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제와 神仙思想
後漢(東漢) 때가 되면 영생불사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前漢(西漢) 시대는 어떻게 생각하였을까. 사마천의 사기기 전하는 한무제의 이야기를 통해서 더듬어 봅시다.
무제는 태자 시절에 황제 교육으로 황로사상과 유가사상을 함께 받았다. 그가 황제가 되자 통치이념으로 유가사상을 선택하였다. 그렇다고 하여 황로사상은 세탁기에 넣어 털어내듯이 완전히 지워버렸을까. 아니다. 지워버렸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한무제는 민간신앙인 신선사상에도 푹 빠져 있었음을, 역시 사기가 전해준다.
方士 李少君이라는 사람이 황제를 꼬드겼다. 자신이 봉래산을 직접 방문하였다면서, 무제더러 그 산에서 행복을 찾아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뚜막의 신에게 제사 지내면, 황금을 만들 수 있고(연금술) 그 황금으로 술잔(祭器)을 만들어서 사용하면 영생의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무제는 그 말을 믿었다.
이소군이 죽었다는 말을 들은 한무제는 이소군은 절대로 죽지 않는데 거짓이라며 믿지 않았다고 하였다. 봉래산이 동해에 있다고 믿은 한무제는 그 산을 보려 동쪽 바닷가까지 여행도 하였다. 섬을 찾기 위해 여러 차례 탐험대도 보냈다.
중국인의 무덤에 신선세계가 그려지는 것은 진 제국이래로, 한나라 때였다. 중국인에게 불사를 염원하는 사상이 오래 동안 지배하였음을 말해주는 자료이다.
BC 50년 경부터 중국인들은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냈다. 우주 전체가 유지되는 질서가 있고, 만물들은 우주의 질서 속에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간도 우주의 만물 중의 하나로 생각하였다. 말하자면 天, 地, 人 사상이다. 이러한 사상에서 死者의 來世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육신의 생활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천지인 사상을 보완할 필요를 느꼈다.(사후 세계의 언급이 없으므로)
BC 50년 경의 중국인은 생전세계와 사후세계를 연결시켜주는 신비로운 ‘부적’을 만들었다. 이 부적은 비싼 재료로 공을 들여서 아름답게 만들었으므로, 중국 미술사에서도 다루는 작품이기도 하다.
西王母가 지배하는 仙境을 찾기 시작한 시기는 이보다 후대이다.
첫댓글 신선사상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