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속의 얼굴
원제 : A Face in the Crowd
1957년 미국영화
감독 : 엘리아 카잔
출연 : 앤디 그리피스, 패트리샤 닐, 월터 매튜
안소니 프란시오사, 리 레믹
'군중속의 얼굴'은 '초원의 빛' '에덴의 동쪽' '워터프론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등의 명작으로 잘 알려진 거장 엘리아 카잔이 연출한 작품으로 그의 연출작 중에서 '덜 알려진 수작' 중 한 편입니다. 대표작들에 비해서 작품의 유명도는 낮지만 완성도는 꽤 만만치 않은 작품이지요.
1950년대, 우리나라에는 아직 TV보급이 되기 이전이었지만 미국에서는 TV시대가 본격화 되었고, 그로 인하여 매스컴의 영향력이 매우 컸던 시기입니다. 이 작품은 이 시기의 특성을 잘 살려서 매스컴이 만들어 낸 영웅의 거품과 이면을 잘 보여준 방송소재 작품입니다. 일종의 군중에 의해서 부풀어진 영웅의 거침없는 폭주와 몰락까지의 과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미국 노스웨스트 아칸사스 지방에서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마샤(패트리샤 닐)는 '군중속의 얼굴'이라는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서 어느 유치장을 찾았다가 거기서 술에 취해 고성을 지르다가 체포되어 1주일간 구류를 살게 된 래리, 일명 론썸 로드(앤디 크리피스)를 만나게 됩니다. 론썸 로드의 걸쭉한 입담과 친근한 노래가 방송을 타게 되자 방송은 인기를 얻고, 마샤는 아예 론썸 로드에게 라디오의 고정 출연자를 제안합니다. 방랑자 기질이 있는 촌뜨기에 불과했던 론썸 로드는 거침없는 입담으로 더 큰 인기를 얻게 되고 결국 멤피스 지역의 TV에까지 스카웃되게 되고 그 곳에서도 인기가 폭발하자 뉴욕까지 진출하여 메인 방송에 출연하게 됩니다. 집도 거처도 제대로 없던 떠돌이에서 일약 수천만명의 팬들을 거느린 방송 스타로 거듭나게 된 론썸 로드, 마샤는 이렇게 변한 론썸 로드의 폭주를 우려하지만 론썸 로드의 매니저 역할을 하는 드팔마(안소니 프란시오사)의 사업수완으로 론썸 로드의 인기와 영향력은 날로 커집니다. 결국 론썸 로드는 차기 대통령에 출마할 정치인의 자문 역할까지 손을 뻗치며 정계진출의 꿈까지 꾸게 되는데......
패트리샤 닐
주인공 론썸 로드 역의 앤디 그리피스
라디오 방송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는 론썸 로드
방송의 영향으로 벼락 출세하게 된 인간의 욕망과 말로를 다룬 이야기입니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 라디오와 TV의 영향력이 지금보다 훨씬 높던 시절, 라디오와 TV 통해서 크게 인기를 얻게 된 론썸 로드라는 인물의 출세기로 진행되는 내용인데, 영화의 후반부까지 론썸 로드의 거침없는 폭주가 이어집니다. 그의 곁을 따라나니며 그의 출세 과정을 지켜보는 먀사는 론썸 로드가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며, 론썸 로드와 연인관계로 발전하게 됩니다. 하지만 인기를 얻고 계속되는 기대속에 살게 된 론썸 로드는 결국 무리한 욕망으로 달리게 되고, 그로 인하여 마샤와 갈등이 생깁니다. 그런 와중에 지역 선발대회에서 멋진 곤봉돌리기 묘기를 부리며 론썸 로드에게 발탁된 베티(리 레믹)의 유혹은 론썸 로드와 마샤의 관계에 결정적인 장애가 됩니다.
출세가도를 달리는 론썸 로드의 여정을 지켜보면서 우려하는 마샤, 그러한 마샤를 지켜보면서 안쓰러워 하는 멜(월터 매튜) 이라는 인물도 등장하는데 멜은 엘리트 출신으로 멤피스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마샤와 론썸 로드를 만나게 됩니다. 이후 론썸 로드가 한단계 더 점프하면서 뉴욕의 중앙방송까지 진출하고 국민적 스타가 되면서 마샤와 멜은 자신들이 발탁 스카우트 한 론썸 로드가 더 높은 하늘을 나는 과정을 씁쓰레하게 지켜보는 역할이기도 합니다.
론썸 로드는 기막힌 협상력으로 좋은 조건의 계약을
성사시킨다
대중의 우상이 되어가는 론썸 로드
론썸 로드가 광고하면 매출이 폭발하게 되고...
