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월 3일생 Kim Jisoo
서요나
달도 더 갈 데 없고 추위도
여기 말고 갈 데 없고
낡은 휠체어에 올라 함께 내리막길 도로로 내달릴 때
새끼손가락 서로에게 걸고 넘어지지 말라고 지켜줄 것이다
너에게 가르쳐줄 것이다 어둠은
키 작은 책상 아래에서 오수가 말라가는 화장실 좁은 욕조에서
차가운 세 자루의 삽이 꽂힌 땅속에서 태어나지 않았다고 가르쳐줄 것이다
보여줄 것이다
눈을 감고 카메라 플래시 속으로 뛰어드는 초저녁의 시간을
검지손가락으로 귀를 막고 들리는 재즈와 엘레지를 연주하는 소년이
남자가 되어가는 성탄절들을
온 세상이 나를 미워해도
서둘러 옷깃을 당겨 재우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줄 것이다
피투성이 된 너랑 너를 밟아버린 애들 사이를 가로막은 나와
뒷덜미를 붙잡고 내게 은빛 권총을 겨누는 너 앞에 억류된 내가
양팔을 벌리고 선 자세가 똑같을 것이다
너를 수호하려고 사방에서 횡대로 둘러싸
혼비백산 얼어붙어 버리는 뱅갈나무들보다
은장도 칼집 속에서 뽑히는 소리
머리핀 닫히는 소리
녹조 가득한 물속에서도 구분하는 네가
나 가위를 들고 티셔츠를 자르는 척 머리칼을
자르려고 할 때 미처 손목을 낚아채지 않고
놀라버리는 너를
물속에서도 다 들리는 네 웃음소리에도 좀처럼 쏟아지지 않는
너의 먼지 쌓인 비밀을 따분하게 사랑할 것이다
너의 목과 허리를 숲과 오렌지밭에서 찾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가을의 부엌에서 교정에서
옷장과 다락 속에 머리를 넣은 채 널 부르고 찾을 것이다
세상이 전부 나를 사랑할 때
빠르게 흔들어 깨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줄 것이다
어떤 폭풍도 너의 심장을 휩쓸어 가지 않는다고 맹세할 것이다
저 비를 피해 이곳에서
펴보지도 못하고 곤충의 날개 가득 붙은 우산을 펄럭 펼치면서 울어버리면
생시 위로 범람하는 홍수도 너의 눈물만큼 적실 수 없는 둥근 백일몽
두 개의 안구를
고개도 들지 않고
젖은 손을 닦지도 않고 감겨주는 몸이 될 것이다
거울이 없을 때 낫과 칼로 내 얼굴을 비춰도 괜찮다고 말해줄 것이다
미래가 온몸 가렵도록 싫어질 때 저승을 보며 살아가도 된다고
흔들려도 잡지 않겠다고 해줄 것이다 잡으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불러 세워 얘기해줄 것이다
나의 정면에서 엇박자로 흔들리는 피곤이 되라고
우리는 올가미에 매달린 망자의 허벅지 멍이 들도록 껴안은 채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아무도 오지 않는 안방의 시간처럼
제자리에 멈춰야만 하는지
질문하지 않아도 된다고 전해줄 것이다
겁에 떨며 무릎 꿇은 나에게
코와 입술을 파묻고 노래 불러주다가
네가 먼저 잠에 들어도
죄인이 되지 않게 해줄 것이다
밤이 너를 재우고
달이 너를 키워도
주인 없이 버려진 사육장처럼 자유롭고 조용한 이 세상에서
너의 존재가 오래전 네 심장을
쓸어가지 못한 채 홀로 남은 폭풍이라 해도
네 심장의 모든 것을 빼앗고
너 이 세상에 태어났다 해도
상관없다고
다 상관없다고 해줄 것이다
한겨울에도 빙하기에도 꾸덕꾸덕 마르는
허공을 가르는 흰 줄에 걸린 빨래들처럼
다 돌이킨다고 약속할 것이다
돌이킨다고
----애지 겨울호에서
약력 : 2018년 계간 <페이퍼이듬>으로 작품활동 시작. 2021년 시집 <물과 민율>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