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의 실체 _ "지금 여기" 경계와 경계에 대한 취착>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기대
타인에 대한 원망, 나 자신에 대한 자책과 기대
이것이 곧 "지금 여기"에서의 나의 불편함의 모습이다
그러나 과거와 미래, 타인과 나에 묶여서는 불편함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다
과거와 미래, 타인과 (과거/미래의) 나는 "지금 여기"에는 존재하지 않고
그것에 대한 불편함만이 지금의 나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서 돌이킬 수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 어찌할 수 없다
타인의 행위를 내가 구속할 수 없고
과거의 나의 어리석은 행위 역시 돌이킬 수 없고
내가 꿈꾸는 미래의 나를 미리 만들어놓을 수도 없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내가 무슨 경계에 묶여 있는지를 살피게 되면
그 경계에 대한 착심까지 살필 수 있으니
대상경계와 그것에 대한 착심은 따로 실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펴들어가면 경계에 묶인 나의 취착이
"후회"와 "기대", "원망"과 "자책/기대" 등 온갖 "불편함" 의 벌거벗은 모습임을 알게 된다
경계를 통해, 경계에 묶인 취착을 살피는 것이 "불편함"의 근원을 보는 법이다
"지금 여기"의 경계 없이 과거, 미래의 원인을 논한다면 그것은 허망한 희론이 되어버리니
지금이 없으면 과거도 미래도 의미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처님 말씀은 "지금 여기"에서 과거와 미래의 허망한 경계를 살펴들어간다
반면 외도의 인과법은 지나간 과거를 되돌이키기를 원하고 오지 않은 미래가 미리 정해지기를 원하니
마치 눈뜬 봉사처럼 "지금 여기"에서 경계 없기만을 바래서 허망함만 가득하다
불편함이 법으로 해체되기 전의 인식의 증장된 모습이라면, 착심은 해체된 후의 모습이다
나의 불편함은 법다운 살핌에 의해 경계에 대한 착심으로 드러나면서 점차 빛바래어 버린다
이처럼 부처님 말씀은 경계의 유무가 아닌 경계에 대한 착심을 드러내는 법이다
몸이 있고, 경계가 있고, 과거의 경험지은 식이 있는 한 불편함은 항상 일어난다
그러나 불편함을 법다운 살핌에 의해 경계에 대한 착심으로 늘 해체하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경계를 피하고, 때로는 착심을 놓으면서 불편함을 빛바래게 한다
불편함의 실체는 경계에 대한 착심이지만
착심을 보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은 자만과 위선 때문이며
경계와 경계에 대한 착심을 나누어서 살피는 것이
바른 법의 토대가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깨달음에도 공식이 있다 오온과 오취온편 참조 : http://cafe.daum.net/realbuddhism/4y78/243
첫댓글 실참의 결과로 나온 글이니 곰곰이 뜻을 새기며 읽으시면 도움이 많이 되실 것입니다. ^^
불편함과 착심을 애써 구분하여 자의적으로 쓰신것같은데
'깨달음도 공식이 있다 - 오온과 오취온'을 누르니 카페 가입신청이 나오는군요.
카페가입이 안된 사람은 못보나 보네요.
근데 단멸론을 주장하는 이 카페에서 부처정법이야기 하면 짤린다고 어느 분이 컴프레인 하던데
부처정법을 갖은 분은 가입하기 곤란하겠어요.
이글을 쓰신분
오온은 몸과 정신 오취온은 이러한 오온에서 취착된거라고 주장하시는 분인데
이게 실참후 나온거라면 다시 공부 해야 겠어요. 부처님은 오온을 몸둥이 정신이라고 하지 않았거든요
'깨달음 에도 공식이 있다' 저자분에게 더 살펴 공부하시라고 전하시길 바랍니다.
노랑님의 실참에서 나온 글이 궁금하네요.
남의 글 자기기준에 맞춰 뜯지만 마시고 말씀해 주시지요.
