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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훈 2심 판결이 무죄라고? 열불나서 또 옮긴다.
* 내용이 깁니다. 단, 지루하진 않을 듯.
* 오히려 흥미진진해 하실 수도.
* 김진태 사태 3~7은 전부 생략.
* [세계관에 관해서]는 책 <세계관>의 초안.
1. 2023
[양심 良心 conscience]
양심은 무언의 약속이며 자기와의 약속이다
양심은 모두의 인간으로서의 삶의 약속이다
의사를 찾을 땐 의사의 양심을 믿어야 하고
재판정에 들어설 땐 판사의 양심을 믿는다
양심의 약속이 깨지면 'Anomie'를 낳는다
양심(conscience)이란, '좋은 마음'으로서
후회, 수치심, 슬픔, 죄책감 등을 내포한다
함께(con) 잘 알고 있는(science) 것이다
2. 2022 (비공개 글)
[앞으로의 30년]
충치, 시력(근시+원시),
변화 ㅡ 미시 변화와 거시 변화
보수는 미시변화, 진보는 겉변화에 천착
변화가 있어야 먹고사는 직업들 ㅡ 언론, 작가
미중 국가주의와 기업 자율성
로봇과 인공지능, 의인화가 문제
인간사고의 한계 ㅡ 시대 변해도 변치 않는 의인화적 사고
로봇도 의인화 해서 생각
로봇의 이해 ㅡ 자동화 팩토리(공장)
공급망 ㅡ> 결국 자급자족
미중이 쌓는 벽 ㅡ> 고대 자급자족시대 회귀
같이 자급자족할거냐?
우리는 불가능 ㅡ 삼각무역에서 교훈 얻어야
불의 시대 ㅡ> 에너지 시대
에너지의 발견 ㅡ 땅속에서 석유를 발견한 거라면, 하늘에서 발견한 것은 태양광과 풍력 에너지
석유의 시대 30년 ㅡ> 태양광 시대 30년
패트로달러 시대 30년 ㅡ> 디지털화폐 시대 30년
발견 : 최초의 유정은 1842년 아제르바이잔의 바쿠 마을에서 시추. ㅡ 석유산업 시작
운반 : 최초의 송유관은 1872년에 유정에서 정제소로 원유를 운반하는 데 사용.
생산 : 1921년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Edwin Drake의 시추 팀은 처음으로 원유 생산.
무기화 : 1930년까지 미국은 발명가들이 원유를 가솔린과 디젤 연료로 정제하여 세계 최고의 석유 생산국.
1944년 브레튼우즈체제 ㅡ> 달러 기축통화
1955년~1975년 베트남전쟁 ㅡ 달러 발행 남발
(1960년 opec 창설)
1971년 닉슨쇼크
1973년 오일쇼크 ㅡ 1978년12월 2차쇼크
1975년 사우디-키신저 밀약 ㅡ 페트로 달러 시대 ㅡ> 달러 기축통화 유지
3. 2021
"세계관"에 관해서..!! (235~264 연속 +별건10)
1. 진리는 딱 하나 뿐입니까? 그리고 하나라면 그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까? 그리고 완전 믿습니까?
2. 네 맞습니다. 진리는 딱 하나입니다. 옛날 황희처럼 "너a도 옳고 너b도 옳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너a도 틀리고 너b 역시 틀렸다"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진리는 반드시 존재하니까요.
3. 결론은, 진리는 존재하고 진리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하나가 맞으면 다른 하나는 반드시 거짓입니다.
ㅡㅡㅡ
4. 그런데 "세계"란 관점에서 보면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5. 세계를 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6. 세계를 닫아놓고 본다면, 위의 관점 혹은 시각이 맞겠지만,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라는 관점에서는 오히려 확실한 것보다는 불확실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7. 그래서 불확실한 세계로서, 미래로 열려 있는 또 하나의 세계를 상정해야만 합니다.
8. 이 열린 세계에서는 앞서의 닫힌 세계에서처럼 진리가 하나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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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귀납법에 관해서 논문을 썼더랬습니다. 그 때 제가 착안한 것이 바로 "세계관"의 도입입니다.
10. 논리에 의해 닫힌 세계는 '연역의 세계'이고, 논리를 확장시키는 열린 세계는 '귀납의 세계'로 본 것이죠.
11. 흔히 우리가 쓰는 "논리적"이라는 말은 "연역적"이란 뜻이 정확한 뜻입니다.
12. 쉽게 수학에 비유해서 말씀드리면, "사칙연산에 닫혀 있다"라는 말로서 이해될 수 있는 게 바로 논리학에서는 '연역논리체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3. 이 안에서는 백퍼센트 진리여야만 진리입니다. 그 외에는 다 거짓입니다.
14. "1 더하기 1 은 2다."라는 것은 '수학 세계' 안에서는 "언제나" 참입니다. 그런데, "물방울 하나에 물방울 하나를 더하면 물방울 하나인데?"라고 말하는 것은 수학법칙을 벗어나 '과학의 세계'로 들어가는 게 됩니다.
15. 과학 세계는 연역의 세계가 아니라 귀납의 세계가 됩니다.
16. 과학적 방법은, 관찰과 실험에 의해서 진리가 밝혀집니다. 따라서 그로부터 귀납적 추리로 진리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으로, '귀납적 지식체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귀납의 세계"인 것입니다. (가설과 이론에 의한 지식은 뒤에서 언급할 예정입니다)
ㅡㅡㅡ
17. 여러분, 혹시 "약속"에 대해서 아시나요?
18.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바로 '약속의 세계'입니다.
19. 고등학교 때인데요. 제가 수학을 쫌 잘했거든요? 근데 저는 문과여서 한계가 있었고, 친구놈 하나가 있었는데, 이과였고 수학을 잘했어요.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하던 어느날 잠시 쉬는 시간이 있었는데, 제가 대뜸 물었죠. "로그(log)가 뭐냐?"라고 말이죠. 내내 고민 중이었거든요. 그냥 기계적으로 문제는 푸는데, 이걸 왜 하는지 궁금했죠. 아마 수학 선생님도 모를 거라는, 그래서 물어보다가 한 대 맞을 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더랬죠. 그런데 친구가 몇초 생각하더니, "약속이지 뭐!"라고 한 마디 툭 던지듯 말하는 거에요. 거기서 저는 속으로 부르짖었죠. "유레카!!"라고 말이죠. 그리고 그 때 그 기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ㅎ
20. 결국 사칙연산도, 로그도, 미적분도 전부 "약속"이었던 거란 걸 그 때 알았어요.
ㅡㅡㅡ
(별건)
방금 최강욱 대표가 포스팅하신 분노에 관한 글(정동칼럼)을 보고, 한 마디 하고 싶어 별건으로 씁니다.
"20대는, 조민양의 표창장에 대해선 그렇게 분노했으면서, 곽상도 아들의 50억과 장제원 아들의 포르셰에 대해선 왜 분노를 안 하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20대가 진보이건 보수이건 무슨 억하심정으로 조국 장관과 정경심 교수와 조민양에게 분노했겠습니까?
공정이란 약속이 깨진 것에 대한 분노였던 것이죠.
입시부정은 곧 불공정이고, 조국 일가가 그 약속을 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국 일가에게 분노했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조국일가는 약속을 깨지 않았습니다.
'불공정한 입시제도'가 암묵적으로 용인되는 사회적 약속인 것이었던 거죠. 결코 조국일가가 반사회적 행위를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분노의 화살은 '불공정한 입시제도와 행태'가 과녁이 되었어야 했는데, 조국 일가는 '빗나간 화살'에 맞게 된 겁니다. 분노의 화살이 빗나가게 한 주범은 조중동이죠. 김기현처럼 비틀고 휘게 해서 말이죠.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몰고갔던 겁니다.
노엘과 곽병채엔 왜 분노하지 않는가? 그건 개인 일탈의 불법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자기와는 별 상관을 못 느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오히려 이 문제가 공인이 사적 비리에 관여한 개인 비리의 결정판이었는데 말입니다.
입시는 화살이 닫는 가까운 곳에 있고, 뇌물은 너무 멀리에 광범위하게 있어 쏠 대상이 마땅치 않았고, 무엇보다 '청년 공정의 약속'을 깨뜨린 것은 아니라고 본 것일 겝니다.
ㅡㅡㅡ
21. 다른 건 어떨까요? 도덕과 윤리도 역시 약속입니다. (과학에 대해선 뒤로 미룹니다)
22. "의 친 별 서 신", 알고 계시죠? 삼강오륜 중에 오륜만 떼어냈습니다. 현대에도 통용되는 약속들입니다.
23. 뜻풀이는 생략하고, 부부유별 하나만 언급하겠습니다.
24. 오늘날 여성의 시각에서 상당히 불편한 약속입니다. 안사람과 바깥사람으로 구별되어지는 게 남녀차별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차별의 약속'이 된다는 거부감 때문입니다.
25. 그러나 한편으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은 거부감 없이 읽습니다. 좀 모순이죠?
26. 저는 그 차이를 모르겠습니다. 남녀평등이 맞을까요, 남녀공정이 맞을까요?
27. 이런 모순되는 관점이라면, "여자도 군대를 가야 한다"라는 주장은 그치지 않고 계속 될 것 같습니다.
28. 차라리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정의의 원칙을 따르는 게 맞다고 봅니다. 각자 자기가 더 잘 할 수 있는 것을 간섭없이 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29. 무조건 기계적으로 남녀평등을 주장한다거나, 가짜미투를 성행시킨다거나 한다는 것은 결국 서로간에 적대감만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즉,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를 더 증폭시키는 셈이죠.
30. 일단 마무리하겠습니다. 도덕규범이나 윤리규칙은 결국 약속입니다.
31. 상식도 역시 약속입니다. 따라서 몰상식과 파렴치는 약속을 깨는 행위가 됩니다. 과거에는 국지적 국한적 상식이었겠지만, 지금은 과학을 담보한 보편의 수준가까이에 이르는 상식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절대 우습지가 않습니다.
32. 종교도 약속입니다. 성경의 "말씀"은 "진리의 말씀"이고 약속의 형태로 표현됩니다. "구약" 혹은 "신약"으로.
33. 불경도 부처님의 말씀이며, 역시 약속입니다.
34. 정치도 경제도 약속입니다. "공약" "신뢰" "신용"이란 단어들이 모두 약속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35. 이렇게 볼 때 약속 아닌 것을 찾아보기가 거의 불가능할 지경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약속의 세계' 안에 들어 있다고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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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다시 "세계관"으로 돌아오겠습니다.
37. 단순히 그저 세계관이 다르다는 상투적인 생각을 펼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38. 집안에서 옳은 것이, 집밖에 나가서는 거짓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전제합니다. 즉, 같은 참(진리)인데 어떻게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하는 것을 보여드리려 합니다.
39.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바깥에 나가서도 샌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거꾸로 뒤집어서 말하면(대우), 사회에서 바른생활사나이라면, 가정교육이 참 잘됐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40. "참고로, 바깥에서 개차반은 집에서도 개차반일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41. 비근한 예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보십시오. 조국 장관 일가에 대해서는 무자비하게 도륙하다시피 한 가정을 박살냈지만, 자기 처와 장모에게는 그렇게 자비로울 수가 없습니다. 불법적 청부고발을 하면서까지요.
42. 한 가지 예를 더 든다면, 주호영 국짐당 원내대표는 공개석상에서 "문재인이"라고 막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제가 이런 독설을 퍼부은 적이 있지요. "주호영이는 집에가서 자기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않고 주00라고 이름을 부르는 개쌍놈이냐?"라고 말입니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문재인 대통령은"이라고 호칭해야 마땅한 것이기에.
