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마리 바실리카

세르비 바실리카

레드 바실리카
아래에 있는 글 중에서 카타콤이 나와서 그후에 나온 바실리카에 대해 한번 조사해 보았습니다.
로마시대 그리스드교 신도들은 로마의 박해를 피해 카타콤이라는 지하 묘굴에서 살았는데 이후 AD313년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에 예배장소가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공공 예배당이 필요해지고 그 필요에 의해 지어진 초기 교회 양식이 바실리카 양식이다.
그리고 바실리카 미술가들은 카타콤브 세대를 참고하여 새로운 미술을 만들어내는데 모자이크 양식이 그것이다.
이 시대의 화가들 역시 사실적인 그림에는 관심이 없었고 필요한 내용의 전달, 즉 설교가 목적이었다.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양치기, 하늘의 연회, 불멸성을 상징하는 수탉, 영혼을 의미하는 비둘기, 희망을 상징하는 닻등이 종종 쓰이고 있으며, 구약성서에 나오는 요나의 이야기 등이 구원의 전형으로서 그려지기도 한다.
조각의 경향은 기본적으로 우상 숭배의 오명을 피하기 위해 등신대의 인물상이나 대형 예배당의 제작을 꺼렸던 당시 상황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종교 조각은 반모뉴멘탈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즉 그리스·로마 조각의 공간의 깊숙함이나 당당한 규모가 없어지고 소규모의 형태와 레이스 같은 장식으로 기울어졌다.
원래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특별한 종류의 그리스도교 건축을 세울 의도는 없었다. 이들은 유대교의 전통적인 두가지 종교건축형태에 이미 익숙해 있었는데, 하나는 예루살렘 성전이었고 하나는 교육과 예배를 위한 교회당이었다. 그리스도교 건축이 점차 발전함에 따라 이들은 출발점으로, 이교도인 그리스나 로마의 신전을 선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들의 종교 개념은 교회란 신의 주거가 아니라 신을 믿는 사람들의 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공공집회용으로 설계된 건축양식에 눈을 돌리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고대 로마의 바실리카였다.
바실라카가 재정로마시대에 중요한 건축물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시 시대적 상황을 보시면 많은 사람들을 한곳에 모을수 있는 곳이죠..그것이 하나의 양식으로 발전되어 지금의 교회당이 대부분 (직사각형에 맨 앞에 강단이 위치하는 것)이러한 형식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