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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행동
황경식
서울대 철학과 교수
본지 평설 위원장
ɪ. 읽기 자료 : 철학소설
ɪɪ. 심층독해
1. 행동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
2. 직업이 가정 생활에 미치는 영향
3. 사랑과 질투
4. 여담 : ‘어떤 흥정 이야기’
출전 : 「장자」
저공(원숭이를 키우는 사람의 이름)이 원숭이에게 도토리를 주기로 하면서 “아침에는 세 개를 주고, 저녁에는 네 개를 주마.”라고 말하였더니 못 원숭이들이 모두 일어나서 화를 내었다. 잠시 후에 “그렇다면 아침에 네 개를 주고 저녁에 세 개를 주마.”하고 말하니, 못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ɪ . 읽기자료 : 철학소설
다가오는 먹구름
“너 지금 농구 연습하러 가는 거지?”
리자가 마크에게 물었다.
“그래.”
라고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마크는 복도에서 자기를 기다리는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혼자 중얼거리듯,
“방과 후엔 항상 농구 연습 가는 걸 알면서 왜 묻지?”
하며 말을 이었다. 마크는 리자가 자기와 이야기하고 싶어한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자 리자는 큰 소리로,
“농구 경기가 내게는 전연 의미가 없는 것 같은데, 넌 왜 그렇지?”
하고는 곧 찌푸려지는 마크의 얼굴을 보자 후회했다.
“그건 훌륭한 경기야.”
짧게 내뱉는 마크의 어설픈 대답에, 리자가 불쑥 물었다.
“경기 도중에는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
그 말은 그녀가 의도했던 것보다 마크에게 더 나쁘게 들렸다.
마크는 곧 방어 태세가 되어,
“아니야, 그렇지 않아! 농구 경기를 할 땐 반드시 생각을 해야 돼. 움직일 적마다 무얼하고 있는지, 또 무얼 할 것인지 알아야만 돼. 사실 그 점이 농구의 매력이니까, 코트안에선 말이야. 행동하는 것 자체가 생각하는 것이야. 달리 뭐라고 표현할 수 있겠어?”
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농구에 대한 마크의 열정을 이해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마크의 설명이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크가 퉁명스럽게,
“이봐, 리자.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어. 오늘 저녁에 만나자. 됐어?”
라고 말하자, 리자는 머리를 흔들었다.
“저녁엔 할 일이 너무 많아.”
리자의 이러한 대답에, 마크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좋아, 그럼 내일 보자.”
하고는 가 버렸다.
농구 연습이 끝난 뒤 마크는 지치기보다는 도리어 쾌활해져서 집까지 줄곧 달려갔다.
집에서는 누나 마리아가 혼자서 마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일 마크가 연습 때 자신이 했던 코너슛을 계속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마리아의 표정이 얼마나 침울한지 눈치 채었을 것이다.
마크가 들어서자마자, 마리아는 말했다.
“마크! 어머니가 집에 오셨었어. 곧바로 되돌아가셨지만, 어머니가 네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댔어. 어머니가 다니시는 회사가 다른 곳으로 옮긴대.”
“뭐라고, 옮긴다구? 이해할 수 없군. 어떻게 옮길 수 있지? 그 회사는 아주 큰 공단이잖아! 게다가 수천 명의 고용인이 있고!”
“그래. 하지만 인건비가 더 싼 곳으로 간다나 봐.”
“어쨌든 우린 계속 여기 있을거야. 그렇지? 어머니가 같이 떠나실 필요는 없다고 보거든. 여기서도 다른 일자리는 구하실 수 있을 거야.“
라고 말했다.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나 봐. 어머니는 아주 고참이시고, 만일 함께 떠나지 않으면 그 지위를 잃게 된다고 하셨어. 내가 생각하기엔, 일단 간부가 되고 보면, 다시 비서직 따위로 되 돌아가고 싶지는 않을 것 같애.”
