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9월30일 육군 사관학교 제11기를 졸업 하자마자 졸업생 156명 전원이
광주 보병학교 초등 군사반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228명이었던 생도들 가운데 무려
70여명의 낙오자가 생겨나 졸업생은 156명이었다.
그 광주 보병학교에서 첫 동기생 회의가 열렸다. 사회는 육사 4년 동안 줄곧 수석자리를
차지했던 김 성진 소위가 맡았다.“그럼 총회를 시작 하겠습니다.”
김 성진 소위가 개회사를 한 뒤 다시 말을 이어려고 할 때였다.
한 장교가 손을 번쩍들었다. 회의가 시작 되자마자 발언권을 요구한 그는 전두환 소위였다.
“4년 동안의 생도시절에 나는 축구와 권투를 한탓인지 학과성적이 좀 뒤진편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교관들의 기대를 그리 모으지 못했습니다. 어떤 때는 미움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모두 똑같은 대한민국의 육군 소위입니다. 똑같은 계급의 똑같은 입장에서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의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의 말은 짤막하여 대부분의 동기 장교들은 그이 새겨듣지 않았으나, 나중에 차츰 그의
끈질긴 고집과도 같은 선두주자 의식을 감지하고부터 그 말이 동기생 모두를 통틀어
그 자신이 가장 최선의 리더가 되겠다는 첫 의사표시였음을 모두들 깨닫게 되었다.
초등군사교육을 마친 전두환 소위는 제21사단으로 배속 되었다.
일선에서 목숨을 내걸고 빗발치는 적탄 속을 누벼온 고참 하사관과 사병들에게는 어떤
근성이 있었다. 신임 소위쯤은 코방귀로 다루려드는 것이었다. 그때의 신임 소위들은 대게
간부후보생 출신으로 6개월 단기교육을 받고 배속되었기 때문에, 군대의 체질을 전혀 몰라
고참병들의 눈에는 우습게 보일 만도 했다. 중.상사 등 역전의 하사관에게(하라) 투의 말도
못하는 신임 장교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한 고참 사병들도 육사11기가 속속 배속되자 바짝 긴장했다. 정규 4년제의
웨스트포인트 식 교육을 받은 장교들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군대는 요령)이라는
안일한 사고방식이 그들 고참병들에게는 이미 고질화 되여 있었다. 그런데 정규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이 4년 동안의 뼈절인 교육으로 체질화시킨 교과서적 지휘를
하게 된다면 요령 따위가 통할 까닭이 없었다.
전군의 관심이 11기생에게 쏠려 있는 가운데 전두환 소위는 제21사단으로 부임했다.
육사11기생들은 (호리 멍텅한 군대의 기강을 우리 손으로 바로잡자)고 모두를 명세했었다.
사실 그때까지 군대의 치부가 사회에 수없이 노출 되어있었다.3년에 걸친 전쟁을 치루는
동안 군인들의 세력과 영양력의 비중이 높아짐과 더불어 많은 부정이 저질러지고 있었던
것이다.11기 출신의 가슴 속에는 나라에 대한 걱정과 군의 부패에 대한 분노가 소용돌이
치고있었다. 그들은 밑 바닥부터 하나하나 바로 잡아 가리라는 각오를 다졌다.
전두환 소위는 사관생도시절 명예제도의 네 가지 원칙. 허언, 기만, 도취, 그리고 잘못을
저지른 동료를 보면 그냥 지나쳐보지 말라-외에 (물욕을 품지 않는다)라는 한가지를 더
붙여 자신의 오계 명으로 삼고 있었다. 이런한 정신을 바탕으로 오직 원리 원칙대로 모든
일을 해나가는 그에게는 고참병들도 이런바 눈치를 살피며 요령을 부 릴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곧 (원칙장교)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리고 제트기처럼 번개같이 여기저기
나타난다 하여(제트기 장교)라는 별명이 하나 더 붙었다.
조금이라도 꾀를 부리려 하면 어디선가 바람처럼 나타난 전두환 소위의 벼락 같은 호령이
떨어졌다. 전두환 소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초급 장교 시절부터 군무에 충실이 해온 탓에 훗날 지도자의 자질을 갖추게 돤다.
첫댓글 전두환님께선 대충대충이란게 없어셧군요 뭐던간에 확실히... 존경하옵니다.
드디어 천마님의 새얘기가 시작됏네여 감사 드리며 잘 읽겟습니다 천마님 화이팅!
천마님은 정말 좋은 글귀만 알려주시는 좋은 분입니다. 어디서 좋은 자료 발취하시는지 아무도 모르게 좀 알려주십시요. 이번 모이때 만담 실력을 발휘하게 1시간 정도 마이크 올려드리도록 건의하겠습니다.
멋있어요 정말, 나도 군인에게 시집갈걸 ㅎㅎㅎㅎ
내 친구가요 육사 화랑축제에 갓다가 반해서.. 요즘도 그 축제가 잇는지요?
역시 시원 시원 하시고 의리의 사나이~~~~~
이 당시 21사단은 강원도 화천에 있었나보더군요... 전쟁후 얼마기간동안 전방 사단들은 부대위치를 정기적으로 이동했던듯 싶은데.. 각하께서 평화의 댐을 방문하셨을시(2009년) 21사단에서 소대장 생활 하셨던 얘기와 캐러멜 고개 이야기를 하셨던 동영상을 본 기억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