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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애경 : 아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다 보니까 제가 한 가지 수수께끼가 풀리는 것 같아요. 선생님은 다작이시잖아요. 대표적인 다작 시인이신데, 제가 변변찮은 시 한 편 문예지에 발표하면 그걸 읽고 전화주신 적도 많았어요. 게으르려면 먼저 부지런해야 한다, 라고 말씀하셨듯이, 언제 그 시들을 다 읽으시고, 직접 시도 쓰시고, 언제 그 많은 사진을 찍으시면서, 또 그림을 그리시고,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도 돈독하게 유지하시는지, 아무튼 저한테는 경이롭다고나 할까요.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다 하실 수 있을까 했는데, 그 말씀 들으니까 이제야 알겠네요.
나태주 : 풀꽃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먼저 하루 일을 빨리빨리 해야 해요. 제가 지금 학교 교장인데 오전만 근무를 열심히 해요. 얼마나 뻔뻔한 교장이예요?(웃음)
김유중 : 선생님 보면 주위 분들에게 편지를 보내실 때, 항상 습자지에다가 펜글씨, 붓글씨로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적고, 또 거기다가 스케치까지 곁들여서 보내주시잖아요. 그걸 보면 아까 말씀대로 게으르면서도, 여유로우면서도 부지런하다는 말씀이 정말 맞는 게, 그렇게 하시려면 굉장히 시간 많이 걸리거든요. 또 여유를 가지고 그려야하고. 그런데 부지런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들한테 일일이 그렇게 하실 수가 없습니다.
나태주 :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 지역에 사는 시인의 불행이라는 게 있어요, 제가 시골에 살면서 박용래, 한성기 선생님을 옆에서 모시면서 느낀 겁니다. 공자께서 삼인행三人行이면 필유아사必有我師라고 말씀을 하셨듯이, 배움에도 정면교사正面敎師와 반면교사反面敎師가 있습니다. 그래서 박용래, 한성기 선생님을 모시면서 뭘 느꼈느냐 하면 일정 정도의 고정급이 있어야 된다라고 생각을 했어요. 아주 중요한 이야깁니다. 저도 젊어서 한때 선생을 그만 둘까 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 두 분을 보니 저 분들이 힘든 것은 바로 고정급이 없기 때문이다, 하고 생각이 들었지요. 그게 저에게는 반면교사인 셈이에요. 그래서 그걸 보고 초등학교 선생 노릇이 쉽지는 않았지만 결단코 그만 두어서는 안 되겠다, 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한 게 있어요. 저만 하더라도 그래도 중앙 문단으로도 제법 왔다 갔다 하는 시인이잖아요. 그런데 시골에서 같이 더불어 사는 주위에 있는 무명의 시인들, 문학 지망생들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돼요. 그 분들을 풀꽃처럼, 마치 짓밟힌 풀꽃이 저였던 것처럼 손잡고 품어 안고 어깨동무하고 지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는 극단적으로 서울에서 저를 안 알아주어도 좋아요. 왜냐하면 공주에 좋은 벗들이 많거든요.
양애경 : 선생님 그 말씀은, 저희 같은 경우 충남 지역에서 같이 문학하면서 선생님께서 늘 저희에게 하시는 말씀이잖아요. 충남 지역의 문인들에게 선생님께서 아쉬움과 격려를 많이 주시면서, 또 그 지역의 좌장이시거든요.
나태주 : 사실 충남이 얼마나 뜨뜻미지근해요? 행사를 해도 잘 모이지도 않고……
양애경 : 그런데 선생님께서 행사를 하신다고 하면, 이번에 회갑도 미리 당겨서 하셨지만, 수백 명이 오셨잖아요. 그런데 거기 오신 분들은 이해관계 때문에 오신 것은 아니잖아요?
나태주 : 허허, 저는 그냥 잘 지내고 싶어요. 좋은 관계로. 저는 이제 조금 듣고, 조금 보고, 조금 쓰고 싶어요. 그래도 아마 많이 듣고 많이 보고 많이 쓰는 축일 것 같네요.(웃음) 마음이 그렇다는 거지요. 그리고 많은 부분을 놓아버리고 싶어요. 그래도 못다 놓을 거예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성선 시인이 죽었을 때 되게 충격을 받았어요.
