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겨울산행은 아무래도 춥다보니 몸이 위축되고 옷을 껴입어 동작도 둔하며,
아이젠을 착용하고 긴장하며 걷다 보니 아무래도 피로감이 더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풍경이 펼쳐진다면 충분히 이를 상쇄할 수 있으리라.
오늘은 만항재에서 시작하여 함백산 정상(1573m)을 오르고,
주목 군락지를 거쳐 두문동재(싸리재) 방향으로 걷다가 샘물쉼터 사거리에서 적조암 입구로 내려왔다.
마침 전날 눈이 흠뻑 내린지라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었다.
마침 세찬 바람이 불어 더없이 맑은 하늘을 번갈아 보며 더할 나위 없는 설경(雪景)을 즐겼다.
겨울 산행 때는 늘 팥죽을 챙겨 가지고 다니며
청정지역의 깨끗한 눈을 코펠에 담아 즉석 팥빙수를 해 먹는 시인 친구가 있다.
갑자기 이 녀석 생각이 나서 나도 쌓인 눈더미 속에 막걸리와 소주를 꽂아 놓기도 했으며,
아이스크림 삼아 나뭇가지에 소복이 쌓인 눈을 핥아 먹는 객기도 부려 보았다.
옛 어른들께서는 눈이 많이 와야 풍년이 든다고 했다.
예년과 달리 올해 눈 온 날이 많지 않지만,
새해 들어 잠실산악회에서 한라산, 덕유산, 함백산을 가기 전날 눈이 내려 늘 눈꽃 산행을 즐기고 있다.
그래서 새해에는 모두 회원님들 집안에 복(福)이 깃들 것이라는 산악대장님의 덕담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2
만항재는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와 태백시 혈동 사이에 있는 높이 1,330m에 이르는 고개이다.
여말 선초(麗末 鮮初) 고려 도읍이었던 개성 광덕산 서쪽 기슭에 위치한 두문동에서 살던 주민 일부가
이곳으로 옮겨와 살면서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던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높은 이곳 만항(晩項)에서 소원을 빌었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어느 시절 난세 아닌 때가 있겠냐마는 사회 혼란기에 지식인의 처세는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고려 왕조가 멸망하고 새로이 조선 왕조가 건국되는 정치적 대격동기에는 더욱 그러하리라.
두문동(杜門洞)이란 지금은 북한 땅이 되어버린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廣德山) 서쪽의 골짜기로
고려 말기의 충신들이 새 조정인 조선에 반대하여 벼슬살이를 거부하고 은거하여 살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의 유신 72인이 끝까지 고려에 충성을 다하고 지조를 지키기 위해
이른바 부조현(不朝峴)이라는 고개에서 조복을 벗어던지고
이곳에 들어와 새 왕조에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이 때 조선왕조는 두문동을 포위하고 고려 충신 72인을 불살라 죽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또한 고려의 무신 48인이 은거하였는데 이들도 모두 산을 불태울 때 죽었다고 한다.
두문동에 관한 기록은
조선 순조 때 당시 72인의 한 사람인 성사제의 후손이 그의 조상에 관한 일을 기록한
『두문동실기(杜門洞實記)』가 남아서 전해지고 있다.
‘두문불출(杜門不出)’이라는 말이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하며
그 당시 많은 선비들이 은거함에 따라 이를 두문동이라고 부르는 곳이 여러 곳에 남아 있다.
만항재에서 시작하여 두문봉재로 이어지는 함백산 능선을 따라 걸으며
문득 옛 기록을 떠올리게 되는 건 무슨 연유일까?
3
백두대간을 타고 이어지는 태백산, 소백산, 지리산 등 유명한 산의 꼭대기에는
어디에서나 은근하게 우리를 맞아주는 오래된 주목들이 있다.
비틀어지고 꺾어지고 때로는 속이 모두 썩어버려 텅텅 비워버린 몸체가 처연한 부실한 몸이건만
매서운 한겨울의 눈보라에도 여름날의 강한 자외선에도 의연히 버틴다.
굵기가 한 뼘 남짓하면 나이는 수백 년, 한 아름에 이르면 지나온 세월은 벌써 천 년이 넘는다.
