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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감상실 스크랩 인조의 아들...소현세자...
여왕벌(정선례) 추천 0 조회 111 06.06.07 11:1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소현세자는 조선 제 16대 왕, 인조의 첫번째 세자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인조는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왕이지요.

그때 제시한 광해군의 죄목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선왕을 독살하고 형과 아우를 죽였으며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유폐시켰다는 것,
두 번째는 과도한 토목공사로 민생을 도탄에 빠뜨려 정사를 위태롭게 했다는 것,
마지막으로는 두 마음을 품어 오랑캐에게 투항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랑캐는 후금, 나중의 청나라입니다(청이라 국호를 바꾼 건 병자호란 발발 전의 일이나 여기서는 편의상 청이라 칭하겠습니다). 당시 시대상황은 명이 기울어가고 청이 일어나고 있던 시기였죠. 그래서 광해군은 실리외교를 펼치게 됩니다. 즉 청의 비위와 명의 비위를 잘 맞추어 청, 명간의 대립에서 벗어나 임진왜란으로 소모된 국력을 증진시키는 데에 힘을 기울일 수 있었던 거지요.

하지만 서인들은 그것이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그들은 임진왜란 때 청병해준 명나라의 은혜를 갚아야 된다면서, 그리고 만주족인 청의 비위를 맞춘다는 건 오랑캐에게 굴한다는 것이므로 명나라를 도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서인 세력과 손잡고 반정을 일으켜서 왕위에 오른 인조는 당연히 친명 배금 정책- 다른 말로 반(反)청 정책을 펼쳤지요.

하지만 명나라와 손잡고 반청 정책을 펼친다 한들, 명은 이미 이빨 빠진 사자요 청은 떠오르는 태양입니다. 그리고 청 입장에서는 말 안 듣는 조선은 당연히 눈엣가시였지요.

그래서 두 차례의 호란, 즉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나게 되는데요. 정묘호란은 맛보기에 불과했지만 병자호란은 메인 디쉬였습니다.

왜냐하면 정묘호란 때에는 정묘약조(대략 청과 형제관계를 맺고, 세폐를 지급한다는 내용입니다)로 비교적 가볍게 끝났지만, 병자호란 때에, 인조는 청나라 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해야 했고, 세 아들이 인질로 청에 끌려가는 굴욕을 맛보게 되었거든요. 더군다가 오랑캐라 칭해왔던 청에 대해 군신지간의 예를 취해야 했고요. 한마디로 왕실의 '수치'를 겪은 겁니다.

이러니 인조의 반청감정은 장난이 아니었죠. 아니, 장난 수준을 벗어나서 조금만 자극이 있으면 펑! 하고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을 겁니다.

그리고 그 반청감정은, 결국 1645년 아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귀국으로 폭발해버리게 됩니다.

병자호란 때, 인조는 세 아들을 볼모로 보냅니다. 즉, 장자 소현세자와 차자 봉림대군, 그리고 삼자 인평대군. 인평대군은 이듬해 귀국했으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8년 동안(그러니까 명이 완전히 멸망할 때까지) 붙들려 있었습니다.

8년은 긴 세월이었지만 소현세자는 그다지 헛되이 보내지 않았는데요. 우선 청나라와 대면하기 꺼리는 아버지 인조를 대신해서 많은 정치적 일들을 수행합니다. 청에 붙들려온 김상헌(척화파입니다) 같은 반청인사를 보호한다거나 청의 파병 요구에 응한다거나, 세폐 문제 같은 것들이죠.

그리고 당시 청에 있던 서양 문물을 대하면서 서양인들과의 접촉을 통해 새로운 문물과 사상을 익혀나갔습니다. 서양 신부 아담 샬과 사귀면서 천주교를 알았고 서양 과학 문명에 눈을 뜨게 됩니다. 아담 샬은 그에게 천주상과 서양 역서 및 과학서들을 주었고, 그래서 그는 서양 역법에 심취하게 되었죠. 동시에 조선의 천문학이 초보 단계임을 알았고요.

소현세자와 같이 끌려온 세자빈 강씨도 가만히 앉아서 세월을 보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물품 부족에 시달리던 청나라를 본 그녀는 청나라 지배층의 빵빵한 지갑을 조선의 질 좋은 물품과 연결시키면 큰돈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알았지요. 국제무역을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청나라의 농사 권유를 받아들여 농사를 시작합니다. 만주족은 유목민족, 농사에 그다지 익숙하지 못한 데에 반해 한족과 끌려온 조선인들은 농경민족이니 반드시 큰 이득을 올릴 거라 믿었던 거지요. 예상은 맞아들어갔고, 그녀는 그 이득을 조선인 포로를 속환하는 데에 썼다고 합니다.