리 레믹의 영화 데뷔작
'군중속의 얼굴' 군중속에 드러난 얼굴은 사실 인간 본연의 얼굴이 아닌 연출된 얼굴입니다. 그 이면의 모습, 즉 '실체'를 알게 될 경우 군중의 우상에 대한 기대와 거품은 푹 꺼지게 될 수가 있지요. 먀사와 멜은 이런 론썸 로드의 실체와 한계를 잘 알기 때문에 그가 분수 넘치게 올라가는 모습이 탐탁치 않았던 것이며 결국 그런 상황이 론썸 로드의 추락을 가져오게 됩니다. 초심을 잃지 말고 주제파악을 하고 적당히 올라가야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의 진리이지만 올라가다 보면 끝없이 더 올라가고 싶은 것이 욕망이니 그런 욕망 때문에 결국 파멸하게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방송의 허상과 이면을 잘 나타낸 수작이고, 50년대 TV시대에 맞게 TV를 통해서 만들어진 영웅의 거품현상을 잘 비추어낸 영화입니다. 또한 군중들에 의해서 우상화 된 인간의 욕망과 고독, 그리고 파멸의 과정을 잘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게리 쿠퍼가 주연한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존 도우를 찾아서(개봉제 군중)' 나 페이 더너웨이와 피터 핀치 주연의 '네트워크' 그리고 더스틴 호프만과 앤디 가르시아 주연의 '리틀 빅 히어로' 등의 작품들이 연관성을 가진 영화들입니다. 특히 론썸 로드가 방송이 끝난 후 '대중은 실험용 쥐와 같고 어리석을 멍청이들이야. 생선을 던져주면 지느러미를 퍼덕거린다고' 라고 오히려 자기를 띄어준 대중들을 어리석은 존재로 폄하하는 장면은 이병헌 주연의 '내부자들'에서의 대사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대중이 만들어낸 스타가 그런 대중을 어리석고 우습게 보는 오만함이 묻어나는 장면이지요.
우상으로서의 화려함 뒤에 밀려오는
고독을 털어놓는 론썸 로드
론썸 로드는 결국 정계진출까지 목표로 삼는데...
괴물로 변해가는 론썸 로드에 질려하는 마샤
허상의 거품은 결국 꺼지게 되는데....
'허드'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게 되고, 우리나라에 '마천루' '티파니에서 아침을' '공과 해' 등의 영화로 알려진 패트리샤 닐이 여주인공 마샤를 연기하고 주인공 론썸 로드 역에는 앤디 그리피스라는 늦깎이 신인이 등장하는데 이 배우는 이후 주로 TV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영화배우로서의 네임밸류는 거의 생소한 인물입니다. 그는 60년대 앤디 그리피스 쇼 라는 TV시리즈를 무려 8시즌이나 출연한 전형적인 TV 스타입니다. 그외 '비류' '마야' '퀸메리호의 습격' '무덥고 긴 여름밤' 의 안소니 프란시오사가 론썸 로드쇼를 좌우하는 약아빠진 매니저 드팔마 역으로 출연하고 '샤레이드' '만날때는 언제나 타인' '헬로 돌리' '포춘쿠키' 등으로 알려진 키크고 좀 싱거운 인상의 월터 메튜가 마샤를 안쓰럽게 바라보면서 론썸 로드의 허상을 씁쓸하게 생각하는 멜 역으로 출연합니다.
엘리아 카잔 감독은 빠른 진행과 압축적이고 밀도있는 연출로 한 촌뜨기가 방송계의 대스타로 떠올라 대중의 우상으로 군림하고 거침없는 욕망의 화신이 되어가는 과정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거장의 명성 답게 기대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준 영화입니다. 외화 개봉이 홍수를 이루던 50년대에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우리나라에는 개봉되지 않았는데 거장 엘리아 카잔의 연출작임에도 아마도 빅 스타가 출연하지 않았고, 전쟁, 액션, 로맨스 같은 장르가 아니라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공감이 덜 되는 TV스타를 소재로 한 사회물이라는 점에서 개봉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미개봉작이라서 인지도는 낮아도 꽤 볼만한 50년대 거장 감독의 수작입니다.
평점 : ★★★☆ (4개 만점)
ps1 : 리 레믹의 영화 데뷔작이기도 한데 여기서 멋진 곤봉돌리기 시범을 보여줍니다.
ps2 : 대중의 우상으로 자리잡고 있다가 한 번에 추락하게 된 경우는 우리나라 연예계에서도 종종 있는 일입니다.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행동 하나 잘못했다가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대중의 사랑은 절대 거져 생기는 것이 아니지요. 높이 올라가 있는 만큼 추락하기도 더 쉬운 것이지요.
ps3 : 욕망의 종착지는 왜 '정계진출' 일까요? 결국 권력이 가장 큰 인류의 욕망일까요?
[출처] 군중속의 얼굴(A Face in the Crowd 57년) TV가 만든 우상의 허상|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