※ 대우(對偶 contraposition)
: "p이면 q이다"라는 명제에 대하여, "q가 아니면 p가 아니다"라는 명제로 나타낸다. 어떤 명제가 참이면 그 대우도 반드시 참이다. (대우에 의한 증명)
43. 닫힌 세계(연역세계) 안에서는 진리값의 변동이 없지만, 열린 세계(귀납세계)에서는 변동이 있고 변동이 클 때도 있습니다.
44. 가령 질병을 매개로,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절대법칙이란 건 없습니다. 의사의 경험과 노하우가 개개인별로 다르므로, 흔히 말하는 명의(名醫)란, 경험이 많아서 잘 고친다는 의미가 됩니다. 병원에 가면 반드시 낫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허준의 '동의보감' 역시 경험의 축적물입니다. 현대의학도 거의 대동소이합니다. 이것이 열린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45. 연역은 "증명"하는 데 쓰이고, 귀납은 "설득"하는 데 쓰입니다.
46. 진리가 하나라면 굳이 설득할 필요가 없습니다. 설득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각자가 다른 진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해서 서로 다른 것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젠 "믿음"의 문제로 넘어가야 합니다. 즉, "믿음의 세계"로 여러분은 들어오시게 됩니다.
47. 앎(인식, 지식)과 믿음 사이에는 간극이 있습니다. 이 간극이 크면 혼란이 자주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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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믿음을 기반해서 앎을 구성하시는 분도 계시고, 앎을 통해서 믿음을 가지시는 분도 계십니다.
49. 전자의 경우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서이고, 후자는 모든 것이 설명가능하다라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50. 우리가 사는 세계는 앞서 말했듯이, "약속의 세계"입니다. 그 약속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을 뒷받침해주는 지식(앎)이 "세계"를 구성한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51. "세계" "약속" "믿음" "지식".. 결국 이 네 개의 단어가 핵심입니다.
52. 이에 대한 수많은 질문들을 던질 수 있습니다.
ㆍ세계가 있다면 어떤 세계냐?
ㆍ세계를 어떻게 어디까지 알 수 있느냐?
ㆍ세계는 원래 있는 것이냐, 우리가 만든 것이냐?
ㆍ세계가 주는 약속을 우리는 반드시 지켜야하느냐?
ㆍ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어디까지가 한계인가?
53. 우리의 지식체계는 약속체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세계가 준 약속은 인과법칙이고, 우리 스스로 만든 약속들은 도덕법칙이거나 종교적 신념이거나 예술적(미적) 조화와 균형입니다.
54. 우리가 무엇을 우선으로 생각하든, 진리의 약속과 믿음은 버릴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55. 그 진리를 찾으려는 최초의 노력이 서양에서는 소크라테스에게서부터 시작됩니다.
56. 그 이전의 탈레스에서 데모크리토스까지는 그저 일방적인 설명이었을 뿐이고, "대화법"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방법"으로 개발했습니다.
57. 대화법은 곧 '질문과 대답'입니다.
58. 이 질문과 대답의 방법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지금의 '연역법과 귀납법'으로 자리잡았습니다.
59. "학문", "철학", "과학"이란 말들은 "방법"이란 말과 '동의어'로 이해하셔도 됩니다.
60. 참고로, 그 유명한 헤겔의 변증법, 마르크스의 유물변증법, 키에르케고르의 질적변증법 등의 시조는 앞서 말한 소크라테스의 "대화법(변증론)"입니다.
61. 또한 역시 참고로, 연역법의 시초인 삼단논법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귀납법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2천년이 지난 근대에 와서 '베이컨'이 체계적으로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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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건2)
'조사'와 '수사'의 차이 : 조사는 '진술'을 듣는 것이고, 수사는 '물적 증거(물증)'를 찾는 일입니다.
진술'과 물증이 일치하면 '기소'를 하는 것이고, 그것이 범죄사실에 대한 '유의미성'을 찾는 것이 '판결'입니다.
언론과 방송은, 유의미한 증거와 증언이 발견되고, 50% 이상의 확신이 들었을 때, 기사나 보도를 통해 국민에게 알립니다.
반대 증거, 즉 반대의 진술이나 반대 물증을 숨기고 감추거나 누락시켜서는 안 되는 이유는, 범죄사실을 은폐하려는 시도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자는 반드시 교차검증을 해야 하고, 검사는 진술에만 의존해서 기소하지 않고 필히 물증을 제시해야 하며, 판사는 자의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런 원칙과 상식을 무시하고 국민을 기만하려는 기자 검사 판사들은 마땅히 퇴출되어야 합니다.
국민은 그들에게 펜의 힘을 주고 수사권을 주고 판결봉을 주었지, 돈을 좇으라는 전관예우의 권리를 준 적이 없습니다.
대법원에서 권한남용으로 지목된 이두봉 검사의 유우성 보복기소는 단지 찌라시 기사 한 장만으로 기소를 했다고 하니, 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일입니까. 그런게 통용되어왔다라는 사실은 검사들의 불법행위가 계속 누적되어왔기에 감히 거리낌없이 이런 황당한 일들이 끊임없이 발생합니다.
이런식이라면 단 1%의 확률(개연성)만 있어도 수사하고 기소할 것이며, 없으면 고발을 청부(사주)해서라도 수사와 기소를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됩니다. 아니! 그렇게들 해왔습니다.
잘라내고 끊어내야 하지, 연고 몇 번 바른다고 달라지고 바뀌진 않습니다.
이두봉 같은 개검들을 100명 정도만 도려내도 크게 달라질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두봉은 즉각 파면해야 합니다. 검사 자격도 없고 인간 자격도 없는 자입니다.
공적으로 주어진 권한을 이용해서 사적인 감정 분풀이로, 무고한 사람을 7년 간 보복기소로 괴롭혔고 이제와 사과할 줄도 모르는, 버러지같은 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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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우리의 앎(지식)은 설명과 예측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식을 쌓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설명'과 '예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설명과 예측이 있어야 세상을 이해할 수 있고, 또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풍향계70)
63. 세계를 안다는 것은 "설명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대우증명'에 의해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세계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지레짐작만 한다는 뜻입니다.
64. 마찬가지로 미래를 안다는 것은 "예측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측할 수가 없기 때문에 미래가 불안한 것입니다.
65. 가령, 장님이 코끼리를 만진다고 했을 때, 단정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쉽게 00라고 판단해버립니다. 결과는 거의가 오판으로 끝납니다. 미래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눈뜬 장님인 것입니다.
66. 이 때에는, '지식(episteme)의 문제'가 아닌, '주장(의견doxa)의 문제'가 되어버려 논쟁(argue)으로 빠집니다.
67. 이유는, 사람들이 만진 부위가 코, 귀, 다리, 꼬리 등 각각 달랐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각기 다른 전제로부터 얻은 결론값이 달랐던 때문이지요.
68. 전체를 통으로 보지 못 하는 우리 지식의 한계인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지식이 특히 그렇습니다.
69. 내일의 주식값이나, 한달 뒤의 집값을 예측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측을 위해 설명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른바 속칭 '(통계)전문가'입니다.
70. 족집게 예언가로도 불리우는 주술사들의 예측은 어떤가요? 믿을 만한가요?
71. 믿음을 주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 이유는, 예측만 있지 설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증명할 길도 없고 반증할 길도 없습니다. 결국 '믿거나 말거나식'이 되어버립니다.
72. 포퍼(popper)는, 반증할 수 없는 지식은 지식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반증가능성의 원리, 연역주의)
73. 기적은 어떻습니까?
74. 100명 중에 100명이 맞추면 그건 기적이라고 말하지 않죠. 로또당첨처럼 100명 중 단 한 명이 맞아야 기적일 수 있습니다.
75. 그런데 한 명이 당첨되기 위해서는 99명의 희생을 담보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합니다.
76. 한 명을 천국에 보내기 위해 99명을 지옥에 보내야 한다면, 만일 그런 지식이 있다면, 여러분은 우리의 참지식으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77. 적군에게 포로로 잡힌 라이언 일병 한 명을 살리기 위해 99명을 죽음으로 내모는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78.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지식(진리)의 보편성'을 찾는 것입니다. 100명을 살리게 하는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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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진리를 "Yuji"시키는 것은 연역적 지식이고, 진리를 "발견"하는 지식은 귀납적 지식입니다.
80. 따라서 연역추리는 보존적 추리이고, 귀납추리는 확장적 추리(ampliative inference)가 됩니다.
81. 귀납적 형식의 추리를 하게 될 때, 전제들을 인정하더라도 결론을 부정하게 되더라도 "모순"이라고 하지 않고, 그저 "불합리하다"라고만 말합니다.
82. 연역 추리에서는, "타당하다(valid)"거나 혹은 "부당하다(invalid)"고 평가합니다.
※ 골치아프시죠? '79~82'는 대충 넘어가셔도 됩니다.
83.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 안에서 외쳤던 "유레카(eureka 찾았다)"에서 알 수 있듯이, '지식의 발견'에 쓰이는 추리 방법이 귀납법(induction)입니다.
84. 귀납으로 얻은 지식은 우연(개연성)에 기댈 수밖에 없으므로 확률적 지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85. 가령, "이 물은 80%는 믿을 수 있으니까 먹자!"는 식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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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건3)
조민양의 표창장 사건에서 임정엽 판사의 1심 판결(판단, 결론)은 연역적 추리에 의한 것일까요, 귀납적 추리에 의한 것일까요?
먼저 사족 좀 달겠습니다.
오랜 훈련을 통해서 격투기 선수는 두 가지 특징이 생깁니다. 하나는 직감 능력이 배양되고, 다른 하나는 교만함이 생깁니다.
즉, 상대를 딱 보고서도 나보다 세다거나 약하다거나 하는 판단이 섭니다. 선 자세를 보고도 주로 어떤 운동을 했고 특기가 어떤 건지도 파악합니다.
그런데 상대가 약하다고 판단하면 교만함이 싹틉니다. 그래서 경기를 내내 주도하다가도 크로스카운터 한 방에 KO로 지는 겁니다.
저에게도 그런 직감이란 게 있습니다. 논리학을 오래 공부하다보니, '논리적 직관'이란 게 생겼습니다.
임정엽의 판결을 보면서, 직감적으로 "아, 저건 엉터리야!"라는 생각이 든 겁니다.
이제부터 제 직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보려 합니다. 임정엽의 교만함을 발가벗겨서 드러내보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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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건4)
임정엽을 밟기 전에, 간단하니까 우선 김웅부터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조사(대면조사)는 '진술'을 듣는 것이고, 수사는 증거를 찾아 추론을 통해서 '진술의 신빙성'을 얻는 것이고, 판결은 진술과 증거가 범죄사실에 '유의미성'을 어느정도 갖는가를 판단하는 것이라 이미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여기서 진술이 유의미성을 갖기 위해서 '명제화 작업'이 들어갑니다. 명제란, 유의미한 진술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밥 먹은 걸로 기소할 순 없으니까요. 몇날 몇시에 누구랑 밥먹었는지가 의미있는 진술입니다.
우리는 "침묵"으로부터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습니다. 단지, "지금 침묵한다는 건 동의하신다는 뜻이죠?"라는 식의 자기 해석 밖에는 얻는 것이 없습니다. "청부고발"사건에 있어서, 손준성 같은 경우가 그렇고, 핸드폰을 없애버리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한편으로 비밀번호 숫자 20자리 때문에 핸드폰을 풀 수 없다는 웃기는 경우가 한동훈의 경우입니다.
그러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김웅의 경우는 어떨까요.