차분히 말해 주는 마리아를 보며, 마크는 신경질적으로,
“그렇다면 아버지는 어떡하시고! 아버지가 그처럼 쉬 그만 두고 떠나실 수 있으시겠어? 아버지는 아버지의 일이 있으시잖아.”
하니, 마리아는 머리를 가로젓고 눈살을 찌푸렸다. 마크는 그제서야 그녀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곧 설명해 주려고 애썼다.
“내 말좀 들어봐, 마크. 아버지가 일하시는 도서관에서는 승진이라곤 없단 말이야. 그래서아버진 해마다 같은 자리에 머물러 계시는 거야. 물론 거기에 대해서 아버진 어떤 말씀도없으셨지만, 사실임에 틀림없어. 그러니까 아버지는 어디를 가시건 이보다 더 나빠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시는지도 몰라.”
그러자 마크는 빠른 어투로 지껄였다.
“하지만 말도 안돼. 미친 짓이야! 이따위 멍청한 사회…… 모든 게 죽은 듯이 멎어 있거나, 아니면 한꺼번에 사방에서 들썩거리게 되니 그 어느 것도 좋은 거 하나 없지.”
이윽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도 저녁 식사는 아주 조용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아니, 엄숙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그날의 저녁 식사는 아주 조용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아니, 엄숙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비록 아버지가 우리집이 이사가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측면을 지적하려고 계속 애썼지만…….
그날 밤, 마크는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침대 속에서 뒤척거렸다. 리자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그를 가슴아프게 했다.
예기치 않은 상대
마크로부터 이사갈 것 같다는 말을 들은 리자는, 그와 의논하려 했던 것이 무엇이었던 간에 그걸 끄집어 낼 기분이 전혀 아니었다. 머리 속은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고, 어떤 생각을 해도 조금도 위안이 되지 못했다.
‘그래, 이건 그렉(리자의 또 다른 남자친구) 때문에 받는 벌이야.’
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이건 더없이 멋진 기회야, 이 기회를 포착해! 너도 오랫동안 마크를 떼어 버리려고 했잖 아. 그런데도 스스로 인정할 수가 없었지. 이제는 문제될 게 없잖아?“
하는 생각이 리자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또 다른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게 아무 의미도 없는 쪽은 그렉이야. 얼마 안 있어 그는 다른 여자 아이의 꽁무니를 좇아서 떠나갈 거야. 마크도 떠날 테고. 그럼 넌 아무도 없게 돼!’
리자는 이런 생각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뭘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다음 수요일에 리자는 드디어 마크에게 마음 속에 있는 모든 것을 털어내고야 말았다.
마크가 리자에게,
“토요일 밤, 너를 좀더 일찍 데리러 가야겠어. 영화 상영시각이 바뀌었거든. 7시에 거기 있을게.”
라고 말했을 때, 리자는 우물쭈물하면서,
“토요일 밤?…마크, 토요일 밤에 영화 보러 간다고 말한 적 없었잖아! 전에 자주 있었던 일도 아니구. 어떻게 그러첨 당연한 듯이 말할 수 있어?”
했던 것이다. 리자의 이러한 대답에 마크가 놀라서 물었다.
“정말 기억 못 하겠어? 전에 우린 다음 번 우디알렌 영화가 상영될 때 같이 보러 가기로 했잖아! 그렇게 약속까지 했어.”
그제야 리자도 생각났다. 순간 그녀는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다.
‘어떻게 내가 그걸 잊어 버릴 수 있었을까?’
하면서도 리자는 갈 데까지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미안해. 난 까맣게 잊고 있었어. 그렇더라도 난 같이 갈 수가 없어.”
마침내 화가 난 마크와 대꾸하는 리자의 말싸움이 시작됐다.
“못 간다고? 어째서?”
“못 가!”
“왜? 왜, 못 가?”
“꼭 이유를 대야 되니? 그냥 갈 수 없을 뿐이야.”
