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지의 나무진료 시대]
우리나라의 기후 특성상 1년 중 5~6개월은 나무들이 잎을 떨어뜨리는 휴면기다. 겨울철에는 대부분의 나무가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되고 이로 인해 경관이 다소 삭막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사시사철 푸른 상록수를 적절히 배치해 겨울철에도 쾌적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유지한다.
회양목깍지벌레 피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상록수는 회양목이다. 맹아력이 강해 여러 모양으로 연출이 가능하며 그늘에서도 견디는 능력이 좋아 활용도가 높다. 또한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 일반적인 환경에서는 별다른 문제 없이 잘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체로 바늘잎이 아닌 둥근잎을 가진 활엽수는 남부지방이 아니면 겨울철 살아남기 어렵지만, 회양목은 내한성도 강한 편이다. 이런 장점 덕분에 회양목은 장소를 막론하고 널리 사랑받는 상록수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회양목의 피해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상록수임에도 불구하고 잎을 모두 잃고 빈 가지만 남은 상태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처럼 갑작스럽게 회양목의 잎을 잃게 만드는 범인은 바로 ‘회양목깍지벌레’라는 해충이다.
깍지벌레 성충
깍지벌레는 나무의 잎, 줄기, 가지 등에 붙어 수액을 빨아먹으면서 피해를 주는 해충이다. 몸이 보호막 같은 껍질로 덮여 있으며 작고 납작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래서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렵다. 피해가 심하지 않을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피해가 심해지면 잎과 가지가 모두 말라버리는 극심한 손상을 입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나무가 스스로 회복하기 어려워지고 고사에 이를 수 있다.
깍지벌레 피해 초기에는 주로 부생성 그을음병 피해를 동반한다. 그을음병은 깍지벌레가 분비한 분비물에 곰팡이가 자라면서 잎이 검게 변하는 현상으로, 심미적인 손상뿐만 아니라 광합성을 방해하기도 한다.
깍지벌레 피해로 발생한 배롱나무 그을음병
깍지벌레 종류는 다양하다. 정원에 흔히 심는 과실수인 감나무나 조경용으로 사랑받는 배롱나무에서는 주머니깍지벌레류의 피해가 자주 발생한다. 원추형 수관으로 공동주택 입구에 자주 활용되는 주목에서 식나무깍지벌레 피해를 자주 관찰할 수 있다.
배롱나무에 발생한 주머니깍지벌레 성충
깍지벌레는 온도가 따뜻하고 습도가 높은 환경에서 매우 빠르게 번식하는 특성을 지닌다. 이 때문에 여름철 고온다습한 날씨가 지속되면 깍지벌레의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게다가 깍지벌레는 한 번 나무에 붙으면 쉽게 제거하기 어렵고 연 2~3회 발생하므로 초기에 조치하지 않으면 피해가 급속도로 확산할 수 있다. 이는 상업적인 조경 관리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키우는 식물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깍지벌레를 효과적으로 방제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관찰이 필수적이다. 특히 잎의 색이 점차 옅어지거나 그을음병이 발생하는 초기 증상이 보일 때 바로 조치해야 한다. 살충제를 사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깍지벌레는 껍질로 보호돼 있어 접촉 살충제는 효과가 적고 체내로 흡수되는 침투성 살충제가 효과적이다. 따라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나무의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함께 깍지벌레가 번식하기 좋은 환경조건을 만들지 않도록 주의하도록 한다.
사진=이윤지
이윤지 나무의사
이 윤 지 l 두솔나무병원 원장. 산림청 정책자문위원회 청년특별위원. 한국가로수협회, 전통숲과나무연구회 총무. ‘나무의사이야기’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