴 했지만 지금 미국민들은 어떤 주장을 하고 있습니까.
반전 여론이 들끓고 있고, 이라크에서 즉각 철수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전쟁으로 치르게 되는 희생이 너무 컸다는 것을 뒤늦게 깨닳았고, 겉으로 보이는 승리가 실상은 ‘말로만 승리’였다는 것을 깨닳았기 때문입니다. 미군은 계속 죽어나가고 있고, 여기 저기 테러 위협에 시달리며 살고 있습니다. 또 전쟁 비용을 치르느라 생긴 재정적자가 나라를 거덜낼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미국민들이 깨닳았습니다. 오바마도 이라크 전쟁을 멍청한 전쟁(dumb war)이라고 불렀을 정도입니다.
김 기자에게 묻고 싶습니다. 국제적 여론을 분석하기는 하는 겁니까. 아니면 외눈박이 입니까. 자신의 허황된 주장을 국민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일부러 진실을 감추는 겁니까.
서독과 동독이 어떻게 통일 되었는 지 김 기자는 애써 그 과정을 잊으려 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서독이 동독을 군사적으로 위협해서 통일에 이르렀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김 기자는 정말 진지하게 통일을 원하는 분이 아닌 듯 합니다. 김 기자가 정말 통일을 원한다면 함부로 그렇게 전쟁을 책동해서는 안됩니다. 6.25 전쟁이 왜 일어났습니까. 이승만도 한 몫했습니다. 역사책을 조금만 살펴보아도 이승만이 무리하게 대북공격 운운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NLL 이 호전적인 이승만의 북침을 막기 위해 미국이 일방적으로 지정한 선이란 것을 김 기자가 모를 리 없을 겁니다.
독일 국민들이 89년 독일 통일을 기념하며 촛불 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천안함 희생자 가족들 “군사적 대응 반대”
김진씨와 같은 언론인들에게 묻습니다. 전쟁 나면 당신들이 총 들고 나가서 싸울 겁니까. 어떻게 그렇게 함부로 전쟁 책동을 할 수 있습니까. 천안함 희생자 가족들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공격에 반대한다고 지난 19일 밝혔습니다. 자신들과 똑같은 유족이 북한에도 생겨선 안된다는 게 이유입니다. 대체 당신들이 무슨 권리로 이들을 대신해 전쟁 운운하는 겁니까. 천안함 사고를 빌미 삼아 ‘이 때다’ 하며 전쟁 야욕을 채우려 해선 안됩니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정부에 합리적인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주문해야 하는 것이 지금 이 국가적 위기에서 언론이 해야 할 일입니다. 천안함 침몰 원인이 무엇인 지 대북 정책이 무엇인 지에 대해선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2차 한국 전쟁’은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전쟁 책동’ 언론인들에게는 약이 없습니다. 빨리 현직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국민들을 우롱해도 정도가 있는 것인데, 이분들은 얼굴에 철판을 깔았습니다. 어떻게 실명을 걸고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인지요?
남북화해 실패한 정부는 대국민사과해야
그리고 정부에 호소합니다. 10년간 간신히 이뤄낸 남북 화해 분위기를 2년만에 말아먹은 데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하셔야 합니다. 한반도 평화가 우리 경제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지 잘 이해하고 있다면 이런 식의 대결 모드는 안됩니다. 대화하고 소통하십시오.
북한이 이렇게 대결 국면으로 몰고가는 것도 혹독하게 비판해야 하지만 일을 이 지경까지 만든 우리 정부의 책임 또한 큽니다. 정부가 바뀌고 나서 도통 북한과 대화와 소통이 잘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사사건건 북한과 대립하고 양쪽의 핫라인이 모두 끊겼습니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이명박 정부에 투표한 국민들은 북한과 대립해 평화를 깨트리라는 주문한 적이 없습니다. 이래서야 국민들이 불안해서 살 수가 있겠습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하늘에서 이 난국을 어떻게 보고 계실 지 참 답답한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