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현
피시방에서 담배연기로 고역을 치루다 술취한 깡패가 마구 난동을 부리는 식당을 부리나케 나와서는 추운 터미널 대합실에서 30여분 떨며 신세를 한탄한다.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터미널을 나와 농협 맞은 편의 외환은행 앞에서 27-1번 첫버스를 타고 20여분만에 종점인 신기마을에서 내리니 밤에 봤던 노거수 한그루가 산객을 맞아준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신기저수지를 바라보며 보현사를 지나고 옛 돌무더기들이 남아있는 청현 고갯마루로 올라서서 마지막 남강기맥을 바삐 이어간다.
'웰빙 토종소나무 산림욕장'이라 쓰인 이정표를 보고 명석면 청년회와 자율방범대의 표지기들이 촘촘하게 달려있는 산길을 올라가면 정말 키작은 재래종 소나무들이 빼곡하게 숲을 메우고있다.
▲ 신기저수지
- 광제봉
글씨없는 삼각점과 쓰러진 깃대가 있는 324.1봉에 오르니 집현산이 마주 서있고 무덤에서 청현으로 급하게 떨어지던 능선이 정면으로 잘 보이며 신기저수지는 짓푸른 빛을 발한다.
남쪽으로 잘 가꾸어진 송림을 내려가면 산길은 넓은 임도를 왼쪽으로 바짝 끼고 내내 이어지며 간벌이 되어있어 거치장스럽지 않다.
임도를 한번 만나고 다시 산길로 붙어 한동안 봉우리들을 넘다 다시 임도로 내려가 내율리쪽으로 가는 임도를 버리고 절개지를 올라 광제봉으로 향한다.
송전탑들을 4개 연달아 지나고 홍류저수지 갈림봉을 넘어서 광제봉 봉수대(420m)에 오르니 산불초소가 있고 봉화구 3개가 복원되어있으며 정상 오석이 보인다.
돌로 쌓아올린 봉수대에 서면 조망이 탁 트여서 허옇게 눈을 쓰고있는 지리산 천왕봉과 웅석봉, 황매산, 자굴산등이 빙 돌아가며 보이고 진양호를 향하여 낮게 달려나가는 능선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 광제봉 봉수대
▲ 봉수대에서 바라본 기맥의 낮은 봉들
▲ 봉수대에서 바라본 지리산 천왕봉
- 299.5봉
약간 돌아나와 명석면 이정표를 보고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고속도로같은 탄탄한 길이 이어지고 푸른 대나무숲이 상큼하게 펼쳐져 남쪽 지방에 왔음을 실감케 해준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 임도로 내려서니 돌무더기들이 쌓여있고 '광제봉 주산'이란 안내판이 서있는데 옛날에 호랑이가 많이 있을 때 이 고개를 넘던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던 곳이라 한다.
임도를 넘어 송전탑을 지나 높아보이는 310봉을 넘고 흐릿한 길이 갈라지는 덕현치를 만나서 등로가 갈라지는 299.5봉을 바짝 신경쓰며 올라간다.
약간 가파르게 이어지는 등로따라 봉우리를 넘다가 좋은 길을 버리고 잔솔들을 헤치며 정점인듯한 봉우리에 올라서니 삼각점(삼가311/2002복구)이 억새속에 숨어있다 모습을 드러낸다.
즉 봉수대에서 이곳 299.5봉까지는 명석면으로 향하는 일반등로를 따라오다가 오른쪽으로 299.5봉을 주의해서 오르면 명석면 가는 길과 기맥은 이곳에서 갈라지는 것이다.
▲ 돌탑이 서있는 임도
- 용산치
남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길도 없는 잡목숲을 뚫고 내려가면 임도가 나오고 철탑있는 곳에서 다시 방향을 잘 살피다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기맥을 찾아 들어간다.
잡목들만 빽빽하고 길도 없는 능선으로 들어가 묘 한기가 있는 봉우리를 넘어 페묘 두기가 스러져가는 봉우리를 지나서 낡은 시멘트말뚝이 있는 음침한 사거리안부를 넘는다.
요란스런 차소리를 들어가며 억새숲을 헤치고 돌탑과 시멘트말뚝이 서있는 봉우리에 올라가면 처음으로 진양호가 보이고, 이후 산불지대가 나타나며 까시덤불이 나오고 길이 험해진다.
앞에 있는 봉우리를 올라 송전탑이 서있는 봉우리로 직진하지않고 오른쪽으로 꺽어져 도로에 있는 커다란 건물을 겨냥해서 능선만 가늠하고 잡목들을 헤친다.
무덤들을 연거푸 지나 빽빽한 잡목지대를 피해서 오른쪽으로 사면을 타고 길게 돌아 내려가면 3번국도상의 용산치인데 중앙분리대가 있는 6차선도로에는 차량들이 쉴새없이 지나간다.
▲ 돌탑이 서있는 무명봉
▲ 용산치
- 213.2봉
용산리쪽으로 내려가며 굴다리를 찾다가 무단횡단해서 도로를 넘어 능선만 가늠하고 묘지대를 지나 산으로 들어간다.
