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남자>를 통해 본 창의적 연극 컨셉2
-정체성 탐구를 향한 창의적인 분열자아 화법
1. 내가 너인가, 네가 나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마리우스 폰 마이엔부르크는 뒤집기의 명수라 할 수 있다. 일상의 통념은 예측 불허의 상태로 뒤집힌다. 매 순간 마다 뒤집기 놀이 묘미가 우러나온다. 추락의 극점, 불안의 극한점이 모색된다. 자신의 몫을 박탈당한 자, 억울하지만 구제 받기 힘든 상황, 성형 수술 상담,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연극은 추락과 반전 다시 추락 상황으로 끝을 맺는다. 추락의 강도가 커질수록 반전 상황 역시 강한 흡인력을 발한다. 극단의 추락 상황 설정은 그 자체로서 강한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레테는 성형수술을 받고자 하지만 수술 후의 희망적인 결과를 들을 수 없다.
과장 화법은 관심과 호기심 유발 전략의 일환이다. 얼마나 못 생겼으면 이목구비 어느 것 하나 살릴만한 것이 없다. 수술 후의 상황도 예측할 수 없다. 전체 얼굴판을 바꾸어야 한다. 현재 얼굴은 완전히 없어진다. 못생긴 얼굴과 작별이 이루어진다. 아내와의 비장한 작별 키스가 벌어진다.
수술 이후의 레테를 아내는 알아보지 못한다. 의사는 충격을 금치 못한다. 레테는 황당해 한다. 이전 얼굴이 전혀 아니다. 수술은 실패인가. 레테의 의도는 좌절되었는가. 연극은 이 지점에서 호기심과 기대치를 최대로 끌어 올린다.
반전 코드로 예측 불허의 초특급 상황이 준비된다. 최고의 성형 버전이 탄생된 것이다. 레테는 최고의 홍보 발표자의 예우을 받는다. 여성 팬들의 데이트 신청이 쇄도한다. 성공적인 성형 버전이 학회 발표를 통해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킨다. 황당한 상황은 연이어 터진다. 레테와의 동일 얼굴 버전이 등장한다. 레테 얼굴을 한 남자가 공원에 활보한다. 혼란이 발생한다. 노부인은 레테 얼굴과 크리스티앙 얼굴을 구별하지 못한다. 아내 역시 레테와 다른 남자를 구별하지 못한다. 얼굴 버전만 같으면 그 자가 남편이다. 해괴한 논리다. 헷갈림이 발생한다.
‘나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성형 이전의 나인가’. ‘성형 이후의 나인가’.
‘성형 버전으로 복제된 자가 나인가’.
‘어디에서 진짜 나를 찾아야 할까’.
복제용 성형 버전만 없었다면 이런 혼란과 불행이 없었을 것이다. 레테는 원판을 부수기로 작정한다. 투신자살을 결행한다. 불안이 엄습한다. 내 안에 가짜와 진짜의 다툼이 벌어진다. 서로가 진짜 ‘나’ 라고 항변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자아 분열 상황이 모노 드라마 색조로 펼쳐진다.
난 그러고 싶지 않아. 무서워.
그래, 넌 지금 무서운 거야.
그래 맞아. 무서워.
드디어 네가 그걸 깨달았다니 기뻐.
하지만 난 아직도 네가 싫어.
나도 네가 싫어. 지금 네가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어.
내가?
그럼 누구겠어?
누구?
나.
누구?
너.
나.
모르겠어.
뭘?
그래 그만해.
넌 아니야. 난 널 여기 둘 거야.
그 반대지. 내가 먼저 갈거야. 난간 끝에 올라서서...
그럼 내가 밀어버릴 거야.
나도 널 밀어버릴 걸.
그럼 저 길바닥에 네 얼굴이 뭉그러질 거야.
그건 네 얼굴이야. 내 얼굴이 아니고.
그만 해. 23, 24, 25, 비켜. 난 뛰어 내릴 거야.
성형 버전 이후의 나, 성형 버전 이전의 나, 과연 누가 나일까. 서로가 자신을 ‘나’라 주장한다. 관객 역시 혼란스러움을 주체 못한다. 분열된 두 자아가 다툰다. 두 자아가 상대를 탓하며 묻고 항변한다. 메타 언어가 지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병렬 전개 컨셉은 이 연극의 매력 포인트다. 기다란 알루미늄 철제 오브제가 중앙에 가로로 놓여 있다. 한쪽에서 투신자살이 시도된다. 다른 쪽엔 성형 수술이 진행된다. 한쪽에선 레테가 죽으려 한다. 또 한쪽에선 레테 얼굴이 탄생하고 있다. 아이러니다. 정체성 혼란은 더욱 가중된다. 분열 메타 화법은 관객의 능동성과 지적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성형으로 얼룩진 현대인의 헝클어진 초상을 조망케 한다.