김유중 : 그때 시도 여러 편 쓰셨죠. 친구 분 생각하시면서……
나태주 : 예. 그랬죠. 그때 제 심정이 ‘이제 참 어렵구나, 누구를 보고 질투할까, 사실 송수권하고 이성선을 보고 질투를 했는데, 이제 한 사람만 남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요번에 송수권씨가 지난번 제 행사에 와서 사인첩에 이렇게 썼더라구요. “오래 살아라, 이 눔아”라고. 좋은 친구지요. 저희 세 사람이 지도상으로 볼 때에도 이성선은 강원도를 비롯한 중부 이북에, 나태주는 중부지방 대전 충청권에, 송수권은 전라도 순천, 광주권에 거처를 잡았지요. 그리고 우리 세 사람은 모두 자연적인 것에 관심을 두었지만, 각각의 먹이 영역은 좀 달랐어요.
양애경, 김유중 : 먹이 영역이요?…….(웃음)
나태주 : 사실 그게 중요해요.(웃음) 이성선은 일단 산 위와 하늘을 먹었어요. 그 사람의 먹이가 늘 거기 있었거든요. 나태주는 산 중턱부터 산 아래쪽까지, 이렇게 먹었어요. 또 송수권은 산 아래에서부터 들판, 바다까지 먹었어요. 그래서 이성선 시인의 시를 보면 그렇게 많은 시를 썼는데도 ‘아내’라는 말은 딱 한번 나와요. 하여간 그 사람도 재미있는 사람이지요. 이성선은 아내하고 살아도 전혀 아내가 먹잇감이 아니었던 거예요.(일동 웃음) 그래서 저희 세 사람은 전혀 충돌이 없었어요. 노는 물이 같고 하면 싸웠겠죠. 셋이 만일 서울에서 다같이 살았다면 싸웠겠죠. 허허허……
김유중 : 그래도 세 분 선생님들이 각각 다 지역에서 활동을 해주시고, 지역문학인회도 같이 결성을 하셨잖아요. 요새는 그 이후로 지역 문단, 지방 문단이 상당히 활성화된 느낌이에요.
나태주 : 활성화라…… 저는 좀 부정적인데요. 너무나 시인이 많아요. 저도 중간에는 시인들을 많이 길러 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추천을 많이 하고 했는데, 이렇게 많아서, 그게 상향 평준화가 아니라 하향 평준화가 된 감이 듭니다. 그래서 선배 시인들이 좀 각성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지요. 그리고 시를 쓸 때, 시집을 낼 때도 정말 조심해야 하고. 그런데 나태주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어떡하죠? 너무 많이 썼어요.
양애경 : 아까 김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선생님의 시가 많고, 또 전체를 관통하는 공통적인 흐름이 있긴 하지만, 시기별로 변주처럼 다양하게 달라지시기는 했어요. 이형기 선생님처럼 그렇게 많이 변하지는 않았다고는 하지만. 선생님께서 그간 많은 시집을 내셨는데, 평론가들이 가장 많이 거론한 시집이 있는가 하면 독자들이 제일 사랑했던 시집도 있을 거고요. 선생님께서 제일 마음에 드신 시집도 있었을 거거든요. 이런 것들에 대해서 좀 말씀해주세요.
나태주 : 시인들은 첫 번째 책을 잘 내야 하거든요. 첫 번째 [대숲 아래서]가 가장 땡기고, 중간에 [막동리 소묘], 그 다음에는 성과를 별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최근에 나온 [산촌 엽서] 이런 것들이 애착이 가지요. 저는 화가 중에 장욱진 선생을 좋아해요. 장욱진 선생의 [강가의 아틀리에]라는 산문집이 있습니다. 장욱진 선생이 술을 좋아했던 분인데,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금주를 한데요. ‘열심히 그림만 그리고, 지기가 그리고 싶은 그림이 다 되면 그걸 끝내고 얼른 집으로 달려가야지, 그래서 아내에게 한 잔의 술을 얼른 달라고 해서 마셔야지’, 이런 말을 쓴 것을 본 적이 있어요. 저는 그게 참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그리고 또 이런 말도 생각이 나네요. ‘인간의 육신은 허깨비다’ 이거예요. ‘그러므로 이걸 다 쓰고 죽어야지, 가랑잎처럼.’ 그런데 이런 게 있습니다. 이것도 학교에서 느낀 건데, 가을에 생애를 다 마치고, 엽록소를 다 발산하고, 자기 영양분을 모두 뿌리나 줄기한테 주어버리고 떨어지는 나뭇잎이 있어요. 그걸 모아서 태우면 고소한 원두커피 끓이는 냄새가 납니다. 그런데 7, 8월경에 태풍이 지나가서 떨어지는 나뭇잎을 태워보면 역겨운, 송장 썩는 냄새가 나요. 놀라운 일이지요. 그것들이 타면서 거부를 하는 거예요. ‘나는 아직 탈 때가 아니야. 왜 나를 태워?’라는 식으로. 그래서 저는 아, 나무 이파리들도 보통이 아니다, 저는 그걸 태우면서 이런 것을 깨달았어요. 저는 장욱진 선생의 이야기처럼 인간의 육신은 별 게 아니니까, 죽을 때 낙엽처럼 ‘호숩게’, 즉 가볍게 가야겠다, 하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렇게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냐. 아주 죽을 둥 살 둥 살아야 해요. 남하고 싸우면서 죽을 둥 살 둥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일에 충실해야 한다는 이야기지요.