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어학습 자서전
아이들이 너무 바쁘다. 학원 종류도 다양해지고 예전 같이 종합반이 아닌 과목별 공부를 위한 학원을 따로 다니니 대체 언제 쉬는 건가 싶을 때가 많다. 다들 그런다. “우리 애는 많이 하는 거 아닌데….” 중학교만 올라가도 당장, 책 읽기나 운동, 악기 등의 예체능(분류 기준은 제가 정한 게 아님을 밝힙니다)은 주말에 하는 활동으로 바뀐다고 한다. 여전하구나. 안 바뀌는구나. 난 무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전에 읽었던 김성우님의 단단한 영어공부_내 삶을 위한 외국어 학습의 기본_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나의 영어학습 자서전을 써보기로 했다. 아이 영어공부에 고민이신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리 공부하지 않았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다.
교육과정상, 중학생이 되어야 영어를 시작했다. 물론 사교육을 통해 미리 공부한 친구들도 많았지만 나는 중학교 가기 전 알파벳은커녕 대소문자 구분도 못했다. Bank는 왜 뱅크고, ACE는 왜 에이스로 읽는가.. 아. 저런 걸 다 알아야 하나. 영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다. 다행히 중학교 입학하고 만난 영어 선생님은 “너희가 아무리 다 배워왔다고 해도 나는 처음부터, 원칙대로 가르칠 거다.” 라는 소신을 가진 분이셨다. 알파벳부터 대소문자 차근차근 출발 할 수 있었다. 영어노트에 대문자, 소문자를 따라 적으며 오호. 이거 어렵지 않군. 즐거워했다. 새로 배우는 언어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암기도 어렵지 않았다. 기본을 중시했던 영어선생님은 최대한 영어교과서 체계에 충실하게, 예를 들면 Dialog(대화)라는 부분은 대화 전체를 자연스럽게 대화하듯 익히고 암기하도록 가르쳐줬다. 예를 들면, Mom! I am home. Where are you?//I am in the kitchen, how’s your day?//I had a great day Mom. 대화를 먼저 듣고 여러 번 따라 읽게 하고, 암기까지. 그리고 표현들을 설명하셨다. 소위 ‘티키타카’를 먼저 익히게 되면서 내가 하는 말이 대화가 된다는 것에 큰 재미를 느꼈다. 독해 파트에선 워낙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소개해놓기도 하고 외우라는 단어를 외웠더니 영어로 읽는 이야기들이 우리말 읽기 못지 않게 흥미로운 일이란 걸 발견하게 되었다고 할까.
자연스러운 노출의 기회가 있었다.
3년 터울의 언니와 방을 함께 썼다. 언니의 영어공부 방식이 EBS라디오를 듣거나 떠라 하거나, 교과서의 내용을 소리 내 읽거나 말하는 것이었다(언니는 이런 영어학습의 기본을 어떻게 배운 걸까, 지금 생각하니 신기하다. 오빠가 가르쳐줬나?-설마-) 아무것도 모르던 초등학생에게 본의 아니게 영어라는 언어에 ‘강제노출’의 기회를 제공한 거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동생에게 마치 대화하듯 이것저것 이야기하며 자기만의 공부를 했던 것이다. 그때 당시는 굉장히 귀찮고 싫고 시끄럽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나에게는 영어라는 언어에/소리에 자연스럽게 노출되었던 기회였던 거다.
하라는 것만 했다.
문법에 대한 부담은 중학교 때는 크지 않았다. –별로 안 했다- 고등학교 가서는 야간자율 학습 시간 마다 꾸준히 열심히 외웠던 단어 덕에 편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교재는 지금 봐도 참 괜찮은 거 같다. 단어를 무작정 외우는 게 아니라 단어의 어원을 살피고, 구조를 쪼개고, 동의어, 파생어, 문장까지 함께 외우도록 구성된 책이었다. 그 책을 3회독 정도 하고 나니 영어 교과서 단어가 많이 어렵지 않았다. 우선 단어를 많이 알고 있으니 크게 복잡하지 않던 고등학교 독해의 문장 구조의 대략 의미를 알아 맞추기는 어렵지 않았다. 운 좋게도 영어과 박사과정을 공부하던 영어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방식 굉장히 흥미로웠다. 아직도 기억난다. 문장을 괘도(!)적어서 질문한다. “동사 몇 개?” 문장이 아무리 길어도 한 문장에선 동사가 한 개 일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동사 찾기 연습을 무진장 시키셨다. 수능 독해를 풀어내기 위한(재빨리 문장구조 파악하고 읽어내기, 의미파악하기) 유용한 학습방법이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빡빡한 단어암기에, 시험에, 질문에 상당히 색다르며 까다로웠던 시간이라 싫어하고 공포스러워했던 친구들도 많았다.