그렇게 잘 알고 계신다고 자신하는 노랑님은 취착에서 어떻게 벗어나고 계신지요?
<노랑님글>-이게 실참후 나온거라면 다시 공부 해야 겠어요. --
노랑님 실참후 나온거 말씀하세요.
깨달음 공식 저자분에게 전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카페 가입후 하시던가 찾아오셔서 하시던가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신묘장구대다라니 실참하라고 전하라는 말씀이신가요?
부처정법 이야기 하면 짤린다고 컴프레인 하신 분께서는 잘못 전달 하셨습니다.
힌두법 이야기하면 짤립니다. ^^ 신묘장구 대다라니도 포함입니다.
노랑님 수행일기에 [신묘장구 대다라니 독송]이 나오던데 그것과 오온 오취온과 무슨 상관인지요?
궁금합니다.
노랑님은 신묘장구 대다라니 하시면서 다른 이보고는 실참 다시 하라고 하십니까?
실참후 이야기 해보라시는데 제가 님에게 프라이버시인 실참을 말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런데 수행법이 다르다 해서 다른 분 실참 지적할수 없을까요? 그건 아니지요.
제가 윗분글을 지적한 이유는 책을 통한게 아닌 실참을 통해서
12처,18계,오온, 12연기를 몸소 체득한것처럼 말해서인데 그 내용이
경전과 다르다는 겁니다.
경전과 다른내용으로 실참을 이야기 하는사람이 있다면
(실참이 없는사람이라도) 혜안이 있다면 누구라도
지적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라니 실참을 전하라는게 아니라 이 책 내용이 잘못되었으므로 더 살피시란 이야기 입니다.
그 카페는 그들이 원하는 걸 전하지 않으면 이구동성 짤린다고 말합니다.
얼마전에도 반론 폈다고 몇명이 강퇴되고 그분들 닉은 공지로 올려졌다 하더군요.
그리고 다라니수행에 대하여
할말이 있으시면 다른글 복사해오지 말고 체험과 함께 본인생각을 적어 따로 올리세요.
그러면 그곳에서 말씀을 나누어 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 이 댓글들은 학문적으로 오온과 오취온 교리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공간이므로
교리에 집중하고 수행법에 관련한것은 따로 말씀 나누는 것이
혼란시럽지 않을것 같네요.
새기시길 바랍니다.12처,오온,오취온을 교학을 통해서가 아니라
실참을 통해 이야기 하는 경지는 깨달아 아는 경지로 부처님 수준입니다.
그런데 실참을 통해 알았다는 12처,오온,오취온 내용이 경전과 다르다면 깨달았다고 볼수 있겠습니까?
저는 처음 깨달음에도 공식이 있다는 책명 처음 들었을 때부터 문제 있는 책일거란 생각이 들던데 역시 그들의 주장을 보니
저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 어설픈 공식으로 깨달음 운운 하지 말고 차라리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에너지 보존의 법칙 요즘 양자론을 읽어보세요. 허접한 논리 펴지 마시고. 실참한 결과가 단멸론이고 부처님도 단멸론자 였다는 주장을 하던데 경 천천히 자세히 읽어보시고 다시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NOW 라는 에크하르트 톨레가 쓴 책읽어보세요 님이 항상 강조하는 현실과 비슷하지만 더 깊이가 있는 내용입니다. 대충이해하고 단멸론 주장하는 내용과는 다른 내용입니다.
부처님법 공부하시면서 아인슈타인이 괴로움의 소멸을 이루었다는 주장을 하시는건가요?
에크하르트 톨레가 그렇다는 주장을 하시는건가요?
그렇게 깊이가 있으시다면 님이 실참하신 내용을 써주시면 더욱 확실할 것입니다.
양자론 가지고 괴로움에서 벗어나셨다면 어떻게 벗어나셨는지 세세하게 쓰세요.
양자론이 고의 소멸과 어떤 관계인지도 밝히시고..
무엇이 가상이고 무엇이 현실인가? 이런 뜬금없는 소리 해대지 마시고요.
