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지물이었던 농촌지역 폐교. 하지만 이제 그곳에 가면 예술이 보인다. 황량했던 폐교가 몇년새 다양한 문화예술체험을 할 수 있는 ‘예술촌’으로 업그레이드돼 가족단위 나들이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올여름 휴가때 실속파 학부모들은 기존의 소비성 바캉스 패턴에서 벗어나 텐트 하나로 가족간에 돈독한 정을 키울 수 있는 낭만의 ‘폐교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아트 스페이스로 변한 각종 폐교 관련 정보를 담았다.<편집자주>
#우리 가족 눈높이에 맞는 예술촌
경북도 23개 시·군에는 약 50여개의 예술촌이 있다. 모두 폐교가 예술촌으로 탈바꿈한 것은 아니다. 폐교는 30여곳. 나머지는 지역 대학, 문화예술단체 등이 해당 지역 교육청의 요청에 따라 운영하는 문화시설들이다. 평일에는 지역 학생들, 주말에는 예약된 일반인 및 단체 손님, 방학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특별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각 예술촌마다 이용객들을 감동시킬 만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요즘 대다수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너무 버릇이 없어 한숨을 내쉰다. 빠른 시간내 반듯한 심성을 찾을 순 없을까. 이럴 경우 ‘안동의 청학동’으로 알려지고 있는 안동예절학교(안동시 와룡면 감애리)를 노크하면 된다. 투정많고 자기 밖에 모르는 아이들의 망가진 예의범절을 체계적으로 잡아준다.
다른 예술촌은 지정된 야영장에서 잠을 자야하지만 여기엔 1인 약 2만9천여원(4인가족 10만원)을 지불하면 공부하고 밥먹고 하룻밤 묵어갈 수 있다.
유건과 도포 차림으로 천자문을 익히고, 이몽룡으로 변해 과거급제한 자녀들의 의젓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우리 가족만의 옷을 원한다면 지난해 4월 문을 연 경주시 천북면 화산1리 불고기단지 내에 있는 경주학생예술체험장(구 화당초등학교)이 적격이다.
야생초들이 어떻게 물감 원료로 개발되는지 천연염색 이론을 공부한 뒤 실습에 들어간다. 직접 손수건, 스카프, 티셔츠 등에 좋아하는 색깔과 문양을 골라 염색한다. 근처 숯불갈비집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돌아오면 천연염색 전문가 김기애씨가 세탁해도 물이 빠지지 않을 정도로 특수처리한 옷을 건넨다. 비용은 손수건은 5천∼6천원선, 티셔츠는 1만5천원선.
구미시 고아읍 횡산리 구미 예술창작 스튜디오(구 대방초등학교)에는 박동춘, 박은경, 김대진, 이은실 등 4명의 예인들이 색다른 경험의 세계로 이끈다. 양각된 귀신 문양이 인상적인 귀면와, 와당 등 전통문양을 직접 도자기로 재현해 부조 원리를 터득케 하고, 죽은 나뭇가지를 활용, 솟대가 탄생되는 과정도 체험해 볼 수 있고 강사한테 잘 보이면 가훈도 목각으로 새겨갈 수 있다.
무량수전과 부석사로 유명한 영주. 그곳을 둘러 본 뒤 인공암벽, 물레방아, 벽화, 등나무 그늘이 어우러진 영주시 문수면 월호리 영주 전통예술교육관으로 간다. 식수대까지 마련돼 있어 비교적 쾌적한 텐트 생활도 가능하다. 농사짓는 게 뭔지를 모르는 아이를 데리고 쟁기, 지게 등 100여점의 농기구가 소장된 농기구실을 구경시켜준 뒤 한지공예실로 가서 준비된 한지와 풀, 가위와 칼을 갖고 연필꽂이통, 연공예실에선 다양한 연까지 만들어 볼 수 있다.
상주시 내서면 신촌리 상주 학생문화예술체험학습장(구 내서초등학교)은 학교 앞마당에 넓은 풀밭이 형성돼 아이들과 공차기를 하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잠시도 한 자리에 차분하게 앉아있질 못하는 개구쟁이들에게는 전통다도체험교실이 딱이다.
가창댐을 지나 청도로 이어지는 약 15km 도로는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빼어난 드라이브 코스. 중간에 대구미술광장(구 정대초등학교) 전시실에서 그림 감상을 한 뒤 정대숲에서 오수를 즐긴다. 청도와 가창면 경계 헐티재를 지나 5분정도 달리면 청도군 각북면 비슬도예원(구 각북초등학교)이 나온다. 조형감각이 부족한 아이들이 흙장난을 해놓아도 원장이 알아서 잔 손질을 한 뒤 그럴듯하게 작품화해준다. 재료비로 성인은 1만원, 학생은 6천원을 내면 된다. 타 지역에 있어도 3명 이상 신청만 하면 택배로 작품까지 보내준다.
문학적 여행을 원한다면 조지훈 시인과 소설가 이문열을 배출한 영양군 일월면 송하리 해달뫼 종합학습원을 찾아가면 된다. 텐트를 준비해 동해안과 일월산, 이문열씨의 광산문학자료관, 조지훈 생가를 둘러 본 뒤 체험장으로 가서 하회탈춤을 배우다 보면 가족은 어느새 하나가 돼 있다.
별과 꽃, 산길이 어우러지는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영천시 자양면 보현산 천문대 아랫동네에 자리잡고 있는 영천보현청소년 야영장(구 자양중학교). 여기는 방학 마무리 코스로 적당하다. 여기에 오려면 한 가지 갖고 와야 되는 게 있다. 깨끗한 행주이다. 발우공양을 연상시키는 일명 ‘친환경 식사’때문이다. 밥 먹고 난 뒤 김치를 수세미 삼아 그릇을 씻고 남은 물도 마시고 행주로 말끔하게 닦아야 한다. 차를 타고 30분정도 올라가 보현산 정상에 있는 보현산 천문대까지 견학할 수 있다. 8월20일 이전까지는 단체 손님들만 이용할 수 있고, 8월20일부터는 100명 선착순으로 캠프자를 받는다. 1일 3식, 하룻밤 묵는데 어른은 2만원, 학생은 1만5천원.
#예약하기 전 체크사항
예술촌 여행은 낭만과 운치는 물론 비용도 저렴하다. 하지만 리조트급으로 생각하면 실망을 하기 쉽다. 지금은 초창기라서 편익시설이 좀 부족하고 강사진도 상주하지 않는 곳이 많다.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이다 보니 프로그램 참가비도 싸 보통 1만원 안팎선. 운동장이 있어 대부분 야영이 가능하고, 안동예절학교와 영천보현청소년야영장의 경우 숙박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예술촌은 관할 교육청이 관내 지역 학생들의 문화향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이용할 경우 반드시 7∼10일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예고없이 불쑥 찾아가면 강사를 만나지 못해 허탕을 칠 수도 있다. 예약시 이용 일시, 야영시설 유무, 편익시설, 체험프로그램, 찾아가는 길, 예술촌과 연계할 수 있는 여행코스 등도 꼼꼼하게 체크해두면 더욱 알찬 시간을 즐길 수 있다. 폐교로의 여행, 좀 불편해도 추억과 진한 가족애를 동시에 낚을 수 있는 이색 피서법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