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청주 삼일공원과 기독교
오늘 우리가 모여 있는 청주 삼일공원은 그 이름을 3·1 운동에서 따왔다. 공원 이름을 ‘3.1공원’으로 한 것은 청주에서 전개된 3.1운동 자체를 기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충북 출신 6명의 애국 애족의 정신을 선양하기 위함이다. 동시에 독립을 위해 피를 흘린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민족 자긍심을 일깨워 주기 위하여 1980년에 조성되었다.
여기에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충북 출신 독립 운동 지도자인 손병희, 권동진, 권병덕, 신홍식, 신석구, 정춘수 등 6인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그 중 신홍식, 신석구, 정춘수 등 3인은 목사 출신으로, 3․1운동 시기에 활약한 충북 출신 기독교인으로, 감리교단의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정춘수 목사의 동상은 현재 철거되고 자리만 남아 있다. 그렇게 된 데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것은 정춘수에 대한 역사 재평가로 인한 것이다. 33인의 대표인 그가 1938년 이후 변절하여 친일 부역하였다는 것으로, 부분애국을 인정하지만 친일 부역의 정도가 훨씬 심했다는 평가이다.
1939년 10월, 감리교 제4대 감독으로 피선된 그는 갖가지 명분으로 감리교 황민화에 앞장섰다. 일제가 1941년 12월 8일에 진주만을 공격하고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자 정춘수는 감리교회를 그 전쟁의 지원부대로 전락시키는 조처를 취해나갔다. 그는 국민개로운동(國民皆勞運動)을 지지하고, 일본의 영․미 응징 전승 기원과 일본군의 무운장구를 위한 특별기도회를 가졌으며, 1942년 2월에는 각 지역의 교회 지도자들에게 ‘황군 위문 및 철물 헌납건’이라는 공문을 보내 교회의 철물, 철책은 물론 교회 종도 헌납하여 일본의 전쟁 완수에 협력할 것을 명령했으며, 말년에 창씨개명에 응해 ‘朱谷春洙’란 이름을 가졌다.
그는 1943년 10월에 열린 감리교 총회에서 친일세력의 비호 하에 다시 교회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성서도 한국인의 민족 의식과 종말사상에 영향을 주는 구약과 요한계시록을 제외한 복음서만을 사용하기로 했다. 이로 인해 감리교는 신앙과 신학, 그리고 교회 제도 면에서 큰 상처를 입게 되었다.
정춘수는 이러한 삶 때문에 해방 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의해 구속되었다. 그리고 교회는 그를 친일파의 거두라고 비난했다. ‘어쩔 수 없는 친일’을 넘어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친일하였다는 해석이다. 이에 그는 1949년 10월 명동성당 노기남 주교를 찾아가 천주교로 개종했다.
감리교에서는 그의 행동을 “변절”과 “배은망덕”으로 평가했고, 1950년 4월 중부연회에서 교회법에 따라 정춘수 목사를 ‘면직’으로 징계하였다.
삼일공원을 찾아 올라와, 신석구 목사의 동상과 바로 그 곁에 헐린 정춘수 목사의 동상 자리에 설 때마다 마음이 착잡하다. 역사의 평가는 준엄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주의 자녀로서 사명 잘 감당하기 위한 ‘역사 기준’ 앞에 선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시작도 중요하나 끝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삼일운동 민족 대표 6인 동상 앞에 ‘항일독립운동기념탑’이 우뚝 서 있다. 2013년 8월 15일에 세워진 것으로, 2011년부터 ‘항일 독립 운동 기념탑’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기념탑을 세웠는데, 역사적 의미와 상징성을 부각하고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상기시키며 일반 시민과 자라나는 청소년, 어린이 등 후손들에게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기념탑은 높이 14.4m, 가로 16.2m, 세로 7m 크기로 앞쪽은 날개벽·탑신·동상과 충북지역 독립운동 유공자 이름, 뒤쪽은 항일 독립운동 형상 부조로 이뤄졌다.
탑신은 거세게 타오른 충북지역 독립운동을 횃불로 형상화했다. 날개벽에는 취지문과 충북지역 항일 독립 운동가 513명의 이름을 새겼다. 거기에는 신석구 신홍식 목사는 물론 충주지역 삼일 운동을 주도하였던 충주제일교회의 장양헌 전도사, 추성렬 속장의 이름도 보인다.
동상은 각계각층의 항일 독립운동 모습을 나타내었다. 충북의 땅을 모형으로 한 지도위에 동으로 군상을 제작함으로써 충북 도민의 항일 독립 운동의 생생한 모습을 재현하였다. 그 군상에 양반, 상민(常民), 노인, 젊은이, 부인, 여학생 등 남녀노소 각계 각층을 망라하여 동으로 제작하여 세웠는데, 그 가운데 특히 부인, 여학생 등의 여성 참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에서 주장하던 남녀평등의 개념이 삼일운동을 통해 실현되고, 이후 1920년대에 들어와 여성들의 적극적인 사회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데서 그러하다.
이곳은 공원이라 하지만, 일반 공원과는 다르다. 흔히 공원이라 하면, 여러 사람들이 휴식하거나 가벼운 운동 혹은 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정원으로, 주민의 휴양 및 정서 생활의 향상에 기여하게 하는 장소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곳은 그것보다는 추모 시설이 있는 곳으로, 조국을 위하여 희생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충절을 기리며 경건한 마음으로 돌아보는 곳이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이곳에 찾아와 믿음의 유산을 찾아내고, 역사의 의미를 발견하며 그 의미를 추체험하는 장으로 삼아야 한다. 우암산 삼일공원은 역사와 현실과 신앙의 조화를 꾀하기에 아주 좋은 일종의 영성 개발 프로그램의 장으로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