2. 메타 언어의 철학성, 과장 어법의 놀이성
이 연극엔 철학적 사유와 풍자 놀이의 맛이 풍성하다. 고압전기재료 부품 언어나 목공예 전문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게 진한 성적 농담을 비유한다는 점이다.
아주 매력적이시네요. 내 호텔 방에 가서 40센티 플러그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은데.
우리 일단 바에 가서 한잔 하고 그리고 당신 플러그를 봅시다.
성형 수술 이후 준수한 외모의 레테에게 돈 많은 노부인이 관심을 드러낸다. 여기서 플러그는 실제 전기제품을 의미한다. 레테가 개발한 2CK커넥터 플러그, 그러나 현재 레테는 신제품 플러그를 갖고 있지 않다. ‘바에서 한잔하고 당신 플러그를 보자’. 이는 진한 성적 은어다. 이 메타 의미가 상기되면서 일부 관객은 진한 썩소를 금치 못한다.
성형 수술 과정에서 인간 얼굴을 단순한 조각품이나 무의미한 무생물로 간주하는 상황이 패러디된다. 성형 욕망의 노예로 살아가는 자들이 일시에 조롱감으로 전락한다. 그들 얼굴은 조각품으로 간주된다. 깎아내고 부수고 다듬는 대상으로 전락되어 있다. ‘기초공사부터 전면적으로 다시 해야’ 할 공사 건물로 간주된다. 절묘한 패러디 난장 컨셉이다.
일인다역의 역할 놀이가 이 연극의 메인 컨셉이다. 정서적으로 상반된 인물의 역할, 한 배우가 도맡아 수행한다. 배우의 역할놀이 수행과정에서 놀이 공간 안과 밖에서 각 문제 이슈가 객관적로 재연, 조망되고 있다. 이슬비는 역할 놀이의 안과 밖, 그 넘나들기 움직임마저 객관화시켜 게스투스 연기 문법을 맛깔스럽게 소화해 나간 바 있다.
각 에피소드는 늘 성형에 중독된 비틀린 세태를 철학적으로 사유토록 유도하는 비유 놀이에 불과하다. 각 삽화 역시 성형 중독으로 정체성을 잃어가는 삶에 대한 경쾌한 패러디에 불과하다. ‘자신의 오관 기호가 문제 이슈를 비유적으로 성찰케 하기 위한 복선 장치로서 효과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가’. 이슬비, 오동식을 비롯한 네 명의 배우들은 이런 게스투스 연기 문법의 황금률을 매끄럽게 수행해 나간다.
비유 놀이의 스피디한 진행 구도는 성형 중독으로 급속하게 무너지는 현대 인간 세태에 대한 알레고리라 할 수 있다. 속도감 넘치는 역할 놀이와 교차 전략은 빠르게 더 빠르게 모든 것을 순식간에 부수고 전환해야 직성이 풀리는 비틀린 우리네 세태에 대한 패러디다.
이슬비는 2011년 연극대상 신인상 및 2012년 동아연극상 신인연기상 수상자답게 역할 놀이를 자연스레 펼쳐나간다. 연극은 비유 놀이다. 연극은 알레고리다. 게스투스 문법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연출은 역할 비유를 통한 놀이성과 교훈성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은 혼돈을 유도한 메타 언어 놀이 컨셉이다. 파니는 아내의 이름이자 돈 많은 노부인의 이름이다. 동시에 성형 수술 보조 간호사 이름이다. “파니!”하며 부르는 호칭 언어를 마주하면서 관객은 잠시 혼돈을 경험한다. “칼만!”이란 호칭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레테와 동일한 얼굴을 갖고자 몸부림친다. “칼만” 하면 동일 성형 이미지가 떠오른다. 동명이입 어법을 통한 혼란 유도는 의도적이다. 이는 알레고리 연극의 깊이와 품격을 고양시키는데 기여한다.
수술 퍼포먼스는 사변적 색조가 강한 이 작품에 역동성을 제공한다. 기괴하게 처리된 음향과 조명, 수술 상황에 걸 맞는 상징 육체 반응 기호가 스펙터클하게 변조된다. 아름다운 꿈이 도살된다. 인격이 망가지고 영혼이 망가져 간다. 절망감과 섬뜩함이 엄습한다.
수술 난장 퍼포먼스는 역동성과 기괴성 유발 컨셉으로 승부를 걸어 놀이적 상상력과 메타극의 깊이를 효과적으로 살려냈다는 점에서 이 연극의 최대 매력 포인트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