“뭐 다른 약속이라도 있어?”
마크가 리자의 눈앞에 너무 가까이, 마치 탑처럼 버티고 서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눈을 내리깔았다. 마음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마크를 똑바로 쳐다보고 싶었다.
이윽고 리자는 억지로 대답했다. 구실을 대기는 정말 싫어서 사실대로 말해 버렸던 것이다.
“난,… 난… 그렉과 외출하기로 약속했어.”
“그렉이라고?”
마크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했다.
“그런 녀석하고, 네가?”
그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리자는 머리를 끄덕일 뿐이었다.
잠시 후, 마크가,
“왜 그렉과 그런 약속을 했지?”
라고 다그쳐 묻자, 리자는,
“그러고 싶었을 뿐이야. 그게 전부야.”
하고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마크는 화가 났다. 그래서,
“그 녀석이 선배인 데다가, 토요일 밤마다 끌고 나올 자가용이 있어서야?”
했더니 리자는 약을 쓰며,
“제발, 마크!”
하는 것이었다. 속으로는 그 비난이 사실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잠시 다음 말을 잇는 데에 몹시 애를 쓰며, 마크가
“그러니까, 네 말은 우리가… 우리가 절교해야 한다는 거니?”
라고 묻자, 리자는 마크를 날카롭게 올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언제 그랬어?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린 결혼한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외출하고 싶을 때 못 갈 이유가 있어? 가끔씩 내가 다른 애들과 말하고 싶어한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러나 우울한 표정으로 땅을 내려다보는 리자의 마음 속에는 딱하게도,
‘이 얼마나 힘없는 항변인가! 우린 이렇게 끝나는 거야.’
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마크는 격분해서 다시 소리쳤다.
“네가 좋아하는 애는 그렉이었단 말이지?”
이에 리자도 지지 않고,
“넌 그 애를 잘 모르면서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니? 난 네가 그 애를 만나 봤으면 좋겠어. 너도 그 애가 맘에 들 거야.”
했다.
“미쳤군.”
이렇게 말한 마크의 한마디가, 그들 말싸움의 마지막이었다.
마크는 그렉이 차 바퀴 뒤에 서서 자기를 비웃으며 역겹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만일 그때 실제로 그렉이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마크는 격분한 나머지 그를 흠씬 두둘겨 패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리자에게 마크는 아무런 짓도 할 수 없었다. 질식할 듯 격분하고 무기력해진 채로, 그는 말없이 그 자리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ɪɪ. 심층 독해
1. 행동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
생각있는 행동과 생각없는 행동
농구경기를 하는 사람은 생각할 필요가 없으리라는 리자의 말을 듣고, 마크는 즉각 거부감을 나타내면서 스포츠도 생각을 요구한다고 응수한다. 그에 따르면 행동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은 동일한 것의 양면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리자의 말은, 운동을 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활동에 좋아하는 사람들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통상적인 편견을 대변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화로부터 우리는, 생각하는 일을 내포하는 신체적 활동과 그렇지 못한 신체활동을 구분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신체 속에서 일어나는 혈액순환과 소화작용은 생각과 아무런 관계없이 일어나는 활동이다. 반면에 의도적이고 의식적으로 일어나는 활동은, 생각하는 일 을 포함하는 활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신은 신체에서 무엇을 할지 말해 주지만, 육체 그 자체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할지 모른다. 우리가 농구를 할 경우, 우리의 마음은 손에게 공을 어떻게 던져야 할지 말해 주지만 손은 생각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마크는 바로 이 점을 부인하고 나선 것이다. 마크가 대변하는 입장에 따르면, 생각하는 과정은 두뇌뿐만 아니라 신경중추, 나아가서는 전신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피아니스트는 그들의 손으로 생각하고 댄서는 그들의 몸으로 생각한다는 말에 비해 크게 잘못된 말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을 동일한 것으로 보는 마크의 이러한 발언은, 생각하는 것에 대한 형태주의라 불리우는 입장과 관련된 것이다.