오래 산 주목은 모두가 높은 산에서 만날 때처럼 육신이 병들고 허해져 있는 것만은 아니다.
몸 관리를 잘한 주목(朱木)의 육체는 빈속 없이 꽉꽉 채워져 있다.
이름대로 껍질도 속도 붉은색이 자르르함은 물론이다.
옛사람들에게 붉은 주목은 잡귀신을 물리치는 데 쓰이는 벽사(辟邪) 나무였다.
아울러 몸체 일부에서 ‘탁솔(Taxol)’이라는 항암물질을 만들어내는 만큼
나무를 썩게 하는 미생물들도 함부로 덤비지 못한다.
더군다나 나무의 질이 좋기로 정평이 나 있다.
천천히 세포 속을 다지고 필요할 때는 향기도 조금씩 넣어 가면서
정성스레 ‘명품’을 만들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
주목의 속살이 명품임을 먼저 알아준 이는 바로 절대 권력자들이었다.
살아생전에 누리던 기득권을 저승길에서도 언감생심 주목과 함께 가져가고 싶어 하여
평양 낙랑고분, 경주 금관총, 길림성 주변에 17,000기가 남아 있다고 한 고구려 무덤의 나무 관(棺) 등에
모두 주목이 쓰였다.
또한 고급 활을 만드는 재료에서부터 임금을 알현할 때 손에 드는 홀(笏)에 이르기까지 주목은
육신을 나누어 주어야 할 곳이 너무 많았다.
그러다 보니
흔히 주목의 특징을 얘기할 때 하는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은 결코 빈말이 아니겠다.
4
태백과 정선, 영월이 만나는 함백산 자락에 위치한 해발 1,330m 만항재는
한국 최대 규모의 야생화 군락지이기도 하다.
끊임없는 속도 경쟁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일까?
언제부터인가 포만감만 있을 뿐 영양가 없는 메밀이나 옥수수,
구황작물인 고구마와 감자가 웰빙 식품이 되었고,
산과 들에 널려 있는 억새나 야생화가 볼거리가 되었다.
오늘
함백산 정상에서 사방을 돌아가며 이어지는 산줄기를 바라보는 기분도 장쾌하고,
푹푹 빠지며 눈길을 걷는 즐거움도 더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곧게 뻗은 소나무 숲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있고,
야생화들이 운치를 더할 여름날 다시 한 번 찾아보리라 다짐해 본다.
그러면서 <만항재>라는 제목을 가진 시(詩) 한 편을 떠올리면서
슬그머니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감추기가 어렵다.
만항재에서 고한으로 내려오는 버스였다
처녀가 운전기사에게 가서 무어라 속삭였다
귓불까지 빨갛게 달아 있었다
거울에 버스기사의 눈웃음이 얼핏 비치었다
바람 센 길모퉁이에 버스가 멈추었다
처녀는 버스 뒤로 가서
들풀들 사이에 치마를 펼쳐놓고 주저앉았다
쑥부쟁이며 구절초, 각시취, 엉겅퀴 사이로
익모초 같은 머리카락만 흔들렸다
이윽고 쑥쓰러운 표정으로 처녀가 버스에 올랐다
몸이 단 들꽃 향기도 우르르 올라탔다
버스가 고한버스터미널에 다 와 가건만
남정네들은 처녀의 오줌소리에 푹 빠져서 나오지 못하였다
그때부터 만항재 들꽃에는 오줌냄새가 나곤 했다
-박현수 詩, <만항재> -
첫댓글 오창훈 이사님 어제는 눈쌓인 함백산 산행 눈부시게 하얀산 참나무숲 지날때 산고대 고두름이 세찬바람에 우박처럼 머리에 떨어질때 대자연 아름다운 순백 설원 동심에 젖어 푹푹 빠지는 눈길 만양 줄거운 눈길 산행이 였습니다 함께 좋은 산행과 좋은 글 또다른 줄거움 느끼고 갑니다
어제는 그야말로 눈(雪)구경에 눈(目)이 마냥 즐거웠습니다. ^^
따라주는 술잔을 넙죽 비우지 못해 채 대장님께 늘 죄송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