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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시 56:8-13)
할렐루야! 지난 한 주일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하나님의 집, 교회에 나오신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축복합니다.
어느 날 랍비 모세가 낯선 나라를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당나귀 한 마리와 수탉 한 마리 그리고 등잔 하나를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마을 여관에서 받아 주지를 않자, 그는 할 수 없이 숲속에서 잠을 자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경전을 연구하기 위해, 등잔불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거센 바람이 불어오더니, 등잔을 떨구어 깨뜨려 버렸습니다. 그러자 랍비는 “세상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인데, 어련히 알아서 하시려고”라고 말하고는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밤 사이에, 들짐승이 수탉을 물어 가고, 도둑들이 당나귀를 훔쳐 가 버렸습니다. 모세는 아침에 일어나서야, 그것들이 없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별로 놀라지도 않고, 다음과 같이 중얼거리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니, 어련히 알아서 하시려고”
랍비는, 지난 밤 자기를 받아 주지 않았던 그 마을로 돌아가서야, 밤 사이에, 적군들이 그곳을 침공하여, 모든 주민을 학살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또 그 군인들이, 그가 잠을 잤던 숲을 지나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만일 등잔이 바람에 깨져 버리지 않았더라면, 그도 발각되었을 것입니다. 또 들짐승이 수탉을 물어가지 않았더라면, 도둑이 당나귀를 훔쳐 가지 않았더라면, 그것들이 우는 소리에, 그가 숲속에 있다는 것이, 알려졌을 것입니다.
랍비는 다시 한번 “세상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인데, 어련히 알아서 하시려고!”라며 감탄하였답니다.
여러분! 세상 인생이란 다 이런 것 같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노라면, 늘 평안하고,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크든 작든, 난관과 어려움, 고난과 시련이 있게 마련입니다.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겪을 수도 있고, 사업상의 실패로 인해, 좌절할 수도 있을 것이며 가정에서의 문제, 직장에서의 문제 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야 할, 고난과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좌절하기도 하고, 낙심하기도 합니다. 또한 언제 나에게도, 그런 일이 닥치지 않을까 하며, 불안해 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오늘을 사는 많은 사람들이, 시시각각 닥쳐오는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고통 받으며,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우리들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도,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대로 주저앉거나,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뢰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철저히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기도하며, 나아갔던 것입니다.
이제 본문의 다윗을 살펴보며, 오늘 우리가 고난과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떤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그것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은혜 받고자 합니다.
시편은 ‘시들의 책’입니다. 총 150편의 시들이, 다섯 권의 책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모세 시대에서부터, 포로 귀환 후인 에스라 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쓰여졌습니다. 작자는 여러 명으로 다윗, 고라 자손 아삽, 솔로몬, 에단, 모세 등이고, 약 50편의 시는 작자 미상입니다.
시편은 성도의 신앙생활에 많은 위로와 도전을 주고 있는데, 그것은 시편의 시들이, 찬양, 예배, 하나님에 대한 소망, 환난 중의 감사와 인내, 기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잘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 시편 56편은, 사면초가와 같은, 위태롭고, 답답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버리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도우심을 확신하는 다윗의 시로써, 시편 분류상으로는 개인적인 비탄시에 속합니다. 또한 ‘고난과 신뢰의 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시편 56편의 배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울 왕을 버리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 목동 다윗을 지목하시고, 사무엘로 하여금, 그에게 기름을 붓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후 다윗은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물리쳤는데, 이때부터 사울 왕이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죽이려고 했습니다.
여러 번의 죽을 고비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요나단, 미갈, 사무엘 등의 도움으로, 다윗은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사울 왕에게, 피살 당할 위기를, 요나단의 도움으로 간신히 모면한 다윗은, 결국 사울의 손이 미치지 않는 불레셋의 가드로, 망명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드의 아기스 왕의 신하들은, 다윗을 좋게 여기지 않아, 다윗을 아기스 왕에게, 참소하고, 죽으려고 했습니다. 사울이 죽인 사람은 수천이지만, 다윗이 죽인 자는 수만이라고 말하는 등, 음모를 꾸몄습니다. 다윗은 너무도 두려워, 갑자기 대문을 긁적거리며, 수염에 침을 흘리며, 미친 척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아기스 왕에게 쫒겨나다시피하여, 간신히 블레셋에서 도망쳐나와, 당시 유다의 아둘람 동굴로 피신했습니다.
시편 56편이 바로 이 때 지은 시입니다. 당시 다윗의 생활은, 매우 위태하고 불안정하여, 다윗은 슬픔에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구원의 손길을 펴실 것이라고, 도우실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하나님께 눈물로 간구했습니다. 이것이 시편 56편의 내용입니다.
