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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으로 퍼갈 수 없습니다.* 야생화 천국-태백 분주령 글/사진: 이종원 보라색 꿀단지를 안고 있는 꿀풀, 메니큐를 칠한 손톱처럼 빛을 발하고 있는 미나리아재비, 줄기를 째면 오줌냄새가 난다는 노루오줌, 별 모양의 수많은 꽃들이 뭉친 태백기린초등 신기한 야생화들이 서로 경쟁을 하면서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뭐니뭐니 해도 여름야생화의 하이라이트는 나리꽃이다. 초록을 배경 삼아 짙은 주황꽃이 하늘을 향해 함박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마치 대가집 따님이 붉은 연지를 입에 물고 대청마루에 서 있는 것 같은 분위기가 풍겨 나온다. 이때쯤이면 식물도감을 가져온 아이들의 손놀림은 분주해진다. 꽃이 분주하게 핀 것인지 아이들 손놀림 때문인지 분주령의 다양한 의미들을 상상해본다.
울긋불긋 꽃천국-야생화 트레킹 곰배령과 더불어 우리나라 야생화천국인 분주령은 여름철 산행코스로 제격이다. 금대봉과 대덕산 일대 126만평이 생태계 보존지역으로 지정될 정도로 야생화가 깔려있으며 희귀 조류와 양서류의 집단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모자가 필요 없을 정도로 숲이 우거져 더위를 느낄 틈도 없다. 반도의 등뼈인 백두대간을 밟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며 핸드폰 같은 문명의 이기도 이곳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산행은 두문동재(1268m)부터 시작해서 금대봉, 고목샘, 분주령, 검룡소, 안창죽마을로 이어지는 코스가 무난하다. 두문동재는 매봉산(1,303m)에서 금대봉((1,418m)과 은대봉(1,422m)을 거쳐 함백산(1,572m), 태백산(1,567m)까지 이어진 백두대간을 가로지르고 있으며 정선땅과 태백땅의 경계선이기도 하다. 바로 옆 고개인 있는 만항재(1330m)가 우리 나라에서 가장 높은 고개이고 두문동재가 그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이야 터널이 뚫리면서 차량통행이 뜸하지만 예전엔 이 고개를 한번 넘어가려면 큰 마음을 먹어야 할 정도로 까마득했다. 9부 능선부터 산행이 시작되니 등산이라기 보다도 하산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내리막 숲길을 산책하듯 거닐면 그만이다. 태백의 꽃향기를 실은 청량한 바람이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만든다. 촉감 좋은 임도에 몸을 맡기고 20여분 거닐면 시야가 확 트인 금대분지가 나온다. 무성한 풀밭에는 범꼬리 군락이 한없이 이어진다. 몸통은 백두대간에 처박고 꼬리만 대롱대롱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못된 이질병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이질풀은 핑크빛 향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고 꿩의 다리처럼 생겼다는 산꿩의다리 군락도 감탄사가 나오게 만든다. 금대봉분지에서 비탈길로 조금 내려가면 고목나무샘을 만나게 된다. 1평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샘 한 귀퉁이에 '한강의 발원지'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이 물이 땅으로 흘러 검룡소 바위에서 솟아나 임계를 거쳐 정선과 영월, 제천, 단양, 충주, 원주, 여주, 양평, 팔당, 김포를 거쳐 서해로 빠지게 된다. 서울 한복판에 흐르는 한강물이 이곳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든다. 목구멍으로 태고의 신비가 밀려 들어온다. "캬-물 맛 좋다." 샘물은 다시 지하로 흐른다. 그걸 말해주듯 인근 땅이 포탄에 맞은 것처럼 웅덩이가 패여 있었다. 지반이 약해져 땅이 꺼진 것이다. 하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숲 덕분일까. 이글거리는 태양도 이 숲 앞에는 여지없이 나가떨어진다. 다래와 머루등 넝쿨식물도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하늘을 찌를 듯한 활엽수와 어린아이 몸뚱이 만한 관중은 마치 주라기 공원에 들어온 착각에 빠진다. 오랜 세월 동안 낙엽이 떨어져 쌓인 부엽토 길은 질 좋은 카페트였다. 신발을 내던지고 맨발로 걷고 싶은 충동의 일 정도다. 새콤한 산딸기와 오디를 한움큼 입에 털어 넣는 것도 산행이 주는 재미다. 산열매가 가득 배인 입에서는 흥겨운 동요가 흘러나온다. 활엽수림만 펼쳐진 것이 아니다. 쭉쭉 뻗은 낙엽송 군락도 트레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작은 꽃이 무수히 달린 산꿩의다리 군락지와 보랏빛 노루오줌 군락지도 만났다. 만약 내가 영화감독이라면 이런 곳을 배경지로 선택하지 않을까? 