뭐에 쓰는 소리입니까?
저 글의 뜻은 항상 말씀드리지만 아함경의 -나의 법은 현실에서 확인되는 법이며 누구나 와서 보라는 법이며 -
이것에 비추어 읽으시면 됩니다. 그렇게 해보질 않으셔서 저 글의 뜻도 이해가 안되시는듯 해서 안타깝습니다.
투덜님의 깊이있는 실참 결과가 궁금합니다..
이 카페에서 말하는 부처님 정법은 양자론, 에크하르트 톨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그리고 신묘장구 대다라니 입니까?
결론은 오온 오취온 연기법을 말로 논하는 것을 수행이라고 주장하는 것이군요..
말로 논은 하는데 실참과는 관계가 없다..
그래서 수행은 신묘장구대다라니 로 한다.
참으로 이상한 결론입니다,.
자신이 보고 싶은 부분만 골라 적으면 안됩니다.
투덜이님은 "깨달음.." 이 책이 과학서보다 실망이다 라는 관점에서 하는 말입니다.
한편 여기서 오온,오취온을 교리로 논하는 것을 수행이라 말하는 사람 없습니다.
또 자꾸 비약을 많이 하시는데 지금 이곳에서 교학을 설명하시는 분들
깨달아서 설명하는게 아니라 책보고 공부 해서 설명하므로 실참과 연결하지말아달라는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들을 '논은 실참과 관계가 없다' 한다고 다른말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말에
누구도 언급하지않은 수행법을 첨가하여
빈정거리시면 더욱 님의 글에 실뢰를 잃게 됩니다.
그런데 한편 님들은 오온을 체험으로 안것으로 말하며
색온이 몸둥이라 하는데 경전엔 왜 색온이 몸둥이라고 하지 않나요?
왜 님들의 색온 실참은 경전과 다릅니까?
신묘장구대다라니가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것인가요?
아함경에서 본적은 없고 힌두 다라니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투덜님 아인슈타인이 고를 소멸했습니까? 어떻게요?
양자물리학자중에 고를 소멸한 사람 말씀해 주세요.
에크하르트 톨레가 괴로움을 소멸했습니까?
근거 자료 부탁드립니다.
^^ 톨레가 괴로움을 소멸했는지 안했는지 보다는 논두렁님의 괴로움이 먼저 아닐까요
단견으로 생노병사는 부처님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논리로 어찌 괴로움을 소멸 하였을까요.
톨레책부터 한번 읽어보시고 덧글다시지요. 가벼운 책 아닙니다. 님이 주장하는 현실,실참, 단견보다 더 깊이 있는 내용입니다. 부처님 말씀이 이해 가지 않는다면 그책부터 읽어보시는것이 좋을것 같아 소개해드린 겁니다.
이해안가는것 억지로 단견에 끼워 맞추려 하지 마세요 부처님 말씀 그렇게 논리로 끝낼수 있는 내용 아닙니다.^^
전 부처님의 가르침이 [괴로움을 소멸하는 유일의 길]이라고 믿고 수행합니다.
투덜님은 부처님법위에 톨레를 놓고 수행하시나보군요.
부처님께서 이 법 이외에는 괴로움을 벗어나는 출구는 없다...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님 주장처럼 부처님말씀 그렇게 논리로 끝낼 수 있는 내용 아니고 현실에서 결실이 나와야 비로소 고집멸도의
법이 되는 것입니다.
투덜님께서는 부처님말씀을 거꾸로 이해하고 계시네요.
생노병사까지 온전히 해결한 부처님이라면 아함경에 왜
'나의 몸은 낡고 망가진 수레와 같다. 나는 등이 아프다. 아난이 나대신 설법하여라..'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투덜님은 이유를 아십니까?
전 톨레 같은데 사실 관심없고요.
투덜님께서 톨레의 주장과 견해를 말씀하시면 부처님법에 비추어 말씀드리지요.
거꾸로 공부하시네요.
