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전에 이곳에서 숙화를 만났다.
벌써 12월이라고 약간의 감회가 생기는 나는 지레 나를 다독거릴 요량으로 숙화에게 쪽지를 보낸다.
이럴테면 가는 날들을 아쉬워 말자는 그런 내용으로.
나는 남나중 결혼이란걸 했고
(물론 더 늦은 나이에 한 친구들도 많제? 광진이를 비롯해서....)
아이들도 늦은 편이다.
(역시 늦둥이를 둔 집도 있겠지만.^^)
그런데도 이상하게 아이들한테 물불 안가리고 사랑을 쏟아붓거나 투자랄까 그런건 안 한편이다.
아마 방법을 잘 몰라서일것도 같지만.
우리 집에는 그 유명하다는 몬테소리 교구니, 가베니 등등의 세트 교구는 얼씬도 안 했고
비싼 장난감을 자주 사들이는 조카를 보면서 부럽지 않았다.
당연히 우리 아이들도 "엄마 저거 갖고싶어요"가 아닌 "저거 아무래도 안 사 주겠죠?"였다.
딸아이의 신발이나 옷을 아들아이에게 물려입히고
위인전이나 동화책이나 전집으로 된 책들 역시 사들이지 않았다.
내가 그 돈을 긁어모아서 수성구에 비싼 집을 사 놓거나 시골에 땅을 박아놓은 것도 아니다.
그냥
낱권씩 이방 저방 하나씩 돌아다니고
가끔 애아부지가 시립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놓거나 지들끼리 이마트에 쭈그리고 앉아 만화책을 보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아이 둘다 백일이나 돌 때 번듯하게 사진을 찍거나 비디오를 박아놓은 것도 없다.
거실에는 가족 사진이나 아이들 사진같은게 벽에 하나도 안 걸려있다.
그렇다고 판판이 놀면서 어미 노릇을 그저 먹은건 아니고
카메라로 수시로 사진을 찍어 엘범을 만들고 그 옆에다가 당시의 표정이나 행동들을 적어두고
말이나 노래를 녹음시켜 테이프로 만들어 둔거는 있다.
그래봤자 그것도 아직 정리안된 사진들이 수두룩하니 봉지에 담겨있거나 장농안에서 자고 있는데
마침 이마트에서 엘범을 왕창 세일하길래 두 권을 사다놨다.
틈틈이 정리해 볼 량으로.
이미 있는게 부피가 꽤 나가니 나중에 저거 꽤 짐 된다고 애들이 궁시렁거릴까 다소 신경은 쓰이지만
정 그러면 내가 다 책임지고 싸들고 살면 된다 싶다.
한데
오늘 그 엘범들을 살펴보다가 나의 사진을 하나 보게 되었다.
보관된 것 중에 가장 오래된 거지만 6학년때 사진이다. 그 이전의 내 모습이 궁금하지만 어디에서도 그 흔적은 없는 셈이다.
흑백인데, 흰 고무신을 신고
학교 화단앞에서 사각으로 된 종이와 사전을 들고 서 있는 사진이다.
그 사각종이에는 불온삐라를 빠짐없이 회수 신고하여 칭찬하며 상을 준다고 봉화경찰서장이름으로 도장이 박혀있다.
이승복의 후손도 아닌데 방공방첩 정신이 투철했나싶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 당시 우리 오빠가 대구로 고등학교 유학을 갔었는데
하루 세끼 끼니가 부담스러운 형편이다보니 휴학을 하고 집에 와 있었다.
오빠는 팍팍한 심정을 들키지않으려고 날마다 산으로 가서 땔나무를 했던것 같다.
그러면서 산에 흩날리는 삐라를 주워와서 아마도 내게 건넸나보다.
나는 북한 사람들은 정말로 다 얼굴이 빨간 빨갱이 짐승인줄 알았으니
얼마나 성실히 충성스레 선생님께 갖다 드렸을까.
그 당시에는 그런걸 보면 꼭 학교에 갔다가 신고를 하라는 추상같은 분위기였다.
밭둑같은데 곳곳에는 표어같은것도 많았던거 같다.
