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명한 그림 <최후의 만찬>에 얽힌 일화입니다.
1491년에 로마 교황청에서 새로 지어진 수도원의 벽화그림을 요청 받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실제 그림의 모델로 쓸 사람들을 찾기로 다짐했습니다.
엄선 끝에 예수님 모습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았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곳저곳을 찾아 헤맨 끝에 순수한 인상과 맑은 영혼의 얼굴을 가진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그 사람의 얼굴을 예수님 얼굴자리에 그려 넣었습니다.
그림이 거의 완성되기까지는 6년이 지났습니다.
마지막으로 배신자 가롯 유다의 얼굴만 남게 되었습니다.
또 다시 그는 6년 전처럼 배신자 얼굴에 합당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아, 이 사람이 딱 이구나”
여러 빈민가를 헤맨 끝에 마약과 알코올에 찌든 인생의 막장까지 간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본 뒤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다름 아닌 6년 전 순수한 인상과 맑은 영혼의 얼굴이던 자신이 예수님 얼굴로 그려 넣은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자신이 사는 방법과 환경에 의해 그 사람의 얼굴이 바뀌게 됩니다.
자기 얼굴은 자기가 책임을 진다고 우리는 말을 합니다.
여러분도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여러분 얼굴에 책임을 져야하는 시기가 왔습니다.
그렇다고 얼굴을 배용준이나 장동건처럼 꽃미남으로 성형하란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지는, 당당하게 삶을 살아갈 때에 자신의 얼굴에 배어나오는 편안함 그런 얼굴을 말합니다.
종교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종교라 하면 신이나 어떤 초월적인 능력을 가진 절대자를 인정하여 일정한 양식과 절차 아래 그것을 믿고, 숭배하고, 신앙함으로써 마음의 안락과 행복을 얻으려는 정신적인 문화의 한 체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기독교, 천주교, 유교, 유대교, 마호메트교 등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기독교, 천주교, 유대교 및 마호메트교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는 유일신을 믿으며, 인도의 인구 90%가 믿는 힌두교는 3억이나 되는 많은 신들을 숭배하는 다신교입니다.
불교에서는 신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의 석가모니 부처님조차 인간입니다.
그분은 인간의 최고 경지에 오른, 사람으로서 최상의 반열에 오르신 분으로 인류의 스승입니다.
유교도 절대적인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신(神)이란 단지 인간의 영역을 넘나드는 영적인 존재로 보통 귀신을 말합니다.
또 불을 숭배하는 조로아스터교(拜火敎)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불교는 종교일까요, 아닐까요?
또 불교가 다른 종교와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불교는 진정한 종교입니다.
그러나 불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신이나 어느 절대자를 믿고 따르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찾아가는, 구도의 길을 걷는 것이 다른 종교와는 다릅니다.
석가모니라 부르는 고타마 싯다르타가 수행하신 구도의 길을 우리가 알아보고, 배우며, 걸어가는 즉 우리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분이 걸어가신 길에 하얀 눈이 소복이 내린 길 위를 우리는 그 분의 발자취를 더듬고 찾아서 한발 한발 나를 만들어 가는 길입니다.
여기서 잠깐 부언설명을 하겠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본래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입니다.
고타마는 <좋은 황소>를 의미하는 농업을 숭상하는 씨족의 이름이며, 싯다르타는 <이루다. 성취했다>는 뜻입니다.
아버지 정반왕이 늦도록 후사가 없어 노심초사 하시다 고령이 다되어 어머니 마야부인에게서 부처님을 얻었기에 드디어 해냈다, 소원을 이루었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어머니 마야왕비는 태어난 지 7일 만에 돌아가셨고 이모인 마하파자파티 손에 자랐습니다.
부처님의 부인은 아소다라 공주이고, 아들은 부처님의 10대제자의 한분인 라훌라이며, 라훌라라는 의미는 부처님의 출가에 장애가 된다하여 붙인 <장애>란 의미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석가모니의 의미는 <석가족의 깨달은 사람> 즉 석가 족 출신의 깨달은 성자(聖者)라는 뜻입니다.