이들이 귀국해서 조선의 왕과 왕비가 된다면, 조선은 분명 개방과 개혁의 길고 나아갈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인조의 눈에 거슬린 겁니다.

당시 인조는 뼛속까지 반청주의자였습니다. 청의 문물은 무조건 배척, 배척, 배척해야 되는 것이였지요. 그래서 청이 자신의 왕위를 뺏을지도 모른다는 부담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런데 장차 왕위를 이을 세자는 청의 문물에 심취해 있었고, 또 청의 신임을 받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니 어떻습니까? 인조의 마음에 들까요? 아니죠, 마치 십 년 묵은 체증인 마냥 골칫거리에 증오의 대상이었을 겁니다. 세자가 왕위에 오른다면,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올린 반청에 대한 것들을 철저하게 부셔버릴 테고, 인조의 업적은 철저하게 부정당할 테니까요.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소현세자는 죽고 맙니다. 마치 독살당한 것처럼 온몸이 탱탱 불어있었고 온몸의 구멍에선 피가 흘러나왔다고 하네요. 직접 그 현장에 있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그 뒤 세자빈 강씨는 역모죄에 걸려 사약을 받고, 그들 사이의 세 아들은 제주도로 귀양을 가 풍토병으로 죽어버렸지요.

세자가 죽었을 당시, 인조는 의례적이었던 의관의 추국도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일국의 세자 장례식을 보통 평민처럼 치르게 했지요. 기일도 단축시켰고요. 한 마디로, 인조는 아들 일가의 씨를 말린 겁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알고 있더군요. 소현세자는 벼루에 맞아죽었다고.

야사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청 태종이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귀국을 축하하는 잔치를 열어주면서, 소원이 있으면 한 가지씩 들어줄 테니 말을 해보시오, 했습니다.

이에 소현세자는 청 태종의 벼루를, 봉림대군은 조선 포로의 송환을 원했다 하지요. 그리고 그들 소원대로 되었고요.

귀국해온 소현세자는 아버지 인조에게, 청 태종의 인품과 덕성을 찬양하며 선물로 받아온 벼루를 보였습니다. 인조가 가만 있겠습니까? 분노한 인조는 '한 나라의 세자라는 놈이 그래 이깟 벼루에' 라고 소리치면서 벼루를 집어던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이마를 호되게 얻어맞은 소현세자는 그게 탈이 나 시름시름 앓다 결국 죽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조는 슬퍼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건 야사입니다.
그리고 아까 제가 쓴 이야기는 실록에까지 등장하고요.

결국 인조는 둘째아들 봉림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그가 송시열과 이완과 함께 북벌을 위해 노력하다 간 조선 제 17대 왕 효종입니다.

이것으로 글을 마칠까 합니다. 전 아직 중3밖에 안 되어 미숙하기 이를 데 없고 모르는 점도 많지만, 아무쪼록 이 글로 인해 소현세자를 제대로 이해하는 분이 늘어나기를, 하고 기원합니다.

아! 틀리거나 미숙한 부분이 보이시면 즉시 알려주세요. 보강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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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네이버에서 퍼온 글이다...

 

중학생이 썼다고 하는데...참 잘 쓴글이라 생각되어 옮겨왔다...

 

인조는...광해군 시절 당시 정치에서 소외되고 있었던 서인들이...

 

반정을 일으켜 왕이 된 인물인데...어떤 역사책을 보아봐도...

왕다운 면모가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옹졸하고 편협하고...줏대가 약한건지 귀가 얇은건지...

말도 안 되는 소리들에 잘 현혹되고...

 

결국은...병자호란을 맞아 청에게 직접 무릎을 꿇는 수모를 당하게 되고...

자기 아들인 소현세자의 가족을 자기손으로 몰살하게 된다...

 

인조반정이 일어나지 말아야했던지...아님 소현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줬어야 했다...

 

그랬다면 우리역사가 바뀌었을 거라고 본다...


 
출처 : 블로그 > 우리집에 왜 왔니..??? | 글쓴이 : ☆박모여인☆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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