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2. 목사님 1주기 추도예배
우리 사랑하는 목사님이 우리 곁을 떠나신 지가 어느새 1년이 되었지만 지금도 저는 가끔씩 믿기지가 않고 적응도 잘 안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꿈에도 그리운 형님 목사님은 지금 천국에 계신 것이 분명히 사실이지만 언제라도 강원도 영월 장터에서 맛있는 것을 잔뜩 사가지고 우리들 곁에 금방이라도 다가오실 것만 같아서 아주 가까운 곳에 계신다는 마음이 들곤 합니다.
제 형님은 ‘목사’라는 호칭보다는 허루스름한 노인, 강 상사, 목자 되신 예수님을 따르는 한 마리의 강 양으로 기뻐하셨고 조그마한 비전이 있다면 몸 된 교회에서 강 집사님으로 작은 일에 신실히 섬기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왕이나 선지자같이 특별한 자가 아닌 바실래 할아버지, 아비가일, 사르밧 여인, 수넴 여인을 본으로 삼아 주의 백성 된 자로서 우리도 주님을 뼈있게 따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성전 전면에 예레미야 31장 34절 “지극히 작은 자로부터 지극히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는 말씀을 붙여놓기도 하셨습니다.
교회에서 휴가를 주셨을 때 형님 목사님을 모시고 며칠간 함께 지낸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겨울에는 전방 지역에 민박을 즐겨하셨고 길에서 눈을 치우는 장병들을 보시곤 울컥하시며 눈물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곧장 인근 시장에 들러서 떡볶이, 순대, 오뎅 등 따뜻한 먹을거리를 한 아름씩 사서 군부대 초병들에게 “수고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하시며 전해주시곤 하셨습니다. 어느 저녁엔 제가 피곤해 보이셨는지 아우님은 일찍 자라고 하시면서 형님도 잠깐 눈을 붙이신 후, 한밤중에 일어나셔서 밤새도록 성서를 뒤척이며 묵상하시고 기도하시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어떨 때는 차안에서, 어느 날은 산봉위에서 그 무엇보다 내 주님과의 사귐을 생명처럼 지켜가셨습니다. 그 빈들판의 사귐의 시간만이 영혼이 살 길이요, 진정한 행복이라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빈들판 형제로 주님의 은혜 속에 강하게 서가기를 강권하셨습니다. 형님은 평생 주님을 한 번도 직접 뵌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주님의 생명과 평강은 마음으로 많이 느끼시고 그 생명과 평강의 법을 따라 살아오셨다고 하셨습니다.
내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강단에 서셨지만 그 때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아마추어같이 섬기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섬기는 시간이 마지막 섬김이라는 각오로 온 힘과 마음을 다하셔서 진액을 짜듯이 피를 토하듯이 생생한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외치셨습니다. 주님은 그 때마다 그 예배와 집회에 큰 은혜를 주셔서 형님 목사님은 그 영광을 주님께 돌리시고 그 자리를 속히 떠나 주님께 피하여 숨으시곤 하셨습니다.
그리고 평상시에는 자주 주님 모시고 백화점이라고 부르시던 고물상에 다니시는 것을 즐거워하셨는데요, 꼭 필요한 물건을 만났을 때는 주님이 주신 선물이라 생각하시고 무척 감사하셨습니다. 어느 수원에 있는 고물상에 갔을 때 중고 자전거 열대를 사서 트럭에 실을 때였습니다. 고물상 주인이 “오늘 따라온 직원은 서툴기가 그지 없네요”했을 때 제 형님은 저를 두둔하시면서 “며칠 전에 입사한 신입 사원이니까 양해바랍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좋은 사장님 밑에서 직원으로 있었던 것도 감사했습니다. 서울 동대문이나 청계천 공구상가 그리고 중앙 시장 골목을 다니실 때도 어린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셨습니다. “아우님, 나는 이 길이 좋아, 강대상은 무서워” 형님은 주로 자주 다니시던 서산 전자 같은 단골 가게를 이용하셨는데 물건을 보시면서 “욕심은 부리지 말고 주님이 허락한 것만 사자. 이거 우리 식구님들께 필요하지 않을까?” 물으시곤 하셨습니다. 한번은 제가 동대문 로터리에서 형님을 놓치고는 이리 저리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형님이 한 손에는 국화빵 봉지를 들고서 “이 형아 떼어놓고 혼자 가지마”라고 말씀하셨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장을 보고 나서 이제 분천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운전하는 제게 “아우님은 눈 감지 말고 우리 나라를 위해서 좀 기도합시다. 아우님 먼저 시작하시오”라고 하시면서 주거니 받거니 시작했습니다. 빈 그릇들에 기름이 차기까지 만족한 후에야 기도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물건도 샀지만 더 알찬 열매를 맺고 가니까 참 좋지 않아?” “그렇습니다. 형님” 그렇게 대화를 나누었던 것도 생각납니다.
