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심은 곳간에서 난다고 했던가. 곳간 또는 곡간(穀間)은 가을에 거둬들인 곡식이나 물건을 보관한 곳이다. 규모도 크게 짓고 해로운 짐승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부잣집에 이런 곳간이 많았다. 이런 때문에 부자는 곳간에서 인심나고 가난뱅이는 아침이슬에서 복 나온다는 말이 생겼다. 이들 곳간이 채워지고 비워진 상태에 따라 마을의 민심이 요동치던 시절도 있었다. 부모들이 어려웠던 시절 식구들의 배를 곪지 않게 하기위해 마을 곳간을 기웃거리며 끼니를 때웠던 때가 있었다. 물건을 갔다주고 곡식을 바꿔오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힘든 노동을 통해 값을 치렀다. 꾸어온 곡식을 갚는 댓가로 들에 나가 모내기를 하거나 김매기를 한 것이다. 이 때부터 두레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두레는 마을단위로 농사를 돕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단기간 내에 일손이 필요한 모내기나 김매기 등을 통해 공동체사회를 이끌었다. 전국적으로 농번기 모내기와 김매기 두레가 가장 많았으나 김매기는 초벌·두벌·세벌·네벌매기 등으로 이어진다. 세벌매기 이상을 만물매기라 부르고 이 때 공동작업을 위해 부락이나 이(理) 단위로 구성한 모임을 ‘만두레’라고 했다. 만두레 날은 한해 농사와 어려운 고비를 끝내는 날이라 해서 농사장원을 뽑아 소 등에 태우거나 가마에 태워 흥을 돋웠다. 두레는 일제의 식민통치가 시작되면서 서서히 소멸, 마을공동체적 생활기풍의 축소를 가져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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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우리나라의 전통 만두레 정신이 ‘복지만두레’로 재무장돼 탄생했다. 전통적인 나눔과 상부상조의 두레문화와 정신을 바탕에 두고 지방시대에 걸맞는 주민참여를 통한 새로운 지역복지모델인 셈이다. 민선3기 때인 2004년부터 추진됐다 민선4기 들어 중단됐던 복지만두레가 리모델링해 재가동에 들어갔다. 대전의 차상위계층 1만 세대와 시민 간 1:1 자매결연을 통해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기로 한 것이다. 77개 동에 이르기까지 하부조직을 꾸려 복지사각지대 생존권을 보장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간다’는 공동체 의식을 통해 지역사회 통합을 이끌어 간다는 취지다.
대전시의 복지만두레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기존의 조직을 부활시키는 일도 좋지만 기존의 기초생활수급자들과의 차별화된 지원책을 발굴하는 일이 급선무다. 이중의 혜택을 받는다거나 꼭 혜택을 받아야 할 사람이 못 받는 경우가 없게 해야 한다. 여기에 비어가는 자치구의 곳간도 채워줘야 한다. 곡식이나 재물이 있어야 이웃을 도울 수 있는 것이다. 여유있는 사람만이 선행을 베푸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곳간이 채워져 있는 상태에서 베풀면 더 아름다운 법이다. 곳간이 비면 전쟁이 일어난다고 하지 않던가. 곳간이 든든하면 상부상조의 두레정신도 더 빚날 수 있다. 베풂은 곧 자기에게 득이 되어 돌아온다는 세답족백(洗踏足白)이란 말도 있듯이 말이다.
곽상훈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