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만세 사건♢
이 사건은 1926년 6월 10일 발생한 조선 왕조 제27대 임금인 純宗 황제의 因山日을 기해 일으난 日帝에 항거한 3.1 운동 이후 가장 큰 萬歲 운동 이다.
延專의 李炳立 朴河鈞,YMCA의 朴斗鍾, 中央高普의 李先鎬 李晃熙, 城大의 李天鎭이 주동이 되어.순종 황제의 國葬日인 이날 민중이 많이 모일 것을 이용 하여 3.1운동과 같은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 하였고 당일 檄文을 돌리며 太極旗를 흔들면서 中央高普 학생들이 主軸이 되어 團成社 앞에서 시작하여 觀水橋 訓練院(지금의 동대문 시장 부근 )東大門 淸凉里로 만세 행렬은 퍼져 나갔다.
高宗 皇帝 因山때 3.1독립 만세 운동을 진압 하였던 경험이 있는 朝鮮總督府는 사전에 철저한 대비 태세를 갖추고 5000명의 日警과 日軍을 동원 만세 운동을 저지 하였으며 이날 일경은 만세운동에 참여 하였던 학생 200여명을 체포 하였다.
이 운동은 淳昌 定州 群山 蔚山 平壤 洪城 公州 등지로 파급 되어 전국적으로 1000여명이 投獄 되였다
또 上海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呂運亨선생 등과도 연락이 되어 함께 동참키로 하였으나 사전에 발각 되여 합세 하지 못 하였다
이 보다 3년 후인 1929년 11월 3일 일으난 光州 學生사건은 光州高普 학생괴 日本人 中學生간에 생긴 衝突이 發端이 되어 愛國的 學生運動으로 飛火되여 3.1운동 후 최대의 민족 투쟁운동이 되였다.
광복후 이 사건은 光州學生 運動으로 命名 되었으며.이 學生運動이 일으난 날을 記念하기 위해 政府에서는 11월 3일을 “학생의 날”로 지정 하기도 하였다.
倭政시 있었던 수많은 抗日 독립 운동은 지금은 獨立 運動史나 초 중고등 학교의 敎科書를 통해 독립운동사를 연구 하는 분이나 학생들에게 연구 자료나 敎育용으로 기록 되어 전해오고 있다
6.10만세 운동은 일제에 빼았긴 조국을 되 찾기 위해 擧事 전에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 高普,專門校生, 大學生등이 준비하여 일으킨 독립 만세 운동이다.
이 만세 운동에 관련되여 1000여명이 投獄되었던 최초의 학생들에 의한 만세운동이지만 광복후 60년이 훨씬 넘었건만 아직까지도 “6.10만세 사건”으로 남아 史書에 소개되고 있음이 현실이다.
안타까운 일이라 아니 할수 없다.
歷史는 사실대로 기록 되어 후세에 전해 져야 하고 평가 받음이 원칙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에 기록 될 사건이나 사실은 허위나 과장이 있어서도 안 되며 또한 과소 평가나 누락 되어서도 안 된다.
“6.10만세 운동”에 대한 현제 까지의 역사적 평가는 무슨 이유 때문 인지는 알수 없으나 객관적으로 볼때 과소 평가 받고 있다고 생각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