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해외 사정에 밝은 30~40대 여성들
"자라·갭 등 美·유럽비해 너무 비싸다"
온·오프라인 항의… 직접 해외구매도
올 국내판매가 최고 42% 인하 '항복'
지난해 서울 명동에 위치한 스페인 의류 브랜드 자라(Zara) 매장을 찾은 주부 양소연(34)씨는 가격표를 보고 화가 났다. "이 바지가 12만원이라고요? 지난달 유럽 가보니 같은 물건이 반값도 안 하던데요?" 양씨는 매장 직원과 승강이를 벌인 뒤, 집에 돌아와 자주 가는 인터넷 카페에 '자라, 너무 비싸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몇 시간도 안 돼 댓글 40여개가 달렸다. 그로부터 반년 뒤인 최근 같은 매장에 들른 양씨는 가격표에 다시 놀랐다. 상당수 제품 가격대가 작년 대비 거의 절반으로 떨어진 것이다. 직원은 "현지 가격과 거의 비슷하다"고 설명해 줬다.
해외여행 등을 통해 해외 사정에 밝은 30~40대 '글로벌 쇼핑 맘(mom)'이 글로벌 브랜드 가격 혁신을 이끌어 내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을 통한 가격 비교로 '거품성' 가격 인하 압력을 가하는 등 적극적인 항의로 글로벌 브랜드의 콧대를 낮추고 있다.
◆현지 가격과의 비교를 통한 온·오프라인 항의
세계적인 패스트패션(트렌드에 맞춰 자주 신상품을 내놓는 것) 브랜드인 '자라'는 20~30대 여성의 폭발적인 호응 속에 2008년 국내 입성했지만, 열기는 예상보다 미지근했다. 아무리 세금 등이 붙더라도 유럽보다 거의 2배 가까운 가격은 이해할 수 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매장 항의는 기본이었고 각종 블로그 등을 통해 '한국 소비자가 봉이냐'는 등의 항의를 쏟아냈다.
당황한 '자라'측은 세일 등 각종 대안을 논의했지만 '비싸다'는 인식을 되돌리기 어려웠다. 특히 유니클로와 스파오 등 비슷한 브랜드가 눈에 띄게 성장했고, 최대 경쟁자인 H&M이 지난 2월 명동에 들어서면서 위기감은 더욱 심해졌다. 결국 본사와 협의해 가격을 대폭 내리기로 했다.
이러한 '한국 스타일'을 꿰뚫은 스웨덴의 H&M은 애초부터 파격적인 가격 정책을 실시했다. 7.95유로짜리 티셔츠가 1만원으로 현지보다 2000원(환율 1550원 기준) 정도 싸다. 비싸 봐야 현지가격보다 1000~2000원 정도. H&M 정해진 실장은 "'전 세계 동일 가격'을 목표로, 특히 한국에선 아이 의류 등 일부 품목을 유럽보다 더 싸게 책정했다"고 말했다.
◆'쇼핑의 달인들'의 본사 사이트 직접 구매에 결국 '백기'
미국의 유명 브랜드 갭과 갭 키즈(kids), 바나나 리퍼블릭은 이번 봄·여름 상품부터 전년 대비 20~30% 인하, 현지가격의 120~130% 정도로 맞췄다. 과거 '해외 원정쇼핑족'이라는 조어(造語)를 탄생시킬 정도로 인기가 높아 2007년 국내 입성 당시만 해도 현지 가격의 170~180%에 달했던 그들이 이렇게 '백기'를 든 데엔 소비자의 힘이 있었다.
'비싸다'고 항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예 미국 본사 사이트에서 직접 구매(일명 '해외 직구')를 하기 시작한 것. 특히 아이 옷의 경우 사이즈가 0~24개월, 2T(국내 만2세), 3T(만3세)로 국내와 비슷해 반품 걱정이 거의 없다. '해외 직구' 방법은 회원 수 100만여명에 달하는 인터넷 육아 카페 '맘스 홀릭 베이비' 등을 통해 자세히 알 수 있고, 또 각종 할인 쿠폰은 '퍼니쇼퍼닷컴' 등에서 받을 수 있다. '쇼핑의 달인'들이 전수한 비법은 인터넷을 통해 마치 '기출문제 족보'처럼 전수되고 있었다.
이러다 보니 폴로 등 일부 기업들은 ip를 차단해 인터넷 접속을 원천적으로 막았지만 '소비자 주권'을 주장하는 고객들의 항의에 결국 철회했고, 한국 신용카드를 막는 방식으로 우회했지만 최근 이런 규제마저 푸는 것을 논의 중이다.
보통 해외 지사를 낼 경우 관세·물류비·각종 마진을 포함해 본사의 180% 정도로 책정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직접 구매 열풍으로 이를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갭을 수입하는 신세계 인터내셔널의 조인영 부장은 "처음엔 골칫거리였지만 결국 소비자들의 다양한 구매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가격을 미국 수준과 비슷하게 내리기도 했다. 갭 남자 셔츠의 경우 59.5달러짜리가 7만5000원으로 미국의 104%(환율 1200원 기준) 정도다. 조인영 부장은 "최소한 미국 대비 130~140% 돼야 하는 실정이지만 소비자들의 가격 저항을 고려해 평균 120% 정도로 맞췄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예전엔 '비싼 게 명품'이라는 통념이 있었지만 전 세계 가격을 꿰뚫는 '쇼핑의 달인' 소비자들이 늘면서 앞으로 글로벌 브랜드의 가격 인하는 확대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