형님은 청년 시절 신학생 때부터 떠나시는 마지막 날까지 간직하시면서 우리에게 종종 들려주셨던 두 기둥 같은 말씀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이사야 49장 23절 말씀으로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마태복음 28장 20절 말씀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였습니다. 형님은 이 말씀으로 언약을 삼고 결코 주님을 바라는 자에게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셨고 결코 주님은 내 곁을 떠나지 않으신 것을 내가 증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님이 평생토록 뼛속 깊이 새기셨고 마음 가운데 강하게 붙드셨던 각오가 있습니다. ‘내 주님께 결코 섭섭하게 해드리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내 형제들에게도 결코 섭섭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라고 다짐하고 다짐하셨던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은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각자에게도 오늘 이 순간 깨어 있는 자로, 내 주님을 사랑하고 신실하게 섬기는 종으로 서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내 형제들에게 사랑받는 한 형제로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형님은 몸 된 교회 식구님들이 이 땅에 주저앉지 않고 주님 모신 행복한 긴장감으로 강하게 서있는 주님의 군사가 되기를 원하셨고 그렇게 은혜 속에 강하게 교회를 이끌어 가셨습니다. 누가복음 9장 23절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우리 성전 구석구석을 보면 목사님의 손길과 마음이 안 닿은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본당 옆에 날개 성전을 지을 당시 맨 땅에 아시바 파이프를 박고 합판을 올려놓을 기초 철재를 용접할 때 “오늘 아우님과 내가 이 용접하는 일을 맡아보세” 말씀하시면서 형님과 함께 즐겁게 용접을 했던 일도 생각납니다. 제가 공고를 다녔던 것이 이 때를 위해서 다녔나 봅니다.
우리 형님 목사님과 악수하신 분들은 느끼셨겠지만, 형님의 손바닥에는 굳은 살점이 박혀있습니다. 혹여 내 주님을 놓칠까봐 내 주님을 순간순간 철저히 붙드시고자 주먹을 굳게 쥔 흔적이셨습니다.
형님은 우리 몸 된 교회의 머리와 목자 되신 분은 예수님이시라고 찰떡같이 이 사실을 믿고 사셨습니다. 몇 년 전에는 ‘늘 처음’ 이라는 명찰을 우리 식구님들 각자의 가슴에 달아주시면서 각자의 이름 앞에 붙는 호로 선물해주셨습니다. ‘늘 처음 박원철’ 이런 식으로 말이예요. 바로 내 예수님을 삶의 우선순위에서도 늘 처음으로 모시고, 삶의 중요성에서도 늘 처음으로 모시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몸 된 교회는 늘 개척 교회라는 심정으로 주님 모시고 세워가자고 하셨습니다.
형님은 우리 몸 된 교회가 지금 주님의 은혜로 생명과 평강 속에 길 가는 것을 자주 감사하셨습니다. 지금 성전에 붙어 있는 말씀처럼 데살로니가후서 3장 16절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찌어다”
형님은 우리 몸 된 교회를 어떤 영화감독이 영화로 만든다면 참 exciting하고 흥미진진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많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형님 자신도 그렇고 우리 몸 된 교회는 그렇게 무의미하게 뜨뜻미지근하게 걸어간 교회가 아니라 생기 있게 주님 모시고 살아왔기 때문에 영화를 만든다면 재미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형님의 삶이 그러하셨고 섬기셨던 우리 몸 된 교회의 발자취가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분천리 형님 댁에서 십여 년 동안 매일 아침을 먹었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제 자리는 바로 형님 옆자리였는데 제 밥그릇 위에 생선을 자주 올려주시던 그 자상하던 손길, 밥을 먹은 것이 아니라 형님의 사랑을 많이도 먹었습니다.
작년 2월초라고 생각됩니다. 주일 오후에 본당에서 말씀을 마치신 형님은 고려인 선교관으로 식구님들의 배웅을 받으며 올라가고 계셨습니다. 제가 몸이 좀 굼떠서 형님을 뵈려고 조금 늦게 나왔는데 벌써 3층까지 올라가신 형님이 저를 발견하시고는 다시 내려오셨습니다. 저는 죄송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2층으로 뛰어올라갔습니다. 형님은 평상시에는 징그럽다고 잘 안아주시지 않았지만 그날은 저를 꼭 안아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아우님, 이 땅은 광야가 아니오! 우리 주님 모시고 오늘의 십자가 잘 지고 갑시다” 이렇게 당부해주시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언젠가는 전화를 주셨는데 “대체 우리 아우님은 얼마나 훌륭해지시려고 이렇게도 고난이 많으실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러게요 형님, 그렇지만 저는 털끝만치도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데 말입니다.” 하고 같이 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형님은 “이 형아 손 꼭 잡고 잘 따라만 오시오!” 하시며 격려해주셨습니다.
저는 우리 형님의 삶을 생각하면 아브라함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저는 아브라함의 자식인 이삭과 같은 존재라는 것도 생각했습니다. 창세기 26장 5절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삶을 이삭에게 본으로 가르치시면서 “아브라함이 내 말, 영어로는voice, 음성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한번은 형님께 그런 말씀을 여쭈어보았습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이 겪었던 경험을 겪을 필요가 있겠습니까?”했더니 “겪을 필요가 없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이삭도 나의 하나님으로 붙드는 것이 소중하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명령과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켰듯이 그 길속에 이삭이 서 간다면 아브라함의 하나님 되신 하나님이 이삭에게도 나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 되신다”고 말씀해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 형님은 천국에 계시지만 형님의 구주와 주님 되셨던 예수님은 여전히 우리들 곁에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계십니다. 우리 주님은 목석같이 말씀을 안 하는 분이 아니라 나를 아시고, 나의 앞길을 아십니다. 주님을 기대하고 사랑하고자 주님을 기쁘시게 섬기고자 의지하고 귀를 기울이는 저희들에게 말씀해주시고 사랑 가운데 명령을 행할 수 있도록 역사해주시는 참으로 친근한 형님 같은 주님이십니다. 이와 같은 주님을 가까이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고요, 앞으로 남은 길에서도 복음 안에서 귀한 분들과 더 가까운 형제처럼 관계를 맺으며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함께 일하는 동역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