뇌를 뜯어볼 수도 없고 역시 난감합니다.
하지만 "침묵"의 경우는 바늘 들어갈 틈도 안 생기지만, "기억 못함"의 경우는 약간의 틈이 있습니다.
마침 김웅 자신 스스로가 그 틈을 열어주었습니다.
김웅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라는 말에 대해 자꾸 이야기하는데 제가 기억하는 바에 의하면 검찰은 아닌 것 같다"[진술2]
이 말은 곧, "기억나지 않는다"[진술1]는 앞의 진술이 거짓이었음을 증명해줍니다.
[진술1]과 [진술2]를 얻었으니, 이로부터 추론이 가능해졌습니다.
명제란, 즉 의미있는 진술이란, "참과 거짓을 나타내는 문장"이란 뜻입니다.
[진술2]를 명제화시키면, "어떤(some) 기억은, '저희'는 검찰이 아니다"가 됩니다.
이를 다시 두 개나 혹은 세 개의 '분석명제들'로 나눠야 되지만, 전문적 영역이기에 여기선 일단 생략하고, 김웅에게서 일단 가능성이 생겼고, 수사 과정에서 여러 물증과 추론을 통해 유의미한 증거를 찾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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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연역과 귀납에 관련해서, "필연"과 "우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87. '필연관계'를 우연관계에 대입하려는 생각이 연역법이고, '우연관계'를 필연관계로 파악하려는 생각이 귀납법입니다.
88. 가령,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사실은 판단에 있어서, 우연적 결과입니까 필연적 결과입니까?
89. 또 하나, 부모와 자식 관계를 천륜이라 하고, 부부 사이를 인륜 관계라고 합니다. 부부 사이에서는 이혼을 통해서 서로 남남이 될 수 있는 우연관계이지만, 천륜은 끊을 수 없는 필연의 관계라고 여기는 것이 일반 상식입니다.
90. "필연"의 "연"은 '그럴 연'으로, 필연은 "반드시 그렇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그렇다는 겁니까? "관계"가 그렇다는 뜻입니다.
91. 그렇다면 "우연"은? "그럴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 "그럴 개연성이 있다" "그럴 확률이 높다"라는 의미입니다.
92. 대명제 "모든 사람은 죽는다"에서, 예외가 생긴다면 이 명제는 필연이 아닌 우연적 속성을 지닌 명제이거나, '거짓명제'가 됩니다. 왜냐하면 어떤(some people)이 아니라 모든(all people)이라고 했으니까요.
93. "예수님은 부활하셨다"라고 말하거나, "환생"이라는 단어를 언급할 수는 있겠지만, 참이나 거짓으로 판명(clear & distinct)할 수 없는, 즉 증명되지 않는 주장은 배제됩니다.
94. 같은 동영상을 보고, 엄마가 "저건 내 딸 조민이야"라고 말한다면, 이 진술은 필연관계로부터 도출된 판단이라고 봐야 하고, 친구나 동기가 "조민이 아닌 것 같다"라고 하는 것은 우연관계에서 도출된 판단입니다.
95. '죄와 벌'이란 관점 이전에, 남의 자식을 자기 자식이라고 말하는 부모는 없다는 것입니다.
96. 지혜의 왕 솔로몬의 판결에서도, 자식을 칼로 반으로 갈라 베어서 나눠가지라는 판결에 "내 자식이 아닙니다. 저 여자에게 주십시오."라고 외치는 친모는 필연관계의 무서움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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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건5)
표창장을 위조했고, 인턴활동을 허위로 만들어서, 대학에 제출했기 때문에, 입시생들에게 피해를 주었고, 대학입시업무를 방해하였다.
1. 표창장을 위조했다.
2. 봉사활동기록을 허위로 기재했다.
3. (위조된) 표창장과 허위 인턴활동 기록을 대학에 제출했다.
4. 다른 입시생들에게 피해를 주었다.
5. 대학입시업무를 방해하였다.
여기서는 팩트(사실)의 진위 여부를 가리지 않고, 추론 형식과 추론 과정만 보겠습니다.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말은, 반론이나 반박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따지지 않겠습니다.
다만 연역적 타당성과 귀납적 합리성(정당성)만 봅니다.
(전제1) 거짓 표창장을 제출하면 입시업무에 방해를 준다.
(전제2) 표창장은 조작됐다.
(결론) 그러므로 입시업무를 방해했다.
가언적 삼단논법에서의, 전건긍정판단으로 타당한 추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전제1)의 가정 자체입니다.
입시업무에 방해를 주는 수많은 요인들 가운데서, 표창장과 봉사활동 기록이 주요 요인이 되느냐 하는 문제점 때문에 저 가정은 일반적이지 않고 따라서 가정 자체가 불완전합니다.
성적을 위조해서 제출하면 입시업무를 방해한다.
이것은(이 전제는) 가정이 성립합니다. 왜냐하면 "반드시" 그렇기 때문이죠.
가령 이렇게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1) 비가 오면 땅이 젖는다.
(2) 소방차가 왔으니 불이 난 거다.
(1)은 필연적 관계로 가정이 성립하지만, (2)는 우연적 속성을 전제로 삼았기에, 가정 자체가 성립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연역적 추론은 아예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습니다.
가령,
ㆍ미니스커트 길이가 짧아지면 경기가 좋아진다
ㆍ미니스커트 길이가 짧아졌다.
ㆍ그러므로 경기가 좋아진다는 신호다.
이런 추론도 있겠으나, 이런 건 의류생산자나 할 수 있는 추론이지, 판사가 할 추론과 판단은 아닌 것이다.
그럼 다음으로 귀납적 추론을 살펴보겠습니다.
입시업무방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관찰과 엄밀한 실험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즉, 충분한 사례들 조사의 관찰과, 입시제도라는 구조적 특성의 이해와 "시대적 조건"과 "상황적 조건"이라는 실험적 요소가 충족되어야 합니다.
귀납적 진리는 "확률적"이고 "통계적"입니다.
표창장과 봉사활동기록이 입시방해에 얼마만큼의 확률적 크기를 지니는지를, 아무런 사례 조사와 구조 검토 없이, 그저 지레짐작으로 판단합니까?
만일, 표창장이나 봉사기록이 아니고, "성적표"였다면, 99% 이상의 확률로 입시업무방해의 요인이 되겠지만 말입니다.
증거로서, 우연관계의 주관적 요소와 필연관계의 객관적 요소 둘 중 무엇이 평가에 우선한다고 보십니까?
입시 요강에 따라 다르지만, 거의 모든 대학이 성적이라는 객관적 평가를 우선하지, 봉사활동기록, 표창장, 면담기록을 우선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1심 판사 임정엽의 추론은 연역적으로 타당하지도 않고 귀납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팩트의 진위 여부와는 전혀 상관없이!!
ㅡㅡㅡ
(별건6) ㅡ "사실관계"에 대해서
"사실관계를 확인해보겠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그냥 "사실을 확인해보겠다"고 하면 될 것을요.
즉, "관계"를 들여다보겠다는 뜻입니다.
팩트와 팩트 사이에 어떤 관계(연관성)가 있는지 추론해보겠다는 것입니다.
전후관계, 상관관계, 인과관계, 논리적 관계 등을 말이죠.
이것은 순서대로입니다. 그리고 논리적 관계는, 연역적 추론이나 귀납적 추론 둘 중 하나겠네요.
ㆍ누가 먼저냐(누가 지시했냐) ㅡ 전후
ㆍ경제공동체냐 아니냐 ㅡ 상관
ㆍ뇌물이 오갔냐, 댓가성이 성립하냐 ㅡ인과
ㆍ뇌물과 로비가 어디까지 이어졌냐 ㅡ논리추론
... 하는 순서로 말이죠.
팩트는 전제도 되고 결론도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팩트가 진위도 중요하지만, 팩트로부터 추론을 통해 결론에 도달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팩트"와 "관계", 이로부터 진실을 얻게 됩니다.
가령, A란 집합의 원소에 a와 b와 c가 있다고 했을 때, a와 b와 c의 관계를 아무리 따져봐도 그 의미를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a와 A의 "포함관계" 역시 판단해야 합니다. 그래야 a의 속성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가령, 청부고발(고발사주) 사건에서도 역시, 손준성이나 김웅과, 윤석열과의 "관계"(검찰조직관계와, 수정관의 의미나 성격 내지는 밀도 등)를 보아야 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야당(국민의힘)과의 유착관계도 판단해야 합니다.
작년 12월 1일에 있었던 일을 다시 상기해 봅니다.
추미애 장관이 윤석열 총장을 징계하려 했을 때, 윤석열은 징계취소 행정소송을 했고, 당시 행정법원은 잠정 결론으로, 징계가 윤 총장에게 심각한 손해를 입힐 수 있다는 취지로 용인해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제가 올린 글을 다시 상기해보면,
칼을 든 범인으로부터 칼을 뺏든가 말든가 결정을 해야 하는데, 판사는 "칼을 왜 최소한으로 뺏지 않느냐"고 판단하는 꼴이라고 반박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의 추 장관으로서는, 징계냐 아니냐의 두 판단 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나마 2개월 징계 뿐이었습니다.
상급자인 추 장관과, "나는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윤 총장 사이의 관계에서, 당시 판사의 판단이 옳지 않았음을 이 번 기각 판결로서 입증되었습니다.
사건(징계여부)의 절차만 판단한 것이지, 실체적 판단은 나중으로 미룬다는 것이, 결국은 범인으로부터 "칼은 뺏지 않고 그대로 둔다"라는 판결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현재적 위험 제거'가 우선입니까, '위험한 범인의 잠재적 손실'이 우선입니까? 법 절차적으로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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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건7)
※ 당시의 제 반박글인데 참고로 덧붙입니다.
[2020년 12월 3일 - kjm]
지금 막 조미연 판사의 판결문을 읽어봤습니다.
판사 출신인 이탄희 의원의, 앞뒤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지적과 비판 말고도 혹시 또 다른 점은 없나 하고 열심히 읽었습니다.
법학을 전공하지 않아서, 읽는데 많이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래도 열심히 읽었습니다.ㅎㅎ
제가 발견한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법무부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지휘.감독권은 최소한으로 행사해야 한다."'는 점에서 걸렸습니다.
장관의 총장에 대한 견제 수단은 징계권 딱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징계 수단은 직무배제나 직무정지로 역시 다른 수단도 없이 딱 하나입니다.
1/2만 견제하거나 1/3만 견제하는 다른 수단이 없습니다.
쉽게 말해서, 칼을 불법적으로 휘두른다는 범죄 혐의자가 칼을 들고 있는데, 1/2만 위험하니, 칼을 1/2만 뺐는다던지, 1/3만 위험하니, 1/3만 뺐는지, 할 수가 없습니다.
뺐던지 그냥 두던지 양자택일만 있습니다.
그게 바로, 직무배제와 직무정지라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다른 수단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 부분에서 조미연 판사는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결과적으로, 장관의 징계 권한을 조미연 판사는 잘못된 판단으로 부정한 셈이 된 것이죠.
그럼으로써 조미연 판사는, "'칼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느냐 없느냐의 '위험성'은 따지지 않겠다"', 다만 칼을 완전히 빼았는 것은 안 된다."라고 판단한 겁니다. 즉, "그냥 칼을 들게 놔뒀어야 하고, 장관에겐 칼을 뺐을 권리가 없다", "왜 "'최소한으로"' 뺐지 않았냐?"라고 말한 셈입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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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기실, 수학과 논리학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98. 완벽하다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는 뜻입니다.
99. 가장 논쟁적인 학문이 "철학"입니다.
