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다.
-행복에 이르는 경지는 평범한 것으로부터 행복을 뽑아내는 힘에 있다.- 헨리 워드 비쳐
올해는 가을장마가 제법 길고 비도 많다. 마당에는 맥문동이 만발하여 청보랏빛 불꽃이 마당 가득 흔들린다. 작년 이때쯤 서천 장항송림욕장에 맥문동 군락지의 꽃소식을 접하고도 이런저런 바쁘다는 핑계로 때를 놓치고 말았다. 5~6월에 엷은 자주색으로 피는 맥문동은 마디마다 작은 꽃이 3~5개씩 모여 총상 꽃차례로 밀착하여 피는데 보통 8월 말까지 만발해있다. 10~11월에는 검푸르게 윤이 나는 둥근 장과가 달려 익어서 일찍 껍질이 벗겨져 자줏빛이 도는 흑색의 씨가 노출된다. 유난히 보라색을 좋아하는 나는 맥문동이 아니라도 보라색 꽃이 피었다는 기별을 접하면 어디든지 서슴없이 달려가곤 한다. 주말 아침 서천까지 두 시간가량 소요될 일정을 계획하고 서두르는 내게 남편이 묻는다. “오늘 어디 가려고?”“네 서천 맥문동 보러 갈라고요.”그런데 남편의 반응이 심상치가 않다. 현관문만 열면 마당에 맥문동이 지천인데 무슨 멀리 서천까지 가느냐는 반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며칠 전 허리를 삐끗하여 아직 회복이 덜 된 상태라서 염려 섞인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서 나서기로 했다. 맥문동이라는 이름은 그 뿌리가 보리의 뿌리와 같아 수염뿌리가 있어서 붙여진 것이라 하며 부추의 잎과 같아 겨울에도 살아 있어 불리게 된 것이라고도 하니 비단 청보랏빛 꽃을 보는 설렘도 있지만 두 시간 정도 소요되는 거리를 지방도는 물론이거니와 고속도로를 혼자서 달리는 기분과 여유는 내게 소중한 힐링이며 행복한 자유로움이다. 또한 항상 내 지역을 떠나지 않고 살다 보니 그토록 반짝이던 것들도 빛을 잃고 때로는 특별했던 것들에 염증을 느낄 때면 지역의 경계를 지나 낯선 고장의 정서와 풍경 속으로 들어 가보는 것, 하늘의 색깔마저 완연히 구분된 그곳에서 비로소 기이하지도 유별나지도 않은 보통의 내 존재와 보통의 내 지역문화에 특별한 중요함과 소중합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장항송림욕장 주차장에 11시 30분쯤 도착해 보니 이제 막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코로나 시대의 거리두기 지침을 바탕으로 움직이고 있다. 나는 나의 몸과 마음을 바라보는 나와의 거리두기로 멀리서 나를 바라보기로 한다. 가을장마 속에 날씨는 흐리지만 간혹 빛으로 나와 숲에 스며드는 초가을 햇살과 한쪽 귀퉁이 차지한 배롱나무꽃을 만나고 넓디 넓은 서천 뻘밭 바라보며 잠깐 잠깐 명상을 하고 구슬을 꿰어 놓은 듯한 맥문동 군락지에 마음의 집을 짓는다. 이곳 맥문동 군락지에는 쭉쭉 뻗은 해송이 장관이다. 1954년 장항농고 학생들이 학교와 마을을 모래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심었다는 50년 넘은 솔숲 그늘에서 온몸을 피워낸 꽃이 있으며 노을이 아름다운 서해와 갯벌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가 하면 그 안에 장항스카이워크의 볼거리까지 비단 혼자라도 꽃 잔치 속 힐링이 되는 곳이다. 바다와 솔숲과 꽃의 풍경으로 산림욕장 산책로가 약 5km라는데 한 시간 반가량 지났을까 후두둑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자동차로부터 너무 멀리 왔나 싶어 서둘렀다. 그리고 드라이브로만 가능한 장항도시탐험역으로 향했다.
장항송림산림욕장에서 승용차로 약 6분 거리에 있는 장항도시탐험역은 서천의 신상 여행지다. 서천에 방문한다면 꼭 들러야 할 명소다. 장항도시탐험역이 자리한 곳은 예전 장항선의 종착역이었던 장항역이다. 열차가 완전히 멈춰선 옛 장항역은 지난 2019년 세련된 문화관광 공간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한다. 장항의 역사와 문화를 전시한 공간이자 여행자의 쉼터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는 모양이다. 내부는 장항의 역사와 문화를 탐험하듯 둘러볼 수 있게 꾸며져 있다. 또한 장항 이야기뮤지엄에서는 인근의 장항항, 장항제련소 등 장항의 성장을 이끈 스토리와 역사를 살펴볼 수 있었으며 맨 위층에는 18m 높이의 도시탐험 전망대가 있어 장항 시내의 장쾌한 풍경을 만끽하고 장항도시탐험역을 빠져나왔다. 주일은 나에게 아껴먹는 알사탕 같은 날이다. 주말을 트레킹이나 타 지역의 관광지를 찾아다니지만 살짝 무리를 하더라도 아껴놓은 하루가 있다는 여유로움이 있어서 좋다. 오는 길에 군산 휴게소를 들렀다. 여행과 고속도로와 휴게소는 참 낭만스러운 단어들이다. 집에 가만히 있다가도 이런 단어들을 떠올리면 그냥 아련해지니 말이다. 고속도로 휴게소를 들르면 꼭 찾아 먹는 단골 메뉴가 있다. 누구에게나 소울푸드라고 하는 추억의 음식 하나쯤 있기 마련이듯이 나에게 옛날 핫도그가 그것이다. 16살 되던 그해 요꼬 공장에서의 월급날이면 한 달에 한 번 월곡시장에 나가 동료들과 튀김을 사 먹던 기억이 생생하다. 초등학교 3 . 4학년 쯤 되어 보이는 튀김집 딸아이가 부르던 엄마라는 그 이름이 세상에서 가장 부러웠고 튀김집 딸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였었다. 그 후 식빵 튀김, 고구마튀김, 그리고 옛날 핫도그만 보면 놓치지 않고 사 먹게 된다. 그리고는 지금의 내가 행복해 가슴 벅찰 때가 있다. 그랬다. 어려서는 내게 돈이 없어서거나 차마 엄마에게 사 달라는 말을 못 하거나 어쩌면 돈이 귀할 때라 용기 내어 말을 해도 사 줄 수 없을 수 있었던 핫도그를 돈도 아닌 카드 한 장 건네고 큼지막한 옛날 핫도그에 설탕통에서 한 바퀴 빙그르르 굴려 달달한 맛을 추가하고 그뿐인가 구경도 못해 보았던 케찹까지 무늬를 넣어 옷을 입히고 나니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다. 어렵게 어른 되어 내가 번 돈으로 내 추억 속의 음식을 누구의 눈치 볼 것 없이 골라 먹을 수 있는 시대적인 행복 그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보다 더 나이 들어 현관문 열고 마당에 지천인 맥문동 바라보다가 혹여 옛날 그 핫도그가 먹고 싶어지면 어쩔거나. 비단 돈이 있어도 몸으로 달려갈 수 없이 늙어지면 어쩔거나. 그래 지금 이 순간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다. 집에 도착해 보니 서천에서 만났던 청보랏빛 맥문동이 나보다 먼저 와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