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_달루에 걸린 직지 ●지은이_이경 ●펴낸곳_시와에세이 ●펴낸날_2023. 8. 25
●전체페이지_232쪽 ●ISBN 979-11-91914-46-7 03810/신국판변형(140×200)
●문의_044-863-7652/010-5355-7565 ●값_ 16,000원
혈연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
이경 소설가의 소설집 『달루에 걸린 직지』가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많은 자료와 현장답사를 통해 잃어버린 문화재의 고유성을 재발견하고 현재 삶의 모습은 과거 유전적 산물의 조합이라는 생각으로 휴머니즘을 근거로 해 한 편의 중편과 네 편의 단편 작품을 완성했다. 이는 소설 속 인물의 다채로운 모습을 통해 개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단청 문양은 건축물의 부위에 따라 의미 있는 문양을 쓴다. 단청장의 기술에 따라 단청 문양이 다양하다. 아저씨는 한가운데 특징적인 그림 별지화를 그려 넣었다. 그 별지화는 식물의 덩굴이 얽히고설킨 당초 문양, 연꽃 문양, 복숭아 문양, 용 문양 그리고 부처상까지 있었다. 궁궐 단청은 주로 용과 봉황을 쌍으로 그렸다. 문양은 총 2백여 가지가 넘었다.
―「달루에 걸린 직지」 중에서
「달루에 걸린 직지」는 금속활자 『직지심체요절』과 관련된 일화를 바탕으로 쓴 중편소설이다. 단청 문양에 “식물의 덩굴이 얽히고설킨 당초 문양, 연꽃 문양, 복숭아 문양, 용 문양 그리고 부처상까지 있”는 것처럼 얽히고설킨 사람의 관계, 생로병사 등 불설(佛說)에 근거를 둔 이야기가 흥미롭다. 사람이 마음을 곧게 가졌을 때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는 ‘직지심체(直指心體)’라는 뜻이 인간 본연의 흰 바탕이 되어 단청 문양이 번지듯 고요하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자리에 누웠어도 철하의 울음소리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문밖의 자잘한 바람 소리가 들릴 만큼 밤이 점점 깊어갔다. 왼쪽으로 누웠을 땐 철하가, 오른쪽으로 누웠을 때는 차 시인이 했던 말을 되새김질했다.
―「이별 보고서」 중에서
「이별 보고서」는 두 남자를 사이에 두고 사랑하고 이별하는 과정을 그렸다. ‘철하’와 ‘차 시인’ 사이 꼬였던 삶과 뒤틀린 진실이 드러나며 그들의 아픔, 상처와도 이별하게 된다. 그리하여 주인공은 자신을 단단하게 세우고 성장하게 된다.
은조는 동백나무 씨앗 네 알을 비닐봉지에 담아 가방 뒷주머니 깊숙이 넣었다. 담 너머 이웃집 커다란 동백나무에서 떨어진 씨앗들이었다. 붉디붉은 동백 꽃잎이 채 빛이 바래기도 전, 한순간에 바닥으로 후두두 떨어졌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의 정점이었던 순간, 가시밭인 줄 알면서도 펄쩍 뛰어내렸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으므로 착지가 불안했다손 치더라도 그 난관을 오롯이 받아들여야만 했다.
―「씨앗 지키기」 중에서
「씨앗 지키기」는 홀로 두 아들을 키워온 중년 여성의 갱년기와 현실적 어려움을 표현했다. 은조라는 인물을 통해 작가는 홀로 두 아들을 키워온 중년 여성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그려냈다. “저게 뭐야. 큰일 났네. 불길이 번지고 있어. 연기가 자욱해! 119에 신고조차 못 했네. 저기 소방 헬기가 떴어.” 지인들과의 산행에서 산불이 번지자 지인들은 각자의 보호자에게 연락하는데, 은조만 보호자가 없었다. 두 아들에게 안부를 묻지만, 확인을 하지 않으며 소설은 끝이 난다. 그녀는 집안의 가장이자 엄마였고 여자였다. 아들이 툭 던진 ‘참아내는 것도 결혼의 미덕이다.’를 되뇌이며 자신을 반추한다. 이혼이라는 선택은 자녀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그 선택은 오히려 아들이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 내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다른 형제들이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만큼 아버지는 아주 교묘했다. 처음에는 심부름을 잘 하지 않는다, 집 안 청소를 잘 하지 않는다, 계집애가 무슨 책을 보느냐부터 눈에 거슬리는 행동이 보이면 트집을 잡았다. 훈육이란 명분에서 시작해 나중엔 형제들 앞에서 맏딸이었던 어린 계집아이의 밑바닥 자존심까지 처참하게 짓밟았다.
―「개명 사유서」 중에서
「개명 사유서」는 개명하게 된 사유를 통해 주인공이 아동학대를 당했던 지난날의 아픔을 상기한다. 그리고 개명하듯 현재 다시 만난 첫사랑과 새로운 시작을 꿈꾸지만 어이없는 상황을 경험한다. 첫사랑의 설렘과 순수함이 실종되고 인간의 진실이 변질된 모습을 직면하며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현실에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서듯 개명할 사유를 더 찾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다.