100. 그런데 수학과 논리학에도 철학이 들어가 있습니다. 숨어 있습니다.
101. "집합론"을 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102. 집합론의 "공집합"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수(數)로 표현하면 "0"입니다.
103. 가령, "미국의 여왕"이나 "유니콘"같은 개념은 똑같이 공집합입니다. 즉, 원소가 없다는 뜻입니다. 숫자로 표시해도 똑같이 "0"입니다.
104. 하지만, 미국 여왕과 유니콘을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없지 않습니까?
105. 그래서 이런 문제는 논리나 수학의 영역이 아니라, 철학의 영역으로, "인식론"에서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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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지금까지 "세계" "믿음" "약속" "지식" "관계"에 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정리하고 넘어갑니다.
ㆍ연역세계와 귀납세계 : 닫힌 세계와 열린 세계
ㆍ앎과 믿음 : 무엇이 우선인가 사이에서의 고민
ㆍ약속의 세계 : 지식체계=약속체계
ㆍ지식 : 설명과 예측
ㆍ관계 : 필연과 우연
107. "신화의 세계"로부터 시작해서, "철학의 시대"를 거치고, 다시 "종교의 시대"를 거쳐, "과학의 시대"로 들어서다가, 또다시 "정보의 시대"에 이른 우리의 세계는 시대마다 다른 옷을 입었었지만, 하나의 공통은 '지식 체계의 구축'이라는 점입니다.
108. 한 시대와 다른 한 시대가 완전히 끊긴 것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이 이동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109. 끊긴 것은 세계가 아니라,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입니다.
110.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세계는 이어지지만, 우리의 인식은 끊어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111. 부모와 자식을 나누고, 다시 형제를 나누고, 사촌과 팔촌으로 확장해나가는 것, 그리고 다시 혈족과 지역을 구분하고, 학연과 지연을 형성하는 것들은, 우리가 끊어서 생각한다는 증거입니다.
112. 그로부터 다름(차이)이 생기고, 다시 차별로 변질되고, "다름"이 "틀림"으로 왜곡되는 현상을 낳습니다.
113. 어떤 분은 대기권 밖으로 누리호를 쏘아올리지만, 어떤 사람은 손바닥에 '왕'을 새기고 다닌다는 것을, 모두 함께 이해하시려면, "인식의 세계"는 똑똑 끊어 놓더라도, "세계"는 중심 이동만 했을 뿐, "세계"는 "여여하다"는 것입니다. 즉, 끊기지 않고 항상 그대로라는 겁니다.
114. 다음은 '정보의 세계'에서 인공지능(AI)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ㅡㅡㅡ
(별건8)
복수의 세계 (드라마 : "마이네임")
남자(전필도)와 여자(지우)가 있습니다.
삶과 죽음의 선택에서, 여자는 아빠의 복수를 위해 죽음을 선택하고, 남자는 삶을 선택하고...
여자를 사랑하게 된 남자는 여자를 따라서 선택을 죽음으로 바꿉니다.
경찰과 조폭과의 전쟁.
조폭(최무진)은 조폭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죽거나 죽이거나"
오로지 복수를 위해, 조폭으로 길러져서 경찰(마약반)로 위장해 들어간 지우.
자기가 가는 길의 끝이 죽음이란 걸 압니다. 그리고 아빠를 죽인 범인을 죽여야만 합니다.
범인은 누구인가?
마약반 팀장인가, 동춘파 보스 최무진인가?
지우는 누가 범인인지 모릅니다. 단지 둘 중 하나라는 것만 알 뿐.
가장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둘 다 같이 죽이면 끝납니다.
복수(목적)는 성공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람의 세계가 아니라, 짐승의 세계인 거겠죠.
과연 지우의 선택은?
결국 범인을 알아냅니다.
그런데 복수의 댓가는?
괴물!
ㅡㅡㅡ
(별건9)
청부고발사건의 몸통은 윤석열이다..!!
1. 연역추리와 귀납추리의 오묘함 : 서로 배척하지 않는다!
ㆍ비가 오면 땅이 젖는다. (가언판단)
ㆍ땅이 젖었다.
ㆍso 비가 왔을 것이다.
이 추론은 부당한 추론입니다.(후건긍정의 오류)
2. 그런데, 연역적으로 부당하다라고 해서 이 추리가 무조건 배격되지는 않는다라는 사실! : 귀납적 추리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땅이 젖는 '경우의 수'를 따져보면 됩니다.
(1) 비가 온 경우
(2) 소방차가 다녀간 경우
(3) 옆집에서 물을 뿌린 경우
(4) 외계에서 우주인이 물총을 쏜 경우
위 네 가지의 경우 중, (4)는 비현실성을 감안했을 때 배척 사유가 됩니다.
(2)와 (3)은 조사나 수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와 (3)과 (4)를 배제시키면 남는 것은 오직 (1) 뿐이게 됩니다.
3. 연역추리가 아닌 귀납추리이기 때문에 "항상 참"은 아니지만 "그럴듯한 참", 즉 "참일 확률이 매우 높은" 결론이 됩니다. :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서 도저히 추론이 불가능하지 않다면, 연역추리 결과에 준하는 값을 얻게 됩니다.
4. 여기서 "애매"와 "모호"의 문제가 등장합니다.
어떤 문장(명제)가 애매하지 않고 또 모호하지 않다면 그리고 범주적 오류가 없다면, 그 명제는 귀납적 추론의 뒷받침에 의해서 "참"으로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5. 가령, 다음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ㄱ) "철수는 영이보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ㅡ 이것은, "영이가 좋아하는 만큼보다도 더 좋아한다"와 "영이냐 아이스크림이냐를 비교했을 때 아이스크림이 더 좋다"는 두 가지 의미가 동시에 들어 있는 문장입니다. 즉, 애매(ambiguous)의 오류가 됩니다.
ㄴ) "대화는 가능한 최저 수준으로!" (도서관 표어)
ㅡ 이 경우는, '최저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그 기준이 모호합니다. 즉, 명확하게 가리키지(적시摘示) 못할 경우를 가리켜 모호(vague)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애매한 것을 명석(clear)하게 하고 모호한 것을 판명(distinct)하게 하면 문제가 없습니다.
ㄷ) 대학을 방문했을 때, 도서관, 강의실, 사무실, 운동장 등을 두루 살펴본 후, “그런데 대학은 어디 있지요?”라고 묻는 경우.
ㅡ 이것은, 범주착오(category mistake)의 오류로서, 같은 범주에 속하지 않은 것을 같은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데서 빚어지는 오류입니다.
6. 청부고발의 몸통
ㆍ"손준성 보냄" 텔레그램
ㆍ김웅과 조성은씨의 통화녹취 내용
ㆍ국짐당 내 정점식의 고발장 작성 혹은 작성지시
ㆍ수정관(수사정보정책관실)의 존재 이유와 성격
ㆍ손준성 권순정 한동훈의 카톡방 대화 및 그 시기
ㆍ최강욱 대표 고발장 8월 제출
ㆍ다른 미제출 고발장들
ㆍ고발장 작성자와 작성 경위
ㆍ고발장 내용에, 윤석열 한동훈 김건희 최은순 포함
ㆍ특정인(한동훈 이동재)을 제외하고 알 수 없는 사실 적시
ㆍ유튜버들 사찰 이유
ㆍ판사 사찰 작성(손준성) 문건들 처리 과정
ㆍ민간인 사찰
ㆍ기타등등
이것들 모두가 가리키는 것은 단 한 사람 "윤석열" 밖에는 달리 없다는 것. (귀납추리의 결과)
7. 연역추리도 가능할까?
ㆍ청부고발은 윤석열 검찰총장이라야만 가능하다.
ㆍ청부고발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다.
ㆍtherefore 윤석열 총장은 개입 안 했을 수가 없다.
ㅡ 전건긍정. 따라서 타당한 추리
단, "청부고발은 윤석열 총장이라야만 가능하다"라는 명제(전제)만 성립한다면 말입니다.
8. 철학 명언 하나
어떤 도둑이 나의 지갑을 훔쳐 그것을 소유할 수는 있다. 그러나 도둑이 합법적으로 내 지갑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그가 내 지갑을 훔칠 힘과 솜씨를 가진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진정한 의미의 권리는 '힘이 멈출 때 소멸되는 권리'여서는 안 된다.
ㅡ [철학사전]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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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정보의 세계"가 어떤 세계인 지 알기 전에 '"세계"에 대한 정보'를 먼저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116. 우리는 모든것들을 학문적으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117. "학"(學학문), "론"(論이론), "설"(說설명), 해(解해석)는 각기 다릅니다.
118. 과학, 화학, 생물학, 천문학 등은 그 자체로 완전체이지만, 창조론, 진화론, 상대성이론 등은 언제든지 반론과 반박이 가능합니다.
119. 그리고 설명은, 설명의 방식이 너무나 다양해서 "이거다"라고 하나만 딱 짚어서 정의내리기 어렵습니다. 다만 과학적 설명이 가장 정확하다고 알려져 왔습니다.
120. 한편 해석은, "의미"를 무엇에 두느냐의 차이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에 설명보다도 훨씬 다양합니다. 가령, 그리스로마신화에 대해서는 신화적 설명이 아니라 신화적 해석이 되는 겁니다.
121. 학문이던, 이론이던, 설명이던, 해석이던, 모두가 "세계"에 대한 지식입니다.
122. 세계는 인간을 닮았을까요?
123. 처음엔 그랬습니다. 세계관이 "의인관"에서 출발했으니까요.
124. 그래서 초기엔 인간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활발했습니다. 지금도 심리학이나 정신과학의 연구는 지속되고 있습니다. 관상, 주술 등도 여전히 존속합니다.
125. 세계에 대한 지식은, 그것이 올바르고 정확할 때 "진리"라고 불리워지고, 진리를 뒷받침해줄 팩트(사실, 사실 증거)를 갖추게 되면 "진실"이라고도 불리웁니다.
126. 가령, 엄마가 자식에게 불량식품인 줄 모르고 과자를 먹였다면?
127. 진실은 유보되지만, 엄마의 지식과 행동은 옳은 것(진리)인 것입니다.
128. 언론이란 게 뭘까요? 입으로는 진실을 추구한다고 말하지만, 불량식품인 줄 모르고 과자를 먹여야만 하는 엄마의 자식에 대한 사랑에 대한 단 한톨의 고민도 없이, "엄마가 자식에게 불량식품을 먹였다"라고 기사를 쓰는 게 과연 언론의 사명일까요?
129. 의인관을 떨쳐내고, 세계를 똑바로 보고자 과학이란 도구적 설명이 등장했습니다.
130. 그러면 "과학적 지식은 절대적인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131. 多神의 이야기식 설명에서, 一神으로 통일을 꾀했다가, 神을 매개로 하지 않고, 自然 있는 그대로 세계를 알고 또 이해하고자 했습니다만, 그 지식은 과연 믿을 만한가 하는 문제가 다시 발생합니다.
132. 여기서 다시, 지식의 문제에서 "정의(定義)"의 문제로 넘어가게 됩니다.
133. "서로 떨어진 두 개의 선분이 같은가 다른가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definition)의 문제이다." (한스 라이엔바하, '시간과 공간의 철학')
134. 가령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반도체를 누가 가장 많이 생산할 수 있는가"의 문제보다, "반도체에 대한 定義를 누가 가장 먼저 내리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135. 즉, 기준 세우는 것을 가장 먼저 선점한 나라가 반도체 산업을 선도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부수적으로는 가장 많은 돈을 벌게된다는 것이죠.