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신이 주신 마지막 날 밤처럼. 그래서 저는 글을 쓰면 일단 한 장을 뽑아요. 출력을 하지요. 저장도 여러 군데 해놓고. 그래서 그 가운데 가령 어떤 것이 잘못되어도 지장이 없도록 하지요. 또 책을 안 낸 글들도 지금 다 묶어놓았어요. 원고가 다 있어요. 완결된 디스켓으로. 오늘 죽어도 괜찮을 만큼 끝 페이지까지 원고가 정리된 디스켓과 출력된 원고뭉치가 다 있어요. 그래서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침이면 이 세상 첫날처럼 맞이하고, 그리고 저녁이면 이 세상 마지막 날처럼 부지런하게 정리하면서 살자고 그래요. 아까 말씀처럼 소로우나 후지와라 신야나 우리나라의 장욱진 선생이나, 이런 타 분야의 사람들한테 제가 배우는 거지요.
저는 또 평소 화론집을 보길 좋아하거든요. 시집 읽다가 지치거나 하면 화론집을 보는데, 에곤 쉴레Egon Schiele도 좋아하지요. 아마 크림트를 아는 사람은 있어도 에곤 쉴레는 잘 모를 거예요. 아주 슬퍼요. 다양한 슬픔이 거기서 나온다고요. 그 사람 그림을 보면서, 노란색과 파란색이 저렇게 슬플 수 있을까, 그리고 빨간색이 저렇게 처절한가, 예를 들면 여자를 홀딱 벗겨놓고 빨간색 드레스 하나만 입혀 놓았어요. 얼마나 슬퍼요. 저는 에곤 쉴레의 그림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김유중 : 저는 선생님 시를 보면서 항상 여유롭고 느긋한 면만 있으실 줄 알았는데, 오늘 말씀 듣고 보니 정말 새롭네요. 철저한 자기 관리와 시간 관리, 이런 면이 있으실 줄은 전혀 몰랐어요.
사실, 선생님께 평소 한번 여쭈어 보았으면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요즘 시인들의 시가 선생님 세대에 비해 전반적으로 난해해지고 복잡해지고, 좀 그런 것 같아요. 저도 한 10년 넘게 시를 공부했지만, 어떤 시들은 제가 봐도 잘 이해가 가지 않더라고요.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거든요. 그런데 선생님 시는 일단 쉽게 읽히고, 또 쉽게 읽히는 만큼 계속 반복해서 읽다보면 우러나는 맛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요즘 시인들의 시작 경향하고는 상당히 틀린데요. 선생님 요즘 시인들한테 좀 해주시고 싶은 말씀도 있을 것 같아요.
나태주 : (웃으며) 잘못 이야기했다간 두드려 맞을 텐데…… 저는 본래 시는 한 사람에게 백번 넘게 읽히는 문장이라고 생각해요. 적어도 윤동주의 시나 박목월 선생의 시나 미당 선생의 시는 한 사람한테 백번 읽히는 시지요. 괴테나 안델센이 그랬듯이.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새로움이라는 것은 열 사람에게, 혹은 백 사람에게 한번 읽히고 마는 거예요. 그걸 보면 요즘 시들은 한 사람한테 백번 읽힌다는 명제를 충분히 장악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되지요. 망각하지 않았는가 싶어요. 그리로 돌아가고 싶어요. 피히테란 사람이 그랬다고 하지요? ‘개혁이라는 것은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다’라고. 가령 강물을 개혁한다고 합시다. 강물을 어떻게 개혁하겠습니까. 그건 강물을 강물의 본질로 되돌아가게 하는 거예요. 강물을 맑게 하고, 고기가 살 수 있게 하고, 물풀이 자라게 하고, 구름이 와서 그 안에서 놀게 하고. 이게 개혁이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시도 개혁이나 개선이라고 할 때, 저는 시는 일단 시다워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시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명제대로 한 사람에게 백 번을 읽히는 그런 문장으로 되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 하지요. 그리고 요즘 시인들이, 저도 그렇지만, 한마디로 폭력적이예요. 시저가 죽을 때 부르투스에게, “부르투스, 너마저도……”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요. 여기서 저는 “시여, 너마저도 그렇게 폭력적이라니……. 너마저도 칼을 들이대다니……”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예요. 시를 못쓸망정, 시인으로 뜨지 못할망정 폭력적이 되지는 말았으면 해요. 유영철만 폭력을 쓰는 게 아니라, 시인들도 폭력을 씁니다. 새로운 것으로 인한 충격도 좋겠지만, 일단 시인들에게는 과거에 대한, 그리고 현재에 대한 위안이 있어야 하겠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 두 가지를 더불어 주어야 하는데, 시인들이 너무 현재 이 지점에만 매달려서 폭력적으로 되면 안 되지 않겠느냐, 하고 생각하지요.
