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은 빛나건만 오늘도 미세먼지는 여전하다. 오랫만에 배낭을 짊어지고 길을 나서기로 하였다. 준비라는게 물통에다 물을 담으면 그만이다. 다른 여러가지 여행장비들은 항상 평소부터 준비해 두었으니 짊어지고 떠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배낭은 작년까진 간편한 소형의 것을 메고 산야를 배회하였지만, 필수품인 카메라를 넣기엔 다소 공간이 부족하여 두어달전 부산엘 갔다가 작심하고 중간형을 구입했었다.
나거네의 머리에 항상 남아있는 것,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 일단 버스를 탔다. 버스는 시내를 벗어나고 있었다. 그래도 친구에게 전화라도 해두고 가는 것이 좋겠다 생각되어 전화를 하였더니 자기는 집에 있다고 하우스로 가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시내를 벗어난 지점에서 길을 걸어갈테니 준비가 되는대로 오라고 하였다.
'아하! 내게도 갈곳이 있었구나! 그걸 생각지 못했네...'
버스에서 내려 농사준비에 바쁜 시골길을 걸으니 기분이 상쾌해져 왔다. 가끔 뭐가 그리도 바쁜지 나를 위협(?)하며 쏜살같이 스쳐가는 자동차들에게 눈살을 찌푸려 보지만 지들차 지들이 몰고 간다는데 어쩌랴?
한시간 가까이 걸어가는데 친구의 차가 건너편 도로가에 멈추어선다. 차를 타고 하우스로 향했다. 엇그저께 감자멀칭 아래서 솟아난 감자싹 숨구멍을 뚫어 주었는데 그 이후에 나온 싹이 있나를 살펴보았다.
더러는 싹이 새로이 올라 온 녀석들도 있는데, 어떤 녀석들은 아직도 땅속에서 기회만 엿보고 있다. 한꺼번에 올라오면 누가 뭐래나? 도로를 달려가는 자동차들처럼 녀석들도 한성질씩 부린다는 애긴지...
친구는 자신의 차 드렁크에서 박스를 꺼내왔다. 뭔가 하였더니 고구마 모종이란다. 지난 주부터 감자에 이어심을 작물인 고구마 종자구입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었는데 벌써 혼자서 준비를 해버린 것이다. 농사꾼은 어딘가 다르다.
감자밭 작업을 끝내고 시내근처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벌써 몇번째 들렀던 중국집은 음식이 나오기전 만두 한개씩을 먼저 내놓는다. 배고픈 중생들에게 무엇인가를 베푼다는게 얼마나 고귀한 일인가? 이 집에서 우리들이 즐겨 먹는 메뉴는 홍합짬뽕이다. 매콤한 짬뽕면과 국물에다 홍합을 듬뿍넣어 주는 그 맛은 그만이다.
우리는 아이스 박스를 구하여 다시 하우스로 향했다. 나는 하우스 가장자리와 양파밭에 난 풀을 뽑고 친구는 고구마 종자를 아이스 박스에다 묻었다. 분량이 두 박스인데 그것으로 300평 규모의 하우스를 채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모자라면 사다심어도 괜찮을 일이니 걱정은 붙들어 매어야겠다.
어릴적 시골에서 부모님들이 고구마 싹틔우시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가장자리에 옥수수가 자라나는 집안 남새밭(텃밭)에다 고구마를 묻어두면 순이 자라 남새밭을 덮었다. 그리고 햇볕이 쨍쨍 내려쬐는 초여름이 되면 땀흘려가며 그 순을 잘라 밭에다 심었었다.
그리고 순을 길러내고 남은 고구마뿌리를 캐어 먹기도 하였었다. 요즘처럼 먹을 것이 풍족한 때에는 그 무엇에 쓸까마는, 예전 배고픈 시절, 한여름의 그 힘겨운 보릿고개를 넘기던 시절에는 그것도 감지덕지 하였었다. 재수가 좋으면 그 종자고구마에서 조그만 새뿌리가 달려있었다. 그땐 정말 횡재하는 것이다.
고구마 잎과 줄기로 죽을 끓여 먹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지금은 그 배고픔에 대한 서러움의 감정은 전혀 남아있질 않다. 인고의 세월...그걸 굳이 아름답다고 말하지 못할망정 한시절의 추억으로만 남아있으니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고구마 싹틔우기는 경작자에 따라 그 방법을 달리한다. 고구마는 생육에는 높은 기온을 요구한다. 하우스 경작에는 싹틔우기를 2월부터 시작하는 농가도 있었다. 종자를 싹틔우고, 10cm정도 자라면 순을 잘라 삽목배양과 가식을 거쳐 본밭에 옮겨심는 방법을 택하는 농가도 있다. 예전엔 텃밭에서 자란 순을 바로 잘라서 밭에다 심었었다. 그러나 어느 방법이 최적의 방법이고, 그 방법이 아니면 안된다는 편견을 버려야 하겠다.
물론 기본적인 농사정보야 가지고 있어야 할 일이지만 농사는 일단 정성과 최선을 다해야 할것 이다. 그래야만 잘못되어도 후회가 적을 것만 같다. 농사일이라고 항상 잘되진 않는다.
실패를 거울삼아 더 나은 영농기술을 습득함으로서 진정한 농민으로 거듭나는 것이 중요하되, 농민들도 언제까지 자신들의 손실을 정부가 보상해 주기를 바라서는 안될 것 같다. 물론 FTA니 뭐니하며 상대적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겠으나 요즘처럼 어려운 시절엔 다른 사람들이 언제까지나 고운 시선을 주지 않음이 그렇다.
우리의 고구마 묘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