이론과 실천
꼭 같은 맥락은 아니지만 행동과 생각간의 구분은, 실천과 이론간의 구분과도 관련된다.
이미 지난 호에서 나온 이야기지만 「흔들리는 교정」제1장 두 번째 이야기 끝부분에서 프란은,
“하지만 그렇지 않아, 이론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나 실제로는 달라.”
라고 말한다. 프란이 이론과 실제 혹은 실천간에 하고 있는 이러한 구분은 무엇을 말하는가?
어떤 사람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어떤 것을 설명하기를 바라지만 어떤 방식으로 설명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다. 다시 말하면 난점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기는 하나 그 해결책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종류의 암시가 그에게 주어졌다고 해 보자.
이 암시가 어떤 생각이나 이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그의 문제를 해결해 줄 가능한 방도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그 생각에 따라 실제로 행동을 해 볼 것이다. 그래서 그 문제가 해결될 경우에는 그의 생각이 제대로 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론이 실천을 통해 검증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이 실천이란 생각 속에 포함된 것을 행동으로 옮겨 보는 활동인 것이다.
이론적인 삶, 실천적인 삶
물론 우리는 실천에 대한 이론적인 반성이나 분석이 거의 없이 실천과 행동의 수준에서만 우리의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자기 생각을 실제 세계에 적용할 경우 어떤 일이 생겨날지 알아보지도 않고서 전적으로 이론적인 차원에서만 인생을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이론과 실천을 각기 분리해서 이해해 보는 일도 중요하지만, 또한 이론과 실천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래서 철학교실에서 필요한 것은 어떤 이론에 대해서는 “그 이론의 실천적인 의미는 무엇인가?”를 묻고, 어떤 실천이나 행동에 대해서는 “그 밑바닥에 깔린 이론이나 생각이 무엇인가?”를 물어보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사고와 행위 혹은 이론과 실천은 수레의 두 바퀴와도 같은 것이다. 그 중 어느 하나라도 없을 경우 인생의 수레는 제대로 그리고 올바르게 굴러갈 수 없다. 그래서 철학자 베르그송은 ‘사색인으로서 행동하고 행동인으로서 사색하라’고 했던 것이다.
이론과 실천과의 관계
이론과 실천 및 그들간의 관계에 대해 좀더 알아보기로 하자.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게임을 하기 이전에 우리는 그 게임의 규칙을 배워야 한다. 이를 두고서 이론이 실천에 선행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수영을 가르치기 위해서 수영에 관한 책을 읽게 한다면 우리는 그것이 수영을 배우는 데 있어 그릇된 방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는 실천이 이론에 선행해야 한다는 뜻인가? 어떤 악기를 연주하기 위해서 먼저 악보 읽는 법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는가? 악기를 연주해 본 실제 경험을 갖지 않고는 음악이론을 이해할 수 없는가? 이론을 전개한 사람은 그 이론을 실제에 적용해야 할 의무가 있는가? 아니면 이론가는 그 이론이 실제에 적용될 방법에 대한 방향제시를 해야 할 의무는 있는가? 실제 행위에 가담하는 사람은 그러한 행위가 전제하는 이론을 밝혀야 할 책임이 있는가? 처방전을 쓰고 수술을 하는 의사는 그러한 행위의 근거가 되는 이론을 언제나 이해하고 있어야 하나? 공무원은 그 행위의 기초가 되는 정부에 관한 이론을 이해하고 있어야 하나?