불교정신은 자비이고, 사상은 연기(인연생기(因緣生起)이며, “모든 생물은 자신이 주인이다”라는 인본주의 입니다.
불교의 목적은 견성성불(見性成佛)로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이루는 것입니다.
부처라는 뜻은 <법을 깨달은 분>을 가리키는데 여기서 법이라는 것은 연기법을 말합니다.
연기법이란 모든 것은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와 서로의 관계 속에 존재함을 말합니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 모든 것은 원인이 있기에 반드시 그 결과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인과응보라고도 말합니다.
손등이 있어 손바닥이 있고, 부모가 있으니 자식이 있습니다.
음식이 있으니 젓가락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연기법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또한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오셨건 오시지 않았건 이 우주법계에 항상 있던 것으로 부처님은 이 법을 스스로 깨달아 완전하고 바른 깨달음을 이룬 뒤에 모든 중생들을 위해 가르쳤습니다.
즉 연기법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시기 이전부터 존재했으며 단지 부처님께서 최초로 발견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此有故 彼有)
이것이 태어남으로 저것이 태어난다.(此生故 彼生)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此無故 彼無)
이것이 사라짐으로 저것이 사라진다(此滅故 彼滅)
-중아함경-
연기법 즉 인연법이 있기에 내가 있으니 네가 있고, 네가 있으니 내가 있어서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면서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고 때로는 원망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백 천 만 겁을 지나오면서 내가 성취하고, 사랑하고, 미워하며 살아온 결과는 반드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금생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복을 짓고, 죄를 짓고 한 것이 사는 동안의 내 모든 행실이 하나하나 저축이 되어서, 다음 후생에 태어날 때에 사람마다 자기의 적금통장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우리 주위에는 사람들한테 비난받을 짓만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떵떵거리며 잘 사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이 세상에 오기 전에 전생에서 다른 사람보다 복을 많이 지어서 금생에서 그 업보로 잘 살고 있습니다.
반대로 법이 없이도 잘살 수 있을 착한 사람이 가족은 헤어지고, 돈도 없고, 병들고, 하는 일마저 하는 족족 모두 실패하는, 그 사람을 볼 때마다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그야말로 불가사의 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 사람은, 비록 금생에서 복을 많이 지어 플러스 적금통장이 적립되지만, 그러나 이 세상에 오기 전에 전생에서 죄를 많이 지어 금생에서 그 플러스 통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뒤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게으름 피우지 말고, 부지런히 좋은 일 많이 하여 훗날 이 세상을 떠나갈 때 플러스 통장을 두둑하게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길을 가다가 스쳐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분명히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언제 어디선가 만나 본 듯한 사람이 있습니다.
말하다 보니 가수 태진아 씨가 부른 <옥경이>란 유행가와 같은 말이 됐지만, 이렇게 무심코 지나치는 사람도 전생에서 이미 나와 인연이 맺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가는 시골길에서 길가에 핀 들꽃을 보고 우리는
“꽃이 참 곱다”하고 바라보는 그 꽃도 사실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꽃을 보여주기 위하여 긴 세월을 기다린 나와 꽃나무와의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여러분과 저와의 만남도 이미 전생에서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는 인연으로 맺어진 사이입니다.
여러분 서산대사 휴정스님을 잘 알겠지요.
임진왜란 때 육십이 넘은 나이에 의병을 일으켜 위태한 나라를 구하셨고 제자인 사명대사 유정스님도 의병을 일으켰지요.
또 의병스님으로 유명하신 분이 충청도 금산의 <칠백의총>에 얽힌 영규스님입니다.
서산대사가 지은 <선가귀감>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음란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고,
살생하면서 참선하려는 것은
자기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는 것과 같다.