그러면 선생님께서는 주운 곳과 날짜를 적어서 학교에 내셨지 싶다.
한번은 수업 시간에 공산당에 대해 배우는데 얼마나 밉던지 막 쳐들어가서 싸우고 싶은 맘이 굴뚝이었다. 쉬는 시간에 봉화쪽으로보면서(그쪽이 북쪽이려니 했다) 종주먹을 그러쥐었던거 같다.
교육의 힘은 얼마나 어마어마 한지.
세월이 흘러
이즈음 아무도 북한에 얼굴 빨간 사람들이 산다고는 생각지않고
학교에서는 삐라를 신고하라고 아무도 채근하지않는다.
부부 싸움이 당시에는 심각하고 곧 뭔 일이라도 날듯하지만
지나고 나면 싱겁게 칼자국이 지나간 물 처럼 되듯이
지나간 대부분의 날들이 돌아보면 그저 하얗게 담담하게 보인다는게 참 다행이다.
벙그레죽이나 조당숙이나 감자밥에 웬수졌던 지난 날들이
칼라풀하게 살아난다면 어떻게 남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저 지나간 날들은 지금을 받쳐주는 기반이었을 것이며
오늘은 또 훗날 우리의 환갑 진갑을 받쳐주는 준비가 되겠지 생각하며.
나는 노인네들 처럼 그리 살아가려한다.
애면글면 애달아 한다고 인연없는 일들이 내 것으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리 생각하며 그렇게....
오늘은 뭐가 주제인지 뭔지 내 자신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
그저 나의 궁시렁거림이 어떤 인연을 찾아가게 될려는지는 내 몫이 아니려니 하면서
그냥 맥아리 없이 독백을 맺는다.
혹 이걸 읽는 우리 친구들이 난도 야처럼 그냥 아무얘기나 쓰면 되는구나 이리생각하면서
사는 얘기들을 주~~~욱 줄줄이 사탕으로 매달아서 우리 카페가 항상 사람들의 훈기로 가득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는 하다. 오늘의 얘기 끄~~~읕.
첫댓글 제목: 독백 부제: 아름답게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바쁘지만 디게 잼나게 살려면...^^
잼나게 살려면 우예야 될까.
점화글을 마니 접하몬 된다^^
정답이다^^
야 인생 뭐 별거냐...돌이켜보면 죄다 맘에 안든다 요땐 요롷거,조땐 조롷게..야 그땐 저렇게 할껄..애들껀 이게뭐야..어휴..다른집은 다 했던데...........어허 인생사 세옹지마 라..저집에없는게 우리집에 있으니 그걸로 됬고...저집 마누라 얼굴은이쁜데 성격이 거시기고...이집신랑 생긴건 참,,거시긴데 인자하고 착하고.....대충 이런거지뭐... "오늘"어제 죽은 이들이 그렇게 보고자 했던 오늘...그 오늘에 최선을 다한다면 내일이 되면 오늘은 가장 아름다운 과거가 될것이다...라고 누가 그래더라...자 친구들아...오늘이 기똥차면 내일은 보너스다......근데 우리 서울 모임16일날 한데이....마이모이보자....
재미있게 읽었다 거무실에서도 산에서 삐라를 몇장 주워서 학교에 낸것 같았는데 한두장으론 상 안주나보다^^
그래,칭구들이랑 장난삼아 삐라 주워던 생각이 나네~~~~
잘봤다.옛날생각나게하는 귀한사진,함올려봐.-나는없어서..삐라.-나는공산당이시러요.웅변을 했던생각이나누먼.
고향친구 바람을 들어주려고 이미지 손상 가는거 무릅쓰고, 저~~짝 방에다가 올려놨으니 30년 전으로 한번 돌아가봐라.
16일날 올끼가....
그럼! 옛날은 우리가 버티고 살아가는 필요? 라고 해야 맞겠제??? 우리얘들은 그런얘기끝에 항상 하는말이 있다. "그럼 아빠는 타임머신타고 그때로 돌아가서 살지?"
16일날 올끼제...
가야쥐^^
고무신 신은 점화 모습 보고 싶은데 저~~짝 방이 어디고 ?
16일날 오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