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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news1.kr/articles/?2083471
[이상길의 영화읽기]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미생, 완생
얼마 전 끝난 한 케이블TV 인기드라마 <미생> 8편을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인력충원을 간절히 원했던 영업 3팀에게 김부련(김종수) 부장이 IT업계 문충기 대표와의 계약을 성사시키면 인력충원을 해주겠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영업 3팀을 이끌고 있는 오상식(이성민) 과장은 큰 건인데다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닌데 김 부장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러자 화가 난 김 부장은 오 과장에게 영업본부에서 펑크나는 할당은 앞으로 모조리 영업 3팀에 몰아주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실제로 그날 이후 영업 3팀에게는 할당량이 떨어지게 되고 고민에 빠진 오 과장은 몇 가지 핑계를 대 보지만 먹혀들지 않자 자신이 데리고 있는 김동식(김대명) 대리와 장그래(임시완) 사원에게 뜬금없이 “그래. 우리 그냥 아프자”며 옥상으로 올라가 유통기한 지난 우유를 집단으로 마신다.
오 과장이 상사인 김 부장의 지시를 거절했던 이유가 중요하다. 계약을 성사시키려면 반드시 문 대표에게 접대를 해야 하는데 문 대표는 2차로 성접대까지 받았을 때만 계약서에 사인을 했던 것.
부서 전체를 위해서는 좋은 제안인데도 과장님이 거절하는 이유가 궁금했던 장그래에게 김 대리가 조용히 일러준다.
“과장님 신념에 어긋나는 일이어서 그래. 부끄러운 아빠가 되기 싫으시다는 거지.”
조직 안에서 ‘나’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다. 조직이 원하는 방향과 내가 원하는 방향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직 안에서 계속 살아남기 위해서는 조직의 지시나 명령을 거부하기는 힘들다. <미생>에서 오 과장도 결국 김 부장의 제안을 받아 들여 문 대표를 접대하게 된다.
원래 조직이란 게 협력을 통해 힘을 키울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개개인의 순수성은 쉽게 짓밟히고 만다.
순수의 반대말은 ‘타락’이 아니다. 타락을 구분 짓는 명확한 선도 없을 뿐더러 술이나 담배, 섹스, 혹은 준법정신을 타락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세상에 타락하지 않을 인간은 아무도 없다. 무단횡단 한 번 안 해본 인간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어른이 되어서도 순수하다면 아마도 <미생>에서의 오 과장처럼 조직 안에서도 ‘나’, 즉 본래의 자아를 잃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그래서 순수의 반대말은 ‘혼합물’이 아닐까 싶다.
어른이 되면 반드시 갖게 되는 직장과 같은 조직생활이란 게 그렇다. 본래의 순수한 나를 버리고 자꾸만 혼합물이 되라고 강요한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그렇게 본래의 나는 늘 쉽게 잃어버리게 된다. 행방불명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히이라기 루미)는 이사가던 날 부모님과 함께 수상한 터널을 통과한 뒤 인간에게는 출입이 금지된 신들의 세계에 들어서게 된다.
그곳 산해진미에 현혹된 아빠와 엄마는 함부로 음식을 먹다 돼지로 변해버리고 치히로는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하쿠(이리노 미유)의 도움으로 신들이 이용하는 거대한 온천장에 잠입하게 된다.
치히로가 온천장에서 처음 발을 들인 곳은 가마할아범과 작은 숯검뎅들이 사는 지하실. 온천장 난방을 담당하는 그들은 마치 현실 세계에서의 일용직 노동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후 치히로는 본관으로 올라가 온천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존재들을 만나게 된다.
치히로가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온천장 사장인 유바바(나츠키 마리). 유바바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동물로 만들어버리는 마녀였다. 그렇다. 유바바는 자본주의 그 자체를 상징한다.
일을 하지 않으면 동물들처럼 거리로 내쫓겨 누군가의 먹이가 되고 마는 게 바로 자본주의의 무서운 저주 아니던가.
치히로의 부모님도 일하지 않고 함부로 음식을 먹는 바람에 돼지가 되고 만다. 아무튼 치히로는 가마할아범의 추천을 통해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일종의 인턴으로 유바바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한다.
취직하자마자 치히로는 이름이 ‘센’으로 바뀐다. 우리도 취업을 해서 조직에 들어가게 되면 본래의 이름은 없어지고 직책이 이름 대신 불린다.
그렇게 점점 ‘나’는 잃고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게 된다.
그와 관련해 센이 만나게 되는 가장 의미심장한 존재는 바로 ‘가오나시’. 검은 보자기에 가면을 쓴 가오나시는 군중 속에서 존재 자체가 희미하다. 그는 외롭다. 마치 조직 사회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자아를 상징하는 듯하다.
