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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사람은 어떻게 의로워지는가입니다. 성경 가르침의 핵심은 의롭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칭의라고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오래 신앙생활을 하고 아무리 기도를 많이 했다하더라도 의롭게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로마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의로워지지 않으면 믿음이 성장할 수 없고 우리 성품도 성숙해 질 수 없고 행복해 질 수 없습니다. 우리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되었고 사형 날짜를 기다리는 죄수입니다. 얼마 후에 사형을 받을 죄수는 호화로운 아파트에서, 비싼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은들 행복할 수 없습니다. 말기 암환자가 죽음에 대한 공포와 체념과 절망 가운데서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과 같이, 죄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들은 사형 선고를 받고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었으니 행복할 리가 없습니다. 인간은 죄로인해 절망 상태에 처해지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 무서운 절망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사 구원의 손길을 뻗치셨습니다. 절망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인간들에게 구조선이 온 것입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이 구원의 배에 오르기만 하면 구원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죄악된 인간들을 위해 너무나 쉽고 간단하게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놀랍고도 크신 일을 하셨던 것입니다. 믿음이란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하신 놀랍고 기이한 역사를 단순히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베푸신 은혜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의로워지는가를 잘 배우심으로 구원의 은혜가 충만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우리인간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20절을 보면.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여기서 율법의 행위란 구원을 얻기 위해 애쓰는 인간의 모든 노력과 공로를 의미합니다. 기독교 이외의 모든 종교는 다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에 이르고자 합니다. 그래서 착한 일을 하여 선행을 쌓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과 공로로는 절대로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자신이 비참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더 깊은 절망으로 빠져들 뿐입니다. 인간의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구원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23절을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무게)에 이르지 못하더니" 이 말씀은 인간이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습니다. 죄란 화살이 표적을 빗나가듯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목적에서 빗나간 것입니다. 또 영광이란 헬라어로 '독사'로서 무게(weight)란 뜻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저울대에 달아보니 근수가 모자란다 (다니엘 5:27)는 뜻입니다. 인간은 범죄한 결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상실하고 하나님의 요구기준에 부합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대로 만드신 인간을 보시고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창1:31). 하나님은 인간을 동물과 달리 도덕적, 영적으로 높은 수준을 지닌 차원 높은 고귀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가치 있고 훌륭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완전히 타락하였습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동물과 같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육체가 된 인간을 보시고 심히 슬퍼하셨습니다 (창6:3).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인생은 하나님의 본래 목적에 어긋난 인생이요, 하나님의 수준에 미달된 인생입니다. 이런 인생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도자기를 굽는 토기장이가 수준에 미달된 도자기는 부수어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 그래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21) 절망적인 상태에 있는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 새로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21,22절을 보면.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이제는"이라는 말은 "그러나 이제는"(but now)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말씀은 지금까지는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으려다 안되었지만 이제는 구원의 희망이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전환은 암흑의 세계에서 밝은 빛으로의 전환입니다. '율법 외에'라는 말은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는 방식과는 전혀 별도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의란 22절을 보면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의롭다>는 판정입니다. 즉 사형수에게 특별사면으로 무죄선고가 내려진 것입니다. 이 은혜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임합니다. 거기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동양인이나 서양인이나 아프리카 사람이나, 또 부자나 가난한 자나, 배운 자나 배우지 못한 자나, 빈부 귀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자는 누구에게든지 이 은혜가 임합니다. 이것은 실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그때 우리의 영혼은 겸손하며 순종하게 되고 사랑의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심령에 역사하는 죄의 힘은 꺾이고 모든 운명과 슬픔과 어두움의 그림자가 물러가고 말할 수 없는 희열과 환희와 감사와 찬송이 심령에 가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믿음으로(값없이) 이루어집니다.
셋째, 속량을 통해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 24,25절을 보시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 말씀에는 <의롭다 함> 받게 하기위하여 세 가지 용어가 등장합니다 .