까시덤불들을 헤치고 삼각점(진주401/2001복구)이 있는 196.0봉에 올라 양지바른 억새밭에 앉아서 찐고구마로 점심을 먹으니 나른해지며 졸음이 온다.
억새와 잡목들을 헤치며 시야가 트이는 봉우리에 올라 시원스럽게 뻗어있는 고속도로를 바라보다 사거리안부로 내려가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봉우리들을 올라간다.
지능선으로 잘못 들어 30여분 고생을 하고 억새와 잡목들이 빼곡한 옛 산불지대를 따라가면 까시덤불들이 나타나고 거치장스럽지만 진양호가 시야 가득 들어와 마음이 설레어진다.
오른쪽으로 송전탑이 있는 봉우리를 지나 다음 봉우리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까시덤불과 발목을 잡아채는 칡넝쿨들을 어렵게 뚫고 213.2봉에 오르니 검은 돌들만 널려있고 삼각점은 보이지않는다.
▲ 산불지대에서 바라본 진양호
- 대진고속도로
앞에 있는 봉우리로 가 빽빽하게 능선을 둘러싸고있는 까시나무와 덤불들을 몸으로 밀고 스틱으로 잘라가며 맨바닥을 박박 기어서 통과하고 덤불로 가득 차있는 안부를 길게 우회한다.
능선이 꺽어지는 봉우리로 어렵게 올라가니 사냥개를 두마리나 데리고 온 염소농장의 주인과 만나는데 내가 온 쪽으로는 길이 없고 고속도로쪽으로도 길이 시원치 않다며 걱정을 해준다.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개들을 뒤로 남쪽으로 꺽어져 들어가면 길이 없고 역시 잡목들이 심하며 흐릿한 족적만이 끊어질듯 간신히 이어진다.
잡목들을 헤치다 절개지에서 왼쪽으로 꺽어져 내려가면 널문마을과 이어지는 2차선 포장도로가 나오고 맞붙은 대진고속도로쪽으로 고목 한그루가 턱하니 경계를 서고 있다.
왼쪽으로 밭을 지나 굴다리로 고속도로를 넘고 시멘트수로를 올라가 씽씽 지나가는 차들을 뒤로 철계단을 타고 능선으로 진입한다.
▲ 대진고속도로와 맞닿은 이차선 도로
- 172.3봉
길도 없는 사면을 치고 올라가 첫 봉에서 간식을 먹고 왼쪽으로 꺽어져서 뚜렸하고도 깨끗한 등로를 따라간다.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진양호를 바라보며 송림이 우거진 기분 좋은 길을 한동안 따라가다 무덤을 지나고 돌무더기가 쌓여있는 홈통안부를 넘는다.
더욱 뚜렸해진 길따라 앞에 제법 우뚝하게 보이는 172.3봉을 오르고 길옆으로 덤불들을 헤치니 글씨없는 납작한 삼각점이 머리를 내민다.
이정목이 있는 삼거리에서 남쪽으로 꺽어져 내려가면 안부에 평상과 나무의자들이 놓여있고 팔각정으로 올라가니 박목월님의 시판이 걸려있는데 조망은 그리 좋지않다.
팔각정을 넘어 진양호를 바짝 끼고 반질반질한 산책길을 내려가면 호안 절벽쪽으로 쇠줄이 쳐져있고 위험경고판들이 연신 나타난다.
▲ 진양호
- 남강댐
보도블럭이 깔린 길을 만나 군부대의 철망을 타고 내려가서 측백나무들사이로 계단을 올라가면 멋진 전망대가 나오는데 3층 꼭대기로 올라가니 진양호가 눈앞에 넓게 펼쳐지고 기다란 남강댐이 앞에 보인다.
전망대에서 한껏 진양호를 바라보다 포장도로따라 아시아레이크사이드 호텔을 지나고 카페와 놀이터들이 있는 깨끗한 공원길을 내려가면 매표소가 나오고 앞에 충혼탑이 서있다.
하늘을 향하여 치솟아있는 탑으로 오르면 남강기맥의 종착점인 남강댐이 바로 밑에 보이고 호국선열들의 넋을 기리는 싯귀가 적혀있어 산객을 숙연케 한다.
충혼의 소리
여기 와 귀를 열고
충혼의 소리를 듣는다
짙푸른 호면에서 안개 이는 소리
산봉우리가 내려와 등으로 뜨는 소리
잎새와 가늘은 가지들이 부비는 소리
지지 지지 물방울 같은 작은새 노래하는
소리
못다한 채로 져버린 님들의 말씀
소리소리 아리는 마디로 듣는다
듣다가
이제는 저희들의 마음에다
들리는 소리와 소리로 탑을 올리려 하느니
몸과 마음 산하에 뿌려 놓고도
소리를 다시 보내오고 있는 임이여
쉬소서
탑을 올리려 하느니
강희근
영혼을 위로하는 글귀를 한자 한자 되새겨보다 너른 진양호를 가로지르고있는 남강댐을 다시
한번 쳐다보고 남덕유에서 시작한 고난했던 발걸음을 마친다.
첫댓글 도 하나를 하셨군요...험난한 여정이 계속 됩니다//담배연기에 깡패에... 추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