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욕에 놀라지 않으니 한가로이 뜰 앞에 피고 지는 꽃을 바라보고, 가고 머무는데 뜻이 없으니 무심히 하늘가 뭉치고 흩어지는 구름을 바라본다. 맑은 하늘, 밝은 달 아래 날지 못할 곳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불나비는 유독 촛불에 몸을 던지고, 맑은 샘, 푸른 풀잎 먹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마는 올빼미는 굳이 썩은 쥐를 먹는다. 아, 이 세상에 불나비와 올빼미가 아닌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양나라의 도개는 학문도 깊지만 충직하고 총명하여 고조의 신임을 받았다. 도개의 아들 경은 일찍 세상을 떠났으나 손자 신은 총명해서 그 또한 왕의 총애를 받았다. 어는 날 손자 신이 지은 시를 읽게 된 임금은 너무나 훌륭하다고 생각해 그것을 도개에게 보이며 물었다. “그대 손자 신은 매우 뛰어나다. 그대의 문장도 신의 손을 빌렸는가?” 왕은 앞으로 시문에 힘쓰기보다는 손자로 하여금 문장을 대물림하도록 이르고, 도개에게 쉬도록 권고했다. 그러면서 시 한수를 지어 하사했다.
벼루에 먹을 갈아 글을 전하고 붓을 날려 편지를 쓰지만 나방이 날아 불에 뛰어들면 몸이 타는 걸 어찌 막으리 늘그막엔 꼭 그런 일이 꼭 생길 터 이젠 손자에게나 물려줘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