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에 접어드는 계집애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마법에 걸리듯, 오춘기를 지나치는 나는 두 달에 한 번씩 마법에 걸리는 듯 하다. 철없는 계집애들은 잉태의 고귀함을 짜증과 귀찮음으로 밀어 내려 하지만 나는 다 할수 없는 감사와 행복으로 내 마법 걸린 흔적들을 가슴속 깊이 품으며 흐믓해한다.
지난 금요일(8.26) 두 달 만에 장충 선후배, 친구들과의 다시 마주 함으로 나의 마법걸림이 시작됐다. 산뜻한 조명 아래 무릎을 펼수 있는 등받이 의자가 더 할수 없이 편했다. 초록의 야채가 유난히 풍성했고 얇게 썰린 삼겹살이 불판에서 나에게 말을 걸어 옴에 참이슬로 그들에 화답하였고 나도 길다란 넓은 녹색의 고추, 상추에 말을 걸었다.
참이슬의 빨간모자가 쌓여 갈수록 깊이를 알 수 없는 마음 한 켠 심란함을 담배연기를 따라 올려 보냈다. 나이 들어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드는 이 놈의 고독병을 나는 언제나 참이슬로 맞섰으나, 뒷 날 아침의 머리 흔들림으로 그에 맞서려는 나의 무모함만 확인될 뿐 극복하기엔 아직 한 참이나 역부족임을 인정하고 저 멀리 물러나 있어야 했다.
남자 나이 50이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느 코털교수는 "남자 나이 50이 되면 화장실 입구에서부터 지퍼를 열지 말고, 지퍼를 올리며 화장실 문을 나서지 말라."고 말한다. 살아온 길을 되돌아 보고 살아갈 길을 앞집어 볼 때,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절실함에 그리도 조급해 지고, 못다 이룸에 대한 바둥거림으로 비틀대며 고독병을 앓는것 같다.
언제나 잔잔한 미소로 아우들을 흐믓히 지켜 봐 주시는 큰 형님 서영호, 여상궁 선배, '58개띠 1끋 차이라 더욱 가깝고 친밀스런 한규민, 신동원 선배 그리고 황금노래방에서 한 없는 서비스와 예쁜도우미를 챙겨 주시는 문제경 선배, 역시 1끋 차이라 쉽게 다가 서게된 이용진 후배, 젠틀함이 몸에 벤 안광근 후배, 똑 소리나는 살림꾼 방규원 후배, 술을 예(藝)로 승화시키는 예술가 주송열 후배 등...
오랜만에 다시 마주한 명종이, 기철이의 부드러운 인사말이 여유로 다가왔고 뒤이어 마음은 20대인 새파란 장인영감이 될 두현이, 발이 꽤 넓어 믿음직한 민수, 하얀 수염을 닮고 싶은 기혁이, 진환이, 언제나 넉넉한 준수, 먼 길을 기꺼이 찾아와 같이 웃어 주었던 희준, 늦게라도 자리해 더욱 반가웠던 승우, 그 외 함께 못한 친구들 이여...
선후배, 친구들의 긴 웃음과 함께 같이 달릴 수 있음에 나는 지독한 고독병에 당당히 맞설 수 있다. 겁 모르고 불혹을 훌쩍 넘겨 버린 지금 에서야 그 때는 못 봤던 진실한 아름다움이 보였고 진실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기에 진실한 사랑도 할 수 있을 것이며 진실한 사랑을 할 수 있기에 진실한 행복도 느끼며 시린 고독과 웃으며 악수할수 있는것이다. 나의 고마움을 표하고 기억해야 겠기에 이들의 얼굴을 다시 한 번 하나 하나 불러보는 것이다.
- 내가 기억하고 간직해 야 할 미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