한 시간여 숲터널을 벗어나면 인진쑥으로 뒤덮힌 초원지대가 나온다. 향기 짙은 쑥내음이 코끝을 후비고 있다. 바로 이곳이 태백 안창죽에서 정선 백전마을로 넘어가는 분주령이다. 태백에서 정선으로 넘어가면서 우리 선조들은 허기와 외로움에 지쳐 정선아리랑을 불러 제켰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쉬움을 분주령에 묻어 두고 하산한다. 내려 갈수록 물소리가 커진다. 지하로 흐른 물이 바위틈에서 솟아나기 시작한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물이 차가워 10초 이상 손을 담그기 힘들 정도다. 개울을 건너면 검룡소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이 연상될 정도로 늘씬한 나무가 도열하고 있었다. 숲길을 지나면 버려진 밭에 개망초 꽃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너무 흔해서 그냥 지나치기 쉽다. 눈을 부라리고 보라. 완벽한 대칭을 가지고 있다. 억척스럽게 살아간 산골 여인네의 눈물처럼 고귀하게 보인다.
한강의 발원지-검룡소 검룡소는 울창한 숲길 아랫목에 자리잡고 있다. 지름 5m 정도의 조그만 웅덩이에서 하루 2천톤의 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물은 금대봉의 고목나무샘, 제당굼샘, 물골의 물구녕, 예터굼의 굴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검룡소에서 솟아난 것이다. 1987년 국립지리원이 공인한 한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이 물줄기가 514km의 긴 여행을 하면서 서해로 빠져든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4계절 수온이 항상 9도를 유지하는 물은 마른 적이 없고 한국의 100대 명수로 선정될 정도로 물맛이 좋다. 지하에서 솟아난 물은 한강의 발원지답게 용트림 폭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서해의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와 연못에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 친 흔적이라고 한다. 힘센 물줄기와 바위에 붙어 있는 초록 이끼가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3개의 강이 흐른다.-삼수령 검룡소에서 빠져 나와 태백시내 쪽으로 가다보면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하는데 그곳이 바로 삼수령(920m)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빗방울이 북쪽으로 흐르면 한강, 동쪽으로 흐르면 오십천, 남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으로 흘러간다고 해서 삼수령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동해, 서해, 남해의 물은 이곳 삼수령에서 흘러가는 셈이다. 일명 피재라고 하여 그 옛날 세상이 어수선하거나 난이 있을 경우 삼척사람들의 피난처이기도 하다. 차창에서 펼쳐진 고랭지 채소밭의 규모를 보고 눈이 휘둥그래진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역-추전역 추전역은 한국에서 가장 높은 해발 855m의 고원지대에 위치하였으니 기차가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역이다. 웅장한 백두대간을 감상할 수 있으며 특히 매봉산 자락의 풍력발전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추전역은 연중 난로를 피워야 할 정도로 기온이 낮은 곳이다. 남쪽지방에서의 벚꽃축제가 지난 지 한 달이 지나면 이제 추전역의 벚꽃나무에 꽃망울이 맺힌다고 한다. 가을을 상징하는 코스모스가 7월이면 피는 곳이 또한 추전역이다. 인근 골짜기에 화전민이 많이 살았고 그 곳에 싸리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어 추전역이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역 입구에 앙증맞은 꼬마기차가 있는데 석탄을 실어 나르는 광차다. 추전역 구내를 벗어나면 국내에서 두 번째 길이의 정암터널이 나온다. 길이가 무려 4,505m이니 태백산맥의 험준함을 엿볼 수 있다. 추전역에는 1일 2회 열차 교행을 위해 무궁화열차가 잠시 정차를 한다. 상징탑 바로 옆 문화공간에서 철도원을 바라보며 차 한잔 음미하는 것도 의미 있는 시간일 것이다. 초롱꽃. 은은한 종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별모양의 꽃이 뭉친 태백기린초 까치수염과 네발나비 하늘나리 군락지 하늘이 열리고 분주령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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