영어와의 접점을 스스로 늘려가다.
대학 때는 영문과 전공수업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영어와 작문 전공수업에 들어갔다가 첫 에세이 제출하고 엄청 혼난 후 수업을 포기했다. 교수님이 좀 나빴다. 타과라고 굉장히 찬바람이 쌩쌩 부는 태도로 내 글에 빨간 줄을 죽죽 그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천둥벌거숭이 타과 학생이 전공 수업에 들어와서 까부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영어와 2학년 전공수업이었다. 그걸 용감하게 선택한 나도 참 나다.)한참 국제화 바람이 불어 미국교수님이 초빙되어 온다는 과목은 일부러 찾아 듣기도 하면서 영어와의 접점을 늘렸었다. 마케팅 수업이었는데 영어로 수업하는 거라서 거의 10명도 안 되는 학생끼리 아주 오붓하게 수업했다. 수업도 널널했고, 학점도 잘 받았다. 과목 공부를 제대로 한 건지는 모르겠다(전공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는 거엔 반대하는 입장이다)
시험은 여전히 장벽 맞다.
하지만 역시 시험은 쉽지 않았다. 대학생 모두가 준비한다는 토익을 하면서부터는 밑천이 좀 달리는 느낌이 있었다. 아무래도 말하기나 듣기보다 문법의 탄탄함 정도가 약했던 듯하다. 그래서 유명하다는 어학원을 다녀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800점 정도만 간신히 만들고 졸업했다. 분명히 나는 외국인 친구와 말도 잘하는데, 시험을 보면 왜 안 되지. 대화는 재미있는데 왜 녹음기 소리는 안 들리지? 왜 빨리 안 읽히지? 좌절의 경험이었다. 회사 다니면서 설렁설렁 공부하고 800점을 훌쩍 넘겨본 경험도 있다. 시험을 위한 공부, 평가를 위한 공부는 방식과 방법에서 접근이 다르다는 것을 이제는 경험적으로 안다.
즐거움을 덕분에 계속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왜 영어를 공부해야 하느냐 질문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제1언어인 한국어로 소통함에도 불편함이 전혀 없고, 어떤 콘텐트이든 우리말로 번역이 잘 되어 있고, 이젠 번역기나 Chat GPT같은 신박한 기술들이 나오는 마당이니 말이다. 영어를 고작해야 단어나 외우고 문법이나 외워야 하는 지루한 과목 정도로나 만들어버린 교육방식, 평가방법이 문제인 거다. 그나마 교육과정이 달라지면서, 회화나 대화, 말하기에 대한 교육이 많이 진전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모든 관문의 장벽이 되어버린 각종 시험 때문에, 영어 책을 읽고 대화를 익히던 아이들이 영어라는 언어를 아주 지긋지긋하게 생각하게 되는 거다. 안타까웠다. 그간의 들였던 노력, 수고, 부모의 피땀 어린 돈, 시간의 귀결이 그 언어에 대한 ‘지긋지긋함’이라니.
영어를 계속 접하고 영어 덕분에 직장 생활에서 관련 직무로 계속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밑바탕에 결국 ‘흥미’였다. 아무도, 강제로, 억지로 공부하라고 하지 않았고, 시험이나 평가의 과정들이 학교 공부나 학교 선생님들의 가르침 안에서 해결 가능했다. 영어가 소통의 도구로서 기능함에 대한 나름대로의 즐거움을 일찌감치 깨닫게 된 것 역시 아무도 강요하거나 강제하지 않았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물론 학교 선생님, 좋은 교재 같은 적절한 도움과 지원들이 있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전해 듣고, 내 의견을 전달하는 도구로서의 영어. 우리말에서 영어로 확장 될 때의 재미가 배가되는 것, 전혀 다른 느낌, 전율을 느껴볼 수 있는다는 감각. 그게 여전히 영어를 공부하는 게 재미있고, 계속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최근에도 여전히 읽고, 듣고, 쓴다. 회사 다닐 때 보단 빈도나 정도는 현저히 줄었지만 여전히 나에게 지겨운 공부가 아니라 내 세계를 확장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끔 만드는 유용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이런 재미와 흥미를 가지고 언어든 공부를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만들 수 있을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