본문은 성도가 다윗과 같은 삶의 위기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주고 있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눈물을 흘리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함으로써,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삶의 고난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눈물로 간구해야 합니다.
8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아멘.
당시 다윗은 사울을 피해 가드로 왔으나, 그곳에서도 아기스의 신하들의 참소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에, 다윗의 인간적 외로움과 공포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다윗에 대해 강한 적대감을 갖고 있던 아기스의 신하들은, 다윗을 궁지에 몰아 넣을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감시를 했고, 기회가 생기는 대로, 왕에게 참소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어디를 가든지, 미행과 감시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처럼 계속해서, 자신의 생명을 빼앗으려는 위협을 받은 다윗은, 이제 유일한 피난처인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 눈물로 간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은 다윗이 자신의 고통스런 유랑생활을 지나쳐버리지 말라는 호소이자, 그 고통을 기억하셔서, 공의로운 보응을 내려 달라는 간구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구하는 아주 간절한 ‘구조 요청’입니다.
주께서 자신의 눈물을 병에 담아, 그 양을 측정해 보시라고 말할 정도로, 극한 환난 중에서, 간절히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병’은 가죽으로 만든 용기 또는 가죽 부대로, 어미 염소의 가죽으로 만들어졌으며, 포도주나 우유나 기름을 보관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치 포도주나 우유와 같은 것이 병에 담겨졌던 것처럼, 자신의 고통의 눈물이 얼마나 많은지 기억해 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다윗이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라고 말한 것은, 우리가 물이나 술이나 약이나 우유, 기름 등을 소중히 생각하여, 한 방울이라도 흘리지 않고, ‘병’에 담아서 보관해 두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고통의 눈물을, 주님의 병에, 조금도 흘리거나 헛되지 않게, 잘 보관해 주셔서, 주님의 때가 되었을 때, 응답해 주시고 축복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여러분! 삶의 위기에서, 극한 슬픔을 당하여, 항상 눈물로 세월을 보낼 때에, 하나님은 그 성도의 눈물을 병에 담아 보관하시고, 장부에 기록하여, 기억하셔서,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때에 눈물로 기도를 드리십시오. 간절히 애통하며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고난 중에 긍휼을 구하는 ‘호소’에 가까운 기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앞에 눈물을 많이 흘릴수록,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시편 84:6절에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시편 126:5절에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릴 때, 하나님은 반드시 그 눈물을 기억하여 주십니다.
사무엘상 1장을 보면, 엘가나의 아내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해서 엘가나의 첩 브닌나에게 심한 모욕과 조롱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매일 울면서 지냈고, 음식을 전폐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한나는 성전에 올라가 괴로움을 토하며, 통곡하면서 서원기도를 했습니다. 아들을 낳으면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고,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한나의 눈물로 얼룩진 애절한 기도는, 하나님께 응답되어, 마침내 사무엘을 낳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자가 강한 자요, 승리자입니다.
야고보서 4:9절에 말하기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라고 했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눅 6:21)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눈물의 기도는, 우리를 삶의 위기에서 탈출시켜 주는 능력이 있음을 기억하시고,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 자신의 고통을 눈물로 아뢰십시오.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라고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늘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구원과 도우심을 알아야 합니다.
9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 아멘.
다윗은 원수에게 쫒기는 불안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곧 구원의 손길을 펴시고, 자신을 도와 주실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아뢰는 날”에서 ‘아뢰는 것’은 ‘부르다’, ‘부르짖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아뢰는 날’은 ‘내가 도움을 요청하는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할 때,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내 편이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로부터, 자신을 미워하는 모든 악한 세력으로부터 구원하실 것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와 그의 간구를 멀리하시지 않는다는 것과 악인을 멸하시고, 의인을 구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비록 죄악이 일시적으로 흥하는다 싶어도, 마침내는 패망할 것이며, 의인은 잠시 핍박을 받으나, 끝내 승리할 것을 다윗은 내다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12절에서는, 믿고 서원한 대로,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리겠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구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해 주실 것을 믿고, 구원받았을 때 드려야 할 감사제를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볼 때, 다윗은 고통으로 괴로움을 받고 있을 때에도, 믿음을 잃지 않고, 언제나 감사를 드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쁘고 좋을 때만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울 때에도, 하나님께 먼저 감사하는 다윗의 믿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7장을 보면, 사무엘이 블레셋 군대와 싸워서 승리했습니다. 이에 사무엘은 이 승리를 하나님께서 도와 주셨기 때문이라고 하여, 돌로 기념비를 하나 세웠는데, 그 돌의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불렀습니다. “에벤에셀”이란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와주셨다”는 뜻입니다.