그것이 탐욕과 결합해 쌓아올린 게 바로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아닐까. 실제로 극중에서 가오나시는 개구리와 사람을 삼킨 뒤 엄청난 식탐을 자랑하는 거대한 괴물로 변하게 된다.
사람이건 자연이건 마구 잡아 삼켜온 자본주의라는 괴물에 대한 일종의 메타포가 아닐까.
센을 도와주는 하쿠(이리노 미유)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하쿠는 온천장 사장인 유바바의 심복으로 현실로 치면 회사 임원 정도로 보면 되지 않을까.
인상적인 부분은 용으로 변한 하쿠가 종이새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 공격자들이 종이새라는 점이 특이하다.
<미생>에서도 그렇지만 서류더미에 묻혀 사는 오늘날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의 고뇌를 상징하는 듯하다. 그리고 종이새의 공격은 실적을 내라는 유바바의 독촉같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런데 유바바에겐 쌍둥이 자매인 제니바(나츠키 마리)가 있었고 센은 시골에서 한가롭게 살고 있는 그녀를 통해 유바바도 사실은 저주에 걸려 있음을 알게 된다. 바로 충분한데도 상생보다는 경쟁을 강요하는 자본주의의 저주 말이다.
하지만 하쿠도, 가오나시도, 유바바도 센의 착한 마음으로 인해 모두 저주에서 풀려나게 된다.
영화를 보는 시각은 개개인의 자유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이처럼 본래의 자아를 잃게 만드는 자본주의라는 저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그 저주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마음’이라는 마법을 제시하고 있다.
물질만능주의와 그것을 좇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아를 찾지 못하면 영원히 살아있지 못하게 된다. 바둑용어로 ‘미생’이다.
본래의 자신이 아닌 모습에 끊임없이 굴복하다보면 영혼은 어느새 죽고 만다. <미생>이란 드라마에 열광했던 현실에서의 직장인들이 말한다.
“오 과장 같은 사람을 상사로 두고 있다면 목숨 바쳐 일하겠다.”
조직사회에 매몰돼 사라져가는 자아에 대한 짙은 향수 같은 게 아닐까. 하지만 정작 오 과장은 이렇게 말한다.
그는 갓 입사한 장그래를 옥상으로 데려 간 뒤 이런 대사를 던진다.
“바둑에 이런 말이 있어. 미생. 완생. 우린 아직 다 미생이야.” 의미심장한 그 대사는 사실 슬픈 말이다.
<미생>을 보다보면 계속 궁금한 점이 하나 있다. 다들 미생이라면 도대체 현실에서 ‘완생’이란 무엇이며 어떤 사람들일까.
오 과장의 대사가 개인적으로 슬펐던 건 다들 미생일 수밖에 없는 게 근본적인 시스템 자체의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생>에서 오 과장이 멋졌던 건 그의 진짜 이름인 ‘오상식’처럼 실적경쟁 속에서도 본래 자신의 모습대로 상식에 맞게 행동했기 때문 아닐까.
솔직히 지금 세상이 상식이 통하는 세상은 아니지 않는가. 결국 오상식 과장도 회사에서 쫓겨나고 만다. 하지만 좋은 사람들과 다시 만난 오 과장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비로소 완생이 된 게 아니었을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선각자로 등장하는 제니바 할머니도 센의 진짜 이름이 치히로라는 사실을 알고는 이렇게 말한다.
“좋은 이름이구나. 자신의 이름을 소중히 하렴.”
센과치히로 재개봉한다고해서 여기저기 자료가 많이 올라오는듯
흥미돋이라 퍼옴!!
첫댓글 와;;;;나 이 해석 처음봐;;대박;;;;
나도어느순간 정신차리니까 내가없어 승무원 ㅇㅇㅇ만있어 그래서 나관둔닥ㄱㅋㄱㅋ내가젤소중해씨발
이걸 할머니랑 초딩때 극장에서 같이 봤는데 불교이야기로 해석해줬는데 이런 해석도 있네 흥미롭다
@망시가망시 나도 초딩때 들어서 잘 기억이 안나. 내가 불교신자도 아니라서 그 불경 내용중에 비슷한게 있었던 것 같았어! 지나가던 불교여시가 떠올려줬음 좋겠당 ㅠㅠ 미안해
우와..신기하다..뭔가뭉클함ㅜㅜ
헐 대박....
공감함 ㅠ
와 좋다이글. 신박해
헐 이런해석은 첨봤어!
해석 너무 좋다.. 잘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