부처님법을 톨레한테 가져다 맞춰서 톨레식으로 바꿔먹어버리는군요.
톨레가 괴로움을 소멸했건 말았건 제 괴로움의 해결이 문제지요.
투덜님은 그게 아닌가 봅니다. [말만 괴로움해결이 문제라고 하시네요]
유일한 괴로움의 출구인 부처님법을 논하면서 서양과학자들 견해나 끌어다 비벼대시는 걸 보면 말입니다. ^^
무엇이 가상이고 무엇이 현실인가? 요런 되도 않은 소리[제 솔직한 소감입니다]
가지고 투덜님의 괴로움이 해결되겠습니까?
논두렁님이 어떻게 글을 읽고 대화를 이상하게 이끌어가는지 이런 질문이 증명합니다.
현재 투덜이님이 과학이론가를 예로 든것은 이런분들 책들이 ' 깨달음 공식 ' 책보다
더 읽을거리가 있다는 말인데 아인쉬타인이 고를 소멸했냐고 엉뚱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0901. 부처님 시대나 지금이나 영양분을 섭취해야 사는 것은 같습니다.
영양분이 들어 있는 것을 음식이라 하니..
부처님 시대나 지금이나 우리는 음식을 먹어여 삽니다.
그런데 석가부처님 당시 먹던 음식과 지금 우리가 먹는 음식이 똑같습니까?..
먹는 목적은 같지만, 먹는 음식은 같지가 않아요.
부처님 당시 했던 수행법으로만 무상과 무아를 깨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수행법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요.
과거에 논두렁은 지게를 지고 걸어갈 정도면 충분했지만,,
요새 논두렁은 경운기가 다닐 수 있어야 합니다.
지게 지고 걷는 길만 논두렁이 아니지요.
그래서 신묘장구대다라니로 괴로움의 소멸이 얻어진다 이말씀이군요.
신묘장구대다라니가 경운기 다니는 논두렁길인가요?
육도윤회, 부처님 가피도 경운기가 다니는 논두렁길인가요?
0902. 여기는 실참으로 증명을 요구하는 곳이 아니라..
이치로 증명을 요구하는 곳이라고 저는 말합니다.
아울러 실참을 통해 주장하는 게 이치로 주장하는 것과 차이가 없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찬탄할 일이지요..^^()..
그런데 실참이라 하지만. .그 내용이 뻥이면..
어디서나 그러듯이.. 여기서도 비웃음을 사게 됩니다.
이치로 바르게 증명을 하면 그게 그대로 실참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부처님법입니다.
항상 말씀드리지만 교학따로 수행따로가 아니지요.
바른 법과 현실에서의 결실은 서로 상호의존적인 관계입니다
저 윗글의 내용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있으시면 물어보세요.
내용을 이해하지도 못하시면서 비웃는 다는 것은 참으로 저 윗글에서 말하고 있는
[자만과 위선]에서 나오는 행 아니겠습니까?
이치로 뭘 증명하고자 하는지요?
<초심님 글>-그런데 실참이라 하지만. .그 내용이 뻥이면..
어디서나 그러듯이.. 여기서도 비웃음을 사게 됩니다. ---
부처님께서는 나의 법은 현실에서 확인되는 법이며 누구나 와서 보라는 법이며----
이 구절을 되풀이하여 말씀하셨는데 초심님께서는 뻥이라 하시네요.
초심님 스스로 한번도 부처님가르침대로 현실에서 되어지는걸 확인해본 경험이 없으시군요.
이런걸 법에 대한 의심이라고 합니다.
다섯가지 장애의 법수관 중에 맨 마지막에 설해져 있지만 결국 처음이 안되면 끝까지
의심밖에 남을 것이 없고 결국 절대적 권위의 [부처님가피]에 매달리게 되지요.
0903. [지금-여기-나] 라는 말은 수행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지..
고를 멸한 상태에서 바라보는 게 아닙니다.