또한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고통 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도와주시기 때문에, 삶에 있어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33:29절에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행복한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도 아닙니다. 많은 인기를 누리는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구원받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한 행복은 어누 누구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다니엘 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하고, 신앙을 지킨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바벨론 두라 평원에, 신상을 새워놓고, 나팔소리가 들리거든 금신상을 향하여 절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만약 이 명령을 거역할 경우에는, 용광로에 던져 버리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두라 평원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금 신상에 절을 했지만,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절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왕이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겠다고 했지만, 그들은 흔들리지 않고 말하기를 “만일 우리가 뜨겁게 타는 용광로에 던져진다 해도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건지실 것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왕의 금신상에 절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보통 때보다 일곱 배나 뜨거운 용광로에 던져졌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살리셨고, 이 일로 그들은 보다 높은 직책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의 필요한 요구를 들어 주시며,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121:1-2절을 보면,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내 편이십니다. 언제나 나를 도와 주십니다.
하나님은 내 편이시기 때문에, 언제나 나를 도와주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두려운 환경 가운데서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위기를 극복하고 감당해 내기가 힘들 것입니다. 끝까지 인내하면서,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도움 가운데, 위기를 헤쳐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11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아멘.
여기서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과 블레셋의 원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로 인해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을 결심하고 있었습니다. 혈육을 지닌 사람 때문에 두려워질 때,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고 찬송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다윗이 사울을 피해 블레셋 땅에 망명할 수밖에 없고, 또 다시 블레셋에서 도망쳐야 할 절박한 위기 가운데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련이 크면 클수록, 다윗은 더욱 더 여호와를 의뢰하는 법을 배웠던 것입니다.
두려움이 몰려올 때, 위기가 닥쳐올 때,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 다윗은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신앙이 있었기에, 목숨이 위태로운 가운데서도,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강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위기와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고, 부정적인 사정이나 환경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평소에는 하나님을 잘 믿다가도, 환난만 당하면,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어려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두려움의 씨앗이 의심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에 의심을 하게 되면, 혼란과 공포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질병의 90%이상이 두려움 때문에 생긴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근거도 없는 일 때문에,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반드시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두려움만큼 인생을 병들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 두려움은 더 나아가서,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확신하면, 어떠한 불안도 극복하고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사야 41:10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도, 능력으로도, 불안과 공포를 제거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한없는 평화가 가득 차서, 담대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민수기 14장을 보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두려워하지 않은 갈렙과 여호수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열 두 정탐꾼의 일원으로 가나안 땅을 정탐했는데, 다른 열 사람이 부정적으로 보고한 반면, 이들은 그 땅 거민이 장대하고, 그 성들이 요새화 되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곳을 점령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 사람의 부정적인 보고만 믿고, 모세와 아론을 비방하며,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말했을 때도, 자기들의 옷을 찢으며 담대히 말하기를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자’고 했습니다. 백성들이 그들을 돌로 죽이려는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그 당시 20세 이상된 사람들은, 불신앙으로 인해, 한 사람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들만을 담대한 신앙으로 인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크고 작은 삶의 위기 속에서, 두려움이 엄습하여 어찌할 바를 모를 때,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두려움을 벗어 버리고, 담대히 그때를 넘기시기를 바랍니다.
13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아멘.
다윗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써, 첫째, 자신의 생명이 사망에서 건지움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둘째, ‘하나님 앞’, ‘생명의 빛’ 가운데로 다니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의미상 같은 말의 표현을 달리한 것인데, ‘하나님 앞’은, 성도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곳을 의미하며,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가리킵니다. 당시 다윗은 블레셋 땅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없었고, 더구나 죽임을 당할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한편 ‘생명의 빛’은 ‘음부의 밤’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생명의 빛에 다니다’라는 말은,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구출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는, 다윗이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셔서,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는 것을 고백입니다.
‘실족’은 ‘밀쳐 넘어뜨리다, 쫒아내다’에서 나온 말입니다. “실족하지 아니하다”는 것은 ‘내 발목이 흔들리지 않다, 넘어지지 않다’는 뜻입니다.
시편 116:8절에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슬픔 중에서도, 고통과 번민의 시간 중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위기 없는 삶은 없습니다. 실로 인생은 위기와 고난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의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간절한 눈물의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결국에는 좋게 만들어 주실 것을 소망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다윗과 같은 신앙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 해를 당하지 않는 은혜, 실족치 않는 은혜를 입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을 바라봅니다.
환난과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주님께 기도합니다.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실 것을 믿고, 늘 감사함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