실천상의 문제들
이론상으로는 그럴 듯하나 실제상으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다. 다음 경우에 이러한 문제를 생각해 보고 그 이유를 알아내 보자. 대의정부 혹은 국회, 소득세 제도, 한국의 경제정책, 청소년노동법, 조직범죄 방지법, 국제연합, 세계정부, 공해방지법, 아동의 권리, 동물의 권리 등. 그리고 이론상 한국시민의 정치적 권리에는 선거권, 피선거권, 정당결성권, 청원권 등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권리를 행사하려 할 경우, 이러한 권리 행사에 있어 어떤 문제가 생겨나는가? 열살난 어린이, 부유한 기업인, 농부, 사회 운동가, 농촌 주부, 죄수, 주유소 직언, 경찰, 정신병원환자, 재판관, 의사, 외국인 노동자, 미용사 등.
2. 직업이 가정생활에 미치는 영향
가정과 경제
일반적으로 가정의 구조와 경제의 구조간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어 왔다. 특히 농업국가에 있어서 그것은 사실이었다.
봉건사회에 있어서 농가는 그 사회의 기본적인 노동단위였다. 김을 매고 씨를 뿌리고 추수하는 일은 가족들이 함께 일하고 그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직접 경험하게 되는 활동들이었다. 사촌들이나 조부모까지를 포함해서 가족성원들은 함께 노동하고 상호의존해서 살아감으로써 통상적인 가족 감정에 더하여 강한 공동체감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경제여건이 변함에 따라 젊은이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의 직업전선에 나서게 됨으로써 경제단위로서의 가정의 지위는 흔들리게 되었다. 촌수가 먼 일가친척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어, 현대의 가정은 더 이상 거대한 혈족이나 부족 공동체가 아니라 부모와 직계자녀들로 이루어진 핵가족으로 변해갔다. 나아가서 이러한 핵가족마저, 각기 서로 다른 인생 계획과 포부를 가진 성원들이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게 됨으로써 공동의 틀이 더욱 허물어져 가고 있다.
가정과 직업 선택
오늘날 직장의 위치는 직업시장에 따라 이동하게 되고, 세대간에 가업의 승계는 흔하지 않게 되었다. 현대 가정의 많은 어린이들은 급격한 사회경제적 변화로 가정에 주어지는 충격으로 인해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여건 속에서 성장해 가고 있다. 가정은 더 이상 전통사회의 유기적인 내적 유대가 없는 까닭에 외적인 충격을 완화해 주는 기능을 갖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각기 자신의 인생 목적과 목표를 가진 개인들로 이루어진 현대가정은, 사회적 위기로부터 보호해 주는 완충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가정 그 자체가 그러한 위기에 노출된 채 그 충격을 성원들에게 전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논의하는 가운데 우리는 사회와 가정구조간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과거에는 가장의 권위아래 무조건적 여성과 어린이는 예속되었고 복종이 강요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여성과 어린이의 해방이 가정의 유대와 응집력을 어느 정도 위태롭게 하는가? 우리는 가족끼리 마주보는 대화보다 텔레비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텔레비는 가족간의 유대를 어느 정도 위태롭게 하고 있는가? 최근의 변화들 가운데 가족을 다시 묶어줄 힘을 가진 그 무엇이 있을까?
직업이 가정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자. 가족들과의 유대를 깊게 가질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떤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체육인인가, 기업인인가 아니면 자유업인가, 주부인가? 자녀들에게 보다 권위있게 보이는 직업은 어떤 것인가? 대통령인가, 실업인인가, 혹은 군대의 지휘관인가? 자녀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직업은? 부정직하지만 돈 많이 버는 직업인가, 혹은 가난하지만 정직한 직업인가? 그 어느 것도 아니라면 어떤 직업인가? 노후 보장을 위해서는 어떤 직업을 택해야 하나? 공무원인가, 자동차 경주선수인가, 아니면 언제나 직업을 바꾸어 가야 하는가?
직업과 남녀
직업과 관련하여 남녀간의 차이를 알아보자. 남편은 아내보다 더 좋은 직업을 가져야 하나? 여성도 남성 못지 않게 자기 재능에 걸맞는 직업을 가질 권리를 갖는가? 딸보다는 아들의 교육에 더 관심을 써야 하는가? 남성은 부양가족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더 좋은 직업을 가져야 하나? 여성도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가? 여성은 남편의 직장을 따라 이동해야하나? 부인이 더 좋은 직업을 가졌을 때는 남편이 부인을 따라야 하는가? 여성은 가사에 대한 의무를 위해 중요한 가외 직업을 가져서는 안 되는가?