1) 속량입니다. 속량이란 우리를 얽어매인 데서 해방시켜 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당시 노예제도를 배경으로 두고 쓰여진 말입니다. 노예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노예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고 반드시 누가 몸값을 지불해야 노예 신분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노예 상태에 있었습니다. 인간은 죄를 범하여 죄의 종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8:34). 죄의 노예된 자는 죄의 욕망이 주인이므로 죄의 욕망이 하라는대로 원치 않는 죄를 짓고 죄의 세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 죄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나려면 반드시 몸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죄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몸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생명)를 우리의 몸값으로 지불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없고 점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입니다(벧전1:18,19). 이는 실로 값비싼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2) '의롭다 함'은 로마의 법정 용어로서 '죄없다 함을 인정받음', '형벌에서 사면 받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죄없다고 무죄 선고를 하시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성을 맺게 된 것을 말합니다. 이는 단순히 죄를 용서해 주시는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 영접해 주시고 대우해 주시는 것입니다. 마치 탕자가 돌아왔을 때 그를 용서해 주시는 것은 물론 아들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시고,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환영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온전히 값없이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칭의의 은혜는 한 번만 주어지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은혜는 '언제나', '항상'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은혜는 항상 계속적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로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언제나 성결한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거룩한 생활을 하다가 때로는 육신의 소욕을 이기지 못하여 죄에 빠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유혹을 이기고 기쁨에 넘치지만, 때로는 유혹에 져서 비통에 처하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죄를 짓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지만 작심삼일 어느새 결심이 허물어지고 반복해서 죄를 짓기도 합니다. 이때 우리는 자신을 위선자로 보고 또 의지가 약한 자로 자학하게 됩니다. 자신의 나약함에 대해 절망하게 됩니다. 그보다는 하나님께 무슨 염치로 나아갈 수 있을까 깊은 불의에 빠집니다. 하나님께서도 나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이 한 번 두 번이지 반복해서 죄를 범할 때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과 회의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반복해서 죄를 지을지라도 다만 보혈의 은혜를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가기만 하면 언제나 다시 의롭다 해주십니다. 하루에 일흔 번씩 일곱 번 죄를 지었을지라도 다만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진실 되게 죄를 회개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미쁘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해 주십니다 (요한1서1:9).
3) 화목 제물(속죄 제물)
화목 제물이란 구약의 제사 제도를 배경으로 두고 한 말씀입니다. 성막의 지성소 안에는 언약궤가 있고 그 위에 속죄소가 있습니다. 죄악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속죄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속죄 제물은 하나님과 원수된 상태를 화해시키는 희생 제물이었습니다. 인간들이 하나님과 화목 하는데는 반드시 희생의 피가 요구되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반드시 피를 요구하십니까? 이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입니다 (레17:11,14). 죄는 지독한 것이어서 생명이 희생되지 않고서는 사해질 수 없는 것입니다 (히9:22). 그러나 짐승의 피는 일시적이고 그 효력도 제한적이어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못합니다 (히7:27,28). 이는 장차 올 완전한 것의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히8:5).
그래서 하나님께서 죄악된 인간들과 화목하시기 위해 친히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 제물로 세우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몸값으로 지불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귀한 보배피를 흘리심으로 단번에 온전하고도 영원한 몸값을 지불하셨습니다 (히9:12). 이제는 더 이상 번거로운 몸값을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지 예수님의 피의 은혜를 덧입고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히10:29). 이것은 실로 큰 은혜요, 축복입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몸값인 예수님의 피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죄를 없애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모든 죄악된 속성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사 새 사람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반드시 예수님의 피의 은혜를 덧입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를 몸값인 화목 제물로 세우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25b,26절을 보면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의 피는 (1) 먼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 반드시 그 의가 세워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때까지 하나님은 인간들로부터 하나님으로 대접받지 못했습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을 알되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했습니다(1:22). 이로 인해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그의 거룩하신 이름이 짓밟혀 왔습니다. 하나님은 인생들로부터 높임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죄를 그냥 용서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체면이 서지 않습니다. 반드시 심판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인간의 더럽고 추한 죄를 그냥 간과하실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인생들의 모든 죄를 다 뒤집어 씌우셨습니다. 예수님으로 내 대신 채찍에 맞게 하시고 가시면류관을 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붉은 피를 흘리며 무서운 고통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볼 때 나의 죄가 얼마나 심각하면 저런 심판을 받으셨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가장 잘 나타난 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2)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내 죄를 미워하셔서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피흘리고 죽은 것을 보시고 그제서야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시고 또 예수 믿는 자도 의롭다 하신 것입니다.
화목제물인 예수님의 피는 이상하게 우리의 모든 죄값을 없애고 의롭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죄를 이기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성품을 회복시키고 속사람이 강건하게 하여 거룩한 용사가 되게 합니다. 이렇게 되는 길은 오직 믿음으로만이 가능합니다. 칭의받아야 가능합니다. 의롭다함을 받도록 기도하시고 예배를 최선을 다해 드리시고 말씀을 잘 듣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런 분들에게 믿음을 주실 것이요 그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게 될 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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