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산
장수-남원 대성산 (881.9m)
대성산은 장수군 번암면과 남원시 산동면의 경계에 자리하는 해발 882m의 산이다. 장안산(1237m)을 출발한 호남정맥이 팔공산(1151m)에 이르러 서쪽으로 곁가지를 일으킨다. 그중 한줄기는 영태산(666m)과 성수산(876m)으로 이어지는 성수지맥이요, 다른 한줄기는 개동산(846m), 상서산(627m), 만행산(910m. 일명 천황산), 풍악산(610m)을 이어가는 개동지맥이다. 이 개동지맥에서 으뜸 높이로 멋진 산세를 자랑하는 만행산의 동녘에 듬직한 선세를 보여주는 지도상의 무명봉이 있으니 오늘 소개하는 대성산이다.
대성산은 일찍부터 장수군의 오악으로 알려져 왔으며, 조선조 중엽(약 350년 전)에 흥성 장씨 문중이 동녘의 산자락에 노단이란 마을을 일구고 대대로 이어갈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대성이란 산이름은 유교의 개조인 공자(기원전 551~479)를 뜻하며, 마을이름 노단도 이곳이 노 나라에서 태어난 공자의 집터를 닮았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대성산의 산행들머리는 장수군 번암면과 남원시 산동면의 경계를 이룬 고갯마루인 북치재다. 장수 땅의 번암면 국포리와 남원 땅의 산동면 대기리를 걸어 넘던 옛 고갯길. 지금은 지나는 사람이 없어 낙엽만이 바람에 쓸려가건만 아직도 당나무 느티고목이 고갯마루를 지킨 이곳에서 동남쪽으로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능선길에 접어들면 신갈나무 둥치에 작년에 자란 목이버섯이, 땅에는 테두리방귀버섯이 그대로 남아 있다. 진달래가 꽃불을 지핀 산길을 느긋이 이어간다. 한 구비 돌아가니 다섯 줄기가 멋진 반송이, 또 한 구비 돌자 물박달나무 거목이, 다시 구비길을 돈 곳에 아름드리 굴참나무가, 다음에는 허리 굽은 밤나무가.. 참으로 점입가경의 산길이 펼쳐진다.
여러 그루의 밤나무 아래 자리한 묵무덤을 지나 뒤이어 전망이 빼어난 이장묘에 이른다. 멀리 북동녘으로 사두봉-장안산을 이른 호남정맥과 월경산-백운산을 이어간 백두대간이며, 그 사이로 흰구름을 머리에 인 덕유산이 아련히 솟구친다. "아는 만큼 느낀다"고 누가 말했던가! 주위를 살펴 나무와 꽃과 버섯 등을 알아보고, 뭇 산새소리를 구별하고, 주위의 명산과 마을을 확인하며 가는 산행길은 참으로 행복하고 흐뭇한 걸음이다.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하는 동안 일행은 멀리 가버리고, 한 마리 외로운 길짐승이 되어 그들의 흔적을 좇아 느긋이 산길을 잇는다.
한 그루 신갈고목 그늘 아래 너럭바위가 자리한 전망대에 이른다. 서쪽으로 굽어보는 대상리 계곡과 그 너머 만행산(뾰족한 정수리는 천황봉)의 산세는 참으로 아름답다.
다시 산길을 이어가 산불지대를 만난다. 작년 4월6~7일 뉴스 시간에 텔레비전 화면으로 보았던 화재의 현장이 바로 여기였던가. 주위를 살펴 삶과 죽음을 확인하며 다시 산길을 이어간다.
두번째 전망바위. 사진 찍기에 안성맞춤의 장소이건만 동행이 없어 전망바위와 만행산을 한꺼번에 사진에 담아본다. 뒤이어 아찔한 벼랑을 이룬 세번째 전망대에 이른다. 굽어보는 대상리며 만행산의 산세가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더더욱 정수리 방향으로 굽어보는 아찔한 벼랑은 나아갈 산길이 만만치 않음을 예고하는 듯하다.
770봉에는 싸리나무와 진달래 한 그루가 자리하고, 뒤이어 만나는 바위지대를 피해 산길은 왼쪽으로 돌아간다. 마지막으로 소나무봉을 지나 내려선 후 다시 오르니 비로소 대성산 정수리다. 동서로 길쭉한 타원형의 정수리에는 삼각점과 묵무덤이 자리한다. 삼각점을 살펴보니 '함양. 312. 74년9월. 건설부' 라고 씌어 있다. 방방곡곡에 산재한 수많은 삼각점 중에서도 참으로 오래된 삼각점이다. 북한산을 능가하는 당당한 높이(882m)와 36년이 지난 보기 드문 나이의 삼각점, 시와 군을 가르는 중요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지리원을 비롯한 여러 교통 지도에 산이름이 보이지 않음은 어쩐 일인가. 건너편의 만행산에는 숱한 이정표와 멋진 정상석이 있건만 산세와 위치로 쌍벽을 이룬, 이름조차 유교의 시조 공자님의 뜻하는 대성산이 이토록 푸대접을 받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
나뭇가지에 걸린 대성산이란 팻말에는 '장수 대성산 882m-대구광역시 신암산악회 김문암 입(立)' 이라고 적혀 있다. 정상 팻말조차 이 고장 장수 사람이 아닌 타지사람이 만든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라는 속담이 절로 생각나는 정수리에서 한동안 생각에 잠긴다. 예부터 장수 땅의 오악으로 조상들이 우러르던 이 대성산. 이제는 달라져야 하리라. 빠른 시일 내에 정상석과 이정표를 세우고 등산로를 정비해 전국의 산꾼들의 널리 즐겨 찾아오는 명산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하산길에 접어든다.