김유중 : 그리고 그 말씀과 연계되는 부분이긴 한데, 선생님 따님도 선생님과 같은 길을 걷고 있잖아요? 끝으로 따님한테 한 말씀만 들려주시지요.
나태주 : 그 아이는 저한테는 ‘모자’와 같은 아입니다. 내가 키가 작을 때는 키를 높여주고, 내가 더울 때는 확 벗어버리고 싶고, 추울 때는 대머리를 가려서 좋겠고, 더울 때는 벗었으면 좋겠고, 말하자면 필요하기도 하고 필요하지 않기도 하고,(웃음) 허허, 그런 아이예요. 그 아이한테 부탁 하나가 있어요. 너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또 죽은 다음에도, 애비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특히 작품에 대해서는 절대로 말하지 말 것. 그것을 지켜준다면 문학을 연구해도 좋다 하는 거지요. 그리고 간섭하지 말아라. 비록 커가는 동안에 애비가 제 인생을 조금 간섭하기는 했을지 몰라도, 적어도 문학, 이 세계에서는 네가 나에 대해서 간섭하지 말아라, 하는 거지요. 그 아이가 처음에 나를 보고 그러는 거예요. “아버지 문장은 너무 비문이 많아.”라고. 그래서 저는 그러지요. 피차 간섭하지 말자. 허허.(일동 웃음)
양애경 :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여쭈어 볼게요. 저도 시인이기 때문에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보는데, 뭐냐면 시인이란 이 세상에서 과연 어떤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나태주 : 어휴, 귀찮은 존재지요. (일동 웃음)
김유중 : (웃으며) 한마디로 그렇게 딱 잘라서 말씀하시네요.
나태주 : 첫째는 시인이 자기가 시인이라는 것이 너무 귀찮아요. 그런데도 시인일 수밖에 없어요. 시인은 귀찮지만, 그래도 있어야 해요. 플라톤이 그랬다고 하지요. 그래도 저는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시인은 장롱짝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장롱짝은 집안에 있으면서 늘 거기서 이불 꺼내고, 옷 꺼내고 이런 식으로 있잖아요. 있는데, 없어지면 그 자리가 허전하고 하잖아요. 시인은 저 산골짜기에 있는 맑은 샘물과 같은 존재라고 봐요. 없어도 되겠지요. 요즘은 생수도 물병에 담아서 잘 나오니까. 그렇지만 물병에 물이 떨어지게 되면 샘물을 찾게 되잖습니까? 그러니까 요즘 물병에 좋은 물이 나온다고 샘물을 메우면 안 되지요. 저는 그런 점에서 세상 사람들한테 충고하고 싶어요. 그래서 ‘시인이란 두레박으로 퍼내는 우물물 같은 존재다’하고 이야기하고 싶지요. 수도도 있고 모터로 퍼 올리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레박으로 퍼내는 우물물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요. 아파트 10층, 20층사는 사람들이, 만약 정전되고 물 안나온다고 생각해보세요. 정말 문제가 생기지요. 시인은 귀찮은 존재지만 또 필요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힘 있는 자들이여, 시인을 죽이지 말아다오’하고 말하고 싶습니다.
양애경 : 그런 시인이 되도록 저 역시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웃음) 오늘 여러 가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김유중 : 나 선생님 오늘 이렇게 장시간을 시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양 선생님께서도 멀리까지 걸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쯤에서 이 정도로 정리하고, 또 다음에 인사드리도록 하지요.
나태주 : 그러고 보니 벌써 시간이 제법 되었네요. 두 분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또 뵙도록 하지요.
양애경, 김유중 : 또 뵙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