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요한 10,27)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바리사이의 집에서 식사를 하시던 중 수종을 앓고 있던 병자를 낫게 해 주시는 기적을 베풀어주십니다. 이 같은 오늘 복음의 말씀은 이번 주간 계속되는 예수님의 기적사화로서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이 기적을 통해 다시금 율법의 본질이자 정신이 사랑의 실천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주십니다.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서 식사를 하시던 예수님의 눈에 한 사람이 들어옵니다. 그는 수종병, 곧 신장이 좋지 않아 장기에 물이 차는 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몸이 붓는 증상으로 인해 외적으로 누가 보아도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를 그 집 안에 있는 그 누구도 유심히 보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런 병자로만 바라보고 저런 병자가 왜 이곳에 들어왔냐며 냉대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그들의 마음 안에는 그 병자가 자리하지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아픈 이를 외면하고 배척하고 마음속으로부터 그를 몰아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르십니다. 예수님은 그 병자를 바로 알아보시고 다른 이들과는 달리 그의 아픈 몸과 마음에 깊이 공감하며 그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를 불러 세워 놓고 또 안식일의 규정을 어기려 한다며 어깃장을 놓으려 기다리고 있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에게 이 병자의 고통을 모른 채 지켜만 보는 것이 과연 율법의 올바른 정신인지를 묻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묻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루카 14,3)
이 물음에 그들은 잠자코 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그들의 행동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그들은 잠자코 있었다.”(루카 14,4)
잠자코, 말 그대로 예수님의 물음에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는 그들의 모습은 예수님의 말씀이 틀리지 않았음을, 그들도 예수님이 하시는 말과 행동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이 같은 바리사이들의 동의를 확인하고 난 후 예수님은 그의 손을 잡고 그의 병을 고쳐 그에게 다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리고 바리사이들에게 다시금 이렇게 물으십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이지라고 바로 끌어내지 않겠느냐?”(루카 14,5)
실제로 유다인들의 안식일 규정에는 사람이나 동물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다면 그 경우에 그들을 구하는 것은 안식일 규정에 어긋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 규정을 들어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따져 물으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바리사이들에게 그 병든 수종병 환자는 사람으로도 여겨지지 않고, 중요한 동물인 소보다도 못한 존재로 여겨졌다는 사실. 그래서 그들은 그 수종병 환자가 자신이 앓고 있는 그 병으로 인해 극도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도 그의 아픔과 고통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마음의 병, 무뎌질 대로 무뎌진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수종병이라는 육체의 병을 앓고 있는 이와 아픈 사람을 보고서도 공감의 마음을 갖지 못하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바리사이들 그들 모두의 병을 낫게 하고자 하십니다. 그런 예수님의 마음을 바리사이들도 알았던 것인지 예수님의 질문에 그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듣고 있을 뿐입니다.
이 같이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율법이 존재하는 근본적 이유, 곧 하느님 사랑의 마음을 나의 삶 안에서 사랑으로 실천하는 것, 내 주위의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바로 율법의 근본정신이자 율법의 존재 이유임을 알려주십니다.
이 같은 면에서 오늘 독서의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동족이자 혈족인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통한 복음을 듣고서도 그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기존의 편견과 고착된 사고만으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지 않는 현실을 개탄하며 그들의 진정한 회개, 하느님께로 돌아섬을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설파합니다. 바오로의 이 같은 마음이 다음의 문장 안에 잘 드러납니다.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로마 9,3)
오늘 복음환호송의 말씀처럼 하느님 목장의 양들은 주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주인을 따릅니다. 이에 주인은 그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으며 그 양들을 지켜주고 보호해준다는 사실. 하느님은 바로 우리에게 그러한 분이십니다. 그런 하느님을 합당히 믿고 따르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율법의 정신이자 근본인 사랑의 계명의 실천, 오직 그것뿐입니다.
사랑의 실천, 그것이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의 실천이며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이 지금 우리에게 바라시는 유일한 것입니다. 내 주위의 이웃에 무관심하며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은 거짓이며 위선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영성체송의 시편의 말씀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십시오. 하느님의 구원은 우리 삶에 환호의 근거가 되어주며, 하느님의 이름은 우리 삶의 승리의 깃발이 되어 줍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생명의 샘이신 그분께 다가가 빛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지금 이 순간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이웃을 사랑의 관심으로 돌보고 그들에게 사랑을 실천함으로서 하느님이 진정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사랑의 계명의 실천을 통해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당신의 구원에 우리가 환호하며, 하느님 이름으로 깃발을 높이리이다.”(시편 20(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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