도둑질 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깨진 그릇에 물을 채우는 것과 같고,
거짓말 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똥으로 향을 만드는 것과 같다
-서산대사의 선가귀감-
일미칠근(一米七斤)이란 말이 있습니다.
한 톨의 쌀을 얻으려면 일곱 근이나 되는 많은 땀을 흘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원래 쌀미(米)자는 열십자에 여덟팔자가 위아래로 두 번이 겹치는 글자의 뜻입니다.
한 톨의 쌀을 얻으려면 농부의 손길을 88번을 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소금 한바가지를 얻기 위해서는 백 바가지의 바닷물을 바닷바람에 말리고 햇빛에 말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말리는 동안 비가 오는 날도 있고 구름이 잔뜩 낀 날도 있습니다.
때로는 눈이 내리는 날도 있겠지요.
이렇게, 바닷물을 이리 말리고 저리 말려서 결국은 1%의 소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사는 것이 어렵고 힘들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불자라면 우리 모두가 불법을 믿고, 법회에 빠지는 일이 없이 꼭 참석해야 합니다.
그날그날의 하루일과에 최선을 다하고, 다른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당당한 자세로 부처님 법에 따라 복을 짓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지나가는 시간의 아까움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이시간은 결코 다시 오지 않습니다.
여름날 창밖에서 종일토록 우는 매미가 있습니다.
이 매미란 놈은 단 7일을 살기위해 어둡고, 침침하고, 습한 곳에서 7년간을 애벌레로 보내야 만합니다.
여러분이 2년의 군대 생활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50년이 달라집니다.
현재의 주어진 생활에 만족하고 하루하루를 즐거운 마음으로 유익하게 보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과 같이 하는 시간, 제가 투자한 이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고, 이렇게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공유했기에 이 순간은 더욱 우리에게 소중합니다.
내일보다도 먼저 올 수 있는 것이 저승(죽음)입니다.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이것은 아주 평범한 진리입니다.
어제는 이미 지나간 내 역사이며 돌아올 미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오늘이야말로, 지금 이 시간은 여러분에게 주어진 아주 귀중한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present)를 선물(present)이라 부릅니다.
이 선물을 그냥 의미 없이 흘러 보내지 말고 부지런히 복을 지어 두둑한 적금통장을 만들기 바랍니다.
밸런타인데이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원래 기독교문화에서 유래하지만 여러분이 1년 중 가장 기다리는 날짜 중 하루입니다.
불자는 석가탄신일이 있고 기독교인은 크리스마스가 있습니다.
그러나 불자이든 기독교도든 아니면 종교가 없는 젊은이라 해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하는 날이 언제 일까요?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입니다.
올해는 성 밸런타인 신부의 1737번째 기일인 밸런타인데이입니다.
밸런타인데이는 로마황제 크라우디스가 훗날 근심을 남기지 않기 위해 멀리 원정을 떠나는 병사들의 결혼금지를 어기고 사랑하는 연인을 맺어주어 서기 270년 2월 14일 처형을 당한 성 밸런타인 애도의 날입니다.
요즈음 여성이 남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유일한 날로 정해지고 이날은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합니다.
이와 반대로 남자가 여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을 블랙 데이라 하여 오늘부터 한 달이 지난 3월 14일입니다.
빼빼로 데이는 아십니까?
10여 년 전 빼빼로를 생산하는 우리나라 모 제과회사가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남자에게 빼빼로를 선물하는 11월 11일로 일본에서는 근래에도 밸런타인데이보다 더 성행합니다.
빼빼로 데이는 원산지가 우리나라 입니다.
일주일 전 입춘이 지났습니다.
이제 서서히 봄이 오고 있습니다.
누가 오라고 하던 오지마라고 막던 간에, 봄은 오고 계절은 바뀌며 시간은 쉴 새 없이 흘러갑니다.
봄은 또 다른 계절의 시작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앞날을 위하여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시작해야 합니다.
오늘 법문을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