북족으로 능선을 내려가니 노랑제비꽃이 만발한 단정한 무덤이 자리하고, 다시 무덤을 지나 지정 김용술의 무덤에 이른다. 850봉을 지난 후에는 약간의 바위지대를 만나고, 뒤이어 대성방마을과 죽산마을로 내려가는 능선삼거리에 닿는다. 이곳에서 오른쪽(동남쪽) 방향으로 크게 꺾어서 산길을 이어가 지나온 대성산 정수리가 다가들며 조망되는 670봉에 이른다.
안부를 내려 다시 비탈길을 오르자 솔숲에 둘러싸인 봉우리가 나오고 뒤이어 벼랑을 우린 전망바위가 나와서 땀을 식힌다. 북녘으로 대간과 정맥의 눈부신 산세와 동화호와 동화리의 조망을 만끽하는 이곳에서 산길은 오른쪽으로 벼랑길을 조심조심 내려야 한다. 아기자기한 바윗길을 만난 후 오른쪽으로 돌아가자 소나무숲이 길게 이어진다. 지도상의 매봉재(485m)에는 1983년에 설치한 삼각점과 묵무덤이 있다.
약간의 가시덤불을 헤치며 봉우리에 올라선 후 통신철탑에 이른다. 조금 더 내려가자 축대를 쌓고 노송이 둘러 선 무덤이 나온다. 비석에 '흥성 장공 유명지묘, 유인 경산 김씨' 라고 적혀있는 이 무덤은 오랜 세월 노단리를 지켜온 장씨 가문의 음택이었다.
노나라에서 테어난 공자의 고향과 닮았다 하여 이름 지은 노단리 중에서도 진짜 노단이란 뜻의 원노단 마을길에는 오래된 부락의 옛 모습이 더러 남아 있다. 술맛이 유명한 원노단 막걸리공장에 들렀다. 그러나 궤짝 단위로만 판매하는 까닭에 몇 병은 살 수가 없어 길가의 구멍가게에서 일행들과 서로 권한 번암막걸리는 명불허전으로 그 술맛이 참으로 훌륭하였으니...
*산행길잡이
하북버스정류소-(40분)-북치재-(2시간)-대성산 정수리-(1시간20분)-670m봉-(1시간)-원노단
대성산의 들머리는 번암면 국포리의 하북버스정류소. 정류소 서쪽으로 포장길을 따라들면 상북정류소를 지나 남쪽으로 마을길이 이어가고 느티당목이 이정표마냥 지킨 북치재 고갯마루에 이른다. 동남쪽으로 능선에 올라서면 전신철탑이 자리하고, 장수군 번암면과 남원시 산동면과 경계 능선길이 길게 이어진다. 소나무, 물박달나무, 굴참나무, 밤나무 거목들이 늘어선 능선길을 이리저리 돌아오르면 묵무덤을 지나 북쪽으로 조망이 시원한 이장묘에 이른다.
왼쪽으로 꺾어지는 능선길을 이어가면 바위지대를 만나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첫번째 전망대인 쉼터바위에 이른다. 뒤이어 만나는 산불지역을 지나면 두번째의 전망대를 만나고, 참나무봉과 소나무봉을 오르내리면 세번째 전망바위다. 이곳에서부터 길이 다소 험해진다.
770봉을 지난 바위지대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소나무봉에 이른다. 이곳에서 7~8분이면 대성산 정수리다. 제법 너른 타원형의 정수리에는 묵무덤과 1974년에 설치한 삼각점이 자리한다.
하산은 시,군 경계인 남녘 능선의 영월산(492m)을 이어 수작골로 내리는 코스와, 동녘의 매봉재(485m)를 이어 노단리로 내리는 코스가 있다. 취재진은 교통이 편리한 노단리 코스로 내렸다.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내려가면 잇달아 세 개의 무덤을 지나 850봉에 이른다. 뒤이어 만나는 바위지대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다시 능선길이 이어지고 750봉에서 능선은 오른쪽으로 크게 꺾어진다. 다시 능선길을 이어가면 안부가 나오고 가파른 솔숲능선을 지나 670봉을 만난다. 곧 벼랑을 이룬 전망바위에 닿는데, 오른쪽으로 돌아내리면 1983년에 설치한 삼각점이 자리한 485봉(매봉재)이다. 여기서 동쪽으로 능선길을 따르면 가시나무봉과 밧줄지대, 통신철탑, 합장묘를 지나 원노단 시가지에 내려선다.
하북정류소~원노단 종주코스는 5시간이 걸린다. 등산로에는 이정표가 없어 방향 설정이 어려워 독도에 신경써야 한다.
*교통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장수까지는 1일 4회(09:20, 10:40, 13:40, 14:35) 버스가 출발한다. 3시간30분 걸리고 요금은 17,700원. 장수에서 번암면하북정류소까지는 군내버스가 수시로 다닌다. 남원에서 번암까지는 시외버스가 1일 24회 다닌다. 번암면에서 택시를 이용해 상북마을이나 북치재까지 갈 경우 7,000~10,000원쯤 나온다. 번암택시 063-353-4800.
날머리 번암면 노단리에서는 남원이나 장수행 버스가 자주 있다.
*잘 데와 먹을 데
날머리인 번암면 노단리에는 동화댐가든(353-1034)을 비롯한 식당이 여럿 있으나, 숙박을 하려면 남원이나 장수읍내로 나가야 한다.
글쓴이:김은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