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멘토가 필요한가?
백응석 | 백석대학교 교수
멘토를 원하는 사회 에릭 에릭슨(Erik Erikson, 1902~1994)이라는 심리학자는 청소년기가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기간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청소년기에 자신은 누구며, 무엇을 목적으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자아정체성’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자아정체성을 찾지 못한 사람은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다. 그런데 자기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모를 때, 인생의 목적을 제시해주고 바른 길을 가도록 안내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좋은 멘토(Mentor)’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요즘 많은 사람들은 멘토를 찾을 때, 참다운 인생의 목적이나 가치관보다는 주로 현실적이고 성공지향적인 멘토를 찾는 경향이 있다. 창업을 원하는 사람은 창업의 도덕성이나 올바른 경제관의 정립, 사회의 기여보다는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수익을 내는 법을 알려 주는 ‘대박의 달인’ 같은 이를 만나려 한다. 사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멘토는 대박의 달인이 아니다. 왜냐하면 ‘멘토’라는 단어는 오디세이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훌륭하게 키워낸 스승의 이름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멘토는 미성숙한 사람을 성숙한 사람으로 이끌어주는 ‘스승’, 외면적 성공보다는 내면 인격의 완성을 돕는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농부가 씨앗을 강제로 발아시켜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씨앗이 스스로 열매를 맺을 때까지 보살피며 기다리는 것과 같다. 유감스럽게도 요즘은 뛰어난 인재를 기르기 위해 자연스런 성장보다 인위적인 성장에 집중하는 듯하다. 여기서 우리는 멘토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다시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각 나라마다, 그리고 각 시대마다 처음은 지극히 평범해도,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의 마음속에 찬연히 빛나는 분들이 있다. 이런 분들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세상의 물질적 성공이 아니라 인생의 참 가치에 집중했다는 점, 둘째, 공허한 말이 아닌 진정한 삶의 실천을 보여주었다는 점, 셋째, 드러나는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오직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시련이 닥쳐도 묵묵히 걸어갔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첫째, 가치보다는 경제적인 성공과 높은 지위에 이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보니, 오직 자신을 위할 뿐, 희생은 없다. 성공이 인생의 최대 목표이다 보니 오히려 타인의 희생을 밟고 성공을 이루려 한다. 또 자신이 유일한 성공 모델인양 자신을 내세운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대중 앞에 드러내고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참다운 가치와 보람보다는 높은 지위나 명성, 경제적인 성공을 이룬 이를 선호하는데, 이는 멘토를 ‘스승’이나 ‘지도자’가 아닌 ‘슈퍼맨’의 차원으로 인식하는 잘못이다. 슈퍼맨처럼 등장하는 사람은 진정한 멘토는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멘토의 역할은 자신의 희생을 통해 다른 사람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멘토의 모범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우리가 그려야 할 멘토 나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열두 제자를 가르치고 이들이 이스라엘과 온 민족을 이끌 사도로 우뚝 서게 한 예수님을 통해 이 시대에 필요한 멘토를 그려본다. 이 시대의 멘토는 첫째, ‘성공을 추구하는 삶’이 아닌 ‘가치를 추구하는 삶’으로 이끄는 사람이다. 성경에는 예수님과 열두 제자의 삶이 나온다. 예수님은 다양한 출신의 제자들에게 이스라엘과 로마 제국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나 삶을 가르치시지 않았다. 오히려 그보다는 진정 가치 있고 참다운 삶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일을 하여 돈 벌어 부귀영화를 꿈꾸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가르침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그들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자기가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고, 또 어떤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인지를 예수님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에 그들은 더 이상 성공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둘째, ‘화려한 말’이 아닌 ‘희생적인 실천의 본보기’가 되는 사람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통해 삶의 목적을 새롭게 발견했다고 해서 그때부터 그들이 완벽한 삶을 산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여전히 미성숙한 사람들이었고 배운 것을 몸으로 익히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이란 어떤 삶인지를 몸소 보여주셨다. 사회적인 약자들과 어울리시고 가난하고 병든 자를 돌보시며 성인 남성 중심의 사회인 이스라엘에서 무시당하는 여성과 어린이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셨다. 그래서 어린 아이를 품에 안으시고 축복해주셨다. 예수님은 한 사람의 영혼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 하시며 사회에서 천대받는 자들도 섬기심으로써 숭고한 사랑을 보여주셨다. 셋째, ‘대중적 인기’에 부합하지 않고 ‘사명의 길’을 가는 사람이다. 로마의 식민지 이스라엘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병을 고쳐주시고 몸과 마음에 필요한 양식을 주셨다. 이때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야말로 이스라엘을 로마 제국에서 구출해 낼 메시아(구원자)라고 열렬히 환호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환호에 연연하지 않으셨다. 갈채와 추대를 받는 것이 자신의 길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인류의 죄를 속죄하는 것이 사명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만약 예수님이 사람들의 인기에 마음이 흔들렸다면 인류의 구원은 없었을 것이다. 넷째, ‘가능성을 보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부족함을 꾸짖고 채근하시기 보다는 그들의 가능성을 보시고 오래 참고 기다리셨다. 예수님의 기대대로 제자들은 인류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위대한 사도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 자신의 소명을 찾았고, 세계로 퍼져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살았다. 사랑은 오래 참을 줄 안다. 진정한 멘토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고 끈기 있게 기다려 줄줄 아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관 뚜껑 닫을 때까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위대한 지도자를 염원하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과 현상을 보면서, 과연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스승, 진정한 멘토에 대한 개념을 우리가 다시 한 번 바로 정립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진정한 멘토는 자신의 삶을 통해 어떤 삶이 바른 삶인지를 보여주는 사람, 그리고 그 실천을 위해 얼마든지 자기를 희생하며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우리가 기대하고 기다리고 기뻐하는 멘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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