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전상서
-아버님 어머님 안심하세요. 우리들은 늠름한 장부랍니다. 내 이웃 밝은 사회 나라 지키는 충성스런 나라등불 효성의 아들…….
노래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눈물이 펑펑 납니다.
6주간의 신병훈련을 마치고 난생 처음 군대에 면회를 온 부모님 앞에서 우리들은 노래를 부릅니다. 내 눈물이 안개비처럼 젖어들더니 급기야 폭포수처럼 흘러내립니다.
때는 바야흐로 88서울 올림픽이 막 열리던 그해 삼월입니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봄은 지독하게 추웠습니다. 의정부 306보충대에서 어머니 대신 누님께서 저를 배웅해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저 먼 전라도 정읍에 계셔서 올라오지 못했습니다. 정읍에서 어머니와 마지막으로 입대하기 전 작별을 고했습니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잘 견디다 올게요.”
“느그 형이 군대 가서 아직 제대도 안했는데 너마저 군대에 가 불믄 내 걱정이 되야서 어쩌코롬 산다냐?”
“형은 곧 제대하잖아요. 조금만 참으세요.”
형은 수색대로 가서 천리 행군도중 다리가 부러져 수도통합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어머니는 모르고 계십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
3년 전, 눈이 펄펄 내리던 날, 집배원 아저씨가 소포를 전해주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였죠.
“어머니 소포 왔는데요. 뜯어볼까요?”
“그래 싸게 뜯어봐라.”
누나와 빨래를 하던 어머니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시고는 빨래하던 손을 멈추고 저의 곁으로 오셨습니다.
소포를 뜯고선 전 깜짝 놀랐습니다.
형이 군대 갈 때 입었던 옷과 구두가 가지런히 소포에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아이고 아들아!”
어머니가 형을 부르며 목 놓아 웁니다. 누나도 덩달아 눈물바다입니다.
나는 가지런히 놓인 신발을 보며 죽은 조카를 생각합니다. 부산에서 놀러왔다가 길에 묶어둔 소가 무서워 수로 쪽으로 가더니 끝내 신발만 내려놓고 주검이 되어버렸던 그 어린 조카를 생각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사오겠다며 일곱 살 어린 조카가 혼자 구멍가게를 찾아 아이스크림을 사오다가 끝내 비명횡사해버린 그날, 개울 속에 둥둥 떠 있던 그 아이스크림 막대가, 그 신발이, 지금도 가슴 저리도록 아파옵니다. 하물며 어머니는 어땠을까요? 친정이라고 놀러왔다가 자식을 잃은 누나의 마음만큼 어머니의 가슴도 미어지셨겠지요. 그런데 다시 가지런히 놓인 신발만 배달되고 형은 감감 무소식이니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셨을까요?
306보충대에서 나는 내가 입었던 옷과 신발을 넣고 소포를 쌌습니다. 교관이 명령합니다.
“소포 봉투에 각자 집 주소를 적는다. 실시!”
훈련병들은 재빨리 소포를 받아 볼 부모님의 주소를, 아니 우리가 살았던 그 어린 시절의 고향주소를 적습니다.
“옷을 벗어 소포에 넣는다. 실시!”
사복은 곱게 접혀 소포에 담깁니다. 그리고 우린 난생 처음 군복을 입습니다. 훈련병 명찰이 선명한 군복에 짧게 자른 머리 모두 비슷합니다. 나는 소포를 보내며 형을 생각했고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눈물을 흘릴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빨리 연병장으로 집합한다. 실시!”
우린 야음을 틈타 어디론가 트럭에 실려 떠났습니다. 우리가 새벽에 도착한 곳은 인천 신병교육대였습니다. 차가 연병장에 서자마자 혼을 빼놓는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여기까지 오느라 대단히 수고 많았다. 뒤로 취침! 더블 백을 입에 문다 실시! 오리걸음 앞으로! 동작들 봐라! 건너편 깃발이 보입니까?”
“예, 보입니다.”
“선착순 한 명! 뛰어!”
입에 거품을 물도록 우린 뛰었습니다. 달리기는 한 바퀴에 한 명만 남기고 다시 선착순을 시킵니다. 500여명의 훈련병이 다 돌려면 마지막 사병은 500바퀴를 돌아야 합니다. 아찔합니다.
화장실에 가도 나올 것이 없습니다. 얼마나 뛰고 얼마나 훈련의 강도가 심했던지 몸속의 음식물은 모두 소화가 되어버린 탓입니다. 통통하던 몸에 군살이 빠져나갔습니다. 그렇게 6주간의 훈련을 받고 나니 완전히 몸은 반쪽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면회를 오신 부모님 앞에서 우린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합니다.
일사불란한 총검술과, 율동을 가미한 군무, 태권도 시범과 기타 열병 등을 진행하는데 부모님들의 환호와 박수소리가 우렁찹니다. 우린 부모님께서 바리바리 싸오신 치킨과 맛있는 과일을 먹으며 그동안의 고생담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린 각자 부모님 앞에 서서 노래를 부릅니다.
아버님 어머님 안심하세요.
우리들은 늠름한 장부랍니다.
내 이웃 밝은 사회 나라 지키는
충성스런 나라등불 효성의 아들…….
각자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맞는 상대를 두고 각자는 각자가 흘릴 눈물을 내 눈물인양 훔치며 울음을 삼켰습니다. 훈련병들의 목소리는 굵게 젖어들다가 끝내 눈물을 참으려는 듯 눈을 감지 않다가 끝내는 봇물 터지듯 울음바다를 이루었습니다.
애인을 면회 온 젊은 여성, 아들을 면회 온 부모님, 모두의 눈은 모두의 사연을 삼키며 뜨겁습니다. 이제 6주가 흘렀는데 앞으로 남을 그 창창한 나머지 군 생활을 어찌하라고 우리들의 눈은 이토록 뜨거워야 하는지 그땐 몰랐습니다.
이제는 모두 아스라한 과거의 추억이 되었습니다.
군대 생각만 하면 그날 불렀던 ‘부모님 전상서’가 잊히질 않습니다.
(2009.10. 라디오 여성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