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 해동안 개봉된 한국 영화는 모두 80여편이나 됩니다.
IMF로 어려웠던 시절인 98년 99년 제작된 영화들이
각각 50편을 넘기지 못한 것에 비하면
양적으로 상당히 늘어난 숫자입니다.
하지만 그에 비례해서 졸속 제작된 영화들이 많이
눈에 띄기도 했습니다. 좀 더 치밀한 프리 프러덕션을 통해
완성도 있는 영화제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한국영화의 호황기를 연장할 수 있고
거품을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오늘 [하재봉의 영화사냥]은 올해 제작된
한국영화들 중에서 베스트 5와 워스트 5를
뽑아 보겠습니다.
올해는 작가주의 감독 3인방이라고 불리우는
이창동 김기덕 홍상수 세 감독이
모두 신작을 발표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또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칸느 영화제 감독상을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가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작품의 우열을 선정하기가
매우 까다롭고 베스트 5를 선정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는데요
2002 한국영화 베스트 5
하재봉이 뽑은 공동 3위는,
김인식 감독의 데뷔작 [로드 무비]와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입니다.
아시아 영화에 정통한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걸작이라고 극찬한
김인식 감독의 [로드 무비]는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의 문제를
뛰어난 미장센 속에 담아내 보기 드문
미학적 성취를 이룬 작품입니다.
런던 영화제와 벵쿠버 영화제, 부산영화제에 초청되었던
[로드 무비]는 거리의 노숙자로 전락한 증권회사 펀드매니저의
삶을 중심으로 동성애자인 노숙자의 보스와
그를 사랑하는 티켓다방의 여자를 등장시켜
사랑의 본질과 소통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또 홍상수 감독은 [생활의 발견]에서
그가 지속적으로 추구해 온 일상적 삶의 일상적 드러냄이라는 방식이
이제 홍상수적 방법론으로 정착되면서
미학적 성취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일상적 삶을 통한 신화적 접근이라는
영화미학에서 접근하기 힘든 어려운 시도를
감행하고 있읍니다.
공동 2위는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와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입니다.
세게 3대 영화제에서 각각 감독상을 수상한 이 작품들은
올해의 우수작일 뿐만 아니라 한국영화사에 기록될
명작들이기도 합니다.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는 전과 3범 홍종두와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 한공주 사이의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지만 그들은 서로에 대한 애정을
퀴어 나갑니다. [초록물고기]와 [박하사탕]을 통해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계보를 새롭게 정리한
이창동 감독의 냉철한 시선이 영화의 사실성을 높여 주면서
거대한 감동을 만들어 냅니다.
또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은 복잡한 조선조 말기를 배경으로
그림에의 열정을 불사르다 사라진 오원 장승업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임권택 감독의 장인정신, 정일성 촬영감독의
뛰어난 촬영, 그리고 배우 최민식의 열연이 혼연일체가 되어
이른바 예술가 영화의 한 전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카메라에 붙잡힌 우리 산야의 아름다움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그 어떤 한국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뛰어난 것이었습니다.
올해의 베스트 1위
바로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입니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통해서 분단 조국의 아픔을
균형있는 시각으로 절절하게 묘사해낸 박찬욱 감독은
한 아이가 유괴되면서 그 아이를 유괴한 남녀와
아이의 아버지 등이 얽히면서 펼쳐지는 복수극을
차갑고 냉정한 하드 보일드 스타일로 그려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영화사상 보기 드문 처절한 장인의식으로 가득찬
이 영화는 비록 당대에는 버림받았지만
저주받은 걸작으로 한국영화사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한국영화 워스트 5
올해는 잊어버려야 할 수준 이하의 나쁜 영화들도
많이 제작되었습니다.
워스트 5는 순서 없이 한편 한편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패밀리][2424][유아독존][네발가락][아 유 레디]입니다.
[패밀리]와 [2424][4발가락][유아독존]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결같이 지난해 크게 흥행 성공했던 조폭영화들의
아류라는 것입니다.
[패밀리]는 룸살롱 여자들과 조폭들과의 만남이,
[2424]는 이삿짐 센터 직원들로 위장한 검찰들과
조폭들의 만남이 있고,
[4발가락]은 부산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흥행영화 [친구]의
전라도 버전이라고 관심을 모았지만
광주에서 성장한 4명의 고교 동창생들이
조폭세계로 들어와 겪는 에피소드들의 나열에 그쳤고
[유아독존]은 아이를 둘러싼 조폭들 이야기입니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기르게 된 태권도장 세 친구와
아이를 쫒는 조폭들의 대결이 펼쳐집니다.
이런 조폭 영화의 아류작들은
새로운 발상은 없고 흥행영화의 장점들만 모방하려는
시도가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또 [아 유 레디]는 80억원이라는 거대한 제작비가 투입되었지만
관객들에게 체감있게 전달되지 못한 줄거리,
시각적 볼거리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지 못한
화면과 단조로운 연출, 배우들의 평범한 연기가
식상함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워스트 5의 단점을 거울 삼아
2003년에는 더욱 수준 높은 한국영화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