직업이 남녀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남녀가 데이트를 할 경우 누가 그 비용을 감당해야 하나? 언제나 남자가 돈을 써야 하는가? 여자만이 직업을 가졌거나, 남자만이 직업을 가졌을 경우에는 어떤가? 양자가 비슷한 수입을 가질 경우는? 남자는 대학원 학생이고, 여성은 직업을 가졌을 경우는 어떤가? 남자가 일방적으로 돈을 쓰기만을 바라는 여성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여성이 돈을 쓸 경우 남성은 자존심이 상해야 하나?
직업을 선택할 경우 어떤 것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나? 가장 중요한 것과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 등의 순서를 생각해 보자. 가족의 부양, 세상에 좋은 일을 하기, 존경과 체면유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편안한 인생, 양심에 따르는 일, 가풍을 따르기, 자기 실현 등등.
직업과 계층
직업과 관련하여 계층이 분화가 있다. 사람들은 직업을 높은 지위와 낮은 지위로 서열을 매기고, 높은 지위의 사람들은 남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특권을 누리게 된다. 사람들이 지위상의 서열을 매기는 기준은 무엇인가? 국가마다 문화권마다 그러한 기준이 동일할 수가 없으며, 한 나라 안에서도 사람들마다 각자 다른 기준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기준들에는 부, 권력(정치적, 군사적, 경제적),권위, 재산소유, 수입정도, 삶의 양식, 교육정도, 공공봉사정도, 가문, 소속단체, 종교, 종족 등이 있다.
경제적 문제와 관련된 기준들, 즉 소득, 직업, 부, 재산 등의 기준만이 이용될 경우, 그로부터 생겨나는 서열을 계층 혹은 계급이라 한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예외가 있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가난할지라도 귀한 가문의 자식들은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보다 높이 평가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가난한 학자가 부유한 졸부보다 높이 평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3. 사랑과 질투
봉건사회에 있어서 대부분의 결혼은 부모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후 강력한 봉건적 사회조직의 붕괴 및 개인주의의 대두와 더불어, 개인들은 그들만의 사사로운 낭만적 관계를 갖는 경향이 증대되어 갔다. 현대사회의 분절화와 원자화가 더 진행될수록 개인들은 오히려 타인들과 보다 긴밀한 유대를 절실히 갈망하게 된다. 과거에는 그러한 유대가 공유하는 가족적 내지 공동체적 경험을 통해 아주 자연스럽게 주어졌었다. 오늘날 젊은이들 사이의 갖가지 모임이나 남녀간의 데이트는 독립적 개인들간의 친숙성을 도모하기 위한 시도들이라 할 수 있다. 남녀간에 만나서 친해지게 되는 경우, 그 친함이 기준이 무엇인가에 관해 보다 철학적인 논의를 전개해 보기로 하자.
질투란
그런데 「흔들리는 교정」제1장의 네 번째 이야기 끝 부분에서, 마크는 그렉에 대해 질투를 나타낸다. 질투가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자. 질투의 성격을 말해 보고 그것이 정당화되는 경우와 그렇지 않는 경우에 대해 논의해 보자. 어떤 사람이 질투를 나타낼 때, 그것은 그 자신에 대해 어떤 것을 노출해 버리게 되는가? 질투와 개인의 자아관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가?
