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 꿈속의 나는 제주도 어느시골 초등학교 교감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내가 왜생소한 지역으로 가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추석 전날 오전에 어느 TV 특집 프로에 가파도 초등학교 학생들의
사진 작품과 교장선생님의 인터뷰 장면과
운동회 광경을 본 것이 꿈을 꾸게 된 배경이 된 것이 아닌가 싶기는 하다.
낯선 곳에서의 적응이 힘이 들었다.
그런데 장면이 바뀌니 그 교감선생님은 내가 아닌 그 어느 사람으로 바뀌고 나는 계속 진행되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제주도의 그 작은 초등학교의 교감은 부산 사람이고,
같은 숙소 옆방에는
안동에 집을 둔 젊은 여교사가 기거하고 있었다.
어느날 주말, 직원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학교에는 객지
사람인 교감과 그 여교사만 외롭게 남았다.
교감은 여교사에게 "주말에 집에도 못 가고 외롭게 지내기가 무엇하니
부산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내가 살 테니 같이 부산에라도 다녀 오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의한다.
.
여교사의 고향집은 더 먼 안동이니 거기까지 가면 얼굴만 보고 그 자리에서 돌아와야 한다.
고향집에서 하룻밤 자고 오면 그 다음 첫 비행기로 제주도 학교로 돌아갈 수가 없다.
교감이 다시 말한다. "여기서 주말 보내기는 너무 따분하고 안동까지는
갈 수가 없으니 부산에 있는 자기 집으로 함께 가서 가족들과 만나고
일요일엔 광복동으로 가서 맛나는 것도 먹고 이쁜 옷도 사고
월요일 첫 비행기로 학교로 돌아오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
집에는 선생님 또래의 딸도 있고, 며느리도 있으니 그들과 대화도
잘 될 거라고 한다.
그래도 여교사는 얼른 내키지 않는다. 다 큰 처녀가 교감과 같이
그 댁으로 가는 것도 어색하고, 생판 모르는 그의 가족들과 같이
지내는 것도 마음에 내키지 않아서 망설인다.
꼭 육지로 가려면 잠깐 있다가 돌아와도 안동으로 가겠다고 했다.
어정쩡한 상태에서 두 사람은 비행기를 타고 부산까지 왔다.
안동가는 기차는 있지만 내일 아침에 부산으로 오는 기차를 타고 오면
제주행 첫 비행기를 탈 수가 없다.
교감이 하도 괜찮다고 하니 안동으로 가는 마음을 접고
부산 광복동 근처에 있는 교감댁으로 따라갔다.
교감이 가족들에게 같이 온 사연을 이야기 하고 가족들도
그를 반겨 주었다.
오후에 교감과 그 여교사는 광복동으로 나가 분위기 있는
찻집에도 들르고 소문난 맛집에도 들러 저녁을 먹고 들어오니
가족들이 모두 의아한 눈으로 그들을 맞는다.
모처럼 집에 와서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지 않고 여선생과
둘이서 놀다가 들어오니 그럴 수 밖에.
그날 밤을 자고 이튿날 아침 두사람은 비행장으로 가고 있었다.
제주도로 들어가야 하지만 가슴에 광복동과 남포동 바람이 든
두 사람은 아쉬워서 자꾸 머뭇거려졌다.
먼저 교감이 입을 열었다. "김선생. 모처럼 부산에 왔으니 하루 더 머물다가
내일 학교로 가면 어떨까?
교장에게는 내가 다 알아서 조치를 할테니 말이야."
"어때? 김 선생. 그렇게 하는게 좋을 것 같은데"
김선생도 들떠 있는 마음에 광복동과 남포동이 눈에 어른거렸다.
"학교는 정말 괜찮겠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런건 아무 걱정 안해도 된다는 교감의 말에 그도 그렇게 하자고 하고,
두 사람은 무거운 가방을 공항에 맡기고 광복동으로 가서
맛나는 걸 먹고 용두산 공원으로
영도대교에도 같이 가고, 밤에는 남포동 분위기 있는 슬집에도 들러
와인을 나누다가 늦은 시간에 호탤로 들어가니
안내하는 직원이 웃으며 친절하게 방으로 안내를 하였다.
처음에는 각기 다른 침대에 누워서 이야기를 나누어도 어색하기만 하였다.
생전 처음으로 다른 남자와 호텔 방에서 잠을 잔다는 가당키나 한 일인가?.
불안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여 억지로 잠을 청했으나
얼른 잠들지 못하고 있는데, 교감이 나직한 목소리로,
"김선생, 방이 썰렁하지 않나?. 이왕 한 방에서 자게 되었으니
이쪽 침대로 오지 그래." 아버지 같은 어른의 말에 두렵기도 했지만,
에라 이왕 이렇게 된 것 하룻밤 같이 잔다고 별일이야 있겠나?.