136. 미국과 중국이 특허권, 지적재산권 등을 중요시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137. 비트코인(가상화폐)도 역시 누가 먼저 定義를 내리고기준을 세운 나라가 "가상화폐(新화폐, 디지털화폐)의 세계"를 지배하고 주도하게 됩니다.
138. 드론(drone) 역시도 그렇습니다.
139. 이제는 저만의 레토릭(rhetoric)이 되어버린, "나는 기준으로 생각하고, 전제로 말한다"가 바로 그런 의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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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너는 너고 나는 나야. 너는 그냥 있어 나는 내 갈 길 갈테니까"라고 말한다면 서로 남남이 되어 관계가 끊어지게 된다는 겁니다.
141. '세계와 나' 사이에서 이런 일이 생긴다면, "독선"이 됩니다.
142. 독선(獨善 self-righteous)이란, 자기중심적이어서, 자기만 옳고, 자기만 착하고, 자기만 정의롭고, 자기가 제일 똑똑하고, 자기 판단만이 공정하다는 생각이나 태도입니다.
143. 이런 독선적 생각이 세계와 만났을 땐 기후위기에 닥치게 되고, 다른 사람과 만났을 땐 차별과 억압이 나타납니다.
144. 우월한 내가 열등한 상대를 지배하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45.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갑질이 되고, 착취가 되고, 폭력이 되어 나타납니다. 마치 매일매일 밥먹는 일처럼, 너무 쉽게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함부로" 대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종내에는 습관처럼 되어버립니다.
146.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신다면, 우리 인간도 역시 세계를 그렇게 함부로 대해선 안 되며, 따라서 세계를 "이해"하려고 해야만 합니다. 또한 이해를 충분히 하기 위해서는 "설명"도 꼭 필요한 것입니다.
147. "설명", "예측", "이해"는 따라서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식 체계를 이룹니다.
148. 설명은 예측을 낳지만, 해석은 억측을 낳게 됩니다.
149. 이것은, 세계를 바로 보기 위해서는 해석보다 설명이 더 필요한 이유입니다.
150. 세계는 우리의 사는 집과도 같습니다. 안락과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곳인 셈이죠.
151. 낯선 곳에 처음 가면 예측하기 어려운 돌발상황과 위험이 있을 수 있기에 불안합니다. 하지만 집 안으로 들어서면 세발짝 걸으면 왼쪽에 뭐가 있고, 천장 높이는 얼마이면, 식탁 의자 오른쪽 모서리가 닳았다는 사실 등을 모두 알기에 익숙하고 안전하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152. 타인과 대화하면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모르기에 불안하고 긴장하지만, 오랜 친구나 가족을 만나 얘기하면 안심하고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습니다. 대화하다 갑자기 주먹이 날아오는 경우도 없습니다. 거의 모든 것이 예측가능하고 설명가능하고 이해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이죠.
153. "세계관", 그것은 우리의 "지식체계" 안에 있습니다.
154. 세계를 탑다운 방식으로 이해하면 연역세계가 되고, 보텀업 방식으로 이해하면 귀납세계가 됩니다.
155. 한편으론 창조론과 진화론으로도 대비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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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옛날과 달리 오늘날은 수많은 정보들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세계에 대한 정보들입니다.
157. 이 정보들에 대한 민주주의적 통제 방식의 여부도 관심이려니와, 자본주의적 사고로 정보와 돈을 연결지으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습니다.
158. 정보들의 적절한 통제와 적당한 의미 부여는 곧 돈으로 바뀔 수가 있습니다.
159.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김선달 이래로, 오늘날 정수기시장과 더불어, 생수시장만 볼 때 우리나라의 경우 1조원대에 이르고 2년이 더 경과하면 2조원대를 훌쩍 넘기게 된다고 예상합니다.
160. 정보의 세계, 물의 세계, "시장"이라는 또다른 세계 등에 대한 생각들은 점점 깊어집니다.
161. 자유주의와 시장주의가 결합한, 자유시장경제란 세계에 관해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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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정책(政策)이란, 정치적으로 꾀를 낸다는 뜻입니다.
ㆍ 경제란?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이익을 얻는 것
163. 그러면 어떤 경제정책들이 있을까요?
164. 크게 둘로 나뉘는데, 신자유주의정책과 보호주의정책이 그것입니다.
165. 자유시장과 자유무역을 뼈대로 하는 자유주의경제는 18세기에 시작돼서 1870년경에 영국이 완성시킵니다.
166. 1차대전 이후에는 보호주의로 일시적으로 바뀌다가, 2차대전 이후부터 자유주의가 미국을 시작으로 다시 등장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1980년대에 신자유주의가 나타납니다.
167. 역사상 '경제위기'가 세 번 나타납니다. 1870년, 1930년, 1970년.
ㆍ1870년대 장기불황 ㅡ 식민지를 노린 제국 등장
ㆍ1929-1939 대공황 ㅡ 이후 대침체기
ㆍ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성장둔화+인플레)
168. 경제대공황의 원인은 아직도 모릅니다. 오죽하면 카오스이론까지 들이대려 했겠습니까.
ㆍ1929년 미국 경제공황이 1930년 세계대공황으로 발전한 원인.
169. 제국들은 약소국들을 식민지화하고 약탈하면서 자유무역을 강요했습니다.
170. 하지만 영국 자신은 1932년 보호무역주의로 선회합니다. 미국의 영향을 받았던 겁니다.
171. 교통과 통신 발달로 등장하게 된 "세계화"를 동반해서 1970년대에 "신자유주의"가 등장합니다. 민영화, 복지축소, 작은정부, 감세, 노동유연화 등을 주장하게 되는데, 영국 대처리즘과 미국 레이거노믹스로 대표됩니다.
172. 신자유주의의 그 진한 맛을 우리는 1998년 IMF위기 때 봤습니다.
173. IMF 캉드쉬는 마치 폭군처럼 신자유주의란 명함을 내밀며 우리 경제를 초토화시겼던 것입니다.
174. 동전의 앞면이 "성장"이라면, 그 뒷면은 빈부격차, 불평등, "양극화"인 겁니다.
175. "파이를 키운다"는 이른바 "경제성장"은, 시한이 정해지지 않은 관계로, 주욱 불평등과 불공정으로 한없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점점 더 심해집니다.
176. 기축통화인 달러가 갖는 의미는, 1달러 화폐를 발행하는데 3센트 들여서 97센트의 상품을 다른 나라들로부터 가져온다는 뜻입니다.
177. 이것이 미국이 계속 존속할 수 있는 이유이며, 이런 논리에 의해서라면, 부자는 영원히 부자로 남으며, 양극화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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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자유주의세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79. 스페인과 영국의 식민지에 불과했던 미국입니다.
180. 이들은 미국에게 그저 농업국가로만 남으라 했습니다. 특히 '국부론'의 애덤 스미스도 그런 충고를 했습니다.
181. 그런데 1791년 '해밀턴 프로그램'이 등장합니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발전프로그램이었습니다.
182. 이 프로그램은 30년이 지난 1820년부터 완벽하게 실행됩니다.
183. 해밀턴이 미국의 "위대한 설계자"였다면, 에이브러험 링컨은 "위대한 보호자"였습니다.
184. 링컨의 '보호 설계'는 등소평의 '흑묘백묘론'의 원조격이 됩니다.
185. 링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예를 해방시키지 않고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고, 모든 노예를 해방시켜야만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186. 링컨의 목적은 '노예해방'이 아니라 '미국의 산업(공업) 보호'였던 셈인거죠.
187. 당시의 미국은, 민주당이 자유무역을 주장했고, 공화당은 보호무역을 주장했는데, 남북전쟁의 승리로 링컨의 "보호주의정책"이 승리한 셈입니다.
188. 장하준 교수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우리의 역사적 경험들은 많지만, 이를 배우려 하지 않고, '지금의 부자 나라들이 자유무역과 자유시장 정책을 통해 발전했다'는 신화를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부자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들을 상대로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면서, 자유시장, 자유무역 정책을 강요해 왔다는 사실 역시 역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그러나 '사다리 걷어차기'보다 더 심각한 것은 '역사에 대한 건망증'이다."
189. 그런데 사다리를 걷어차지 않으면서도 성공한 유일한 사례가 있는데, 1947년 '마셜 플랜'이 그것입니다.
190. 전쟁으로 파괴된 유럽 경제의 재건을 위해 140조원을 투입한 이 마셜 플랜을 통해, 미국은 세계 경제의 새로운 주도권을 획득했고, 선진국들에겐 '자본의 황금기'(1950~1973)가 찾아옵니다. 개발도상국들 역시 좋은 성과를 얻습니다.
191. 무역의 양상은 3단계로 구분합니다.
"자유무역"의 첫단계로, '비교 우위'를 통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는 단계입니다.
"자국의 제조업 보호 전략"의 두 번째 단계입니다. 그러나 '상대적 우위'에 머물게 됩니다. 이땐 관세부과와 수출금지를 시행합니다.
세 번째는, '절대적 우위'를 점하는 단계입니다. 여기서는 상품의 교류가 보편화되고, '수출 금지'가 완벽해지면서, '강력한 통제'가 이루어집니다.
192. 일본이 우리에게 했던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금지는 일본 자신이 세 번째 단계에 해당한다고 착각해서 저지른 결과, 대실패로 끝났습니다.
193. 미국의 중국에 대한 무역의 압박과 통제는, 결국 '미래 산업에 대한 패권쟁탈전쟁'으로서, 반도체, 수소전기 배터리 등 '제4차 산업 혁명'과 1차적으로 관련이 있습니다.
194. 2차로는, 선도 기술 쟁탈, 지적 재산권 보호, 표준화 작업 우선 점유 등이 됩니다.
195. 그 외에, 식량 문제, 가스오일공급문제 등이 있습니다.
196. 또한, 금융거래에 있어서 규모의 위협에 대한 견제 심리도 있습니다. 환율, 금리 등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197. 중국이 자본력을 내세워 우리 반도체 기술자들을 빼돌리는 것은, 중국의 반도체 기술이 두 번째 단계에 머물고 있다는 반증이며, 세 번째 단계에 이르기까지 백년이 걸릴 지 오십년이 걸릴 지는 모르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며, 그동안 우리는 '초격차'로 따돌릴 수도 있습니다.
198. 트럼프가 촉발한 보호주의와 자국우선주의는 새삼스럽지 않으며, 다만 "왜 자유무역에서 이탈하려느냐, 원래대로 다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우매함이 걱정스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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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세계관은 더 자랄까, 항상 그대로일까?
200. 세계관은 세상을 자기 인식 세계에 담을 수 있는 그릇과도 같은데, 시간이 경과하면 다르게 변할까? 더 커지거나, 그대로거나, 혹은 더 작아지는 걸까?
201. 2013년 1월 이재명 시장은 "임대주택은 손해라 안 짓는다"라는 육성이 나왔습니다.(한겨레)
202. '2013년의 이재명 시장'과 '2021년 지금의 이 후보'는 동일한 시각과 동일한 크기의 세계관으로 간주해도 될까?
203. 나는 세계관은 변한다고 믿습니다.
204. 그 예로 바이든 대통령을 들어보겠습니다.
ㆍ바이든의 취임 선언, "다시 쓰고자 하는 미국 이야기(american story)"에서부터 그 예를 찾아보겠습니다.
ㆍ바이든은, 아프가니스탄 철수로 "시대의 종언"을 선언한 지 불과 보름 만에, "새로운 시대" 구상을 드러냈습니다. 9월 15일 오커스(AUKUS)를 발표합니다.
ㆍ호주, 영국과 중국을 견제하는 방위협정입니다. 이에 따라 호주의 핵잠수함 건설을 지원하기로 합니다.