질투를 논의하는 목적은 감정을 무조건 억누르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감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놓는 ‘이유’를 보다 덜 합리적인 감정보다 더 합리적인 감정을 구별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한 때 보다 좋은 성적을 받는 친구를 질투하기도 하나, 인생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깊어지게 됨에 따라 우리는 훗날 그러한 질투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질투와 증오간의 차이는 무엇인가? 질투 및 시기와 부러움간의 차이는 무엇인가? 우리는 멋진 애인을 가진 친구를 부러워하는 한편, 나의 애인을 뺏은 친구에 대해 질투와 시기를 느끼게 된다. 다소간의 시기는 발전의 계기를 제공할 수 있으나, 한계를 넘어갈 경우, 시기는 타인의 불이익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어떤 불이익도 다소간 감수하는 상호파괴적인 ‘놀부 심리’로 변하게 된다. 인류 최초의 살인자인 카인의 질투는 결국 동생을 죽이게 되는 엄청난 결과를 낳게 되며, 이는 질투가 인간성에 깊히 뿌리 내리고 있음을 상징하고 있다.
집단적 기준과 개인적 행동
「흔들리는 교정」의 다음 이야기는, 교정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 휘말리어 마크가 그 유력한 용의자로 혐의를 받게 된 사건이다. 경쟁자인 그렉과의 사이에서, 애인인 리자의 태도마저 불명확한 데다, 어머니의 직장을 따라 이사하게 되리라는 불길한 예견,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혐의를 쉽게 벗어날 수 없는 마크는, 지금까지 안정된 존재의 기반으로부터 뿌리까지 송두리째 뽑힌 듯한 불안감에 쌓여 기괴한 행동거지를 자행하게 됨으로써, 안정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사회집단은 그 구성원들에게, 집단의 기준과 전통에다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키게끔 압력을 가한다. 그러나 개방사회에 있어서 어떤 사회 전통은 개성의 계발을 조장하며, 그럼으로써 극단적으로는 일부 개인들이 그들의 유사성보다는 차이성을 강조하는 국외자가 될 것을 고집한다. 이러한 국외자들이 파괴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한, 그러한 특이성을 용납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런 특이성을 어느 정도 권장하고 또 자원하느냐 하는 정도에 따라, 그 사회의 성숙도가 평가될 수 있다.
교실도 개인의 차이점에 대해 지극히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장소이다. 그래서 비교적 무해하면서 괴상한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은 곧잘 “괴짜”라는 애칭을 부여받게 된다. 교실과 같은 탐구공동체의 목적 중 하나는, 개성의 표현이 집단 자체의 해체를 위협하지 않는 한, 성원들의 고유성과 창의성을 조장하고 격려하는 일이다. 한편 관습과 전통에 항거하는 자들도, 집단의 관습과 전통을 유지하는 것이 집단 자체가 존속할 수 있는 길임을 이해하고, 그럼으로써만이 자신의 존재도 용납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4. 여담 : ‘어떤 흥정 이야기’
은하계의 지배자가 지구에서 온 사자(使者)에게 말하기를,
“당신도 아시다시피 우리가 지배하고 있는 모든 혹성의 거주자들은 모두들 완전한 행복을 누리고 있소. 지구인들도 그 같은 것을 원하지 않소? 즉 영원한 행복 말이오.”
지구의 사자가 응답하기를,
“함정이 있음에 틀림없어요. 당신은 그렇게 해 주는 대가로써 무엇을 원하오?”
그러자 은하계 지배자는,
“대단찮은 것이오. 우리가 청하는 것은 오직, 당신들이 우리에게 각 나라들로부터 어린아이 하나씩만을 갖다주면 되는 것이오.”
라고 했다.
“그 어린이들을 어찌 하려는 것이오?”
“아 우리는 그들을 평생동안 괴롭히려 하오. 하지만 그건 모든 인간에게 영원한 행복을 주는 대가로는,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것이라는 점을 당신들도 인정하리라고 생각하는데 어떠하오?”
이상의 대화를 보다 철학적인 관점에서 음미해 보고, 그에 함축된 문제점들을 함께 논의해 보자.