“경이야, 저기 가래나무 좀 봐라. 꽉 쪄서 틈이 없네. 가래나무를 산 호두나무라고 부르기도 해. 가래나무 껍질과 열매를 달여 먹으면 열을 내리고 눈이 충혈되고 붓는 통증을 치료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눈을 맑게 하는 효능이 있다는 소리를 분명 어른들한테 들었어. 그러고 보니 저 가래나무가 바로 철이의 약이었구나.”
―「추동의 푸른 달」 중에서
「추동의 푸른 달」은 유년의 상처를 갖고 있던 미혼 여성이 어머니의 삶의 여정을 되짚어가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 소꿉친구를 만나게 되며 어머니를 더 깊이 끌어안고 소꿉친구 ‘철이’의 맑은 마음으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풍각쟁이 김가가 이제 쑥 치고 들어오는구먼. 알았다잉. 너도 내 자식이나 매한가지여. 삼지내 유전자를 타고 났응께. 암만 내 자식이고말고.”
연초록 무명천이 나비처럼 나부낀다. ‘가마솥이 그리운 집’ 이름표가 바람에 달그락거린다. 열린 대문 사이로 야옹이 들어와 댓돌 위에 앉는다. 드디어 제집 찾아 들어온 것이다. 나 또한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천연 염색 물질, 집으로 돌아오는 방법을 알리는 첫 신호가 분명하다.
―「유전자 가위」 중에서
「유전자 가위」는 불임인 한 여성을 통해 태아의 유전적 결함을 드러내며 인간 본연의 생명에 대한 존중과 “나 또한 집으로 돌아오는 중”인 것처럼 존재 자체의 존귀함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이경 작가는 소설 작품을 통해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통찰하는 계기를 만든다. 또한,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의 심리를 반추하고 있다. 흔히 소설을 허구 또는 꾸며낸 이야기라고 말한다. 하지만 문학은 그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의 사상과 감정 그리고 정체성이 투영되어 있다. 문학이야말로 인간의 본성과 감정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예술 형태이다. 작가는 이번 소설집 발간을 통해 혈연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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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작가의 말·04
달루에 걸린 직지·11
이별 보고서·83
씨앗 지키기·111
개명 사유서·141
추동의 푸른 달·171
유전자 가위·203
■ 작가의 말
좁은 마당에 핀 온갖 꽃들이랑 살다 보면 일 년이 후딱 지나간다.
매화, 목련, 목단, 라일락, 장미, 백합, 능소화, 수국, 수련, 목백일홍, 땅백일홍, 상사화, 샤프란, 칸나, 국화 그 외에 이름 모를 꽃들까지도 모두 가족이다. 제집인 양, 마당을 어슬렁대는 길고양이도 가족이 된 지 오래다.
빛바랜 생각 주머니에서 기억을 꺼내 가위로 오리고, 바늘로 꿰매고, 휴지통에 미련 없이 버리기를 수없이 반복하다가, 버려진 글도 긁어모아 덧대고 보태어 누더기를 겨우 만들었다. 그것에 사랑과 증오가 함께한다는 뇌 한 조각을 떼어와 능청스럽게 글 속에 심었다.
나는 잡초처럼 살아왔다. 그래서 밟혀도 아프지 않다고 말했다. 남이 뭐라든 말든 괘념치 말라며 수없이 주문을 걸었다. 그런데 이번에 누더기를 출간하고는 조금은 아플 것 같다.
그래서, 퍽 다행한 일이다.
2023년 여름
이 경
■ 표4(약평)
아저씨는 오른손으로 통필을 잡았다. 왼손 엄지엔 채기가 든 달루를 낀 채 사다리를 탔다. 나는 아저씨가 원하는 물감과 소도구를 찾아서 위로 올려줬다. 50여 종이 넘는 도구가 펼쳐진 작업대에서 아저씨가 찾는 순서를 생각해 미리 정리를 해뒀다. 채색을 제조할 때 각각의 색마다 아교 성분이 들어가야만 안료가 잘 섞였다. 아교는 동물의 가죽과 뼈를 고아서 만든 접착제였다. 단청 안료는 돌과 조개껍데기 가루 그리고 동굴 속과 땅속 깊이에서 묻힌 흙에서 색을 구해 썼다. 아교를 안료에 넣고 잘 풀어주는 것이 관건이었다.
통붓으로 아교와 안료를 섞자, 쩍쩍하는 소리가 났다. 아교와 안료의 비율, 아교와 안료의 밀도가 정확히 맞았다는 신호였다. 아교가 제 역할을 못 하면 나무와 물감 사이에 틈이 생겨 단청 칠이 들뜨게 된다. 채색 작업이 끝나고, 각 문양의 윤곽에 먹선과 분선을 넣어 시분 작업을 했다. 그리고 강조할 부문에 금박을 붙였다.
_「달루에 걸린 직지」 중에서
■ 이경
충북 영동에서 태어나 1997년 농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2002년 동서문학상에 단편소설 「청수동이의 꿈」으로 대상, 2022년 직지소설문학상 중편소설에 「달루에 걸린 직지」로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장편소설 『는개』, 『탈의 꽃』, 소설집 『도깨비 바늘』, 『아름다운 독』과 에세이집 『아난다가 보내온 꽃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