지금이란 과거와 미래를 염두에 둔 것으로 과거나 미래가 없다면 지금 도 엾고,
여기란 저기를 염두에 둔 것으로 저기가 없다면 여기도 없고,
나란 세계를 염두에 둔 것으로 세계가 없다면 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여기-나]를 말하면서 본문에 나오듯 과거가 어쩌구 하는 것은 실재하는 지금이 아닌 과거와 미래에 의해 만들어진 지금으로.. 지금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말이지요.
역시 초심님께서는 실참을 해본적이 없음을 말로 증명을 하고 계시네요.
뽓따빳따경의 내용을 읽어보신 적이 없으시군요.
붓다가 가르친 과거 -미래-현재에 대하여 전혀 이해가 안되고 계시네요.
<윗글>-"지금 여기"의 경계 없이 과거, 미래의 원인을 논한다면 그것은 허망한 희론이 되어버리니
지금이 없으면 과거도 미래도 의미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 이건 연기법으로 살핀 스스로의 오온과 오취온의 관계성을 말하고 있는 것인데 뽀따빳따 경에 이런 내용이
잘 해설되어 있답니다. 한번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뽓따빳따경>- 찟따여, 만일 그대에게 묻기를 '그대는 과거에 존재했었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대는 미래에 존재할 것이고 존재하지 않을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대는 지금 존재하고 있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물으면 그대는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뽓따빳따경>-"세존이시여, 만일 제게 물으시기를 ...한다면 저는 이와 같이 설명할 것입니다. '저는 과거에 존재했었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저는 미래에 존재할 것이고, 존재하지 않을 것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 존재하고 있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
초심님은 이 구절로 부처님의 과거 -미래- 지금의 법을 다 이해한 듯이 말씀하시네요.
초심님의 의문에 대한 답이 그 다음 구절에 나오니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초심님의 말은 뽓따빳따경의 그 다음구절을 [실참없이 말로만 풀어서 ]
지금 현실에서 움직이는 경계 모두를
[인식일 뿐이다]로 밀어붙여 버리셨네요.
그러니 실참은 없이 이치를 말로 증명만 하는 곳이라고 주장을 하시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야 -현실에서 확인되는 누구나 와서 보는 붓다의 법-의 결실이 어떻게 확인될 까요?
0904. 부처님께서 말하신 경계란..
유전문 세계인 분별 세계에서 존재하는 겁니다.
아인슈타인을 포함한 근대 서양 학자들은 유전문 세계를 탐구해 가면서 경계의 모호함을 보여줍니다.
그 말은 5취온은 말할 것도 없구, 5온이 실재하는 존재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는 거지요.
대부분의 서양인들은 모르겠지만.. 그래서인지 논두렁님도 모르는 것 같아요.
5온이 실재하는 게 아니라면 단멸이 될 수 없지요?
다만 조건에 의해 변하고 있는 거지요.
조건에 의해 변하는 것이기에.. [일체 무상]이라 하는 게 아닙니까?..
초심님의 말은 항상 말장난으로 끝이 나버리시더군요.
그래서야 부처님께서 아함경에서 줄곧 말씀하신 -나의 법은 현실에서 확인되는 법이며--여기에 적용이 되겠습니까?
이치로 증명하시다 보니 이 카페에 널린 다라니 진언, 육도윤회, 이런 것들이 증명이 되던가요?
연기법과 다라니의 상관관계는 왜 증명안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무상이 어떻고 말장난 하면서 끝은 왜 다라니 진언에 매달리고 가피에 매달립니까?
붓다께서 천명하신 것은 가피에 매달리는 인간상이 아닙니다.
초심님, 모든것이 조건에 의해 변하는 일체무상인데 다라니는 아닙니까?
가피는 또 뭡니까?
이치로 증명을 하려면 좀 앞뒤가 맞게 증명을 해야지요..
그래야 결실이 현실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초심님말과 저 윗글에서 말하고 있는 살핌의 내용중 어느것이 뻥일까요?
결국 초심님은 부처님법- 현실에서 확인되는 법-을 뻥이라고 보고 계시군요.