ㆍ이로 인해 프랑스가 2016년 호주와 맺은 660~900억 달러 규모의 잠수함 건조 계약이 없었던 일이 됐습니다.
ㆍ다시 바이든은 11월 29일, 마크롱에게 "우리가 서툴렀다. 일이 품위있게 처리되지 않았다"며 사과합니다.
205. 바이든의 이러한 변화는, 전략적 전술적 변화가 아니라, 세계관의 확대 변화라고 보고 싶습니다.
206. 코로나 팬데믹 이후, 우리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다시 돌아보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포스트 코로나", "위드 코로나", "2030 탄소중립 선언" 등의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세계관, 즉 세계를 보는 시야가 달라졌습니다. "한발짝 앞으로 내딛으면 풍경이 달라진다"는 말과도 통합니다.
207. 이재명 후보가 2013년에 본 세상에서, 8년이 지난 지금, 그는 전혀 다른 세계를 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세계관은 더 커지고 더 자랐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8년간의 그가 지나온 행로에서 남겨진 발자취와 흔적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208. 반면에, "전두환을 찬양한다"는 윤석열을 통해서 지난 70년 동안 전혀 자라지도 않고 또 바뀌지도 않은 국짐당의 사람들도 한편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그저 안타까운 마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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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에 관해서..!! (209-215) 따로 발췌
209. "정보의 세계"를 살펴보겠습니다.
210. 정보를 다루는 우리의 태도와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나름의 견해입니다. 즉, "정보세계관"에 관해서입니다
211. 미래의 세계를 놓는 '주춧돌들'은?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반도체, 배터리, 가상화폐, 드론, 메타버스 등이 되겠습니다.
※ 참고 : 스마트폰 특허 수는 20만 개, 드론 역시 그만큼에 가까워질 것으로 추정함.
212.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DNA (Data, Network, Artificial Intelligence)
D : (big)-데이터
N : 속도 (5G)
A : 인공지능의 지배(AI의 정보 컨트롤)
※ 참고 : 文대통령 '다섯 번째 전국경제투어 대전' 모두발언 전문 ㅡ [뉴시스] 2019.01.24
213. 4차산업혁명과 금융혁명
화폐 : 아날로그 화폐 -> 디지털 가상화폐
금융 : 플랫폼 은행 (온라인 비대면)
교육 : 플랫폼 교육 (교육플랫폼과 구별 필요)
ㆍ가치축적의 공간의 확대, 가치교환 수단의 변화, 가치평가 도구의 다변화 등은 가히 "화폐혁명"으로도 일컬어질 것이며, 산업지형과 금융지형이 바뀝니다. 이것은 "범주적 지형변화"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플랫폼적 가치창출"입니다.
ㆍ"4차산업혁명"에 잇따른 "금융혁명"도 도래합니다. 인공지능을 주축으로 하는 4차산업혁명은 암호화폐를 주축으로 하는 금융혁명을 이미 잉태하고 있습니다.
214. 앞으로 "인공지능 사회"가 된다면?
ㆍ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것은, 관습, 도덕, 법률 등과 같은 제도적 장치들입니다.
ㆍ그러나, 민주주의라는 '만연체 문장구조적 삶'을 지양하고, 다소 건조할지언정 간결하고 명쾌한 '간결체 문장구조적 삶'을 기대하면서, '인공지능의 지배'를 점차로 원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ㆍ인공지능 판검사 및 변호인, 인공지능 교사와 의사, 인공지능 보험설계사, 변리사, 노무사 등등.
ㆍ세계를 물질계와 정신계로 구분했을 때, 물질계는 기계화와 자동화, 로봇화로 대체시키고, 정신계는 인공지능이 대신하게 된다면, 세계는 인간이 설 자리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ㆍ"지속가능한 성장"이 '철학적 허구'이듯이, "사람중심의 인공지능사회"도 철학적 허구일 수 있습니다.
214. 가짜뉴스와 가짜알고리즘
ㆍ"가짜뉴스"란, 뉴스가 가리키는 목적을 다른 데에 두었을 때를 가리킵니다. 사실관계와 맞느냐 틀리느냐의 문제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ㆍ마찬가지로, 네이버 등 포털들의 알고리즘은, "가짜알고리즘"이라는 의심이 현재 팽배해 있습니다.
215. 정보화 세계
ㆍ정보화 세계는, '검문(check)' 시대에서 '검색(search)' 시대로 바뀌었음을 알려줍니다. "팩트체크"라는 것도 이젠 구시대적입니다.
ㆍ'주인 없이 떠도는 정보들'에게 '주인을 찾아주는 일'이 중요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ㆍ4차산업혁명에서는 그 주인(주인공)이 바로 인공지능이 되는 것입니다.
ㆍ자기만의 소유로 여겨지던 '지식 소유의 시대'에서, 이제는 "주인 없는 정보의 시대"로 이행해가는 중입니다.
ㆍ그러면 누가 정보검색을 가장 잘 하는가?(가장 정확하고 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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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인공지능과 정보!
217. "알파고"를 떠올려봅니다.(알파고의 '고'는 바둑을 뜻함)
218. 세계 최강 이세돌9단에게 완승한 알파고의 등장 이후 2년, "알파제로"가 등장합니다.
219. 알파제로는 알파고를 이겼고, 또 세계 체스, 장기, 바둑 챔피언들을 모두 이깁니다.
220. 알파제로의 특징 두 가지
1) "스스로 생각"한다는 것!!
즉,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추리한다는 것입니다.
게임의 법칙만 가르쳐주면 데이터를 입력할 필요도 없이 스스로 학습을 통해서 깨우칩니다.
2) "시행착오의 반복 학습"을 한다는 것!!
그런데 학습의 반복 횟수와 속도가 엄청납니다.
혼자서 40일 동안 '수천만 번'의 대국을 두었다는 알파제로의 "사고실험"은 가히 경악할 만한 일입니다.
221. 정보 자료들에는 '선입견과 편견'이 알게 모르게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 한계를 뛰어넘은 게 바로 알파제로의 획기적 특징입니다.
222. 정보들이 마치 바닷속에 빠진 듯 알파제로를 거치면서 객관화된 자료로 탈바꿈합니다.
223. 이것이 인간 현실에 무수히 응용된다는 것은 이제 자명한 사실입니다.
224. 이제 정보의 '경이로운 세계'를 접하게 된 것입니다.
225. 이와같은 "이기는 정보들"은 게임과도 같은 경쟁사회에서는 엄청난 무기로 작용하고 또한 돈으로도 교환가능합니다.
226. 정보들은 '목적'을 가지고 '거래'되거나 하면서 움직입니다.
227. 따라서 통제(컨트롤)되어야 마땅합니다.
228. 그렇지 않으면 소수의 특정인들에 의해 독점되고 악용될 소지가 다분합니다.
229. 포털뉴스의 정보들이 현재 그런 양태를 보이고 있으며, 플랫폼화되는 모든 연대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230. 과거에도 주식에 대한 정보, 땅에 대한 정보, 법률적 금융적 지식과 정보들이 기득권자들의 소유와 독점으로 악용돼왔고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231. 이는 개인의 통제가 아니라 국가의 통제 아래에 두고, 교통정리 할 필요가 있습니다.
232. 세금 정보, 통계 정보, 수사 정보, 금융 정보, 부동산 정보, 주식 정보, 환율 정보, 교육 정보, 기업 정보, 개발 정보 등을 국가 소유로 묶고 투명하게 공유해야 합니다.
233. 개인 정보, 군사 정보, 과학기술정보 등은 예외로 둔다고 쳐도, 모든 정보들이 투명한 상태로 공유되어 사용될 수 있어야 합니다.
234. 난개발보다는 계획도시가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은, 국가에 의해 계획된 정보들의 효율적 배분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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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에 관해서"..!! (235-264)
235. 가치의 세계에 대한 작은 고찰입니다.
236. 앞에서 정보의 세계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봤습니다. 수많은 정보들 역시 "가치"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237. "세계관" 할 때의 관(觀)은, 본다 관찰한다 관념 견해 관점 등의 뜻이 있으나 저는 "꿰뚫어본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238. "꿰뚫어본다"는 뜻은, "가치(value)를 분석"하고 "의미(meaning)를 해석"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239. 가치의 1차적 의미는 쓸모와 유용성입니다. 따라서 쓰레기더미처럼 홍수를 이루는 정보들 속에서 그 정보가 가리키는 가치와 유용성을 분석해서 찾아내는 작업은 필요합니다. 따라서 가치의 기본적 의미는 그것이 어떤 목적에 쓰일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240. 하지만 어떤 용도로 쓰이지 않더라도,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그 자체로서 빛나고 의미있는 것도 있습니다.
241. 가령, 우선 목숨(생명)의 가치가 있겠고, 진선미성 같은 학문적 도덕적 예술적 종교적 가치들이 있으며, 자유와 평등 같은 정치경제적 이념의 가치도 존재합니다.
242. 그래서 "가치관(sense of values)"이니 "가치지향적(value-oriented)"이니 하는 개념들이 생겨났습니다.
243. 가령, "뭣이 중헌디?"라는 영화의 한 대사에서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244. "가치있다"는 말은, (그것이) 좋다, 옳다, 아름답다, 신뢰한다 등의 신념과 감정(느낌)의 체계를 가리킵니다.
245. "가치"는 경제학에서의 효용(utility)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재화와 용역을 얻는 방법으로 '교환'과 '생산' 2가지를 상정합니다. 여기서 '교환가치', '생산가치', 사용가치, 노동가치 등의 개념이 등장합니다.
246. 우리사회가 지상낙원이거나, 혹은 강탈해서 재화를 얻는 사회라면, "경제학"이라는 지식체계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247. "이익적 사고"와 "가치적 사고"를 비교하자면 다음과 같은 예를 들 수 있습니다.
248. 현명한 상인은 물건값을 깎아달라는 손님에게 깎아주지 않고 그냥 돌려보냅니다. 당장은 손해지만, 손님에게 자기 상품의 가치를 알리는 계기와 자신(상인)의 정직함을 알리는 기회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249. '사회복지'에서는, "가치와 윤리"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250. "가치"는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바람직한 것’에 대한 기준인 반면, "윤리"는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규범적 기준이자 행위 판단의 기준입니다.
251. 문화 요소에는 기술, 언어, 상징, 예술, 가치, 규범 등이 있습니다.
252. "가치"가 다소 추상적이라면, "규범"은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가리킨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253. 규범의 제약(제재)이 완화되면, 선택의 범위가 넓어집니다.
254. 그러나 법으로 규제하기 시작하면, 선택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255. 가령, "나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를, '책임회피'로 "의미 해석"을 하려고 합니다. 이미 정직을 전제하지 않고 거짓말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256. 가치는 분석의 영역이고, 의미는 해석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257. 따라서 법리 문제는 해석의 문제이므로, 자의적 해석을 스스로 경계하지 않으면 무수한 피해자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법의 정신을 도외시한 법기술자들만 양산하게 되는 것입니다.
258. '최상위의 규범'을 헌법(constitution)이라고 하는데, 법률(law, legal)에 대한 판단도 이 헌법을 기준으로 합니다.
259. 현재, "법률적 거래"가 횡행하는 사회가 됐습니다.
260. 규범적 가치를 내팽기치고 "이익 거래"를 합니다. 헌법 정신을 망각하고, 법률적 지식을 사고팔고 하는 형국입니다. 전관예우란 것이 대표적입니다.