지구의 사자가 그러한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려면, 은하계의 지배자가 어떤 근거를 제시해야 할까? 절대 다수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극소수의 고통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인가? 일반적으로 ‘최대다수의 최대항복’을 주장하는 공리주의자들은 이런 근거를 받아들일 것인데, 이는 과연 설득력이 있는 이유라고 생각하는가?
반대로 지구의 사자가 그러한 제안을 거부하기 위해서 제시할 수 있는 근거는 또 무엇인가?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소수의 기본권은 침해될 수가 없다는 것인가?
다수의 이익이나 행복을 위해서 결코 소수의 인권이나 기본적 권익이 희생될 수 없다는 태도는, 공리주의에 반대하는 권리론자나 혹은 정의론자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소수의 권리와 다수의 권리가 상층할 경우는 어떻게 되는가? 이상의 두 가지 근거를 두고, 상호 비교 평가해 보기로 하자.
은하계의 지배자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과연 목적이 좋은 것이라면 어떤 수단도 정당화될 수 있는가? 아니면 목적이 아무리 좋다 할지라도 써서는 안 될 수단이 있는가? 흔히 인격은 목적가치를 갖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결코 수단이 될 수가 없다는 말인가? 기업이 노동자의 노동을 통해 생산을 할 경우, 노동자는 수단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우리는 타인을 수단으로 하지 않고서도 살 수 있는가?
은하계 지배자의 제안은 어린이를 별로 중요하지 않는 존재로 간주한다는 것인가? 어른이건 어린이이건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동등한가, 아니면 어떤가? 나아가서 식물인간도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갖는가?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더 가치있는 존재라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을 보다 가치있는 존재로 만드는 것은 그의 이성인가? 그렇다면 이성이 부족한 어린이나 태아 혹은 식물인간은 정상적인 어른보다 적은 가치를 갖는가?
이상의 제안에 대해 지구의 어린이들은 어떤 생각을 가질 것인가? 지구의 부모들은 어떤 생각을 가질 것인가? 그리고 역사상 다수의 행복을 명분으로 해서 소수의 희생을 강요했던 사례를 생각해 보라.
우리가 어떤 의사결정을 할 경우, 우리는 그 당시로서 가능한 최선의 근거에 의해 결정을 내려야 한다. 철학교실의 목표는 우리가 성급한 결정을 내리게 하는 것보다는, 의사 결정을 위한 최선의 이유들을 검토하고 탐구하게 하는 일이다. 탐구란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모색의 길을 열어 놓는 일이다. 긴급한 결정이 불가피한 것이 아닌 한, 부분적인 증거에 의거해서 의사결정을 하는 일은 정당화될 수 없다. 과학자들과 같은 탐구집단은 유전설과 환경설에 대한 찬반 논쟁을 100여 년 이상이나 계속하고 있다. 증거가 충분하지도 않고 긴급한 결정을 내릴 이유도 없는 한, 우리는 성급한 의사결정을 유보하는 것이 정당한 일이다.
물론 결정을 미루는 일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재판관은 모든 증거가 입수될 때까지 판결을 무제한 연기할 수가 없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학교나 학과에 대한 선택을 무기한 유보할 수도 없는 것이다. 재판관이 자신은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에 대해, 실제로는 죄가 있다고 판정하여 그에게 사형을 언도할 경우, 그 재판관은 돌이킬 수 없는 의사결정을 한 셈이다. 그 이후에 그가 무죄였다는 더 이상의 증거나 나타났을 경우, 그러한 결정을 되돌이킬 방도가 없는 것이다.
의사결정은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 될 문제이다. 많은 사람들은 더 이상 탐구가 요구되는 상황에서도 조급하거나 단호한 결정을 내리고 싶어한다. 우리가 성급하고 조급한 그만큼, 우리의 의사결정은 분별없고 비합리적인, 그래서 후회와 회한을 동반하는 것이 된다. 철학교실은 바로 가상적인 의사결정의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해 갈 수 있는 능력과 역량을 길러 주고자 하는 데 그 일차적인 목적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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