하는 마음으로 그의 침대로 건너갔다.
한참 후에 우리 두사람은 한 몸이 되었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남자와의 잠자리라 얼떨결에 특별한 감흥도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공항으로 가는 길에 교감은 김선생의 팔을 끼고
그의 짐도 들어주었다.
한 번 몸을 섞은 것 뿐인데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한 교감이
이상하다 싶었지만 뿌리칠수가 없었다.
같은 시간이 같이 학교에 출근하니 모두 이상한 눈으로 쳐다 보
았지만 적당히 변명을 하여 넘기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었는데 교감이 내의 바람으로 그의 방으로
건너 와서 함께 잤다.
그 뒤에도 낮에는 친절한 교감으로, 밤에는 부부처럼 한 자리에
잠을 자게 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몸에 이상이 감지되어 산부인과에 가 보았더니 임신이란다.
걱정이 되어 교감에게 걱정스럽게 말하였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아기를 낳아 기르자고 하였다.
점점 배가 불러외 6개월이 지나니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사표를 내고 쉬디가 다른 학교에 복직을 하였다.
그 뒤에 둘째가 태어났다.
출생신고를 해야 하지만 사생아로 할 수 밖에 없었다.
교감을 졸라 부인과 이혼을 하게 하였다.
갑작스런 이혼으로 교감은 가족들과의 관계를 끊고 김선생과
호적상으로도 부부가 되었다.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당연히 부부가 같이 가야하지만
노인이 다 된 교감을 남편이라고 할 수가 없어서,
아이 둘을 교감에게 맡겨두고 혼자 장례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렇게 두 아이를 키우면서 퇴임을 한 교감과 같이 살아가는데,
어느날 남편이 심각한 표정으로 본가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이제 몸이 쇠약하여 아픈 곳도 많아서 남편 노릇
하기도 아려우니 그만 놓아 달라는 것이다.
반대를 하였지만 너무 간절하게 애원하므로 어쩔 수 없이 하락하고
말았다
부산 본댁으로 돌아간 남편은 얼마 후에 이 세상을 떠났다고 전갈이 왔다.
40대 여인으로 혼자서 살아가는 김선생. 아이들은 장성하여
나가서 활동을 하고 있지만,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무언가 허전하지만 비슷한 남성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어쩌다가 외로움을 달래주는 남성을 만났는데 그는 본인보다
나이가 더 많은 남성으로 학교에 근무하는 독신 기능직이었다.
쉽게 함께 하기 힘든 직을 가진 분이었으나 그의 외로움을 달래
주는 그런 분이었나 보다.
그럭저럭 서로 뜻을 맞추어 살아왔지만 얼마 후 그 분도 갑자기
그의 곁을 떠나 먼 나라로 돌아가게 되었다.
장례식에 온 그의 아들들이 생떼 같이 건강하던 아버지를 죽게 했다고
문제를 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의 생전에 재산이 꽤 많았으니 돌려달라는 요구를
하면서 시비를 걸어와 적당한 선에서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말았다.
얼마 후 김선생도 정년퇴임을 하게 되었는데, 부산에 사는 전 남편의
아들이 혼자서 외로우니 제주도 생활을 접고
재산을 정리하여 부산으로 와서 같이 살면 자기가 노후를
책입지겠다고 했다.
고맙기도 하여 그러마고 하고 재주도를 떠나려고 하니
이번에는 자기가 낳은 아들이 한사코 말렸다.
왜 자기 아들들을 두고 전 남편의 아들에게 의탁하려고 하느냐?
만약 재산만 챙기고 내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하는 것이었다.
아들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부산으로 가겠다는 마음을 접고
제주도에서 살기로 하였다.
연금만 받아도 살아가는데는 큰 불편이 없고 아들들도 가끔 만나면서
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지내다가 우연한 기회에 어느 모임에서 한 남자를 만나
친구로 지내고 있다.
그 분도 연금 수급지로 혼자서 살고 있는 처지여서 서로 대화도 되고
생활도 불편함이 없다.
낮이면 같이 만나 경치 좋은 곳으로 나들이도 하고, 맛나는 것도
같이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밤이면
각자의 짐으로 돌아가고,
그 다음날에도 같이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같이
하면서 살아가면서 노후의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
자녀들도 두 사람의 만남을 인정하고 가끔 함께 만나기도 한다.
연금 수급자들 중에는 더러 그런 관계를 맺고 노후의 외로움을 달래고 있는 분들이 더러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