261. "거래"는, 이익을 거래하는 것이지, 가치를 거래할 수는 없습니다. 가치를 거래한다는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262. 한마디로 규범(질서)의 붕괴입니다. 즉, "공동의 가치"가 무너진 것입니다.
263. 눈앞의 이익은 현실적이지만, "지속적인 이익"인가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가치의 보존 없이 현재의 이익에 매몰되는 것은 아닌지를 숙고해야 합니다.
264. "투명하게 이익을 추구하라"는 것이 이른바 지금의 '시대정신'이고 "뉴노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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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에 관하여"..!! (별건10)
[인간 해부] (kjm, 2021.8.9)
1. 인간이란 뭐냐? 한 마디로 딱 잘라서 '욕망'이다.
2. 욕망이 있고 도덕이 있지, 도덕이 있고 욕망이 있는 게 아니다. 순서를 바꾸면 안 된다.
3. 욕망이 칼이라면, 도덕은 칼집이다. 욕망은 '생존'을 위한 것이고, 도덕은 '안전'을 위한 것이다.
4. '욕망'과 '욕구'는 다르다. '천수답'과 '저수지'의 차이라고 보면 된다. 욕망은 바라는 것이요, 욕구는 바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구하고 찾는 것이다.
5. 욕망의 충돌이 욕구의 대립으로 진전하는 것은, 말싸움이 주먹질로 바뀌는 것과 같다.
6. 문제가 뭐냐? 오늘 먹을 걸 구하면서, 내일 먹을 걸 걱정한다는 거다. 짐승은 배부르면 사냥을 멈추지만, 인간은 내일 먹을 걸 위해서 사냥을 계속한다.
7. 사냥으론 한계가 있자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그러나 사냥 습관은 버리지 못 한다. 그래서 약탈적 대지주가 생겨난다. 그리고 소작농이 늘어난다. 그리고 고리대금의 업도 생겨난다. 결국 억울하면 출세하라가 된다.
8. 있는 것, 쌓아둔 것을 지켜야 한다. 나라는 백성의 편이되, 관리는 대지주만 편든다. 그리하여 탐관오리가 생겨난다.
9. 나라는 점차 관리들의 나라가 되어버린다. 그것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탐관오리의 습성도 그대로다.
10. 탐관오리를 계속하려면 상납과 뇌물이 뒤따라야 한다. 위에서 욕심을 한껏 부리면 그만큼 수탈도 심해진다.
11. 코로나같은 자연재해가 닥치면 위만 살아남고 아래는 죽어나간다.
12. 관리들의 나라는 백성들이 죽어나가도 비축된 곡식을 풀지 않는다. 관리들 자신이 내일 먹어야 할 것을 챙겨놔야 하기 때문이다.
13. 약은 사람들은 농사일을 버리고 장돌뱅이로 나선다. 고향을 등지고 메밀꽃 들판을 가로질러 먼 타향으로 떠난다.
14. 왕래가 빈번해지고 규모가 커지다보니 농업만큼 상업의 크기도 커지고 세금도 내게 된다.
15. 아예 관리들과 나라를 상대로 상업과 무역을 꾀하니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한다.
16. 도로와 철도가 놓이고 석탄 석유 연료를 사용하고 벽돌과 시멘트로 집을 짓는 산업 시대로 들어서면서 대지주나 상인과는 또 다른 성격의 부자가 생겨난다. 이른바 자본가라는 개념이 등장하는 것이다.
17. 인간 관계도 지주와 농노, 상인과 상품소비자의 관계에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가 대세를 이룬다.
18. 관계는 모두 '이윤 관계'지만, 매개가 땅(토지)이냐 상품이냐 돈이냐의 차이가 있다.
19. 인간에 대해서는, 노예(농노)에서 상품(물건)으로 그리고 다시 기계부품(노동)으로 인식이 점차 바뀐다. 그러나, 인식은 달라졌지만 대하는 태도는 변한 게 없다.
20. 인식이 바뀌면 태도도 달라져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이유는, '인식의 차이'가 아니라 '신분적 계급적 차별'이 계속 유지되기 때문이다.
21. "누군가에게 이익이라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손해"라는 것이 하나의 법칙처럼 존재한다. 이로부터 인간의 본성을 '탐욕'으로 규정하게 된다. 인의예지라는 덕목이 빛을 바래는 순간이다.
22. 이렇게 주인과 노예 관계가 굳어지게 되자, 해방구를 찾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그래서 찾아진 것이 교육이다. 교육열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사다리로 보였던 것이다.
23. 교육을 "어떻게 잘 할 것이냐" 하는 '교육관'과는 상관없이, 위로 오르기만 하면 된다는 뜨거운 열기들로 이루어진 '교육열'이었다.
24. 교육이 있는 곳, 그곳은 서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서울로 서울로 몰려든다. 어린 유학생들 뿐만 아니라 젊은 청년들도 마찬가지였다. 교육이 그곳에 있고, 돈도 그곳에 몰려 있었으니까.
25. 학교를 찾아서, 일자리 공장을 찾아서, 인구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처음엔 쪽방과 지하방과 달동네에서 거주하다가, 건축붐이 일어나고, 서울 주변이 개발되고 확장되면서 서울 시민으로 되어간다.
26. 그러나 나아진 건 없다. 실낱같은 희망 하나를 지닌 채 '최소화된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이어갔던 것일 뿐. 이 땐 낭비라는 게 없었다. 근검 절약 저축이 지상명령과도 같았다. 생존을 위한 반드시 필요한 선택이었으니까.
27. 노예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죽음에 비유되는 더 비참한 노예 상태에로 스스로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존재의 모습이었다.
28. 교육은 의식화(의식을 깨는) 작업일 수밖에 없었고, 기득권자들은 이를 용서치 않았다. 그들의 이윤 구조를 해칠 수 있으므로.
29. 당시로 보면, 주당 120시간 노동이 가능했다고 보여진다. 밥 먹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빼면 거의 노동하는 시간이 일상이다시피 했으니까.
30.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했었는지, 지금의 10대 20대는 이해할 수 있을까? 지금은 교복을 왜 입냐고 따지지만, 그때 당시는 교복 입는 것이 자랑이었다. 절약도 됐다.
31. "과연 이렇게 계속 살아야 될까?"라는 물음을 대학생들이 공장 노동자들에게 던져주기에 이른다. "인간다운 삶은 이런 게 아니다. 너는 인간이다. 너는 너도 모르게 지금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32. 이것은 공산주의에 대한 열망었을까? 아니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었을까? 나는 둘 다 아니라고 본다. 인간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본질적 물음이자, '인간다움'에 관한 궁극의 해답을 얻고자함일 것이다.
33. "노예도 아프냐?"와 유사한 인식이 기득권자들에겐 각기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던 게 사실이다. 지금도 산재보험의 법제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청소부에게 어려운 영어 필기 시험을 보게 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학부와, 그들의 당연하다는 식의 인식이 존재한다.
34. 인간이 인간을 배척하면서, 반려 동물을 키우고, 거기에 예방주사도 맞히고 하면서 매달 백만원 가까이 들인다. 개와 고양이에게, 새와 쥐에게, 먹이를 주고 희로애락을 공유하면서, 자기와 같은 인간에 대한 혐오와 배척을 품고 산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35. 남편이 과장이 돼도 부장이 돼도 사는 데 여유가 안 생긴다. 아니, 여유가 점점 더 줄어든다. 왜? 탐욕과 집착에 스스로 지배당하고 있으니까.
36.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다. 아이들은 학원 뺑뺑이를 돌리고, 남편은 회사 사람들과 늦게까지 술마시고, 아내는 부동산 시장 정보 들으러 다니기 바쁘다.
37. 서로 접촉할 시간이 없다. 각자 따로 논다. 아이는 게임 하고, 부부는 사랑 없는 피부 마찰 접촉 관계로서 끝난다. 어제 무슨 생각을 했고 오늘은 또 어떻게 바뀌어서 무슨 다른 생각을 하는지 서로가 모른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38. 공통의 관심사는 오직 돈이다. 서울대를 하나님처럼 모시고, 강남 아파트를 하느님처럼 여긴다. 삶의 지혜는 필요없다. 돈이 되는 정보만 필요할 뿐이다.
39. 산업화와 도시화가 가져다 준 것은, "풍요 속의 빈곤"한 삶이라고 나는 본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많이도 곪아 있다. 누가 살짝 스치기만 해도 폭발할 것 같은 불안과 분노가 잠재되어 누적되어 있는 것이다.
40. 약한 사람이 잔인하다. 자신의 약함을 힘 대신 잔인함으로 채운다. 현 사회에 분노장애, 데이트 폭력, 무차별 충동적 살인 등에서 보여지는 잔인함은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나약해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41. 산업화 시대 당시는 '환경적 경제적 문제'가 주로 연구 대상이었다면, 지금은 '정신적 질병 문제'가 주요 관심사로 작용하고 있다. 인간을 가두는 족쇄의 성질이 바뀐 것이다.
42. 인간과 돈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도, 인간 관계를 보는 시선도 지극히 '매매적'이다. 즉, "쓸모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자의적이고 독선적인 해석, 판단이 압도적 추세다.
43. 인간이 교환가치나 상품가치로 값이 매겨지고 그에 따라 대우를 받는다. 지식을 팔거나 기술을 팔거나 정보를 팔거나 귀족들이 좋아하는 미술품 음악연주 패션 등의 재능을 팔아야 만족스런 돈이 된다. 그래서 그것을 사주는 그들에게 굴종적일 수밖에 없고 '기생충'처럼 살아가게 된다.
44. 누군가 '돈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보이거나 천재이거나다. 그만큼 현실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45. 마지막으로 팔 수 있는 게 몸이다. 성매매 인신매매 장기매매 등으로 연명해야 된다면 거의 최악의 상황이다.
46. 최악의 상황은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을 팔아서 생계를 이어간다. 입안에 거미줄을 칠 수 없기에 노동을 팔아 "눈물 젖은 빵"(괴테)을 먹게 된다.
47. '자본주의'를 생각해내고 주도하고 지배하는 기업가의 눈에는 인간은 나에게 이윤을 가져다주는 노동하는 인간(노동자) 뿐이다. 돈을 투사(투자)해서 노동을 수단으로 이윤을 가져온다는 생각이 전부다.
48. 월급을 2백만원 주면서 사장은 무슨 생각을 할까? 사장이 기대하는 것은, 그가 2천만원 어치의 이익을 가져와야만 '합리적 관계'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49. 하지만 회사원(노동자)는 딱 받은 만큼만 일해야 손해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 와서는 더욱 더 그렇다. 내가 열심히 일해봐야 사장 배만 불려주지 내게 돌아오는 것은 성에 차지 않는 작은 인센티브 뿐이니까.
50. 기업가는 단 세 가지만을 생각한다. '생산성' '수익성' '효율성'이 그것이다. 경제인들이 가지는 일반적 사고 구조로서,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기도 하다.
51. '인간 경영'을 하려면, 이러한 경제 원리 외에도 정치 원리도 함께 보태져야 한다. 정치인이 생각하는 세 가지는 '목적성' '시대성' '확장성'이다. 기업가가 목표를 세우면 모두가 합목적적으로 움직여야 하고,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시대의 요구에 뒤쳐져서도 안 되고, 계속 확장(성장)을 해야만 한다. 문어발식이건 규모면에서건 "확장이나 성장이 없으면 끝"이라는 생각이다.
52. 사람들이 보는 곳(것)을 똑같이 볼 수 있어야 정치인이다. 사람들의 생각과 동떨어진 생각을 가지고선 성공할 수 없다. 롤스로이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더라도 버스값과 지하철값은 알아야 한다. 쌀값 배추값도 몰라선 정치를 할 수 없다.