이분 참 여기저기에 관계도 없으신분들에게 다라니 타령 하고 계시니 매너 참
없습니다. 그리고 연기법과 다라니 상관관계를 증명하라니
개인적체험과 맞물린 이야길 거침없이 요구하고 있는데
이런 무 매너가 있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 카페에 여러수행법들을 소개 하고 있는데 논두렁님 마음에 안드시면
안오시면 될텐데 자꾸 오셔서 문제를 만드시는지 모르겠네요.
더구나 올리시는 글 한두번도 아니고 늘 비판이 대상이 되고 있는데
왜 자꾸 글을 올려 분란을 만들고 계시는지 모르겠고요.
그리고 글 쓰시는 것보니 고칠점이 많습니다.
무언가 지적을 받으면 못마땅하시는지 여기저기 중복되는 같은말 댓글들을 수없이 적어놓고
교리이야기 하다가 힘들어 지시면 실참이야기로 논지를 흐리고
해서 주제가 분산되고 있는데 논쟁하는 기본법부터 다시 익히셔야 할것같습니다.
서둘러 본인수행에 매진하시고
살펴 어둡기전에 둥지로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 논두렁밭두렁님 깨달음에도 공식이 있다는 책의 내용이나 님이 주장하는 내용은 현대 과학만도 못한 주장입니다.
제가 톨레의 책을 인용하였는데 왜 그랬을까요. 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못할뿐만 아니라 왜곡하고 있습니다.
님의 주장은 현대 과학이나 철학만도 못한것이며 부처님도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있습니다. 님이 주장하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받아들일수 없는것이 아니라 이해 하기에 받아들일수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본래 뜻은 둘째로두고 서양과학이나 철학만도 못한 주장을 어찌 수용할수 있겠습니까 ^^
투덜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용하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 자기 현실이 가상인지, 현실인지 부터
똑바로 보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부처님을 끌어내리지 않고 높이 올리신다는데
님이 주장하는 부처님법은 왜 현실에서 확인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걸까요?
그래서 높이 계신 부처님께서 님께 어떤 깨달음을 주신다는 건가요?
투덜님께서 깨달음에도 공식이 있다 의 내용을 진짜 이해하셨는지 안하셨는지는 참으로 의문스럽습니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니 서양과학이 더 우러러보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이해합니다.
말돌리지 마시고 제가 질문한 --투덜님의 깊이있는 실참 결과가 궁금합니다---
서양과학 공부하셔서 얻으신 높은 부처님뜻을 말씀해 주세요.
상대성 이론과 양자물리학에서는 현실에서 확인되는 괴로움의 소멸을 어떻게 논하고 있습니까?
투덜님의 깊은 실참의 결실을 들려주세요.
논두렁님 실참 결과가 단멸론인가요. 저의 실참결과는 단멸론은 정견은 아니라는 겁니다. 단멸론이야말로 실참의 결과가 아닌 어설픈 논리일 뿐입니다. 아직도 생각이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것을 증명할 뿐이지요 논두렁님의 주장은 단멸론이 너희를 자유롭게 할것이다. 이거 아닌가요^^
이분은 깨달아서 '깨달음에 공식이 있다' 이 책을 쓴것같은데 이책에서는
12처가 육근경, 색온이 몸둥이라고 나옵니다.그런데
경전에는 12처가 육근경,색온이 몸둥이라고 나오지 않습니다.
왜 경전과 이분 실참 내용이 다릅니까?
1001. 논두렁님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불제자가 멸해야 하는 것은..
고인데, 그 때 고는 무명에서 생긴 갈애의 집기를 멸하는 거지요.
그럼 고, 무명, 집기한 갈애는 무엇입니까?
(인)식(識)입니다.
님이 좋아하는 실참이란 바로 인식을 바로 보아 무명인 식을 멸하려는 겁니다.
그런데 님이 말하는 몸뚱이는 인식에서 생긴 몸뚱이가 아닌 인식을 생기게 하는 몸뚱이를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차이가 보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