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주님께 다가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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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태어난 아기는 경험이 없다.
지금까지 그 아이는
우리의 세상에서 작은 이방인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빠른 속도로 배우며,
곧 크게 울면 관심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게 될 것이다.
100세까지 사는 사람은
실제로 몇 가지 경험들을 해왔다.
그런데 그가 산속에 살면서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경험의 폭이 좁을 것이다.
만일 그가 좋은 교육을 받고
다양한 친구들이 있는 세계여행가라면
어떻게 그의 두뇌가 미래의 기억과 참고할 자료들을
많이 보유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그의 경험은 매우 방대할 것이다.
나는 어느 쪽이
예수님께 더 가까이 있는지 묻는다.
경험이 거의 없는 어린아이가
폭넓은 경험을 가진 사람보다 더 유리한가?
다른 점은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삶의 경험들 가운데 서 계시며,
누구든지 그분께 다가갈 수 있다!
사무엘상의 앞장들을 읽으며
소년 사무엘이 12세였다는 것을 생각하라.
그는 그저 한 사내아이였다.
그리고 98세의 엘리가 있었다.
소년과 노인, 두 사람이 여기에 있다.
그 소년은 어떤 경험을 했을까?
사실상 경험이 전무했다.
노인은 어떤 경험을 해왔을까?
사실상 모든 경험이 있었다.
그는 전반적인 인간의 가능성들을
모두 경험해보았다.
그러나 거의 아무 경험이 없는 어린 사무엘에게나,
오랜 세월 동안 인생이 무엇인지를 발견한 엘리에게나
하나님은 똑같이 가까이 계셨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히브리어, 헬라어, 로마어로 써서
그분의 머리 위에 붙여두었던 죄패를 기억하라.
“이는 예수 그리스도, 유대인의 왕이라.”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온 세상을 받아들이셨다고 지적했다.
히브리어는 종교를 상징한다.
헬라어는 철학을,
로마어는 로마 군대의 용맹함을 상징한다.
세상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인간의 경험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라고 말했던
히브리 선생 니고데모나 로마의 군인들이나
모두 하나님의 아들과 똑같이 가까웠다.
그 당시 세상은 실제로 세 부분으로 나뉘었고,
오늘날 우리의 세상도 마찬가지 아닌가?
오늘날에도 종교, 문화,
그리고 군대와 정치의 결합이 있다.
다른 모든 것들은 그 영역 중 어딘가에
속한 듯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 세상의 중심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따라서 철학자의 상아탑에서나
제사장의 성소에서나
쉽게 그분께 다가갈 수 있다.
두꺼운 책들을 들고 있는 사상가만큼
제복을 입은 군인도 그분께 쉽게 다가갈 수 있다.
똑똑한 두뇌를 가진 아인슈타인은 그가 원한다면
손을 내밀어 메시아를 만질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에는 글을 읽지 못하거나
쓸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아인슈타인과 자기 이름을
X로 표기하는 사람은 같은 범주 안에 있다.
둘 다 테두리에서는 동등하다.
사실상 그 누구도 자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유리한 입장이었다고 말할 수 없다.
당신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왜 모든 사람이 오지 않는 겁니까?”
변명할 수 없는 고집 때문이다.
불신앙 때문이다.
다른 것들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정말로
그분이 필요하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등을 돌리는 이유는
자신들의 필요를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주님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면
당신이 누구든 간에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갈 수 있고,
주님을 만질 수 있고,
그분의 능력이 당신을 돕기 위해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
모든 인종을 구원하러 오셨다.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을 구원하러 오셨다!
그것을 믿고 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공경하자!
당신과 예수님에 관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당신이 있는 곳에서
예수님께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 JESUS, A. W. 토저 / 규장
출처: 향유 냄새 나는 집 - 아굴라와 브리스가 원문보기 글쓴이: 아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