53. 자본가로서 기업을 하기 위해서는 경제인이면서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 결국은 '인간 경영'으로 귀착되니까. 아마도 그래서 정경유착이 생겨나는가보다.
54. 목적 없이 사는 사람은 '남이 주는 목표'에 맞춰서 살아야 한다. 남의 장단에 춤추는 인생이 되고 만다. 따라서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더라도 자기 목적을 가지고 자기 인생을 살아야 한다.
55. 생명과 안전에 대한 목적 이외에도 자유와 평등에도 역시 목적을 두어야 한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억압과 족쇄에서 벗어나야 하고, 또 부당한 대접을 받지 않기 위해서도 그렇다.
56. 신체의 자유, 사상의 자유는 기본이고 그 외에도 여러 형태의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하는데, 방임과 억압 사이에서 컨트롤이 쉽지가 않다. 그래서 '사회적 책임'과 함께 누려야만, 남을 해치는 이기적인 자유가 되지 않는다.
57. 누구나 품는 욕망과 이기적 충동을 제어하는 또 하나의 사회적 장치가 '평등'이다. 불완전한 불평등 양극화 사회가 완전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당연 필수다.
58. 그런데, "수천년 동안 불평등 속에서 살았는데, 왠 느닷없이 뜬금없이 평등이냐?"라고 묻고 따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자유와 평등의 요구가 불평불만의 소리로 들린다. 이들은 돈(자산)과 권력과 명예를 이미 획득한 자들이다. 즉, 기득권자들이다.
59. '이미 이룬자'와 '이루려는 자'와의 견해 차이는 하루아침에 생겨난 게 아니다. 수천년 동안 자라나고 커져버린 억압 핍박 경멸 혐오 수탈 강탈 등의 누적으로 생겨난 '차별화'에서 비롯된다.
60. 기득권자들의 눈에는, '주는 것'만 불평 없이 먹어야 하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것들을 턱없이 요구하는 모습이 전혀 달갑지 않은 것이다.
61. "나는 무엇을 줄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답해보자.
62. 관심과 돈을 지불할 수 있으면 소비자다. 노동을 제공할 수 있으면 노동자다. 친절과 미소를 줄 수 있으면 서비스 종사자다. 즐거움과 웃음을 주면 연예인이나 코미디언이다. 몸을 기꺼이 제공하면 매춘종사자다. 지식을 주면 선생님이다. 젖이나 우유를 주면 엄마다.
63. 이로서 '내가 누군지'를 알게 된다. 나아가서 '내 가치'가 알아진다. 더 나아가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할 지도 깨닫는다. 더 더 나아가서 누구를 가까이 하고 누구를 멀리 할 건지도 결정한다.
64. 아무것도 줄 게 없다고 생각되면 '자기 존재감'이 사라져 절망에 빠진다.
65. 어떤 노래의 가사 속에서, 전재산을 털어 백만송이의 장미를 사서 밤새 사랑하는 그녀의 집 앞에 뿌려놓고는, 그녀가 아침에 베란다 창문을 열고서 장미로 뒤덮힌 집 앞 풍경에 놀라며 환한 웃음을 짓는 모습을 몰래 숨어서 지켜보다가 뒤돌아서는, 더 이상 그녀에게 줄 것이 없어 떠나는 가난한 화가를 상상해보시라.
66. 월급 전부를 아내에게 갖다 바치고, 더는 줄 게 없어 아내를 기쁘게 하지 못하고, 구박 받는 셀러리맨을 상상해보시라.
67. 좋아하고 사랑하는 연인이나 가족에게, 또는 친구나 동료에게 나는 무언가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정신적 압박 속에 살아가고 있다. '일'로서도 마찬가지다.
68. 인생은 결국 쇼라고? 절반은 맞는 셈이다. 뭔가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라는 물음 앞에 또 다시 서게 된다.
69. 인격, 재능, 지식, 기술, 힘, 권력, 얼굴, 몸매, 피부, 학력, 인맥 등등 보여주어야 할 게 너무도 많다. 다 갖추려니 너무 피곤한 인생이다.
70. 인터넷에 떠도는 우스개 얘기 하나가 있는데, 세상에 가장 소중한 금 세 가지가 황금 소금 지금이란 걸 아내에게 카톡으로 알려주자, 아내는 현금 지금 입금이라고 답장을 보내왔더라는 웃픈 개그가 있다.
71. 우리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돈에 대한 관념은 이제 거의 집착에 이를 지경이 됐다.
72. 주는 것도 돈이고, 보여주는 것도 모두 돈으로 통한다. 상대도 그걸 원한다. 이유는 그게 서로 편하단다. 결혼식, 장례식, 돌잔치 칠순잔치에서도 돈, 감사 표시도 돈.
73. 돈이 곧 인격이고 재능이다. 어떤 대기업은 월급 외에 품위유지하라고 돈을 따로 준다. 일명 '품위유지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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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두기_"부분의 합"과 민주주의
4. 2019
[엉터리 판결들]
판사건 검찰이건 우리 모두는 추리(추론)란 것을 합니다. 그리고 그 추리에는 연역적 추리와 귀납적 추리가 있습니다.(변증법적 추리는 순수 논리의 영역이 아닙니다.
그러면 실제에 있어서는 어떤 추리를 하게 될까요? 대부분이 귀납추리를 합니다. 판사의 판결도 예외는 아닙니다.
수많은 사실들에 대한 판단들이 모여져 귀납적 추리의 과정을 거쳐서 도달된 결과로서 판결이 이루어집니다. (대개가 그렇다는 것이지 연역 추리가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백조는 하얗다"는 주장이 제기됐을 때, 999마리의 백조가 하얗더라도, 단 한 마리의 백조가 까맣다면, 그 주장은 폐기되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가 뉴스를 접하면서, 판사(영장 판사)의 판결에서, "다툼의 여지가 있다"라고 하는 것은, 이런 앞에서의 반박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까만 백조가 나올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과학철학자 중 포퍼같은 사람은 '반론 가능성'을 핵심 문제로 삼기도 하지요.
가령, 정경심 교수가 노트북을 가져갔는데, 검찰의 조작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은 결코 배제할 수 없는 반박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며, 조국 전 장관이, "고맙다"라고 말한 내용은 여러 해석을 낳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럼에도 검찰의 일방적 주장만을 영장판사가 수용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직권남용'입니다. 게다가 검사의 "죄질이 나쁘다"라는 표현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즉 '심증적' 표현일 뿐입니다.
명백한 증거란, 반론의 여지가 '전혀' 없어야 합니다. 또한 '사실 판단'이 아닌, '가능성 판단'이나 '당위성 판단'을 '직접적'으로 차용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가능성이란, 개연성이나 확률로서만 표현될 수 있기에, 단정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한 예로, 범인이라는 심증을 불러 일으키는 999개의 정황 증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단 한 개의 '아닐 수 있는' 증거가 있다면, 그 사람은 범인이 아닌 것입니다.
그럼에도 어제의 정경심 구속 영장 심사에서 기각 대신 구속 판결을 내렸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것으로, 아주 엉터리 판결이었습니다.
요즘 법과 법을 다루는 판사나 검사의 자질이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마치 '짜집기'를 보는 듯합니다.
반면에, 계엄령을 선포하려 했다는 기무사 작성 문서 원본의 존재는 빼도 박도 못 하는 명백한 내란음모의 증거가 되겠지요. 게다가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이 문건으로 회의를 세 번 했었고, NSC 의장이 황교안이었음도 역시 빼도 박도 못 하는 명백한 사실이고, 이 사건의 전결 직인에 윤석열이 있다는 사실도 빼도 박도 못 하지요.
그런데 이게 또 덮고 넘어갔다는 '사실'입니다.
특검을 구성해서 빨리 재조사를 해야 합니다.
5. 2019
[정경심과 삼바, 그리고 이재용]
"우리가 조국이다!"
서초동 촛불집회에서 나왔던 구호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저 한 문장에 모든 것들이 다 함축되어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른바 '조국 사회'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조국 전 장관과 그 일가들이 행했던 모든 일들이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만연되어 있었던 것이기에, 도대체 누가 누구를 비난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가증스럽게도, 적폐의 온상 속에 숨어서 온갖 파렴치하고 비열한 짓들을 거리낌없이 자행했던 무리들이 전면에 나서서 조국을 비난하는 것을 보면 구토가 올라 옵니다.
정경심 교수가 그리 대단한 잘못을 한 것도 아닙니다. 소시민들이 흔히 저지르던 잘못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마치 무슨 나라를 뒤집어 엎는 대단한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동네방네 떠들어 대면서 마녀사냥 하듯이 비난하는 것에 하품이 나올 지경입니다.
정경심 구속 사유 가운데, 증거인멸의 사유를 들었는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에는 아주 확실한 증거인멸의 증거가 있었음에도 유야무야 넘어가면서 '상장 폐지'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주 대대적으로 공장 땅밑에 수많은 자료들을 파뭍었던 것이 발각되었는데도 말이죠. '죄질'로 따지면, 정경심 교수는 삼바에 비할 바가 못 되죠.
그리고 이에 대해서 아주 단순한 '경제 논리(시장 논리)'를 디밀어서는, 삼바는 상장 폐지를 피해갔습니다. 상장을 폐지하면 수많은 피해자가 생긴다는 이유로요.
그런데 앞으로 생길 잠정적 피해자는 중요하고, 그동안 삼바의 분식회계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고려 대상이 아닌가요? 또한 상장 유지로 인해서 잘못된 시그널을 시장에 보내면서 오히려 피해받는 사람들은 없을까요?
이쯤되면 법이고 뭐고, 정의고 뭐고, 공정성(페어 플레이)이고 뭐고, 도대체가 종잡을 수가 없게 됩니다.
게다가 80억의 뇌물을 주었다는 명백한 대법원의 판결을 두고서도, 만일 이재용이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이건 나라도 아닌 것입니다.
촛불은 왜 들었습니까? 결국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가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정경심은 구속되고, 삼바는 상장 폐지를 피해 가고, 이재용은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마침내 촛불 이전의 부패하고 불공정하고 불평등하고 정의롭지 못했던 과거로 되돌아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법치국가'를 지향한다고 하더라도, '도덕 국가'마저 내팽겨쳐야 옳습니까?
법 좋은 거 압니다. 하지만 도덕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거 아닙니까?
가령, 검사가 '자의적' 기준에서 '선택적' 수사를 하고, 판사가 '임의로' 판결을 내릴 때, 그 검사와 판사의 도덕심과는 무관한 겁니까?
이것도 법이고 저것도 법이라면, 검사와 판사는 각자의 '편의대로' 수사하고 판결하면 그 뿐입니다.
이런 게 우리가 바라는 '법치'입니까?
헌법과 법룰에 맞냐 안 맞냐 이전에, 내 판단이 옳으냐 그르냐를 먼저 따져 물어야지, 그저 '영혼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를 반복해서 중얼거리면 그게 온전한 수사고 온당한 판결이겠습니까?
"좌고우면 않겠다"라는 말도 '아전인수'식으로 써먹어 대는 저 몰염치에는 그저 소름이 돋습니다.
도대체 앞으로 이 나라가 어떻게 될 지 한 번 지켜보겠습니다.
기본이 되어야 할 '도덕'을 오히려 자기 이익을 위해서 상대를 비난하는 무기로 삼으면서 '내로남불'하는 나경원이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할 '법'을 자기 편의대로만 선택적으로 쓰는 윤석열이나, 내란음모의 수괴로 의심 받게 될 황교안이나, 어디 어떻게 되나 두고 봅시다.
K / 2026.1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